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핵심 멀리할 것’ 등 3不
- 외교관, 충청도, MB맨이 캠프 주축
- “김종인과도 교감 이뤄”
- “‘샤이(shy) 보수’ 밖으로 끌어낼 것”
최근 반 전 총장 주변에서 ‘3불(不)’ 얘기가 나왔다. 첫째 친박계 핵심을 멀리할 것, 둘째 외교관들에게 둘러싸이지 말 것, 셋째 충청도를 앞세우지 말 것이다. 이날 참석자들만 놓고 보면 일단 친박계 핵심은 없다. 대신 ‘MB(이명박)맨’이 반기문 캠프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여전히 외교관, 충청도 사람들이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대거 나서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음도 읽힌다.
반기문 사람들의 면면
이날 트라팰리스 캠프에 나타난 인물들이 ‘반기문 사람들’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다만 어떤 성향의 참모들이 반 전 총장 주변에 몰리는지는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반 전 총장의 귀국을 계기로 모습을 드러낸 ‘마포팀’뿐 아니라 ‘광화문팀’ ‘여의도팀’ 같은 여러 외곽 조직의 멤버들도 큰 틀에선 세 갈래 성향(외교관, 충청도, MB맨)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전언이다.문제는 캠프들이 ‘반기문 대권 로드맵’을 각각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팀 안에서도 구성원에 따라 생각이 각양각색이다. 무조건 반기문 신당을 만들자는 ‘정면 돌파론’, 두 개의 보수정당(새누리당·바른정당) 중 한 곳에 입당하자는 ‘보수 둥지론’, 제3지대에서 활로를 찾자는 ‘외연 확장론’이 혼재한다. 여기다 탄핵정국을 맞아 상황 변화가 생긴 만큼 처음부터 그림을 다시 그리자는 ‘백지(白紙)론’도 나온다.
박진 전 의원은 반 전 총장이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사실상의 대권 출사표를 던질 때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TV로 방영됐기 때문에 대표적인 ‘반기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줬다. 박 전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아시아미래연구원’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오피스텔(경희궁의 아침)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반기문 대권 플랜’을 구상해왔다.
박 전 의원은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신당 창당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지만 우선은 ‘백지론’을 펼쳤다.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시기에 따라 대선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 아닌가. ‘국민 속으로 행보’를 벌여 민심의 소리를 듣고 당면한 과제를 파악하는 게 선결 과제다.”
여의도팀 핵심은 이동관
‘경희궁의 아침’엔 김숙 전 유엔대사가 마련한 캠프도 있다. 이 역시 광화문팀으로 불린다. 김 전 대사가 이끄는 팀엔 외교관 출신을 비롯해 곽승준 전 수석, 이상일 전 의원 등이 참여해 정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분석해 반 전 총장에게 보고해온 것으로 알려진다.이동관 전 대통령홍보 수석비서관은 ‘여의도팀’의 구심점이다. 여의도팀의 인적 구성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 전 수석은 “전직 장·차관급과 청와대 수석비서관급들이 여의도에 싱크탱크를 구성하고 반 전 총장 출마를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 여의도팀은 MB 정부 출신 인사들로 구성돼 있나.
“이명박 정부 사람들을 주축으로 한 건 맞지만 다른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도 섞여 있다. 지금은 보수의 위기인 만큼 보수의 인재풀을 100% 가동해야 한다. 폐족 선언을 한 ‘친노’가 정권을 다시 잡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
▼ 여의도팀은 반기문 대권 플랜을 어떻게 짜고 있나.
“마포팀은 실무 준비를 해온 곳이고, 여의도의 별도 팀이 반 전 총장과 교감 아래 오래전부터 가동됐다. 물밑에서 네트워킹이 다 돼 있다. 설 연휴 직후 수면으로 떠오를 거다. 새누리당에 아직 남아 있는 비박계, 바른정당에 가 있는 의원들, 심지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도 교감을 이루고 있다.”
▼ 반문(反文) 진영의 중심에 반 전 총장이 설 수 있을까.
