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또 하나의 비밀 클럽 ‘지성’

-나바타니(Navatanee) 라운딩 3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입력2008-04-04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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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 경기는 빈정거림과 해학으로 넘친다. 한 홀에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래서 골프를 이해하려면 또 하나의 비밀 클럽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지성(知性)’이라는 이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클럽이다. 그것이 퍼터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2류 골퍼로서 오로지 볼을 치는 데 그치고 만다. 골프는 지성이 없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다. 빈정거림과 해학을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이 없다면 뒤에 남는 것은 4타, 5타, 6타 같은 숫자놀음뿐이다. 세상에는 백과사전을 장식하는 사람과 그것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우드하우스(P.G. WOODHOUSE)
    또 하나의 비밀 클럽 ‘지성’

    타이거 우즈(오른쪽)가 지난 1월 PGA 투어를 하루 앞두고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 라호야의 토리파인스GC에서 열린 프로암대회에서 2번 홀(남코스) 티박스에서 티샷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은 우즈의 캐디인 스티브 윌리엄스.

    ‘태국 넘버원 골프장’이라는 나바타니 클럽. 캐디와 만난 우리 조는 1번 홀 티잉그라운드로 출발했다. 티잉그라운드 근처에 이르니 스타터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다. 2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본 그 스타터였다. 원래 캐디로 일하다가 스타터가 됐다고 했다.

    우리 조 앞에는 3팀이 대기 중이었다. 모두 일본인 골퍼들로 보였다. 나바타니 골프장 회원 중 80%가 일본인이라더니,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골퍼들은 거의 다 일본사람이었다. 한국 골퍼들이 동남아 일대를 주름잡고 다닌다지만, 나바타니에서는 아직 한국 골퍼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는 더욱 그렇다. 나바타니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라 한국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앞 팀이 티샷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타터가 “밀리고 있으니 인코스부터 플레이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나바타니 골프장의 티잉그라운드는 블루티, 화이트티, 골드티, 레드티 4가지로 나뉜다. 전장은 블루티를 기준으로 하면 6902야드이고, 화이트티로는 6315야드다. 18홀에 규정 타수는 72인데, 스코어카드에 의하면 블루티에서의 코스 레이팅은 72.5, 화이트티에서는 69.4이다. 445야드 파4 6번 홀이 핸디캡 1번 홀이고, 580야드 파5 13번 홀이 핸디캡 2번 홀이다. 427야드 파4 10번 홀은 핸디캡 4번 홀이다.

    골프장 출입은 아직도 사치?



    특히 핸디캡 1번 홀인 6번 홀은 코스가 길 뿐 아니라 페어웨이 좌측에 호수 같은 연못이 퍼팅그린 앞을 가로지르며 9번 홀까지 큰 호수와 연결돼 장관을 이룬다. 페어웨이 우측엔 열대우림이 우거져 있고, 티잉그라운드 주변에는 나바타니를 특징짓는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10번 홀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어느 티를 사용할 것인지 망설이다 긴 여정의 첫날임을 감안해 나는 화이트티에서, 아내는 레드티에서 플레이하기로 했다.

    한국엔 골프장과 관련된 특별법으로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시법)이 있다. 당초 골프장에 관한 법률은 관광사업법(후에 개정되어 관광진흥법)이었다. 골프장시설을 관광시설로 보고 법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지노 시설과 마찬가지로 골프장을 드나드는 것이 사치로 인식됐고 특별소비세법도 생겼다. 그러다 1989년 국민체육진흥법을 모법으로 체시법이 제정됐고, 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직접 조성하는 대신 골프장 또는 스키장 사업을 권장했다. 체시법이 제정됨으로써 골프장은 비로소 관광시설이 아닌 체육시설이 됐다. 그럼에도 골프장 출입을 사치성 소비행위로 보는 시각은 그대로 남아 특별소비세법은 존치되고 있다. 다만 특별소비세법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가 제기되자 조세당국은 지난해 말 특별소비세라는 말 대신 ‘개별소비세’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체시법은 법 제정 당시와 달리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골프 금지령에 동조하기 위해 1994년경 전면 개정됐다. 법이 개정되면서 골프장 조성을 장려하기는커녕 체시법이 온통 골프장 규제법으로 변질됐다. 더욱이 체시법은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아 관계공무원들이 통치자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졸속으로 제정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령 체시법 11조 제1항은 ‘체육시설업자는 체육시설업의 종류별로 문화관광부령이 정하는 시설기준에 적합한 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유지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체시법 시행규칙 제8조는 골프장시설기준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① 운동시설 : 회원제 골프장업은 3홀 이상, 정규대중 골프장업은 18홀 이상, 일반대중 골프장업은 9홀 이상 18홀 미만, 간이 골프장업은 3홀 이상 9홀 미만의 골프코스를 갖추어야 한다.

