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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굶긴 사회주의에 회의… 北 주민 ‘민주화 주체’ 되는 길 돕기로

나는 왜 북한인권 운동가가 됐나

  • 한기홍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paul@nknet.org

인민 굶긴 사회주의에 회의… 北 주민 ‘민주화 주체’ 되는 길 돕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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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료들과 북한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북한 체제의 민주화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촉진하는데 기여할 잡지를 창간하기로 했다. 1998년 11월 세상에 나온 격월간 ‘시대정신’이 그것이다. 나는 이 잡지의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았다. 이듬해에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위해 행동하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창립했다. 창립 대표를 맡은 동료가 1년 만에 그만두면서 내가 후임 대표가 됐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초창기 활동은 북한 실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Keys’라는 월간지를 발행했다. Keys에는 북한의 닫힌 체제를 여는 열쇠라는 뜻을 담았다.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를 인터뷰해 실상을 전하고, 국내외에서 진행되는 북한 인권 관련 활동 등을 소개했다. 영어판과 일본어판도 3개월에 한 번꼴로 출간해 해외에도 북한의 실상을 알리려 노력했다.  

2005년 프리덤하우스가 주관한 회의에 참석하고자 난생처음 미국을 방문했다. 비자를 받으려고 주한 미국대사관을 찾았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운동권 시절 나는 반미주의자였다. 시위를 마치고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귀가하다 미국대사관 앞을 지나갔다. 밤늦게까지 불을 밝힌 대사관 건물을 보면서 ‘미국 놈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려고 밤새도록 일하는데 내가 술 취해 다니는 게 말이 안 되지’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후 밤늦도록 이념서적을 읽은 기억이 미국대사관을 찾으면서 떠올랐다.



북한인권 운동가의 길

2003년 북한에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자유조선방송’을 설립해 창립 대표를 맡았다.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방송을 한 것은 ‘북한 주민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체제를 외부와 비교해 현실을 깨닫고 행동에 나서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재정이 부족해 단파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북한 당국은 방해 전파를 쏴 청취를 막았다.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에 발맞춰 2004년에 북한 소식을 신속히 알리고자 ‘The Daily NK’라는 인터넷신문을 창간했다. ‘The Daily NK’는 북한 전문 언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북한에서 자행된 공개처형 동영상을 최초로 입수해 보도했으며 북한에서 2009년 실시된 화폐개혁을 세계 최초로 전했다.

북한인권 운동가로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잘못된 인식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군부독재에 저항해 싸운 이들이 유독 북한인권 문제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대개는 그 심각성을 모르거나 어느 정도 안다 해도 ‘자신들과 이념· 정치 성향이 반대인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이슈이고 자칫 잘못하면 상대편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북한인권 문제는 진보·보수가 다툴 사안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 같은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재정이다.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회원과 후원회원이 내는 소액 후원금과 정부보조금, 각종 프로젝트 수행에 따른 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The Daily NK, 자유조선방송의 대표를 겸직하던 때는 사업비와 활동가들의 활동비를 내가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활동비는 1인당 100만 원 전후여서 큰돈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활동가가 40여 명에 달했기에 재정을 맞추는 일이 힘들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어둡고 답답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이 쉽게 참여하지 못한다. 좀 더 가볍게 접근해보자는 취지로 2011년 시작한 북한인권국제영화제가 지난해 6회를 마무리했다. 나는 이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5년 5회 영화제 때는 중국 당국이 간섭해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소망교회의 도움을 받아 제작을 지원한 ‘간도경찰’이 두만강 일대에서 마무리 촬영을 할 때다. 감독이 재중 동포인데, ‘간도경찰’을 우리 영화제에 출품할 경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중국 당국이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영화제 개막을 3주 앞두고 발생한 일이다. 개막작 없는 영화제는 상상할 수조차 없어 취소도 검토했다. 천만다행으로 개막 1주일을 앞두고 대체 작품을 구했다. ‘설지’라는 영화인데 탈북 화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자유·인권 찾는 그날

북한인권 운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의 저 끔찍한 체제가 대략 10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북한의 인권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관한 인식이 해를 거듭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된 덕분이다. 국내에서도 미약하지만 변화가 감지된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2005년부터 매년 유엔 총회를 통해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다. 북한 인권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제로도 채택됐다. 2013년 발족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인권조사보고서를 제출했으며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됐으며 2006년에는 일본에서도 북한인권법이 통과됐다.  

국제사회의 노력과 달리 한국에서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진보·보수 간 대립이 거셌다. 논의가 시작된 지 11년 만인 2016년 3월에야 여야 합의로 북한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북한인권법의 주요 내용은 북한인권 실태 조사 및 기록·보존, 북한인권 특명대사 임명, 북한 인권 활동 단체 지원 재단 설치 등이다.

북한인권법 제정 등으로 활동가들이 일할 여건이 좋아졌으나 노력과 희생 없이 역사는 전진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이 민주화의 주체로 등장해 자유와 인권을 찾는 그날까지 나와 동료들의 활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동아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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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홍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paul@nkne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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