“관건은 지지율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지금은 맥이 풀려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 중엔 ‘샤이(shy) 보수’가 많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도 대놓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샤이 보수’로 숨어 있는 유권자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제4의 팀을 가장 신뢰?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변곡점은 반 전 총장이 취할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달라진다. 신당을 만들 때, 보수정당에 들어갈 때, 제3지대에서 동력을 찾을 때 등 여러 경우의 수 중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하지만 현재로선 참모들의 견해가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최종 결단은 반 전 총장의 몫이다. 각 참모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판단할 테지만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다. 반기문의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참모집단은 과연 어느 팀일까. 반기문 인맥에 속하는 언론인 출신 A씨는 “마포팀도, 광화문팀도, 여의도팀도 아닌 ‘제4의 팀’이 있다. 반 전 총장이 가장 신뢰하는 팀으로, 그쪽에선 신당 창당이나, 기존 정당 입당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다음은 A씨가 전한 ‘제4의 팀’이 생각하는 ‘신당 창당 불가론’이다.
“정당을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한 길이기는 하다. 그러나 창당이 쉬운 일이 아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덜컥 신당 창당에 나섰다가는 중간에 붕 뜨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현역 국회의원들을 모으기 힘들다. 모호한 불확실성에 기대를 걸고 선뜻 오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때 지지율 30%대를 기록하며 ‘대세론’을 탔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대권 도전을 포기했다. 우리는 그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고건 전 총리는 2006년 말 집권당이었으나 지지율이 떨어진 열린우리당을 해산한 후 의원들을 자신이 만드는 당에 개별적으로 합류시키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싱크탱크인 ‘미래와 경제’를 모태로 정당을 만들려고 한 것.
당시 열린우리당 내에서 고 전 총리와 대권 교감을 나누며 킹메이커 노릇을 하고자 한 이가 문희상 전 의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해산 후 개별 합류’라는 그림을 그린 고 전 총리의 구상에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통보하고 손을 뗐다고 한다.
“고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집권 여당 소속에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신당에 합류하는 도박에 나서길 원치 않은 의원이 많았던 것이다. 당시 고 전 총리도 지금의 반 전 총장처럼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를 내세웠지만 현역 의원들은 코웃음을 쳤다. 현실을 모르는, 정치적 철부지 같은 말이란 얘기다. 그 시점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고건 국무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자탄하자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고, 결국 2007년 1월 대권 도전의 뜻을 접었다.그렇다고 기존 정당에 올라탔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현재 국민의당의 노련한 호남 맹주들에게 휘둘리는 안철수 전 대표 꼴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당이든 당 안에서 지분을 갖고 있는 중진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순순히 내줄 리 만무하다.
더구나 두 보수정당 중 마땅히 둥지를 틀 만한 곳도 현실적으로 없다. 여전히 친박계가 득세하는 새누리당으로 가면 ‘박근혜 리스크’를 몽땅 뒤집어써야 한다. 바른정당의 경우 아직은 지지율이 낮지만 대권 잠룡들이 이미 포진해 있다.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다. 만일 반 전 총장이 여기에 동참하면 ‘원 오브 뎀’이 되면서 대선후보 경선을 치러야 한다.
반 전 총장 주변에서 대세를 형성하기 시작한 제3의 길이 ‘제3지대 통합론’이다. 연결고리는 분권형 개헌이다.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카드를 전제로 한 개헌이다. 총선과 대선 시기를 맞추기 위해 한시적으로 다음 대통령만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이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임 말기에 미국을 방문한 충북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이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당분간은 반 전 총장이 이 카드를 꺼내지 않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3지대를 통합하는 비장의 무기로 써먹을 수 있다. A씨는 “가장 강력한 상대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선 판을 흔들 개헌, 특히 임기 단축 개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기에 ‘문재인 고립’ 작전에 나설 때 매우 매력적인 카드”라고 말했다.