    또 하나의 비밀 클럽 ‘지성’

    국내 첫 유럽 프로골프 투어를 유치한 제주 핀크스GC.

    각 골프코스의 사이 중 이용자의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곳은 20미터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 다만 지형상 일부분이 20미터 이상의 간격을 두기가 극히 곤란한 경우에는 안전망을 설치할 수 있다. 각 골프코스에는 티그라운드, 페어웨이, 그린, 러프, 장애물, 홀컵 등 경기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② 관리시설 : 골프코스 주변, 러프지역, 절토지 및 성토지의 법면 등에 조경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대한골프협회에서 발행한 골프규칙 제2장 ‘용어의 정의’ 편에는 각종 골프 용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5. 코스(Course) : 코스란 위원회가 설정한 모든 경계선 이내에 있는 전 지역을 말한다.

    22. 해저드(Hazards) : 해저드란 모든 벙커 또는 워터해저드를 말한다.

    24. 홀(Hole) : 홀의 직경은 108밀리미터(4.25인치)이고, 그 깊이는 101.6밀리미터(4.0인치) 이상이어야 한다. 원통은 토질이 허용하는 한 퍼팅그린면에서 적어도 25.4밀리미터(1인치)는 아래로 묻어야 한다. 원통의 외경은 108밀리미터(4.25인치) 이내여야 한다.

    43. 퍼팅그린(Putting Green) : 퍼팅그린이란 현재 플레이를 하고 있는 홀의 퍼팅을 위하여 특별히 정비한 전 구역 또는 위원회가 퍼팅그린이라고 지정한 모든 구역을 말한다. 볼의 일부가 퍼팅그린에 접촉하고 있으면 퍼팅그린 위의 볼이다.

    51. 정규 라운드(Stipulated Round) : 정규 라운드란 위원회가 따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홀의 순서에 따라 코스의 여러 홀을 플레이하는 것을 말한다. 정규 라운드의 홀수는 위원회가 18홀보다 적은 홀수를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8홀이다. 매치플레이에서 정규라운드를 연장할 때는 규칙2-3 참조.

    55. 티잉그라운드(Teeing Ground) : 티잉그라운드란 플레이할 홀의 출발장소를 말한다. 이것은 2개의 티마커의 외측을 경계로 하여 전면과 측면이 한정되며 측면의 길이가 2클럽 길이인 직사각형의 구역이다. 볼 전체가 이 티잉그라운드 구역 밖에 있을 때에는 티잉그라운드 밖에 있는 볼이다.

    58. 스루더그린(Through the Green) : 스루더그린이란 다음 구역을 제외한 코스의 전 구역을 말한다.

    (1) 플레이 중인 그 홀의 티잉그라운드와 퍼팅그린

    (2) 코스 내의 모든 해저드

    정원화 부추기는 골프장 시설규정

    골프용어사전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파(Par)란 숙련된 플레이어라면 그 홀에서 기대할 수 있는 타수로, 퍼팅그린 상에서는 언제나 2퍼팅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파는 홀의 거리를 기준으로 산출할 뿐 지형이나 그 밖의 요소에 의한 난이도는 고려해 넣지 않는다” “페어웨이(Fairway)란 티잉그라운드와 퍼팅그린 사이의 예초를 한 잔디구역이다. 러프(Rough)란 페어웨이 바깥쪽에 잔디를 길게 하여 둔 지역을 말한다. 골프규칙에서는 스루더그린이라 부르고 페어웨이와 러프를 구별하지 않는다.”

