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정상회담 때도 北에 1000만 달러 건네”
- 南과 내통한 北 장수길, 류경 등 총살
- 2006년 안희정 만난 北 참사는 공작원
- 국정원 ‘한국인 北 노동당원 명부’ 입수 시도
- 南, 장성택 비리 목록 작성해 北에 전달
평양 방문 앞두고 유서 써
“유서를 써놓고 평양에 갔다.”2010년 가을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김숙 전 유엔대사가 사석에서 했다는 말이다. 김 전 대사는 국가정보원 1차장으로 일할 때 북한을 찾아 천안함 폭침 이후 대결 국면으로 치닫던 남북관계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도모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숙 전 대사의 북측 카운터파트는 류경 국가안전보위성 부부장. 두 사람은 ‘과거 불행한 사태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천안함 사태 출구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류경 부부장은 김숙 1차장 평양 방문 연장선상에서 2010년 12월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국정원-보위성 라인이 숨 가쁘게 움직인 것이다. 류 부부장은 서울을 방문하고 평양에 돌아간 직후 총살됐다. 안보 당국은 류 부부장 숙청 이유를 파악하는 데 정보력을 모았다. 표면적 혐의는 수뢰, 부정축재지만 ‘대남 전략을 남측에 노출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국정원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것이다. 류 부부장 자택에서 거액의 달러도 발견됐다고 한다.
류경 부부장은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장 계급장을 단 2010년 9월 27일 상장(국군 중장에 해당)으로 진급했다. 김정일과 독대할 만큼 충성심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보위성에서 간첩 및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는 반탐(反探) 업무를 총괄했다. 간첩 잡던 보위성 부부장이 비밀접촉 과정에서 국정원과 내통해 반역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재일교포 출신 며느리를 제외한 일가족이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한국 국정원 1차장은 유서를 썼고, 북한 보위성 부부장은 총살을 당했다. 남북 간 비밀 접촉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특히 북측 인사에게 그렇다.
서울 호텔에서 러브샷
김양건 전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비밀 접촉하면서 한 말이다. 2009년 10월 북한 고위 인사 두 명이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 투숙했다. 김양건 전 부장과 원동연 당시 통일전선부 부부장. 두 사람은 10월 15~20일 5박6일간 싱가포르에 체류했다. 접촉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북한 인사가 관광객처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어 보안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북한 4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대북제재 이후 싱가포르는 북한인 무비자 입국 제도를 없앴다.
임태희 전 실장과 김양건 전 부장은 구면(舊面)이었다. 두 사람은 두 달 전(8월 21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양주잔을 기울였다. 김 전 부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조문 사절로 서울을 찾았을 때 일이다. 싱가포르 접촉에 앞서 9월에도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임 전 실장은 김 전 부장과 △정상회담 △국군포로 및 납북자 고향 방문 △한반도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인도적 지원(쌀 비료) △국군 유해 발굴 등 6개 항목에서 의견 접근을 봤다.
김양건 전 부장은 합의문 작성을 요구했으나 임태희 전 실장은 난색을 표했다. 임 전 실장이 특사로서 받은 훈령 범위를 넘는 사안이었다. 청와대는 싱가포르 접촉에서 합의 내용을 결론짓지 말고 통일부-통일전선부 공식 라인에서 논의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부장이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다.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확인만 해 달라”고 요청해 임 전 실장은 협의한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했다. 같은 해 11월 7일, 14일 개성에서 열린 통일부-통일전선부 접촉에서 북측은 싱가포르에서 서면으로 작성한 문서를 합의문이라고 내놓았으나 통일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상회담 추진은 무산됐다. 정상회담을 두고 이명박 정부 내 대화파(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 원칙파(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등)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CJ그룹이 윤활유 노릇
김양건 전 부장은 2015년 12월 29일 평양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TV조선이 지난해 12월 2일 “대남노선을 놓고 북한 내 강경파들과 갈등을 빚다 사고사로 위장돼 암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으나 진실은 알 수 없다.임태희-김양건의 만남은 북한 군부와 비선 접촉에서 시작됐다. 임태희 전 실장 측과 현철해 북한군 원수 측근 장수길 승리무역총회사 총사장(전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채널이 형성됐다. CJ그룹이 윤활유 노릇을 했다. CJ그룹은 승리무역총회사와 북한 내 대두유 공장과 관련한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 CJ그룹은 CJ대한통운 북한 지역 물류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CJ그룹과 승리무역총회사 협의 때 김양건 전 부장의 아들이 장수길 전 부부장을 수행했다. 임태희-김양건 라인은 이 같은 인연으로 구축된 것이다. 이렇듯 남북관계에선 공식 라인보다 비선이 일을 만들어낸 예가 적지 않다.
