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호

르포

생리중단, 지방흡입…극한 다이어트·성형 “교수들이 ‘표준체중 미만 美人’ 요구”

연극영화과 입시의 ‘속물적 외모지상주의’

  • 김수민 |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입력2017-01-20 10: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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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고 교사들이 몸무게 검사”
    • “남녀 불문 3년 동안 저녁 굶어”
    • “예고 졸업생 60% 성형”
    A대학 연극영화과에 재학하는 김모(20·여)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산부인과병원을 찾았다. 과도한 다이어트로인한 하혈 때문이었다. 김씨의 키는 171.5㎝. 당시 3개월 안에 몸무게를 46㎏까지 줄이는 게 목표였다. 매일 오전 7시 20분 줄넘기 3000번을 하고 점심 때 다시 줄넘기 1000번을 하고, 저녁에 줄넘기 3000번으로 마무리했다.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다. 김씨가 이렇게 다이어트 강행군을 한 것은 오매불망 원하는 대학 연극영화과 입학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김씨는 해낸 셈이다.

    B(20·여) 씨도 고3 시절 6개월간 생리가 끊겼다. 역시 다이어트가 원인이었다. 키 164㎝인 안씨는 몸무게 43㎏을 목표로 한 달간 하루에 300㎉만을 섭취했다. 수업 중 정신을 잃어 쓰러지기까지 했다. 당시 예술고 학생이던 안씨는 오직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기 위해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다이어트에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대학 연극영화과 등 연기자 양성 관련 학과에 도전하는 수험생은 평균 3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학과의 한 해 입학 정원은 1200명 선에 그친다. 경쟁률은 180대 1~200대 1이 보통이고 가끔 300대 1까지 치솟는다.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연영과에 들어가기 위해 수험생들은 연기 연습은 물론이거니와 치열한 외모 가꾸기 전쟁에 뛰어든다. 그들에게 극한의 다이어트와 얼굴 시술은 입시를 위한 기본 사항이다. 얼굴 성형에 대한 압박도 강하게 받는다. 심지어 학생들은 고교 교사나 학원 강사로부터도 성형을 권유받는다.



    “0.01㎏ 초과도 벌금”

    필자가 만난 연영과 지망생들은 무엇보다 몸매 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C예고에 재학 중인 D(19) 양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집에서 싸온 방울토마토 10개와 삶은 달걀 2개로 점심을 때웠다. 중간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프면 콩으로 허기를 달랬다. 이러한 식단 조절로 최근 14㎏을 감량했다. 방 양은 “입시 기간 다이어트에 대한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 곳곳에 몸매 관리를 위한 체중계가 비치돼 있었다. 교사로부터 “내가 말한 체중까지 안 빼면 사람들 다 보게 네 몸무게 숫자를 교실 문 앞에 붙여놓을 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A대학 연극영화전공자인 김씨는 예고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매달 몸무게 검사 날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정해주신 목표 몸무게에서 0.01㎏이라도 초과하면 벌금을 냈어요.”

    김씨가 벌금으로 낸 돈은 20여만 원이었다고 한다. 하루 이온음료만 500mL 마시기, 하루 사과 하나만 먹기 등 입시를 위한 학생들의 다이어트 방식은 다양했다. 한 학생은 “허벅지 지방흡입술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몸매 관리는 남학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연영과 지망생 안모(19) 군은 “중학생 때 예술고 입학을 위해 10㎏을 감량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3년 동안 저녁을 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살이 금방 찌는 체질이라 항상 몸무게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연영과 진학을 희망하는 박모(19) 군은 ‘근육을 키우라’는 교사의 말에 하루도 안 빠지고 팔굽혀펴기 100번, 복부운동 50번을 했다. 근육이 잘 만들어지도록 아침저녁으로 단백질 보충제도 먹었다.



    “얼마나?” “뼈다귀?”

    연극영화과에서 ‘날씬한 몸매’는 정말 이렇게까지 필수적인 것일까. 필자는 연영과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생으로 가장해 시중 연기학원을 취재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E 연기학원에 들어서자 중년의 학원 부원장이 필자를 자리에 앉힌 뒤 상담을 시작했다.

    부원장
    : 키는?

    필자
    : 백육십오 정도 됩니다.

    부원장: 나쁘지 않네. 몸무게. (노골적 질문에 잠시 필자의 말문이 막히자) 어차피 다 재볼 텐데, 뭐.

    필자: 오십~삼이요. (부원장이 상담 학생의 프로필을 기록하는 일지에는 키와 몸무게를 적는 칸이 따로 있었다.)

    부원장: 사십육까지 빼면 돼. 빼는 데 큰 무리는 없어.

    필자는 순간 ‘7㎏을 빼는 데 무리가 없다고?’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연영과 진학을 위해 요구되는 턱없이 낮은 목표 몸무게를 실제로 확인하고 놀랐다. 표준체중 계산법에 따르면 키 165㎝에 해당하는 적정 몸무게는 57㎏으로, 필자는 살을 뺄 필요가 없다.



