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고용지표 줄줄이 하락
- 올가을 대기업 신규채용도 감소
- 3포세대→5포세대→7포세대→N포세대
- 청년 일자리 위한 사회적 타협 시급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김모(24·여) 씨는 9월부터 시작된 하반기 입사 시즌에 대기업 및 중견기업 30개 사에 지원서를 제출했으나 서류심사를 통과한 곳은 중견기업 3곳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해 겨울 대기업 인턴에 선발돼 마케팅 부문 직무경험도 쌓고 영어 스펙도 보강했지만, 서류심사 결과는 지난해보다 못하다”며 답답해했다.
취업시장에도 수저계급론
입사 과정은 지난하다.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인·적성 검사가 기다린다. 난도가 높아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최소 3단계의 면접이 기다린다. 대리, 과장급으로 이뤄진 실무자 면접, 임원 면접, 직무면접을 거쳐야 한다. 직무면접에선 30분 이상의 준비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며, ‘북미시장 확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까다로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아주 소수만이 몇 개월에 걸친 이 과정을 통과해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과정의 어딘가에서 탈락한 뒤 자괴감에 빠져 방황한다. 그리고 다시 스펙 쌓기, 영어 학원 다니기에 몰두하며 4〜5개월을 보낸다. 그러면 상반기 공채 시즌이 돌아온다. 3, 4월부터 자기소개서를 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서류심사조차 통과하기 어렵게 된다. 겨우 면접 기회라도 얻게 되면 “졸업 후 뭘 했나” “왜 졸업을 유예했나”… 하면서 꼬투리를 잡는 면접위원에게 시달린다.
취업시장에서도 ‘수저계급론’이 맹위를 떨친다. 부유한 집 자녀들은 해외 연수나 유학을 통해 높은 어학 점수를 확보한다. 알바(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취업 준비에만 집중한다. 내부자 정보도 확보할 수 있다. 이른바 ‘금수저’ ‘은수저’ 집안은 여러 경로를 통해 면접에 관한 유리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 같다고 보통 청년들은 생각한다.
올가을 대기업의 신규 채용(신입·경력)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9월 발표한 ‘2016년 500대 기업 신규채용 계획’에 따르면 응답 기업(210개 사) 중 48.6%가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하지 않은 기업 중 상당수는 아예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렇게 청년층은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디디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더욱이 ‘괜찮은’ 일자리로 꼽히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으로 진입하려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1〜2년 졸업을 유예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2015년 청년실업률은 9.2%로 2003년(8.0%)보다 더 악화됐고 청년고용률도 하락했다(2003년 44.4% → 2015년 41.5%). 질적 지표는 더욱 암울하다. 청년층의 첫 일자리 중 ‘계약기간 1년 이하’의 비중은 같은 기간(2003〜 2015년) 두 배로 상승(11.2% → 20.3%)했다. 비정규직 비율 또한 3.3%포인트(31.7% → 35.0%) 높아졌고, 청년층의 상대적 임금 수준은 비정규직의 경우 30세 이상 비정규직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악화(80.6% → 69.5%)됐다(표 참조).
공식 실업률은 9.2%라고 하지만 청년층의 실질 체감 실업률은 최고34.2%에 달한다. 주당 근무시간이 짧아 전일제 근무를 원하는 경우, 비자발적 비정규직, 그리고 구직을 포기함으로써 실업자로 잡히지 않은 경우를 모두 합치면 그러하다. 공식 실업률의 4배에 달한다.
그 결과 청년 취업준비생 65만2000명 중 39.3%에 해당하는 26만6000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 대열에 합류한다. 4120명을 뽑은 올해 국가직 9급 공채시험엔 22만2650명이 지원했다. 사정 모르는 중장년들은 청년들이 안정된 직장만 선호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들은 학력과 스펙보다 시험 하나로 승부를 가르는 공무원 시험이 공정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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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청년층은 좋은 일자리 부족에 따른 저소득으로 결혼과 출산 등 사회 재생산을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2016년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40만 명 이하의 저출산을 기록할 전망이다.이전의 청년세대는 취업과 승진의 기회를 그리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민주화를 통한 노조활동을 통해 임금소득 분배율을 높임으로써 기업 성장의 성과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기업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를 전혀 못 누리고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의 경우 임금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지 않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그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다.
이제 한국의 청년층은 노인층과 함께 한국 사회의 새로운 빈곤계층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희망의 탈출구를 쉽게 찾을 수 없기에 청년층은 한국 사회를 ‘헬조선’ ‘지옥불반도’ ‘망한민국’으로 부른다.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이들 청년세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에서 내 집 마련과 대인관계를 추가한 ‘5포세대’, 거기에 꿈과 희망 직장까지 더한 ‘7포세대’가 되고 있다. 포기할 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는 점에서 ‘N포세대’가 됐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학기당 4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에 더해 주거비 부담까지 해결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은 청년이 많지만, 졸업 후 불안정하고 소득이 높지 않은 일자리를 얻으면서 청년의 상당수는 부채에 시달린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20대 청년의 평균 부채가 2203만 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들은 최근 비은행 금융권의 공격적 영업 확대 대상이다. 30일 무이자대출 마케팅이 겨냥하는 층이 바로 청년이다. 이들은 안정적 소득을 확보하지 못하면 저소득 → 저신용 → 고금리 → 채무 악순환 → 신용불량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청년 고용의무 할당제 강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청년층이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맞벌이일 것이다. 맞벌이를 안 하면 결혼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과거 남성 외벌이 시대의 사회제도가 온존하기에 예비부부의 맞벌이는 결혼 후, 출산 후 맞벌이로 이어지기 어렵다. 장시간 노동,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부족, 노동시간의 유연성 부족으로 인해 기혼 여성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지난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20~30대 청년들은 엄청난 인적 투자를 했지만 이들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보다 눈에 띄게 낮다.획기적인 청년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일을 찾는 청년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공동체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여 좋지 않은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청년층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대기업 노사, 공히 청년고용을 외면해온 무책임한 태도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맞벌이 시대에 맞는 기업문화 정비가 시급하다.
공공부문에서 획기적인 청년고용을 가능케 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시적 목적세를 도입할 수도 있다. 기존의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를 강화하고,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수당과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김 용 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