정상회담 논의로까지 이어진 비선 형성의 단초 구실을 한 장수길 전 부부장은 2013년 11월 말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전 부부장과 함께 반당종파분자, 간첩, 부정부패자로 지목돼 공개처형됐다. 장수길은 이전에도 부정부패로 구설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장수길, 이용하 전 부부장이 총살된 것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전 행정부장 숙청의 서막이었다. 장 전 행정부장은 그해 12월 12일 총살됐다. 이명박 정부 때 잘나가던 CJ는 박근혜 정부에서 수난을 겪는다.
남북 비선 접촉 때 소요되는 비용은 남측이 제공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임태희-김양건이 만날 때 북측 수행원에게 싱가포르 체류 시 사용하라고 신용카드를 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고 전해진다. 북측 인사들이 신용카드 사용법을 모르는 등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 남측 인사들이 놀랐다고 한다.
더 풍부한 회원 전용 기사와 기능을 만나보세요.
국정원의 이간책
한국 정보기관도 당연히 공작을 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한국 인사 명부를 구하는 공작을 했다. 국정원과 내통한 북측 고위 인사는 명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일한 전직 고위 인사 증언이다.“북측 인사가 꽤 많은 돈을 요구했다. 한국인 노동당원 명부를 실제로 제공할지, 명부가 정확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다. 명부 일부를 먼저 보여주면 그때 돈을 지급하고 일을 진행하겠다고 북측 인사에게 제안했다. 그 인사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국정원은 2013년 장성택 비리 목록을 작성해 공식·비공식 경로로 북측에 전달했다. 김정은, 장성택을 분리하는 이간책(離間策)을 쓴 것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장성택 판결문에 재정 사용 문제점, 비자금 유용 등 돈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가 넘겨준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 정보를 이용한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이 같은 공작이 장성택 실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 공작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남재준 원장 성격이 원래 그렇다”(앞서의 관계자)고 한다.(신동아 2014년 11월호 “朴 정부 1기 국정원 북한 붕괴공작 내막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제하 기사 참조 및 사실 추가)
국정원은 중국에 나와 있는 장성택 측근들과도 은밀하게 접촉했다. 또한 한국 언론에 ‘김정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장성택이 대안’이라는 보도가 나오게 해 김정은과 장성택을 이간했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 설명이다.
“황병서(북한군 정치국장)도 엄청나게 분석했다. 돈 문제를 비롯해 약점이 없어 공격할 곳을 찾지 못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황병서가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황병서가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관람차 한국에 왔을 때 공작을 하려고 했으나 잘 안 됐다.”
주간경향이 2016년 12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7월께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을 뵌 지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위원장님의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보천보전자악단 남측 공연 및 평양에서 건립을 추진하던 경제인양성소 등이 아직까지 실천되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재단과 북측 관계기관들이 잘 협력해 사업을 잘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위원장님의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북남이 하나 돼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도록 저와 유럽-코리아재단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입장료 받는 평양
김정일을 면담한 외부 인사가 답례 형식 편지를 보내는 것은 평양이 관례로 여기는 것이다. 그로하가 보천보전자악단 남측 공연 등을 성사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 모르게 명의를 도용해 편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김정일을 만나고 온 다음 답례 편지를 북한에 보냈다. 평양은 남측 인사들의 이 같은 편지를 ‘충성 편지’라고 일컫는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난 외국 정상이 돈을 내놓는 것도 일종의 관례였다.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메가와티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다. 수하르토 초대 대통령의 딸인 그는 김일성 생전에 부친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적도 있는 대표적 친북 인물이다. 그런 그도 2005년 김정일을 만날 때 입장료를 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월간중앙’(2017년 1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학계 인사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인수위 단계부터 북한과 접촉하려 했다”고 전했다. 신동아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북한 보위성 소속 이○○은 당시 문재인 캠프 측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 당선자가 북한을 협력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선소감, 신년사, 취임사에 상기 내용이 적절하게 사전 협의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북 문제 언급 수위를 조절해 잘못된 문구 하나로 파탄 나는 결과를 초래하면 안 된다. 천안함 문제는 인정 못하며, 5·24조치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의 취임식 (북측 인사 초정) 관련 사전 발표는 불쾌하다. 협의도 없이 발표하는 일방적 행태는 인정 못한다. 초청하면 참석하지만 선물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핫라인 구성이 필요하다. 대선 2~3일 전부터 가동해 취임식까지 운영하자. 특사는 당선자의 신임장을 지참해야 한다.”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북 관여론자,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대북 포용론자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북한 관련 성과물을 내려다 북한의 공작에 휘말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