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의 해’ 정유년을 맞아 닭이 무더기로 사라지고 있다. 설은 다가오는데 떡국에 넣을 지단조차 장만하기 힘들다. 2016년 11월 중순 발생한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피해치곤 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닭이 먼저인가, AI 청정화가 먼저인가. “뭣이 중헌디? 도대체가 뭣이 중허냐고?” 어느 영화의 대사가 귓가를 맴돈다.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 중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바이러스는 1996년 중국에서 발생한 H5N1 바이러스의 변형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그때 이후 현재까지 HPAI 바이러스 상재국이며, 새로운 변이종 출현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가 야생조류에 감염돼 한 해 건너 국내로 유입된다고 보면 된다.
중국엔 각종 가금류를 한곳에 모아놓고 사고파는 재래시장이 활성화돼 있는데, AI는 이러한 재래시장에서 다양하게 재조합돼 전파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014~2015년 2년간 발생해 국내 최장기 AI 발생 기록을 경신한 H5N8형, 2016년 불과 50여 일 만에 국내 최초로 3000만 마리라는 최다 살처분 기록을 경신한 H5N6형은 중국에선 모두 H5Nx라고 불릴 만큼 현지 재래시장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진화된 H5 HPAI 분류상 ‘clade(계통군) 2.3.4.4.’에 속하는 바이러스인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중국의 직격탄 맞는 한국
중국 오리 유래 H5N8형 AI는 2014년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2015년 미국, 2016년부터는 인도, 터키, 독일, 스웨덴 등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유럽으로 확산된 H5N8형 AI는 2016년 다시 한국으로 귀환해 최근 경기 안성천에서 재확인된 바 있다. H5Nx로 불리는 중국 오리 유래 AI는 이제 전 세계를 돌고 돈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만의 문제를 벗어나 전 세계적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그 직격탄을 한국이 맞고 있다. 결국 중국의 오늘은 한국의 미래라 할 수 있다. 적어도 AI로만 보면 그렇다.과거를 되돌아보면 몇 번씩 이러한 등식이 재확인되고 실제로 반복돼왔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AI 상재국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AI 청정국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한국적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실정에 맞는 가장 바람직한 AI 대처방안이 무엇인가 정부 당국에 묻고 싶다.
차단방역 수준 높여야
2003년 이후 6번의 AI 발생 모두 철새에 의해 바이러스가 유입된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문제는 철새들이 지나는 길목이다. 우리나라로 날아온 철새들은 주로 서해안을 따라 이동하는데, 경기-충청-전라도로 이어지는 이른바 서해안벨트는 국내 가금산업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강과 하천 등 철새 도래지가 많은 지역에 오리·양계농가까지 밀집해 있으니, 매년 겨울철만 되면 철새와 함께 AI가 발생하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AI 피해 규모가 다른 이유로 두 나라의 오리 산업 규모를 첫째로 꼽는다. 오리는 AI에 감염돼도 폐사율이 낮아 발생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고, 일부 청둥오리와 거위 등은 AI에 감염돼도 증상 없이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AI 발생 시 주요 전파 요인이 된다. 닭에 비해 다양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한 탓에 상대적으로 오리농가의 차단방역 수준도 매우 느슨한 상황이다. 중국과 거리가 가깝고, 오리산업 규모 역시 일본에 비해 훨씬 큰 한국에서 AI가 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새가 뿌려놓은 AI 바이러스가 차단방역이 느슨한 오리농가로 유입된 후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오리는 큰 증상 없이 많은 양의 바이러스를 배출해 주변의 오리·양계농가를 감염시키고, 이후 사람과 차량 등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나라에 AI가 일단 들어오면 그 피해가 매번 눈덩이처럼 커지는 주요 요인으로 반복 작용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AI를 막으려면 앞서 언급한 발생 원인별 맞춤 대응이 필요하다. 사전예방 조치로는 농가의 차단방역 수준 향상이 첫째로 꼽힌다. 철저한 차단방역을 위해선 농가 출입 차량과 사람을 소독하는 시설, 쥐와 야생조류 등 야생동물의 접근을 차단하는 시설 등이 필수적이다. 또한 농장 내부로 진입하기 전 장화 등을 갈아 신고 철저한 소독을 수행하는, 오염구역과 청결구역을 구분하는 차단막인 ‘전실’도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 가금농가는 여전히 기본적 차단방역 시설 없이 운영돼 AI 발생 때마다 어김없이 피해를 본다. 이 때문에 농가에서 자발적으로 차단방역 수준을 향상하도록 ‘차단방역 수준별 살처분 보상금 차등 지급’ 등 국가정책의 변화가 시급하다.
