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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 슈퍼게이트

“최태민 얘기 꺼내니 목에 힘줄이 솟더라”

‘박근혜 2년 밀착 보좌’ 전여옥 前 한나라당 대변인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최태민 얘기 꺼내니 목에 힘줄이 솟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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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朴, 최태민 꿈 얘기 자랑스럽게 해 섬찟”
  • ● “권력욕 많은 박근혜는 육영수 탈 쓴 박정희”
  • ● “그와 대화하면 면벽참선하는 느낌”
  • ● “朴과 목욕탕 갔다는 얘기는 사실무근”
최순실 사건 여파로 전여옥(57)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직언직설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KBS 기자 출신으로 2004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 대변인(2004년 3월~2005년 10월)을 맡아 ‘박근혜 사람’ ‘원조 친박’으로 불렸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MB) 후보를 지지해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2012년 총선 공천 탈락 후 탈당해 국민생각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고, 국회 입성에 실패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만나기로 한 전날 밤 취소됐다가 e메일이 몇 차례 오간 뒤에야 이뤄졌다. 11월 9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근처에서 만난 그녀는 아담하고 고운 중년이었다. 그는 “요즘 한국 정치와 관련된 책을 쓰느라 시간에 쫓긴다”면서 “예민하게 굴어 미안하다”고 했다. 눈가에 물기가 살짝 어리는 듯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신간을 의도적으로 이 시점에 내놓은 건가.

“내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그렇게 매도당했겠나. 책 만드는 데 4, 5개월 걸렸다. 젊은 세대가 많이 힘든 상황인데…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같은 가슴 아픈 일도 있지 않았나. 그들 세대를 위한 책을 쓰고 싶었다. 공교롭게 인쇄는 10월 25일, 판매는 10월 31일 시작됐다.”





 4년간 ‘육아’ 전념 

▼ 책의 부제가 ‘내 아들에게 주는 알짜 재테크 팁’인데.

“아들이 나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도 나에 대한 비판을 아이 앞에서 했다. 비 올 때 우산 들고 학교 간 적이 없고, 아이한테 전화가 와도 회의 중이라 못 받고…. 아이가 내 사랑을 믿지 않았다.”

▼ 몇 달 전 통화했을 때 “육아 중이라 바쁘다”고 했는데, 아들이 몇 살인가.  

“스무 살. 사람들이 ‘뭐하고 사냐’고 물을 때 ‘육아한다’고 하면 더 질문을 안 하기에 그렇게 답했는데, 실제로 육아를 했다. 아이 가슴속 분노를 풀어줘야 했다. 아이가 검정고시 학원에 갈 때도, 다녀와서도 냄비에 밥을 해줬다. 수저받침이며 냅킨도 놔주고.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 정치할 때는 지역구민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제 내 인생을 살면서 아이한테 정성을 다할 수 있어 좋다.”

▼ 책 제목이 ‘흙수저 연금술’이다.

“우리 애가 흙수저다. 아이가 대학 학력 인증을 받는 기술학교에 갔다.  꿈이 카센터 사장이다.”

▼ 정계 은퇴 후 ‘육아’ 말고는 뭘 했나.

“중국어도 배우고 영어도 공부했다. 시간은 많아지고 사람 만나기는 싫어져 책을 많이 읽었다. 초등학교 때 읽은 ‘테스’ ‘죄와 벌’ 같은 고전도 다시 읽었다. 내가 건강해야 아이를 지키니까 정신, 육체건강 책도 읽고. 함께 일하던 보좌관이 국회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다줬다.”

▼ 의원 시절 보좌관에게 중형차를 사줘 화제가 됐다.

“여자 몸으로 늦게까지 지역구를 돌아다녀야 하고, 편찮은 아버지를 뵈러 지방에 오가려면 차가 필요하겠다 싶어 중고차를 사줬다. 17대, 18대 의원으로 함께 일한 보좌진 중 가업(家業) 잇는 보좌관 한 명 빼고는 바뀐 사람이 없다. ‘내가 아니라 국민이 월급 주는 거니까 내가 보좌진에게서 사표 받을 일은 없다’고 말해뒀다. 그 친구들이 지금껏 마음을 준다. 생일도 챙겨주고 과일도 보내주고. 고맙다.”


