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정여울의 책갈피 속 마음여행

고독은 病이 아니다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입력2016-12-14 14: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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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과 친구가 되라’는 조언을 많이 듣지만, 막상 말처럼 고독을 진정한 벗으로 삼기는 쉽지 않다. 고독사(孤獨死)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고독을 질병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과연 고독은 참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혼술’이나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에서 고독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혼자 밥 먹기와 혼자 술 먹기에는 그 나름의 커다란 매력이 있지만 그것이 평생의 습관이 된다면 문제가 있다. 혼자서 무엇이든 잘해내는 것은 좋은 능력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싫어서’ 혼자만의 세계로 지속적 도피를 꿈꾼다면 그것은 ‘고독의 위로’라기보다는 ‘고독을 향한 도피’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혼자 있음에 중독되지 않고, 혼자 있을 때도 함께 있을 때도 ‘온전히 나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고독을 즐길 줄 알면서도 고독의 편안함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 바로 고독의 중용일 것이다. 일상 속에서는 어떻게 해야 ‘고독의 중용’을 지켜낼 수 있을까.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는 ‘고독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그가 주목하는 고독의 첫 번째 효용성은 바로 ‘나답게 사는 길을 모색하는 시간’이다. 조직을 강조하면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창조성이 파괴된다. 오직 조직과 규율만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는 곳에서는 단지 감정만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아가 집단의 자아로 흡수되면 결국 개인의 자아를 찾을 길은 사라져버린다. 개인의 자아가 미처 발달하기도 전에 ‘집단의 자아=개인의 자아’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주입되는 것이다.





    고독을 견디는 방법

    키부츠 같은 집단양육시설에서는 아이들의 개성이나 창조성이 길러질 여유가 없고 아이들이 좀 더 순응적이고 순종적인 주체로 길러지기 쉽다. ‘너는 해병대 몇 기냐’는 식으로 선후배 관계를 위계질서로 과하게 인식하는 폐단도 이렇게 집단적 자아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나온다.

    우리는 ‘혼자가 좋다, 혼자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내던져진다. ‘고독을 즐기라’는 조언도 그래서 당혹스럽다. 이렇게 힘든 고독을 도대체 어떻게 즐기라는 것인지. 하지만 고독이란 ‘개인으로서의 자립’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고독을 견디는 방법에 따라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독의 두 번째 효용성, 그것은 ‘감정을 삭이고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의 확보’다. 고독한 시간에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그동안 ‘함께 나눈 시간’을 되새기고 곱씹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페르소나 뒤로 숨을 시간이 필요하다. 에티켓과 체면을 극도로 중시하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여성들도 일과시간이 끝나면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사회생활의 무대 뒤에서 어떻게 잃어버린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휴식을 즐기고 다음 행보를 모색하는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하지만 고독을 견디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고독은 실제로 질병에 가까운 고통이다. 우울에 시달리는 예술가의 고독, 예컨대 카프카의 고독이 그렇다.

    카프카는 고독한 것도, 고독하지 않은 것도 두려워했다.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그의 취약한 정신 구조가 무너질까 봐 두려워했고, 누군가 곁에 없어도 그 고독의 시간을 두려워했다. 연인 펠리체에게 편지를 쓸 때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으로 대접하고는, 막상 만났을 때는 그녀에게 거리를 두는 기이한 행동을 펠리체는 이해하지 못했다. 만나지 못할 때는 마치 불멸의 연인인 듯 애절한 사랑의 편지를 쓰고, 막상 만나면 그녀에게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이중성. 그것은 연인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른 카프카의 책임이었다.


    고독의 이중성

    카프카가 느낀 두려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독의 이중성이다. 카프카의 실패한 연애사는 고독을 갈망하면서도 고독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프카에게 가장 필요 한 바로 그 사람이 카프카의 창조성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바로 그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누군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가 위협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카프카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젊은이이기도 했다. 카프카의 마지막 연인 도라는 카프카의 이중성을 이해해준 것 같다. 도라는 카프카의 예민함과 변덕스러움마저 사랑으로 포용했다. 카프카는 도라와 동거하는 것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만큼이나 무모한 행동이라고까지 여길 정도로 두려워했다. 그러나 가족에게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없던 카프카에게 도라는 조건 없는 사랑을 줬고, 병마에 시달리던 카프카는 그녀와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다.

    영국 작가 앤소니 트롤럽은 고독과 싸우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정신연습’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고독의 위험을 딛고 끊임없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허물어뜨리는 사유의 모험을 반복한 결과 그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피터 래빗’ 시리즈로 전 세계 어린이에게 사랑받은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도 어릴 때는 자신만 아는 암호로 일기를 썼을 정도로 고독을 즐기는 소녀였다. 오랜 시간 연구를 거쳐 그녀의 암호 일기를 해독해내는 데 성공했을 때, 사람들은 그 속에 특별한 내용이 없어 실망했다. 그녀는 ‘무슨 내용을 일기에 담을까’보다도 ‘아무도 모르는 암호로 일기를 쓴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 게 아닐까. 고독을 즐기며 고독의 요새 속에서 뭔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어 한 그녀의 꿈은 ‘피터 래빗 시리즈’를 통해 결국 이뤄졌다.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우울한 순간에 가장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우울증 치료가 바로 이 강렬함까지 파괴해버릴까 봐 두렵다고. 우울증을 겪어본 예술가들은 뼈아픈 우울 속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하지만 ‘작가의 우울’은 창조적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지만, ‘인간으로서의 일상적 우울’은 참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를 위해’ 존재하기

    고독 속에서 느끼는 우울을 극복하면서도 그 우울 속에서 번져 나오는 생각을 소중히 간직하는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쓸 때 나는 내 우울 속에 기거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우울을 극복할 에너지를 찾기도 한다. 우울을 벗어나려 할수록 우울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기에, 나는 고독 속의 우울을 단번에 없애려고 애쓰지 않고 그 감정을 글로 풀어낸다. 그럴 때 신기하게도 우울과 함께하는 법, 고독에 익숙해지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어떤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만으로 그 감정의 고통이 치유되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고독의 세 번째 효용성, 그것은 ‘내면의 부조화를 인식하고 치유하는 힘’이다. 영국 시인 테니슨은 우울증 때문에 심하게 고생했지만 우울증 속에서 고독을 극복한 사람이기도 했다. 조화와 상징적 질서가 담긴 시를 짓는 동안 테니슨은 그의 삶에 존재하는 일체감과 완전함을 잠깐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면의 부조화를 인식하고 조정할 시간,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진단하고 치유할 시간은 바로 고독한 시간이다.” 작가 아더 케스틀러는 완전한 고독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내면이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느낌, 홀로 있으면서 입출금내역서 대신 궁극적 실재와 대면하는 느낌이라고. 우리는 고독할 때 비로소 삶과 대화를 나누고 죽음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에 다가갈 수 있다.

    청력을 잃은 뒤의 베토벤의 음악처럼 청중의 관심이나 흥미를 끌기 위한 아무런 기교도 부리지 않는 순수한 몰두의 세계는 바로 견딜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우러나온 또 하나의 독립된 세상이다. 우리는 고독을 통해 대중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해 존재하기를 배운다. 타인에 대한 기대도 실망도 접어버린 채, 오로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 쓰라린 고독을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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