날아오는 철새를 막을 수 없듯, AI 유입 자체를 막을 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철새 도래철에 대규모 바이러스 예찰을 통해 AI 유입 여부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해 바이러스 예찰 조사를 실시하지만, 채취자의 전문성 등이 부족해 마른 분변을 채취하는 등 온갖 비효율이 드러나고 있다. 예찰기관 간 긴밀한 협조와 노하우 공유 등을 통해 예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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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허가 절차 간소화
‘ring-vaccination’ 외에 백신 상시 사용은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양날의 검으로 평가되며, 2003년 국내 최초로 H5N1형 HPAI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대다수 AI 전문가가 그 적용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백신의 전면적 사용 시 문제점은 백신으로 면역을 획득한 가금류가 임상증상을 나타내지 않아 감염농가 파악이 어렵고, 이로 인해 방역활동 자체가 매우 어려워지며, 최종적으로 바이러스가 상재화하고 인체감염 우려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4년 H5N8형 발생 이후 AI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백신 사용의 필요성에 대해 일부 공감하고 있다.그동안 백신을 사용하지 않은 데에는 국내에선 살처분을 통해 효과적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산란계 30% 살처분, 신선 달걀 수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차단방역, 소독, 진단, 살처분 등에 대한 개선이 어렵다면 ‘ring-vaccination’ 등과 같은 제한적 백신 사용 여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즉각적인 백신 적용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AI 백신은 개발에만 약 3개월이 소요되며 대량생산, 효능 평가, 안전성 평가 등을 고려하면 최소 1년의 개발기간이 소요된다. 미국의 경우 2015년 아시아형 H5 바이러스에 의한 대규모 피해를 경험하면서 백신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전부터 백신정책을 준비했으며, 현재 미국 농무부와 2개의 상용백신회사 간 계약을 통해 백신 생산을 앞두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만, 이젠 적어도 백신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백신의 여러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려돼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적절한 바이러스(항원)의 선택이다. AI의 족보가 매우 복잡하기에 현재 돌고 있는 바이러스가 아닌 먼 친척뻘 바이러스를 골라 백신을 제조할 경우 폐사만 예방할 수 있을 뿐 바이러스 배출을 감소시키지는 못해 되레 확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 적절한 항원을 사용한다면 바이러스 배출량과 빈도가 100배 이상 감소하므로 더욱 효과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종류의 항원뱅크 구축을 계획하고 있지만, 단순히 항원을 모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현재 유행하는 바이러스 및 유행 가능 바이러스 예측을 통해 백신 후보주를 선별해 백신을 개발하는 단계까지 가야 할 것이다.
둘째는 백신접종을 실시한 가금류를 검사하기 위한 예찰 시스템에 대한 정비다. 백신에 의해 면역을 획득한 닭은 임상증상을 나타내지 않아 증상 발견 후 신고에 의존하는 현 방법으로는 바이러스 감염개체를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백신접종 개체 중 실제 감염개체를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 AI 예찰 검사 시스템이 사전에 정비돼야 한다. 이 밖에도 효과적인 AI 백신은 닭과 오리에 모두 적용 가능해야 하고, 항체검사에서 감염개체와 백신개체의 구분이 가능해야 하며, 바이러스 배출 억제를 위해 높은 역가의 항체 수준을 단기간 내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상업적으로 경제성이 있어야 하고, 접종 후의 부작용과 적용의 편리성도 고려돼야 한다.
백신 허가 절차도 응급상황에 대비해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인체용 백신의 경우엔 개발방식이 똑같고 항원만 교체하는 경우 허가를 간소화하는 ‘플랫폼 허가제’가 운영되고 있다. AI의 경우에도 중국에서 매년 새롭게 발생하는 바이러스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플랫폼 허가제와 같이 항원 교체가 단기간에 가능토록 해야 한다. 긴급 상황 시 적용할 백신을 위한 허가제도 별도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과감한 대수술 절실
현장에선 철새가 AI에 감염되면 오리도 바로 감염된다고들 한다. 중국 재래시장에서 유행하는 AI에 감염된 철새가 국내에 유입되면 국내 철새도래지 인근의 오리농장이 바로 감염되고, 이는 곧 인근의 토종닭이나 산란계 농가로 전파돼 사람과 차량 등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말이다.24시간 이내 살처분? 말 그대로 서류상의 조치라는 말이 난무한다. 그사이 산란계 농가 케이지 안에서 AI로 죽어가는 닭의 숫자는 늘어만 간다. 농장 출입 시 정부가 반드시 거치도록 만들어놓은 거점소독시설은 세척 장치도 없는 오염원으로 인식되며, 되레 농가들의 기피 장소로 전락했다. 축산차량마다 달아놓은 GPS는 코드만 뽑으면 전국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AI 진단기관의 전문인력은 매년 반복되는 밤샘작업에 지쳐 이직을 심각히 고민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백신정책에 대해 상재화와 인체감염 우려만 강조한다.
문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매년 겨울마다 역대 최고 살처분 수치를 경신할 것인가. 그동안 망가져갈 국내 가금산업 기반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현재의 상황은 정부, 민간, 농가 중 어느 한 분야에서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 분야에서 머리를 맞대고 심각히 고민해 현 방역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단번에 도려낼 수 있는 근본적이고도 과감한 대수술이 필요하다. “뭣이 중헌디? 도대체가 뭣이 중허냐고?” 영화 대사가 다시 한 번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