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트럼프 쇼크’와 한국 핵무장

트럼프, 서울 지키려 뉴욕 포기할까

갈림길에 선 한국의 선택은?

  • 황일도 |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6-12-14 14: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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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길, 독일의 길, 영국의 길
    • “한·일이 핵무장한들 뭔 상관이냐”
    • 미국만 안전해지는 ‘핵 동결 협상’의 이면
    • 이 와중에 한국은 ‘리더십 부재’ 난국
    ‘백악관이 파리를 지키고자 뉴욕을 포기할 수 있을까.’ 1957년 소련의 위성 발사 성공과 함께 서유럽이 맞닥뜨린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트럼프는 과연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하려 할까.’

    누구도 점치기 어려운, 어떤 예측도 허용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동맹 정책은 1960년대 프랑스와 서독, 영국이 마주한 선택의 기로를 지금 우리에게 강요한다. 이제껏 믿어온 모든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는 혼돈의 시대, 서유럽이 걸어간 ‘3개의 길’을 반추해볼 때다.

    아무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안보 정책이, 핵 정책이 어떤 양상이 될지에 대해서는 주요 참모는 물론 트럼프 자신에게도 뚜렷한 청사진이 없다는 게 가장 정확한 상황 묘사다. 당연히 앞으로 4년 동안 트럼프의 백악관이 만들어갈 세계 질서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역시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암흑 속을 더듬어 길을 찾아야 하는 형국. 말 그대로 시계 제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국제질서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할 성질이 아니다. 미국은 지금껏 온 세상을 규정해온 국제 규범과 원칙을 만들어낸 당사자였고, 각국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 촘촘하게 체결된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FTA),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상징되는 핵 통제체제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 틀을 벗어나려 했다가는 미국의 철퇴를 피할 수 없다는 묵계야말로 세계에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한 근본 전제였다.



    모든 선택이 가능한 때

    트럼프의 미국이 그 틀을 벗어 던지겠다고 말하는 지금은 역설적으로 ‘모든 선택이 가능한 시기의 도래’를 뜻한다.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한들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심지어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의 섣부른 말들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나쁘게 보자면 극단적인 불안정의 시대지만, 좋게 보자면 그간 불가능해 보인 많은 선택지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는 의미다.

    스푸트니크 1호.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이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서유럽 나라들에 지구 궤도를 공전하는 스푸트니크의 위용은 인류가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는 ‘거대한 성취’만을 뜻하진 않았다.

    로켓을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릴 수 있다는 건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이 미국 본토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소련이 침공하면 우리가 핵으로 보복해주겠다’던 미국의 공언에 의구심이 제기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백악관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이 무렵 유럽의 질문은 2016년 한국이 마주한 고민과 일치한다. 짐짓 외면하지만, 핵을 장착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의 신뢰성을 두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미국이 막 베트남의 수렁에 발을 담그느라 유럽에 신경 쓰기 어려웠던 1960년대 상황과,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기여를 줄여나갈 것이라 을러대는 지금의 우리 처지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 주요 나라들이 택한 ‘3개의 길’은 지금 한국 앞에 놓인 옵션이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에 해당한다. 프랑스, 서독, 영국이 특히 안보와 동맹 문제에서 걸었던 전혀 다른 각각의 경로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먼저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참고서다. △동맹 거리 두기 + 독자 핵무장 △ 적극적 동맹 참여 + 핵 결정권 공유 요구 △ 동맹 유지 + 핵무장의 모호한 줄타기로 나뉘는 3개의 경로다.



    ‘탄력적 대응전략’의 탄생

    스푸트니크로 확인된 소련의 미 본토 타격능력 확보는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공언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지상 전력이든 재래식 폭격이든 핵무기든 수위에 상관없이 소련이 서유럽을 공격하는 그 순간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핵심부를 전략핵 공격으로 초토화하겠다는 게 대량보복전략의 골간이지만, 이젠 소련 역시 워싱턴과 뉴욕을 전략핵으로 보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럽 전역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자 1961년 집권한 케네디 행정부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핵 억제전략을 고안해 제시한다. 새 교리의 이름은 ‘탄력적 대응전략(Flexible Response Strategy)’. 전쟁의 진행 상황을 크게 재래전-전술핵 사용·전략핵 사용의 3단계로 나눠 문턱(threshold)을 설정해놓고, 상대의 반응과 전황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골자다. 

    예컨대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이 재래식 전력으로 서유럽을 침공한다고 가정하자. 미국과 나토(NATO)군은 일단 재래식 전력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전황을 뒤집는 데 한계가 있어 패배가 임박했다고 판단할 경우 폭발력 10kt 내외의 작은 파괴력을 지닌 전술핵을 사용한다. 이것만으로도 격퇴가 불가능하다면 그제야 비로소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의 수도와 산업지역에 대규모 전략핵 공격을 가한다는 단계별 대응전략이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세 나라의 선택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탄력적 대응전략이 미국의 주도 아래 나토의 공식 군사전략으로 채택되자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드골 대통령이 이끈 프랑스였다.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는 데 주안점을 둔 전략 아니냐’는 게 논리적 근거다. 워싱턴은 자신들이 초토화 당할 확률을 줄여야 서유럽에 대한 안보도 확실히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유럽이 쑥대밭이 된 뒤에도 자신들만 무사히 빠져나가겠다는 소리라는 정서적 반감이었다.



