2016년 7월호

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작은 거리

얀 베르메르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입력2016-06-24 10: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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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기쁨도 선사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상처도 안겨줍니다. 마음의 상처는 육체적 상처보다 고통이 덜하지 않습니다. 직접적 고통이야 육체적 상처가 더 클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칩니다. 상담학에선 이런 마음의 상처를 트라우마(trauma)라고 합니다. 심리학 용어로는 ‘정신적 외상’입니다.

    트라우마는 흔히 ‘큰(big) 트라우마’와 ‘작은(small) 트라우마’로 나뉩니다. 큰 트라우마가 일상을 넘어선 전쟁 또는 재난과 같은 사건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면, 작은 트라우마는 일상적인 사건으로 인해 자신감 또는 자존감을 잃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큰 트라우마든 작은 트라우마든 삶에 불안과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예술은 ‘상처 치료약’

    사람들이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일생 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도 있지만, 상처는 대부분 시간의 힘으로 아물고 치유됩니다. 망각은 상처의 훌륭한 치료약입니다. 세파에 부대껴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상처에 딱지가 앉고, 그 딱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떨어집니다.

    예술은 또 하나의 훌륭한 치료약입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좋은 작품을 만나면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감동이란 어떤 느낌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감동의 또 다른 이름이 공감입니다. 미술의 경우, ‘아, 이 작품 정말 좋다. 나와 비슷한 무엇이 있네’ 하는 느낌이 공감입니다. 공감을 느낀 사람들은 슬픔이나 기쁨을 나눈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리프킨은 우리 인간을 ‘공감하는 존재’로 봤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포함해 모든 존재에 대해 공감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공감이란 상호 이해에 기반을 둔 감정 이입으로, 그에 따르면 공감이란 자연스러운 본성인 것이지요.

    공감은 이성보다 감성을 우선시합니다. 많은 경우 인간에겐 생각보다 느낌이 먼저 나타나고, 공감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고흐의 작품을 볼 때 한 화가의 무시무시한 고독과 그 고독을 이겨내려는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고요하던 마음의 바다에 잔잔한 물결이 치기 시작하면서 마음 전체가 서서히 출렁거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공감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선사합니다. 하나는 마음의 위안입니다.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를 어루만져 아픔을 덜어주고, 차갑던 마음에 온기를 퍼지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이해입니다. 무엇인가에 공감한다는 것은 공감하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이 돌아봄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미술과 마음을 다루는 이 코너에서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감동과 공감으로서의 미술, 위안과 자기 이해로서의 미술을 살펴봄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마음을 담은 화가

    사람마다 공감하는 화가와 작품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울한 고야의 작품에 공감하는 이도 있고, 열정적인 고흐의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지적인 마그리트의 작품에 공감하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여러 화가의 작품에 동시에 공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어느 하나로만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무의식을 일깨운다면, 고흐의 작품은 의식의 빛을 발견하게 하고, 고야의 작품은 의식의 그늘을 돌아보게 합니다.

    마음에는 이런 의식의 빛과 그늘, 무의식의 심연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날의 일상을 보내는 마음도 존재합니다. 삶은 본래 소박하고 평범한 것입니다. 인간은 삶의 많은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먹고 마시고 여가를 보냅니다. 삶의 대부분 시간은 희로애락의 작은 일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일상의 마음을 화폭에 담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저는 네덜란드의 얀 베르메르(Jan Vermeer·1632~1675)를 좋아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렘브란트와 비교할 때 베르메르는 생전에 아주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사망한 후 대중에게 잊혔다가 19세기 중반에 재발견됐고, 지금은 렘브란트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베르메르의 작품은 30여 점에 불과합니다. 유실된 것도 적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베르메르가 많은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크지도 않습니다. 유명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대개 소품들입니다. 또한 베르메르가 다룬 소재도 대부분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는 우유를 따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레이스를 뜨고, 편지를 쓰거나 읽는 모습 등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작품들이지만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는 빛의 효과를 섬세하게 잡아냈을 뿐만 아니라, 인물과 사물들을 묘사하는 데 정밀한 붓 터치를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 결과, 작은 크기의 그림인데도 베르메르의 작품에는 따뜻함과 신비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Woman in Blue Reading a Letter)’은 베르메르가 1662~1664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 책상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편지를 읽습니다. 몸매를 보면 임신 중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녀가 마주 보고 선 곳이 환한 것으로 봐서 그쪽에 창문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벽에는 지도가 걸려 있습니다.



    네덜란드 델프트와 서울 수유리

    편지를 읽는 여인의 옆모습에선 다소 근심이 느껴집니다. 편지에 안 좋은 소식이 담긴 것 같기도 합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누구일까요. 편지에 집중하는 것으로 봐서 남편이나 연인, 가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 모든 건 감상자의 추측일 뿐입니다. 우리는 밝은 창가에서 한 여인이 편지 읽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 따름입니다.

    베르메르는 안정되고 단순한 구도 안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의 행위와 느낌의 한순간을 포착해 감상자에게 전달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이지만, 베르메르가 화폭에 담아낸 정지된 순간은 여인의 다소 근심 어린 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일상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서양 회화에서 17세기를 대표한 화가로는 벨기에의 루벤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프랑스의 푸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화폭에 담은 주요 모티프는 종교와 역사, 그리고 초상화입니다.

    이들과 비교할 때 베르메르는 일상을 캔버스에 담는 풍속화의 전통을 따른 화가입니다. 소소하지만 삶의 대부분을 이루는 일상에 시선을 던지고, 그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평범해 보이지만 다양한 표정을 잡아냄으로써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데 베르메르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거리(The Little Street)’는 1657~58년경 네덜란드 도시 델프트를 그린 작품입니다. 델프트는 베르메르가 태어난 고향이자 평생을 산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 그는 화가가 됐고, 결혼을 했고, 10명이 넘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화가 동업 조직인 델프트 성 루가 길드의 대표를 두 번이나 맡았습니다. 델프트는 그에게 작은 우주였을 것입니다.

    ‘작은 거리’는 당시 경제적으로 번성한 이 도시의 평범한 구석을 묘사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들에선 연륜이 느껴집니다. 그림 뒤쪽으론 지붕이 이어지고, 그 끝에 놓인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그림 속엔 세 사람이 있습니다. 현관문 안에서 한 여인이 레이스를 뜨고, 골목 안의 여인은 일을 하고 있는 듯하고, 거리에는 아이가 등을 돌린 채 놀고 있습니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일상의 한순간을 잡아낸 이 작품엔 한갓진 편안함이 담겼습니다. 네덜란드의 옛 도시인데도 저 작은 거리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서울 수유리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림 속 여인들은 어린 저를 돌봐주던 엄마, 친척 아주머니, 동네 어른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상처는 ‘소소한 행복’으로 치유

    상처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아물기도 하지만, 크게 아팠던 상처는 오래 지속되기도 합니다. 상처 치유에 가장 효과적인 약이 무엇일까요. 저는, 한결같이 내 옆에 있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나의 사람들, 지저분하지만 더없이 소중한 나의 집과 물건들,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지루하더라도 여전히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일, 즉 나의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상처의 치유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일상이 불행한 사람에게 삶이 행복하게 느껴질 리는 없겠지요.

    이런 삶 가운데서 만나는 예술은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은 삶의 위안을 안겨줍니다. 그 위안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 새로운 의미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산, 그럼에도 일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화폭에 담아낸 베르메르의 작품은 평범한 제 하루하루의 소중함과 의미를 돌아보게 해주는 고마운 그림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오늘은 어떠한지요. 혹시 사는 것이 힘들고 바빠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평범한 하루입니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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