2년 밀착해 지켜본 朴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도 꽤 된단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일이 바로 그것일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돈만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단다. (…) 사람의 마음은 돈만으로 절대로 얻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에 정성을 들이는 남자가 되도록 해.

-‘흙수저 연금술(2016)’ 180쪽



▼ 그간 낸 책들을 보면 ‘관계’를 중시하더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나만 해도 정치를 그만두니 친구들이 고생했다면서 밥도 사주고, 걱정해주고, 여행도 데려가면서 감싸줬다. 인복 많은 인생이니 성공했다 싶다. 아이도 그런 관계가 좋으면 좋겠다. ‘박사모’ 회원들이 집 앞에서 데모를 많이 해 아이를 지키려고 이사했다.

아들 친구들 중에 형편이 안 좋은 아이가 많다. 아들에게 ‘친구가 다치면 같이 병원에 가주라’고 한다. 여자를 돈으로 사면 안 되고, 여자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남자가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 그렇게 관계를 중시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망설여지진 않았나.  

“전혀. 공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박 대표를 밀착해서 본 2년이란 시간이 있으니까 부풀리지 않고 정확히 얘기해야 했다. 함량 미달인 데다 어둠 속에, 과거 속에 사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이 나라를 이끌면 국민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 맥락에서 국정화 교과서도 반대했다. 추한 과거를 미화하거나 덮는 건 일본식 사고다. ‘호빠’에 ‘오방낭’에…. 국정농단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박 대표가 말했다. “우리가 동지라서 그래요. 마음이 하나니까, 같으니까 그런 거예요.” 참으로 따뜻한 위로였다.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왜 그래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 기사는 전적으로 왜곡된 것이잖아요.” 박 대표는 내 손을 잡으며 조용하나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이겨내야 해요. 인터넷 들어가지도 말아요. 무시하세요. 당분간 당 홈페이지도 다른 사람들 뭐라 하든 상관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겨내고 견뎌내요.” (…) 나는 만일 대표가 박 대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십중팔구 문제가 생기자마자 나에게 사표를 내라고 했을 것이다. 박 대표가,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매우 특별하고도 특별한 것이다.

-‘폭풍전야 1(2006)’ 163쪽




권력은 ‘생활필수품’


나는 박 대표가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에 정치적 입지를 굳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4·15 총선 과정에서 확인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다. 박 대표가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가 사심이니 대권욕이니 하는 것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확인했다.   

-‘폭풍전야 1(2006)’ 192쪽  



▼ 2006년 말 발간된 ‘폭풍전야 1, 2’에선 박근혜 당시 대표를 호의적으로 봤는데.

“2006년 말부터 박 대표를 비판했다. 2007년 내가 MB 지지선언을 해 배신자로 찍혔는데, 정권 창출을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박 대표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박 대표는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자기 하소연을 들어주고 힘을 보태주는 존재로만 알았다. 진보는 진정성이라도 있지, 보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염돼 있다.

2012년 19대 총선 전 인터넷방송에서 좌담하는데 사회자가 ‘박근혜 키즈’의 일원인 L에게 전여옥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나를 면전에 두고 “배신자”라고 했다. 그래놓고는 방송 끝나고 달려와 “전 의원님 너무 좋아합니다. 식사 모시고 싶습니다”라며 꾸벅 인사하는데 너무 놀랐다. 이건 정치 9단도 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유시민은 토론 중에 싸우다가 쏘아보고 가는 일관성이라도 있지….

나는 ‘차떼기당’ 욕을 먹는 한나라당을 일으켜 세우겠다며 입당했다. 정권 창출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권력욕이 많은 박근혜 대표는 육영수의 탈을 쓴 박정희였다.”





박근혜의 권력 의지는 대단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권력이란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 맞는 맞춤옷 같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에게는 생활필수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나의 당’이었다.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이었다. 이 나라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히 여긴 ‘나의 국민’이었다. 물론 청와대는 ‘나의 집’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 즉 ‘마이 패밀리스 잡’이었다.   

-‘i 전여옥(2012)’ 118쪽  



▼ 박 대표에게서 결정적으로 돌아선 계기가 있나.

