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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의 그림자

정_“포승줄 속 꼿꼿함은 朴과의 20년 세월에 대한 예의” 안_“지시 잘 이행한 죄로 구속 1% 모범생의 절망”

‘게이트의 주연급 조연’ 정호성과 안종범의 심리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이종훈 정치평론가 | rheehoon@naver.com

정_“포승줄 속 꼿꼿함은 朴과의 20년 세월에 대한 예의” 안_“지시 잘 이행한 죄로 구속 1% 모범생의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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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김없이 녹음하는 남자’와 ‘깨알같이 메모하는 남자’가 있다. 둘 중 하나를 비서로 골라야 한다. 당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두 사람 모두를 중용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주연급 조연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하 정호성)과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하 안종범)의 심리를 추적했다.
기록은 본래 좋은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과 용도다. 정호성의 음성파일과 안종범의 업무수첩이 미공개 상태로 있다가 1000년 뒤 세상에 공개된다면. 이 두 자료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귀중한 유물로 평가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시가 많기로 유명하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수석도 그것을 받아 적어야 한다. 그중 제일은 정호성과 안종범이었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셨을 뿐만 아니라, 지시를 정확히 받아서 수행했다.

만약 안종범과 정호성이 버락 오바마 같은 좋은 대통령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남긴 이 업무일지와 녹취록은 청와대 교범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바람직한 참모의 전형으로 귀감이 됐을 수 있다.



첫 직장이 박근혜의원실

정호성은 고려대 학부-대학원을 나와 첫 직장이 박근혜의원실이었다. 수재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전도양양한 여자 정치인을 만나 한결같이 보좌해 마침내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리고 나라의 ‘문고리 권력’을 쥐었다. 적어도 최순실 게이트 전까지 정호성은 ‘박 대통령을 만난 것이 내게 행운이고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종범은 성균관대를 나와 미국 박사를 마친 뒤 모교의 정교수가 됐다. 이렇게 교수로 65세 정년 때까지 지내도 남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었다. 안종범은 어떤 우연한 기회로 박근혜 의원을 만났고 경제가정교사가 됐고 마침내 세계 10대 교역국의 실물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실세수석이 됐다. 최순실 게이트 전까지 안종범도 ‘박 대통령을 만나 내 삶이 한 단계 더 도약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삼성 재단인 성균관대도 자기 학교 교수면서 경제사령탑이 된 안종범을 좋아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그러나 정호성과 안종범은 지금쯤 미결수 구치소에서 박 대통령과 함께 해온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과연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가?’를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들 한다. 참모로 일하는 공무원은 특히 더 그러하다. 비서에게는 모시는 분의 영혼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틀린 말이다. 참모에게야말로 영혼이 필수다. 정의감으로 무장한 영혼 말이다. 참모는 주군보다 더 맑아야 한다. 거울로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정호성과 안종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정의감으로 무장한 영혼…맞는 말이다. 행정이, 정치가, 경영이 이렇게 투명하게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오너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못 만나게 할 재량, 오너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못 듣게 할 재량이 참모에겐 정말 없다”고 사족을 단다. 우리나라 정치권과 기업의 내부 문화가 지극히 제왕적이어서 오너에 대한 절대충성이 요구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런 조직문화에서 누구든 안종범·정호성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정의감으로 무장한 영혼의 길을 걷는 공무원도 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하 유진룡)이다. 그는 2014년 1월, 7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 항의했다. 최순실 민원도 원칙대로 처리했다. 그리고 장렬히 잘렸다. 이제 정치권에서 유진룡은 총리감으로 꼽힌다. 왜 그럴까. 유진룡 같은 공무원이, 직장인이 아직은 희귀하기 때문이다.

안종범과 정호성은 구속 이후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둘은 ‘아, 이제까지 쌓아온 나의 경력이, 인생이 한꺼번에 무너지겠구나’ 하는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안종범에게는 돌아갈 안식처가 있었다. 성균관대학교다. 게이트의 핵심으로 알려지면서 그는 대학에 사표를 내야 했다.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고 했는데, 꿩은 날아갔고 알은 깨졌다. 그는 처음엔 청와대 수석 자리를 인생의 보너스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잠시 하다 교수로 돌아가면 그만인 덤 말이다. 그런데 수석 자리와 교수 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안종범을 아는 한 여권 인사는 안종범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늘 해오던 대로 했는데…”

“안종범은 학창시절부터 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잘 따르는 1% 모범생이었다. 박사과정 땐 지도교수의 말을 잘 수행했다. 그래서 학위를 땄고 교수가 됐다. 그로선 늘 해오던 이 방식대로, 나라의 1인자인 대통령이 시키는 일을 꼼꼼히 이행했는데, 그 죄로 구속됐다. 사익(私益)을 챙긴 건 없다. 안종범으로선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했나?’를 되묻게 될 것이다.”

