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부자와 미술관

맥주재벌 父子의 예술사랑 결실

칼스버그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입력2016-11-23 13:29:1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칼스버그는 1847년 J. C. 야콥슨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한 맥주회사다.
    • 아들 카를 야콥슨은 기업 경영에서 아버지와 극심한 대립 끝에 다른 회사를 차렸다.
    • 하지만 부자(父子)는 예술 사랑에선 궁합이 잘 맞았다.
    • 아버지는 재단을 만들어 미술품 수집에 많은 돈을 썼고, 아들의 예술품 수집 열정은 아버지를 넘어섰다.
    유럽의 도시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도 도시 중앙에 철도역이 있다. 그 옆에 170년 역사의 티볼리 공원이 있고, 맞은편에 궁궐 같은 칼스버그 미술관(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Ny Carlsberg Glyptotek)이 있다. 모두 중앙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칼스버그 미술관은 칼스버그 맥주 가문에서 만들었다. 창업자 J. C. 야콥슨(1811~1887)과 아들 카를 야콥슨(1842~1914)이 미술관 설립의 주역이다. 칼 야콥슨은 당대 최고의 미술품 수집광이었다. 고대 조각과 골동품에 관심이 많았지만 나중에는 회화 작품 수집에도 열성적이었다.

    칼스버그 미술관은 1만 점 이상의 훌륭한 작품을 소장한 덴마크 최고의 미술관이고 코펜하겐의 자존심이다. 덴마크도 예술을 사랑하고 지킬 줄 아는 문화 선진국임을 입증하는 곳으로, 1년에 관람객 40여만 명이 다녀간다.

    이 미술관은 ‘글립토테크(Glyptotek)’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각 미술관으로 시작했다. 글립토테크는 독일 뮌헨에 있는 조각미술관의 이름이다.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1세(1786~1868)가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품을 전시하기 위해 1816년부터 15년간 지은 곳으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사과를 든 다비드?

    칼스버그 미술관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과 18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유럽 조각 작품으로 가득하다. 로댕의 조각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했을 뿐 아니라 드가의 청동 조각도 갖고 있다. 수많은 전시실은 조각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많은 조각 작품을 전시한다.

    조각뿐만이 아니다. 회화 소장품도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 등을 대량 소장하고 있다. 고갱의 작품만 해도 40점이 넘는다. 1800년대 초부터 50여 년간을 ‘덴마크 예술의 황금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작품도 이곳에 가장 많다.

     칼스버그 미술관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각 작품 하나하나를 다 감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지루할 수도 있다. 너무 많고, 서로 비슷비슷하다. 미술관은 본래 그런 곳이다. 공부하고 가면 재미있지만 모르고 가면 그보다 더 지루할 수 없다. 고대 조각 전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아주 예쁜 조각상을 보면 눈길이 간다. 인파로 넘치는 길거리에서도 빼어난 미인이 지나가면 자기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듯이. ‘사과를 들고 있는 파리스 왕자(Prince Paris with Apple)’는 그런 작품이다. 19세기 덴마크 조각가 비센(Herman Wilhelm Bissen·1798~1868)의 작품인데 너무나 예쁘다. 피렌체의 다비드 조각상을 보는 것 같다. 다비드 상처럼 완전 누드이지만 오른손에 사과를 들고 있다. 몸매는 완벽한 균형미를 갖췄다.

    조각과 달리 그림으로는 남자 누드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자 누드화는 오래전부터 많았지만 남자 누드화는 드물다. 더구나 정면 누드는 거의 없다. 남자의 누드도 참 아름다운데 왜 그리지 않을까. 그런데 조각상은 남자 누드가 부지기수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만들어진 정면 누드상이 많다. 비센의 남자 조각상도 그런 조각이다.

    ‘파리스 왕자’는 전설 속의 인물로 ‘알렉산더’로도 알려져 있다. 비센은 덴마크의 전설적 예술가 토르발센(Bertel Thorvaldsen·1768~1844)의 제자다. 토르발센의 영향으로 비센은 낭만주의에서 신고전주의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사실주의 작가가 됐다. 1834년부터 코펜하겐의 왕립예술학교 교수가 됐으며 그의 작품은 덴마크 곳곳에 설치돼 있다.