더구나 임기단축 개헌은 김종인 전 대표의 지론이다. 김 전 대표가 이를 연결고리로 반 전 총장의 손을 들어줄 경우 민주당 안에서도 비문(非文)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에 합류하는 현역 의원들이 속출할 수 있다.
반 전 총장의 핵심 보좌그룹에선 제3지대, 나아가 대권 수순과 관련해 더욱 구체적인 그림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민심 청취→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안의 친반(親潘) 규합→김종인·손학규·이재오·정의화 등과 제3지대 결성→새누리당·바른정당과 연대 추진→국민의당과 후보 단일화 모색이 그것이다.
만일 이 그림이 완성되면 문재인 전 대표는 완벽하게 고립된다. 그만큼 ‘반기문 정권’ 탄생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정글 같은 제도권 정치판의 노회한 중진들이 반 전 대표의 이런 프로세스에 순순히 따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모든 단계가 만만치 않지만 특히 제3지대의 중심에 서는 일, 그리고 국민의당과의 후보 단일화가 최대 난관이다.
“국민의당과 빅텐트? 쉽지 않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반 전 총장 핵심 참모 그룹에선 각 단계마다 돌파구를 마련 중이라고 한다. 가령 제3지대 결성 단계에선 지분을 갖고 있는 인물들과 ‘공동 수뇌부’를 구성해 진로를 함께 논의하고, 대권 도전 꿈이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과는 경선도 치르는 유인책이다.A씨는 “반기문 혼자 꿩 먹고 알 먹고 할 순 없는 거 아니냐. 빅 텐트를 치기 위한 지분 협상을 해야 한다. 손학규, 김종인은 물론이고, 결국엔 김무성, 유승민, 안철수까지 다 모여 지분을 나눠 갖고 집단지도체제 비슷한 걸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반기문은 ‘포용의 리더십’이란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기문 대권 로드맵의 완성은 국민의당과의 연대, 혹은 후보단일화에 있다. 호남을 장악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반 전 총장에게 등을 돌린다면 ‘문재인 고립화’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상당수 호남 의원이 안철수 전 대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재인 진영에 가담하고 호남 민심도 문재인에게 쏠릴 수 있다.
현재 국민의당에선 호남 맹주들이 반 전 총장까지 포함한 ‘제3지대 빅텐트론’에 흥미를 보이고 있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자강론(自强論)을 기치로 독자적인 대선 행보에 나서고 있다. 정치평론가 황태순 씨는 반기문과 호남 맹주들의 연대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보수 반(半), 진보 반(半)’ 행보
“반기문 전 총장과 국민의당이 한 배를 타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이 아니다. 반 전 총장은 안보에 관해서는 확실한 보수다. 그런데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철회를 당론으로 정한 상태다. 또한 개성공단을 두고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국민의당은 햇볕정책의 옥동자인 공단 가동 재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엄정한 안보적 위기 상황이 전개되는 현 시점에 반 전 총장의 태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에게 국민의당과 간극을 줄여나갈 묘안이 있는가. 간극을 줄여나갈 수 없다면 한 텐트 안에서 동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제3지대와의 연대에 적극적인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벌써부터 ‘반기문 길들이기’에 들어간 상태다. 만일 반 전 총장과 손을 잡더라도 호남의 지분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의도다. 박 대표는 “반 전 총장이 혹독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드러난 것 외에도 제가 알고 있는 의혹도 몇 가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직 그러한 것을 발표할 때는 아니지만, 반 전 총장이 대통령 후보로 활동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이 호남 민심을 대권 욕심의 도구로만 사용하려 한다면 자신이 앞장서서 반 전 총장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검증 공세’를 펼치겠다는 경고다.
아울러 반 전 총장의 ‘보수 반(半), 진보 반(半)’ 행보도 적당히 하면 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국립현충원을 찾은 자리에서 지금까지 선별적으로 전직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다른 대선후보와 달리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모두 참배했다. 또한 보수의 본당인 대구 서문시장과 진보의 성지인 광주 5·18 묘역 등을 순차적으로 찾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