정호성에게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한 시간이 그의 모든 것이었다고 한다. 28세에 박근혜를 처음 만나 48세가 된 지금까지 내리 20년 동안 모셨다. 마지막 보직은 청와대 제1부속실장. 박 대통령 곁에서 24시간 365일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 나온 뒤 돌아갈 직장도 마땅치 않다. 정호성을 아는 여권 관계자는 정호성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정호성은 원칙주의자였다. 법이나 규정을 어기는 걸 싫어한다. 그건 정호성의 박근혜의원실 상관이자 최순실 씨 전남편인 정윤회 씨도 인정한다. 지난 20년 동안 정호성이 인사에 개입한다느니, 호가호위한다느니, 기업이나 이해집단의 누구와 어울린다느니, 술을 좋아하고 골프를 친다느니, 돈도 받고 적당히 때가 묻었다느니 하는 말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정호성은 병을 핑계로 지인과의 술자리도 피한다.



“금욕을 택하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청와대 공직자인 정호성으로선 박 대통령과 사인(私人) 최 선생님(이하 최순실) 모두에게서 오더를 받아야 하는 ‘업무 루틴’이 내심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주군인 박 대통령이 원하는 일이고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건 정호성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차원은 아닌 것 같다. 정호성은 최태민 일가 문제만 빼면 박근혜의 모든 것을 존경한 듯하다.

그는 원칙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고민했고 이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며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만 하는 ‘금욕적 방법’을 택한 것으로 안다. 부속실이라는 자리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바깥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고 청와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일만 한 것이다. 자기 자신만 부정부패를 멀리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파동 때 정호성 등 문고리 비서관 3인방을 적극 감쌌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이 3인방을 청와대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죄여오자 정호성은 어머니 집을 찾았다. 일종의 작별인사인데 검찰이 밤에 이 집에서 정호성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호성은 최순실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TV에 비친 정호성은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상황에서 고개를 들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박 대통령과 함께한 자신의 20년 세월에 대한 예의로 읽힌다.”

검찰 조사실의 안종범에게 무엇이 중요했을까. 무죄를 받는 것이 어렵다면 형량을 줄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안종범과 박 대통령의 관계는 정호성과 박 대통령의 관계와 다르다. 안종범과 박 대통령 사이엔 끈끈함이 덜하다. 일종의 고용계약 관계 성격이 더 강하다. 안종범은 검찰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통령에게 넘긴 것처럼 외부에 알려졌다. 검찰 출두 전 안종범의 측근은 안종범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을 뿐이라고 언론에 흘렸다.   

그러나 재판에서 안종범은 업무수첩에 대해선 “재판의 증거로 채택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종범의 수첩은 박 대통령의 공범 여부를 입증하는 검찰의 핵심증거. 안종범이 이 수첩을 부인한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는 박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안종범은 최순실 게이트 발발-구속-재판의 과정에서 자신과 박 대통령 사이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 심적 혼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 된 인공지능처럼…

재판에서 정호성의 변호인인 차기환 변호사는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야기한 태블릿PC가 최순실 씨 것이 맞는지를 문제 삼았다. 차 변호사는 이 태블릿을 보도한 기자 두 명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이 태블릿에 대한 감정을 신청했다. 이는 박 대통령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호성은 박 대통령을 계속 모시고 싶다고 말한다. ‘출소하고 나서도 박 대통령이 퇴임해도 모실 것이냐’는 질문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모실 것”이라고 했다. 운명이다…. 정호성은 박 대통령과 함께 해온 지난날들 중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에 대해 본인에게선 해답을 찾지 못한 듯하다. ‘프로그램 된 인공지능’처럼 그는 과거로 돌아가 같은 상황을 맞게 돼도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정호성에게 ‘박 대통령의 말을 따라야 하고 박 대통령과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그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규범으로 보인다.

재판정에서 최순실은 안종범과 정호성 쪽으로 몸을 돌려 한참을 봤다. 왜 그랬을까. ‘당신들 때문에 내가 곤란해졌다’는 원망의 눈길이었을까. 안종범의 업무수첩과 정호성 휴대전화 녹음파일이 없었더라면 아마 검찰이 최순실의 혐의를 특정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왜 그런 걸 만들어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원망할까. 그러나 이 원망은 도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안종범과 정호성은 대통령의 지시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잘 이행하기 위해 이것들을 만들었다. 검찰의 손에 넘어간 것은 안종범과 정호성이 증거인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안종범과 정호성은 각각 한 가정의 가장이다. 두 사람은 본인과 자기 가족의 앞날을 걱정할 것이다. 검찰은 안종범과 정호성의 가족 접견을 금하고 있다. 안종범은 얼마 전 가족사진 2장을 반입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가족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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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이종훈 정치평론가 |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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