    일단은 전쟁 억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재래식 전쟁이 벌어지면 즉각 핵을 동원해 보복하기보다는 가급적 확전을 방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려 할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다(신동아 11월호 ‘전술핵 재반입 한미 핵공유 가능한가’ 참조).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핵우산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낮아진 지금으로서는 두말할 나위 없다.

    북한이 지금껏 쌓아 올린 핵 능력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는 전제하에서라면, 동맹과 독자적 결정권 사이의 모호한 줄타기를 통해 미묘하기 짝이 없는 균형점을 찾아낸 영국의 길이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지구상을 통틀어 오로지 미·영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적국과 떨어진 섬나라라는 특성도 한국과는 처지가 달랐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길은 프랑스와 서독의 선택인 셈. 둘을 가르는 근원적인 분기점이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아예 전쟁을 막는 일에 주력할 것이냐, 전쟁이 벌어져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에 주력할 것이냐. 유감스럽게도 둘을 동시에 똑같은 무게를 두고 추구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필연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韓 독자 행보, 美에 걸림돌?

    냉전 시기 발전을 거듭해온 억제이론은,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는 데 초점을 맞추려면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즉각 핵 사용을 포함한 전면전으로 번져나갈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후폭풍이 두려워 아무도 감히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응징 억제의 기본공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쟁이 벌어진 뒤에도 공멸만은 피하고자 애쓰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전쟁의 문턱 자체는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세기 전 프랑스의 선택은 전자, 서독의 선택은 후자였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프랑스식 전략이 반드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럽에 비하면 좁디좁은 한반도의 크기에다 남북이 마주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가 대책으로 제시한 KMPR(Korea Massive Punishment & Retaliation, 대량응징보복) 작전 개념이 그런 경우다. 전쟁이 벌어지거나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징후가 명백해질 경우 동시다량 정밀타격이 가능한 미사일 전력과 전담 투입 작전부대로 전쟁지휘부를 직접 겨냥하겠다는 게 얼개다.

    유사시 지도부에 대한 참수(decapi-tation) 작전에 즉각 돌입한다는 이러한 작전 개념은 확전의 가능성을 극대화해 평양이 함부로 도발에 나서지 못하게 하겠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한국이 독자적으로 확전 가능성을 끌어올리려 나서는 순간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탄력적 대응의 과정 하나하나를 자신들이 주도해 결정하길 원하는 미국에, 한국의 독자 행보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즉각 보복을 공언하는 한국과 확전을 염려하는 미국의 견해 차이가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한미동맹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긴장의 원천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핵 동결 협상’의 역설

    무엇보다 이러한 개념의 가장 큰 전제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이다. 최소한 이 작전에 동원할 전력과 부대에 대해서는 한미연합사령부와 별도의 지휘체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독자적 판단과 결심이 가능하다. 한국이 프랑스의 길을 따르고자 한다면, 프랑스가 그랬듯 ‘동맹과의 거리 두기’가 필연적이라는 의미다.

    서독의 길을 간다면? 역시나 쉽지 않은 일들을 각오해야 한다. 10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 주최 세미나에서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남긴 발언을 되새겨보자.

    “북한이 핵 능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은 성공 가능성이 없다. 바랄 수 있는 최대치는 핵 능력을 제한하는 것일 뿐이다.”

    클래퍼 국장이 거론한 가능성은 다름아닌 ICBM 능력 확충에 제동을 거는 일이었다. 미 본토를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의 확보를 저지하겠다는 목표가 더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다.

    그간 국내에서는 이러한 협상이 한국만을 북핵의 인질로 남겨둘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탄두 소형화와 중·단거리 미사일 능력은 이미 실전배치를 넘어섰고 ICBM 과시만이 남은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죽으려면 다 같이 죽어야지 미국만 도망가겠다는 것이냐’는 드골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하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보면 계산도 달라진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없다면 유사시 워싱턴이 북한에 대한 핵 보복을 주저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미국만 안전해지는 핵 동결 협상이 핵우산의 신뢰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고, 그만큼 북한이 서울을 상대로 핵을 사용할 개연성은 급속도로 줄어든다. 이를테면 아데나워식 계산법이다. 최소한 이러한 논리 전개가 워싱턴이 깔고 있는 억제 교리의 기본 공식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흔들리는 한국의 운명

    10월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두고 벌어진 일들은 한국 국방부의 처참한 실패였다. 하루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방부는 “전략폭격기, 공격용 핵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와 주변 해역 상공에 사실상 붙박이하기로 합의했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양국 장관의 공동성명에 관련 언급이 일절 반영되지 않은 것. 서독의 길을 흉내 내려 했지만 정작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혹은 서독의 길과 프랑스의 길 가운데 무엇을 따라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어쩌면 그러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관료주의의 외교적 참사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작 억울한 것은 국방부일 수도 있다. 전쟁 억제에 주안점을 둘 것인지 확전 방지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는 군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백만의 인명, 민족의 절멸까지도 염두에 두고 판단해야 하는, 문자 그대로 국가적 과제다. 영국과 프랑스, 서독에서 이를 결정한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와 유권자의 위임을 받은 의회다. 온 나라의 지혜가 동원된 토론과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을 따라, 그렇게 세 나라는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리하여, 다시 문제는 리더십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모든 신뢰를 상실한 지금의 대통령에게 과연 그 같은 결정을 맡길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선택의 무게가 비약적으로 커진 현실에서,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1년 4개월 뒤까지 미뤄둬도 상관없는 것일까. 혼돈의 시대, 선장을 잃고 흔들리는 한국의 운명 앞에는 무수히 반복될 외교적 참사의 그림자만 너울거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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