“조선일보 기자와 인터뷰하는 걸 보고 나서다. 기자가 “영애 시절 최태민이 박 대표를 앞세워 전횡을 저지르고 엄청난 부패를 저질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 대표의 목에 힘줄이 파랗게 솟았다. 그러고는 ‘최태민 그 양반은 나를 위해서 너무나 훌륭한 일을 많이 해줬는데 모함과 질시를 받아서 고초를 많이 겪었다. 그리고 다 조사해봤는데 실체가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박 대표가 인터뷰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봐 물을 건넸더니 손을 떨고 있더라.”    

▼ 대변인 시절, 박 대표로부터 최태민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

“최태민의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한테 말을 전해달라. 슬퍼마라. 너(근혜)를 위해서 길을 비켜준 거다. (근혜는)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거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하더라. 당 대표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 대변인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섬찟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면 ‘뭐 이런 나쁜 사람이 다 있냐’고 내쫓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골조 없는 63빌딩

▼ 심적으로 나약해서 그런 말에 의지한 건 아닐까.

“아니다. 박 대표의 엄청난 권력 의지와 최태민의 황당한 말이 딱 들어맞은 거다. 박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서 ‘정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최태민을 담아두고 있는 사람이니, 가만히 두면 최태민 공적비를 세우겠더라. 내가 알기론 그 질문을 한 사람은 그 기자가 처음이고 이후에도 거의 없다. 당시 ‘최태민’은 금기어였다. 친박 인사들 어느 누구도 최태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와 박 대표는 매우 충실하게 서로 소통했다. 사안에 대해서는 전화나 e메일 또는 팩스로 그때그때 신속하고 정확하게 의견을 나눴다. 기자실의 동정이나 당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보고서를 통해 전달할 때도 많았다. 서로 시간을 아껴 경제적으로 일을 하자는 것이 나의 모토였고, 다행히 박 대표도 나의 그런 스타일과 맞았다.

-‘폭풍전야 1(2006)’ 216쪽  



▼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에는 소통을 잘했나. 책에는 잘했다고 썼던데.  

“천막 당사 시절이라 나는 논평을 쓰고 당 대표의 인터뷰를 받아 기자에게 전달해주는 일을 했다. 박 대표는 브리핑을 쪽지에 써와서 보며 했다. 대면보고 해봐야 결론이 나지 않으니 팩스를 활용했다. 당에서는 당 대표와 독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 대표와 당의 한두 사람이 함께 얘기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박 대통령과 대면보고를 못했다니 너무 이상하다. ‘베이비 토크’를 하는 건 알았지만 해도 너무하다.”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오만의 극치”…. 그런데 이런 단언은 간단명료하지만 그 이상이 없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대통령에 식상했던 국민들은 한때 신선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뭔가 깊은 내용과 엄청난 상징적 비유를 기대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지도자가 소통하려면, 이 나라를 끌고 가려면 때로는 국민과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설득해야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과연 설득할 수 있을까?   

-‘i 전여옥(2012)’ 122쪽



“퍼스트레이디 역량도 의문”

▼ 요즘 인터넷에서 박 대통령의 베이비 토크를 비판한 ‘전여옥 어록’이 화제다.  

“총선 현장에서는 당 대표가 두서없이 말해도 대변인이 의미가 훼손되지 않게 말을 가다듬으면 된다. 대변인으로 오니 언론사 정치부에서 박 대표를 ‘수첩공주’ ‘100단어 공주’라고 부르더라. 어느 기자가 박 대표가 한두 시간 동안 사용하는 단어를 세어보니 100단어가 채 안 돼 그런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문법도, 단어 표현도 정확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건 골조가 없는 상태에서 63빌딩이 세워진 거다.”

▼ 단어를 100개만 쓴다 해도 소통만 잘하면 그만이지 않나.  

“일반인이라면 그래도 되겠지. 그렇지만 국가 정상들과 만나서 그런 어휘력 가지고 소통할 수 있겠나.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전문화된 어휘를 많이 알수록 심도 있게 생각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소통하는 태도다. 박 대표와 말하면 면벽참선하는 기분이다. 대화를 나눌 때 박 대표는 아이 콘택트(eye contact)도 안 하고, 종이를 접었다 펴기도 한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심오한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면 논점을 벗어난 반응을 보였다. 혼(魂)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그때도 했다. 오죽했으면 중앙일보 여기자가 “박 대표가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잘 모르는 것 같으니 TV 드라마를 보게 하면 좋겠다”고 권해 내가 박 대표에게 드라마 시청을 권했다.”

