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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의 그림자

“유신헌법 신임투표 자금 금고로 옮겼다”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집무실 금고의 진실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유신헌법 신임투표 자금 금고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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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정희 대통령, 유신헌법에 대한 신임 국민투표 준비했다”
  • ● 당시 국민투표 선거비용 최소 78억 원 이상 추정
  • ● 비자금 행방, 박근혜? 신군부?
지난 수십 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이들의 숨은 재산 추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 재산의 상당액은 1980년대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와 육영재단에 최순실 일가가 관여하면서 축적했을 것이란 의혹과 함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도 이들이 관리했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1989년 검찰의 5공비리 수사에서 나온 9억6000만 원이 전부다. 당시 검찰은 박 대통령 서거 후 신군부가 청와대 금고에서 9억6000만 원 상당의 현금과 유가증권 등을 발견했으며, 그 가운데 6억 원을 유족인 박근혜 영애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3억6000만 원가량은 신군부가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정설로 굳어졌다.

그런데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차명진 의원 등은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에게 받은 돈은 대통령비서실장실 금고에서 나온 돈이었으며,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별도의 금고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캠프는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 있던 돈을 박근혜가 챙겨갔다는 의혹이 있다”며 해명을 요구했지만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흐지부지 묻혔다.

대통령 집무실 금고가 중요한 이유는 이 금고가 박 전 대통령 비자금 창고였다는 증언들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청렴했을지 모르지만 엄청난 규모의 통치자금을 운용했다. ‘월간조선’ 1990년 3월호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박 전 대통령은 매월 초 정기적으로 일정한 액수를 주어 쓰도록 했고, 비서실장 금고에는 늘 1억~2억 원의 잔고가 유지되도록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증언들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집무실 금고엔 비서실장실 금고에서 나온 9억6000만 원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비서실장이던 김계원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 수십억 원이 들어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이 억측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거나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진 적은 없다.



대통령 집무실 금고의 비밀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김계원 씨는 지난해 12월 3일 별세했다. 1978년 12월 말까지 10년 동안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씨도 건강이 악화돼 당시 일을 기억하기 힘든 상태다.



유신에 대한 바닥민심 확인

채병률 실향민중앙회장은 1970년대 청와대 비선으로 활동했다. 1975년부터 2년 동안 최태민 씨가 이끌던 구국봉사단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그의 이력은 박정희 대통령과 5·16군사정변을 함께 했던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등이 이를 확인해줬다. 채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을 단순히 권력 유지에만 눈이 먼 독재자로 폄하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력으로 영구집권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1978년부터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정렴 전 비서실장도 2011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신과 관련해 이와 비슷한 증언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임기가 1984년 말까지였는데, 1978년 7월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저하고 유혁인 정무수석에게 ‘유신헌법 개정하자. 그러고 임기 1년 남기고 그만두겠다. 김종필을 총리 시켜 내가 그만두면 권한대행 하다가 김영삼, 김대중과 경쟁해서 대통령 선출하면 된다’고 했어요.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 씨를 법률특보로 임명해서 비밀작업도 시켰어요.”(동아일보 2011년 10월 10일자)

유신헌법에 대한 ‘신임 투표’냐 ‘유신헌법 개정’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충분히 인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 대목이다.

▼ 박정희 대통령은 왜 갑작스럽게 신임 투표를 하려 한 것인가.

“당시 유신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발이 갈수록 커졌다. 이를 정면돌파할 겸, 국민의 바닥민심을 확인하기 위해 신임 투표를 결심했다. 국민 다수가 유신헌법을 원하지 않는다면 물러나는 게 민주주의라고 대통령은 생각했다.”

▼ 유신헌법 신임 투표 구상은 어떻게 알게 됐나.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몇 번 그 말씀을 하셨다. 대통령이 종종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 언제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나.

1978년부터 선거 비용을 모으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1979년 10월 26일 시해당하기 얼마 전에 그 돈이 다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 돈이 모였다는 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 선거 비용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도 직접 들었나.

“대통령에게 직접 듣기도 하고, 실무 작업을 했던 청와대 직원 김00에게도 들었다.”

▼ 선거는 국가예산으로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국가예산은 나라 발전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상업은행 효자동지점

▼ 마련한 돈은 얼마나 됐나.

“직접 보고 들은 게 아니라서 정확한 액수는 모른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충분히 치를 정도 돈이라고 들었다.”

