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의 범죄사실 중에는 기무사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기무사령관과의 친분을 내세워 기업체로부터 돈을 빼앗은 혐의(알선수재)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해 3월 H건설 대표 이모씨에게 접근해 “국방부 기무사령부를 과천으로 이전한다. 기무사령부 이전공사 비용이 1000억~1500억원에 이르는데 내가 기무사령관과 국방부 조달본부장을 알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부탁해 공사를 수주하게 해주겠다”며 활동비로 1억원을 요구했다. 이에 이씨는 윤씨의 차명계좌로 1억원을 송금했다.
취재 결과 현 기무사령관 A중장과 친분이 있다는 윤씨의 주장엔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윤씨가 기무사 관련 사기행각을 벌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4월 모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함께 쳤다. A중장이 기무사령관에 부임한 지 두 달쯤 지난 시점이었다. 이 골프장은 서울 시내에서 가까워 권력층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으며 접대 및 사교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A사령관은 군수·방산(방위산업) 관련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해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국방부 획득실 사업조정관을 지내기도 했다. 획득이란 군납품 중 무기체계 등 특별한 통제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고, 사업조정관은 각종 무기의 획득 시기를 조정하는 요직이다. 기무사 공보관은 A사령관의 일정을 확인한 결과 윤씨와 골프를 친 적이 없으며 친분도 없다고 부인했다.
기무사 관계자 중 유난히 윤씨와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으로는 A사령관의 육사 동기인 B 예비역 장성이 꼽힌다. B씨는 전역 후 군 관련업체 사장을 맡기도 했다. 군 관계자의 표현에 따르면 두 사람은 한때 “무지하게 친했다”고 한다. B씨가 현역일 때 윤씨는 그가 근무하는 부대로 자주 찾아갔고 예편한 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B씨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윤씨는 한때 기무사 내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그와 어울리는 장교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기무사 고위관계자가 장교들에게 공개적으로 그를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방대학교에 다니는 기무사 장교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한 적도 있다. 이처럼 주로 회식비를 대거나 인맥을 동원해 소개받는 수법으로 기무사 장교들에게 다가갔다.
윤씨를 잘 아는 기무사 관계자는 그의 접대 방식에 대해 “식사 자리에 돈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 대신 내게 하고는 생색은 자기가 냈다”고 말했다. 기무사 출신 모 예비역 장성은 “(윤씨는) 사전 양해 없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식사하자고 해서 나가 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어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기억했다.
“‘뻥’이 세긴 했지만 …”
윤씨의 기무사 인맥의 출발점으로 지목되는 사람은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 출신의 C 전 의원과 D 전 장군이다. 하나회 출신으로 보안사 요직을 지낸 C씨는 1979년 12·12 때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준장으로 예편한 후 5공 초기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C씨가 윤씨와 어떻게 친해졌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군 주변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고, C씨가 총선에 출마할 무렵 윤씨가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그의 지역구에 내려가 살다시피 했다는 전언이 따른다. C씨에게 윤씨와의 관계에 대해 확인하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한 측근에 따르면 그는 현재 외국에 나가 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직후 옷을 벗은 기무사 출신 예비역 준장 D씨는 최근까지 윤씨와 친분을 유지해왔다. 두 사람의 친분은 윤씨가 기무사 인맥을 넓히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D씨는 “(윤씨가) 주변에 과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서서 움직인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D씨의 얘기로는, 윤씨를 처음 안 것은 보안사 과장(중령) 시절이었다. 업무와 관련해 소개를 받았는데, 윤씨가 그 방면에 아는 게 많지 않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친분을 맺게 됐다.
윤씨는 D씨를 만날 때 경찰이나 검찰 간부를 데리고 나와 소개히곤 했다. 그가 자신이 데리고 나온 제3자에게 밥값을 대신 내게 했다는 사실은 D씨의 증언으로도 확인됐다. 다음은 윤씨에 대한 D씨의 기억.
“윤씨와 자주 연락하고 지낸 건 사실이지만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윤씨는 청계천에서 기름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후 오락기기 관련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뻥’이 좀 세고 ‘오버’를 하기는 했지만 사기꾼이거나 인간성이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은 받지 않았다. 늘 바쁘게 움직였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군부대를 방문해 위문 격려비니 장교들 회식비니 하면서 돈봉투를 내놓기에 내가 뭐라 한 적이 있다.”
D씨는 윤씨와 이따금씩 골프도 쳤는데, 2004년 군 골프장에서 회동한 뒤로는 더 친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윤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해 5월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윤씨는 “(경기도) 하남에서 아파트사업을 하는데,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윤씨와 어떠한 금전 거래도 없었다고 강조한 D씨는 “윤씨가 도박에 빠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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