    토르발센에 매혹

    미술관 설립의 주역 카를 야콥슨은 조각에 빠진사람이다. 덴마크의 전설적인 조각가 토르발센에 매료되면서부터다. 아버지의 저택에 있는 토르발센의 작품을 보며 카를 야콥슨은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토르발센은 고국을 50여 년간 떠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지만 덴마크인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지금 유럽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고, 코펜하겐시 한복판에는 그의 개인 미술관이 정성스럽게 조성돼 있다.

    조각에 빠져들면 고대 조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카를 야콥슨이 엄청난 양의 고대 조각품을 수집하면서 칼스버그 미술관은 고대 조각의 성지가 됐다. 대리석 조각, 테라코타 조각 등 그리스 로마 조각품뿐만 아니라 에트루리아(에트루리아인이 거주해 나라를 세운 고대 이탈리아의 지명) 조각품도 소장했다. 기원전 6500년에서 기원후 650년까지 무려 7150년에 걸친 중동 작품도 있다.

    고대 이집트 작품도 1900점 이상 소장했는데,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후 1세기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카를 야콥슨은 1882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카이로 박물관에서 작품을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이집트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칼스버그 맥주그룹은 세계 4위의 다국적 맥주회사다. 전 세계에 수많은 다국적 기업을 거느리면서 다양한 브랜드의 맥주를 생산한다. 러시아에서는 칼스버그 맥주가 시장점유율 40%에 달하며 한국도 칼스버그 맥주를 수입한다.



    칼스버그 미술관의 위상을 드러내는 두 명품은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The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과 ‘압생트 애주가(The Absinthe Drinker)’다. 책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직접 접하고 나는 일순 흥분했다. 덴마크의 미술관에서 이런 그림들을 보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마네가 1867년부터 1869년까지 여러 점(유화 대작 3점, 유화 소작 1점, 석판화 1점)을 시리즈로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소장자가 각기 달라 한꺼번에 전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1992~1993년 영국 런던과 독일 만하임, 2006년에는 뉴욕 MoMA에서만 5점 모두를 전시했다. 칼스버그 미술관은 그중 유화 소작(만하임 미술관이 소장한 대작의 습작)을 소장했다.

    마네는 공화주의자이고 공화정 옹호자였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왕정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전쟁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스페인 화가 고야는 ‘1808년 5월 3일(The Third of May 1808)’이라는 작품에서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과 양민학살을 고발했다. 마네는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그렸다고 한다.



    마네의 첫 그림

    ‘압생트 애주가’는 1859년 작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마네의 첫 작품이다. 마네는 18세 되는 1850년부터 토마스 쿠튀르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스타일의 그림이 싫어 화실을 뛰쳐나온 뒤에는 1856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만들어 홀로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이때의 작품은 대부분 마네 스스로 폐기해 아주 적은 작품만 현존하는데 이 작품이 그중 하나다.

    이 그림은 칼라뎃(Collardet)이라고 불리는, 루브르 박물관 근방의 넝마주이를 그린 전신 초상화다. 넝마주이는 술에 취한 듯하고, 압생트 술병이 발밑에 나뒹군다. 압생트는 알코올 농도가 45도에서 74도에까지 이르는 아주 독한 술로 당시 프랑스인들이 즐겨 마셨다. 아프리카에 주둔하던 프랑스 군대가 말라리아 예방용으로 마시던 술인데, 그들이 귀국할 때 가져와 마시기 시작하면서 1840년대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부터 부르주아까지 마시는 국민주(酒)가 됐다. 그러나 너무 독한 이 술 때문에 사회문제가 불거져 1914년에는 생산이 금지됐다. 21세기에 와서야 이 술은 다시 제조돼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네는 ‘압생트 애주가’를 1859년 파리살롱에 출품했으나 낙선했다. 심사위원 중 들라크루아만 찬성하고 모두 거절했다. 당시 윤리 기준으로는 모티프나 화법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마네는 1867년 자비로 기획한 회고전에 다른 작품 56점과 함께 이 작품을 전시했는데 당시 유명한 미술상 뒤랑 뤼엘이 1872년 다른 작품 23점과 함께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후 이 작품은 1906년 오페라 가수가 구입했고 1914년 덴마크 국립미술관 전시회에 출품됐다. 칼스버그 미술관은 이때 구입했는데 이는 칼스버그 미술관이 구입한 첫 현대작이다. 이 작품을 구입할 정도의 안목이라면 칼스버그 미술관의 미래는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최 정 표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 재벌사 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