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

윤동주문학관

시인의 마음을 길어 낸 빛의 우물

  • 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 · 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입력2017-01-20 0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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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1979년 미국 건축가 필립 존스를 필두로 매년 인류와 건축 환경에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공헌을 한 생존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2016년까지 40명의 수상자(공동 수상자 포함) 중 한국인은 없다. 이웃 일본은 1987년 단게 겐조(丹下健三)부터 2014년 반 시게루(坂茂)까지 7명이 수상했다. 중국도 2012년 왕수(王澍)가 수상했고 1983년 수상자인 중국계 미국인 이오 밍 페이(貝聿銘)까지 포함하면 2명이다. ‘프리츠커 프로젝트’는 이 땅에서도 그 첫 수상자가 나오길 바라는 염원 아래 그 씨앗이 되고 단초가 될 건축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장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 개관2012년 7월 25일
    2012년 문화부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 2013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 문의 02-2186-4175




    ‘시인의 언덕’에 서면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대여섯 그루 낙락장송 사이 돌비석 앞에 서면 정면으로 남산과 관악산이 가족사진을 찍듯 한눈에 들어온다. 한양성곽길 백악구간과 인왕구간이 만나는 그곳에서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을 어설프게 더듬어본다.

    북간도 출신 시인이 연희전문 재학시절 자주 걷던 산책로의 일부라는 그곳에서 시인의 심상에 비쳤을 1940년대 경성의 풍경은 가물가물 잡힐 듯하다. 하지만 밤이면 밤하늘 별을 헤고 낮이면 교회 첨탑에 걸린 십자가를 동경하던 그의 시심(詩心)은 쉬이 잡히지 않는다. 왼편 아래로 흰색 건물 하나 어른거린다. 나무계단을 따라 건물 옥상에 위치한 카페(별뜨락)를 지나 본채로 내려가는 길목에 치렁치렁한 가지를 길게 드리운 팥배나무가 인상적이다.




    건물을 정면에서 보니 ㄱ자 형태의 깔끔한 하얀 벽면 왼쪽 귀퉁이에 건물 주인의 이름이 작게 써 있다. 허나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철판 슬라이드 도어 표면에 천공된 낯익은 얼굴 이미지. 그 얼굴은 밤이 깃들면 내부 조명을 통해 시인이 사랑했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올해 12월 30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윤동주 시인(1917~1945)이다. 사실 윤동주문학관을 처음 접하면 그 규모가 작은 것에 놀란다. 동네서점 크기의 공간에 시인이 애장했던 시집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및 육필 원고가 전시돼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용정 시인의 고향집 우물을 감싸고 있던 목판이다. ‘자화상’에서 그 속에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했던 그 우물일까. 하지만 정작 방문객의 마음을 비춰볼 물은 없다.


    물 없는 우물이라…. 우리 마음을 비춰볼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실망은 아직 이르다. 건평이 200㎡(60평)도 안 되는 이 문학관에는 2개의 공간이 더 숨어 있다.

    ‘시인채’로 이름 붙여진 1전시실의 두꺼운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2전시실 ‘열린 우물’. 어찌 보면 작은 뜨락에 불과한 그곳의 전시품은 단 하나. 직사각형으로 뻥 뚫린 천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하늘이다. 방문객은 거기서 파아란 바람이 불고,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있고, 별이 바람에 스치는 우물물을 비로소 체험한다. ‘한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하며 시인이 우러르던 그 하늘을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풍경의 일부를 장식하는 나무줄기는 건물 밖에서 보았던 팥배나무의 그것이다.


    시인의 마음 일단을 엿봤다 흐뭇해하던 마음은 다음 전시실(닫힌 우물)에서 숨 막히는 순간을 경험한다. 슬라이드 문이 닫히는 순간 깊은 어둠과 침묵에 싸인 폐쇄된 동굴 같은 공간에 갇혀버린다. 시 ‘참회록’을 써야 할 정도로 부끄러움 속에 창씨개명까지 하고 건너간 일본에서 만 스물일곱하고 쉰 날도 못 채운 생을 마감해야 했던 식민지 청년의 한계상황이 온몸을 엄습한다.

    희미한 빛은 한줄기. 그 절망적 상황에서 ‘외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허락해 달라 기도하던 청년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였을까. 아니면 별 하나에 그리운 이름을 하나씩 부르다 끝내 호곡하고 만 어머니였을까.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고 노래했던 ‘사랑의 殿堂’ 속 순이(順伊)였을까. 방문객은 비로소 시인의 순수한 영혼에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나눈 감동에 젖는다.

    윤동주문학관은 지금은 철거된 청운아파트까지 수돗물 공급을 위해 수압을 높이던 청운수도가압장 부지에 들어섰다. 1전시관은 기계실 자리였고 2, 3전시관은 물탱크였다. 건축가들은 그렇게 세월이 켜켜이 쌓인 일상의 시공간에서 윤동주의 감동적 서정시학을 길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2월 16일 시인의 72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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