▼ 결국 박 대통령의 불통에서 여러 문제가 비롯된 것 아닐까.

“자질 자체가 안 된다. 퍼스트레이디 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 대통령을 꿈꿨다.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최면을 건 거고, 국민은 박정희의 딸이란 이유로 대통령으로 뽑아준 거다. 아버지한테 보고 배운 게 있겠거니 하고. 하지만 박근혜는 극장에서 커튼콜 내려갈 때 인사하는 소녀다. 그 뒤는 보이지 않는다. 근데 거기에 최순실이 있었던 거다.”

▼ 당 대표 시절에도 최순실이 뒤에 있다는 낌새를 챘나.

“박 대표가 오픈 하우스(집 개방)를 해 기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 나도 그때 처음 가봤다. 그릇이 좋아 물어보니 박 대표가 ‘저를 도와주는 분께서 빌려주셨어요’ 했다. 그릇 나르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아가씨 2명이 보였다. 박 대표의 비서가 친척이라고 말해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한나라당 출입기자가 150명 정도 되는 데다 정치반장끼리, 2진끼리, 3진끼리 자리를 나누다 보니 초대 자리가 10번쯤 마련됐는데, 그때마다 그 아가씨들을 봤다.

그런데 박 대표가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그 두 아가씨가 박 대표 옷을 야무지게 챙겨왔더라. 병원에 찾아온 박지만 씨에게 (그 아가씨들이) 친척이냐고 물으니 모른다더라. 지금 와 생각해보니 최순실의 친척인 것 같다. 젊은 시절 최순실과 닮았다. 최순실은 20년 전 내가 KBS 기자 시절에 만난 적이 있다. 야인 박근혜를 인터뷰할 때 동행한 2명 중 거침없이 행동한 여자가 바로 최순실이다.”

▼ 그런데 ‘i 전여옥’에서는 최태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2012년 1월 정치를 접으려 할 때, 내가 한나라당 공천 못 받은 걸 떠나서 나라의 장래를 얘기하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해, 의원회관에서 엿새 동안 우유하고 식빵 먹으며 썼다. 2012년 한나라당 경선이 있을 때 박 대통령은 이미 권력이었다. MB가 대통령일 때도 그는 ‘여의도 대통령’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더라도 세상의 정의와 상식을 기대하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최태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건 여자의 사생활이기 때문이다.”



최태민 얘기 안 쓴 이유

▼ 최태민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게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을 모신 전직 관료, 전직 교수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와 최태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줬다. 매우 구체적인 설명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만 찾아왔겠나. 하물며 2007년 대선 때 MB 캠프에서도 박근혜의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자고 했다. 그러다 박근혜가 여의도 권력이 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최태민 얘기에 대해 입을 딱 다문 거다. 물론 박근혜가 최태민에 대해 너무나 강하게 부정했기에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책에서 사생활보다 자질에 초점을 맞췄다. 같은 여자이기에 치맛자락을 들춰보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 사생활이 현재진행형이란 건 확실하게 알았다. 당시 박 대표와 최태민 일가가 연관돼 있다는 건 꽤 많이 알려져 있었다. 국회에 있는 보좌관들은 다 보좌관으로 불렸는데, 박 대표의 보좌관인 정윤회만 ‘비서실장’이라고 불렸다. 관련 정보는 차고 넘쳤다.”

▼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은 없나.

“절대 없다. 보수한테 너무 많이 실망했다. 정치를 하면 가면도 쓰고 그래야 하는데, 난 그러질 못한다. 난 내 인생이 정말 소중하다. 나를 위해 책도 더 많이 읽고 어휘체계도 넓히고 싶다. 그냥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글도 열심히 쓰면서 내 나름으로 정치할 거다.”

▼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던데.

“나는 캐릭터가 뜨겁고 순진하다. 거짓말을 못한다. 피터 드러커가 1년에 3주만큼은 휴가를 내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고 해서 나도 마흔 즈음에 그렇게 해봤다. 그때 나와 대화한 결과 ‘용기 내 목소리를 내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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