    또 김 양은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턱에 보톡스 주사를 맞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았다. 턱 보톡스란 근육을 마비시켜 얼굴을 갸름하게 만들어주는 시술로 유지 기간은 2개월에서 4개월 정도다. 막상 성형외과에 들어서자 코 필러도 하고 싶어져 세트로 했다고 한다. 코 필러란 주사기로 필러를 주입해 콧대를 높여주는 시술로, 유지 기간은 보통 6개월 정도다.

    연영과 입시생들은 “보톡스와 필러는 시험을 보러 가기 전, 외모를 가꾸기 위해 남녀를 불문하고 학생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 연기학원 부원장도 “코 필러는 코 성형보다 자연스럽고 부담이 적기 때문에 10월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9월쯤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성형 권유”

    입시를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이모(20) 양은 고교 시절 눈과 코를 고쳤다. 그는 “못생겨서 떨어졌다고 스스로 원망할까봐 미리 성형을 했다”라고 말했다. 최모(19) 양은 고교에서 연기를 하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주눅이 들어 성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모 예고 연기과 졸업생 25명 전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0%인 15명의 학생이 성형수술을 했다고 답했다. 성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66%의 학생이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50%는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성형하지 않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성형한 부위는 자신이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던 곳이거나 고치면 좋을 것 같다고 교사에게 조언을 받은 곳이었다. 이 양은 고교 시절 성형 문제로 교사를 찾아가 상담했다고 한다. 그녀는 “선생님이 ‘어디 어디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딱 짚어서 말씀해주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이 먼저 교사를 찾아가 성형 부위를 상담받기도 하지만 교사가 먼저 학생에게 성형을 권유하기도 한다. 모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생 1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3%의 재학생은 고교 시절 교사로부터 성형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모 대학 연극영화과 김모(20) 양은 이렇게 말했다.

    “예고 재학 시절, 학교 선생님에게 ‘코만 하면 예쁠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에도 선생님은 ‘너는 얼굴은 아니니까 몸매를 강조하자’라고 말하며 은근히 내 얼굴을 지적했다. 내 외모에 불만을 가져본 적 없었지만 결국 코 성형을 했다.”

    박모(19) 군도 1학년 때 교사로부터 “너는 코 수술을 해야 하니까 돈 모아둬”라는 장난 섞인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코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성형을 권유하지 않는다. 농담조로 말하거나 돌려 말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이 간절한 입시생들에게 교사의 이런 말은 영향력이 큰 것으로 보인다. D(19) 양은 “‘코만 하면 예쁘겠다’ ‘눈 찝어도 예쁘겠네’ ‘이마에 살짝 넣는 것도 괜찮겠다’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께 듣고 나서 얼굴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입시에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 같으니까 성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러한 과도한 외모 가꾸기의 원인이 ‘입시 방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연극영화과 입시 시간은 학생당 2~3분이며 교수들이 하루에 만나는 입시생은 4000명에서 5000명에 달한다. 학생으로선 이 짧은 시간 안에 교수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외모다.  

    김(20) 양은 “고3 시절 H대 S교수가 ‘못생긴 애들은 탈락 후보’라고 말했다는 것을 선생님에게 전해 듣고 ‘설마’라고 여겼지만 결국 그해 예쁜 애들이 H대에 합격하는 것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19) 양도 “처음엔 ‘예뻐야 대학 간다’는 말을 안 믿었다. 그러나 결국 대학은 배우가 되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 배우같이 생긴 사람을 뽑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H대학 연극영화과에서 조교로 일하는 I모 씨는 연영과 지망생들의 이러한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이야기했다. “연기를 정말 잘하고 캐릭터가 확실하면 붙을 수 있지만 어린 학생들의 연기 실력은 비슷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결국 외모가 매력적이어서 교수들의 눈에 띄어야 뽑힌다”는 것이 K씨의 설명이다. 김(19) 양은 “불공정하다고 해봤자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예뻐지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D(19) 양도  “연영과의 길을 선택한 이상 외모지상주의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속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입시 요강에 따르면, 연극영화과 지망생들은 이런 탁월한 외모에다 연기, 무용, 노래 실력까지 갖춰야 한다. 또한 악기 연주나 탭댄스 같은 개인적 특기도 준비해야 한다. 물론 배우에게 외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연극영화과 지망생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아이돌·걸그룹 외모’를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하는 배우의 정신, 예술가의 마음과 맞지 않다. 방송·연예계가 외모지상주의로 흘러서 대학 연극영화과나 예술고가 여기에 맞추는 건지, 아니면 학교가 지나친 건지 알 수 없지만, 속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선발 방식은 좀 달라져야 한다. 청소년들이 연영과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비인간적으로 가혹한 다이어트·성형 압박에 내몰리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업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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