이듬해인 1980년 신군부는 5공화국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경제기획원에 요구한 국민투표 소요 예산이 78억 원이었다. 이것으로 대통령 집무실 금고 속 자금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 그 돈은 어떻게 조성했나.

재벌이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았다. 그 실무를 김씨가 했다. 그가 직접 돈을 받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회고록 ‘아, 박정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기록한 바 있다.

“나는 정치 성금 대상 기업을 엄선하고 그 기업주를 청와대 신관에서 만나 기업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판공비와 기밀비 중 일부를 민주주의의 필요악적 비용인 정치자금으로 도와줄 것을 요청하면서 반대급부는 일절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성금은 최고 1억 원, 최하 1000만 원 범위 내에서 각 기업의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부탁한 스물대여섯 기업주는 모두 기꺼이 승낙하고 협조를 확약해주었다.”

기업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정치자금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 김정렴 비서실장도 당시 기업들 대상으로 연간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당시 경제 규모로 기업에 또 다른 비자금을 요구하는 게 무리다 싶은데.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 그 돈은 어디에 보관했나.

“내가 듣기론 기업이나 재력가들로부터 돈을 받으면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금해놓았다. 확실한 건, 개인적인 착복을 위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명이나 차명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이름이나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개설했을 것이다. 정확한 건 모르겠다. 아무튼, 이자를 포함해 목표액을 넘자 그 돈을 빼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로 옮겼다고 들었다.”

▼ 모두 현금으로?

“현금만 있는 게 아니라 수표도 있고….”

그에게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금고를 말하는 것이냐고 확인하자 그는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금고의 존재를 알고 있다”며 “당시 청와대 본관 1층은 집무 공간이었고, 2층을 대통령 사저로 사용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열쇠냐, 번호냐

대통령 집무실에 금고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공식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에 최초로 들어간 것은 11월 14일 최광수 당시 대통령권한대행 비서실장과 공식조사팀(고건 당시 정무제2수석비서관, 김태호 의전비서관, 정기옥 의전비서관, 박학봉 부속실비서관, 이광형 부속실 부관, 유혁인 정무제1수석비서관)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확인했을 때 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정기옥 전 대사(당시 의전비서관)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통령 책상에도 문구용품 몇 개 있는 정도였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고건 전 총리(당시 정무제2수석비서관)도 “(금고 안에는) 서류 몇 장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정 전 대사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당시 집무실은 범죄 현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출입금지 팻말이 있거나 줄을 쳐놓는 등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지 않았다”는 것. 열쇠만 있으면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고, 실제 누군가 출입했어도 이를 알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본관 경호원과 박근혜 영애뿐이었다.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10월 27일 새벽 대통령 집무실이 어떻게 돼 있는지 가봤더니 잠겨 있었고 열쇠를 박근혜가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박학봉 부속실장도 “그 일이 있고 나서 저희들은 집무실 열쇠와 금고 열쇠를 본관 경호원에게 맡겼다. 박 대통령은 별도로 금고와 서랍 열쇠를 갖고 계셨다. 따라서 10월 26일 이후 근혜 씨만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 인터뷰에서 “국장(國葬)이 끝난 11월 초순에 아버님 집무실을 정리한 적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그(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금고는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쉽게 열 수 있는 것이었고 내용물도 서류들이었으며 귀중품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소각로로 사라진 금고

김계원, 박학봉 씨는 금고를 열쇠로 여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손으로 쉽게 여는 것(번호를 맞춰 여는 것으로 추정)이라고 말했다. 만약 금고가 열쇠로 여는 것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진술 전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대통령 집무실을 출입했던 인사들에게 연락해보았지만 누구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문제의 금고는 이미 1979년 말 소각로로 사라졌다.

▼ 박근혜 당시 영애가 가져갔을 것이란 소문이 있다.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다.”

▼ 그러면 그 돈이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나.

“어디로 갔는지는 내가 보지 못했고, 확인하지도 못했다. 다만, 당시 계엄군 관계자들이 들어와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기는 했다.”

▼ 계엄군 관계자라고 하면.

“당시 실제 권력자가 누구였겠나. 신군부였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당시 청와대 직원 김00 씨를 만나려 했지만 그는 기자와의 만남을 고사했다. 채 회장 증언만으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 78억 이상의 비자금이 들어 있었다고 확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준비하며 선거비용까지 마련한 게 사실이라면 ‘민주주의를 말살한 독재자’라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일정 부분 수정될 수 있다. 또한 국민투표 선거비용으로 모아놓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확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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