    앞에서 본 골프 규칙과 골프용어사전을 종합해보면, 골프장 시설기준에 관한 체시법 시행규칙 제8조에 쓰여 있는 ‘티그라운드’는 ‘티잉그라운드’를 잘못 쓴 것이며, ‘그린’은 ‘퍼팅그린’, ‘홀컵’은 ‘홀’의 그릇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체시법 시행규칙의 ‘페어웨이, 러프, 장애물’은 골프규칙의 ‘스루더그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체시법 시행규칙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관리시설에 관해 “골프코스 주변, 러프지역, 절토지 및 성토지의 법면 등에 조경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규정은 골프장의 발상지로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자연상태 골프장에 들어맞지 않고, 한국 골프장들이 값비싼 조경수와 온갖 희귀한 꽃들을 이식해 억지로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이른바 골프장의 정원화(庭園化)를 부추기는 근거규정이다. 절토지에 조경을 권장할 것이 아니라 산사태에 대비하거나 로스트볼을 찾기 위해 다가갔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의 안전시설을 설치하라고 규정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해학과 빈정거림

    회원제 골프장과 대중 골프장의 차이는 코스의 규모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첫째, 골프장 조성비용이 사업자의 순수한 사업자금으로 조달되는 지 아니면 회원들로부터 거둬들인 입회금으로 충당되는지의 차이다. 둘째, 골프장 조성 후 조성비를 부담하거나 조성에 기여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개방되는지 혹은 불특정다수의 일반 골퍼에게 개방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골프장 시설에 관한 체시법 규정은 언뜻 보기에 회원제 골프장과 대중 골프장의 차이를 골프코스의 규모로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골프장 시설기준에 관한 체시법령 규정이 골프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골프 문외한에 의해 입안되고 개정돼 오늘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엉터리 같은 골프장 관계법령을 볼 때마다 나는 우드하우스(P.G. Woodhouse)라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린다.

    “골프 경기는 빈정거림과 해학으로 넘친다. 한 홀에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래서 골프를 이해하려면 또 하나의 비밀 클럽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지성(知性)’이라는 이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클럽이다. 그것이 퍼터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2류 골퍼로서 오로지 볼을 치는 데 그치고 만다. 골프는 지성이 없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다. 빈정거림과 해학을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이 없다면 뒤에 남는 것은 4타, 5타 6타 같은 숫자놀음뿐이다. 세상에는 백과사전을 장식하는 사람과 그것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다. 앞서 우리 일행은 아웃코스로 나가다가 인코스로 출발 홀을 바꿨다고 했다. 나바타니 골프장 같은 18홀 골프장의 경우 왜 전반 9홀을 아웃코스라 하고 후반 9홀을 인코스라 부르는 것일까. 앞서 본 바와 같이 골프규칙에 의하면 정규 라운드의 홀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8홀이다. 그렇다면 왜 정규 라운드의 기본을 18홀이라고 규정했을까.

    우리 체시법처럼 골프코스에 홀이 18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법은 과거에도 지금도 없다. 이와 관련, 영국의 유명 골프코스들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재미있다. 예를 들어 유서 깊은 프레스트위크코스는 1886년까지는 12홀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1860년부터 11년 동안 같은 코스에서 치러진 영국 오픈은 제1회부터 12홀을 단위로 한 것이었다. 그밖에 프란츠필드는 6홀이었고, 노스퍼위크는 7홀, 굴란은 13홀이던 것이 뒤에 15홀이 됐다. 아처필드는 13홀, 머셀버러 등은 단지 5홀밖에 되지 않았다. 블랙히스도 7홀이었고 가장 적은 것은 에일오브메이의 링크스로 겨우 3홀이었다. 그런가 하면 세인트앤드루스 등은 22홀이나 됐고, 몬트로스는 더욱 많아서 25홀이었다. 19세기까지 골프코스는 각자 제멋대로의 홀수를 갖고 있었다.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에 있는 오랜 링크스 코스는 약 6000년 전에 해안선이 융기하여 바다가 물러나고 나타난 자갈밭에 바람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퇴적된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모래언덕지대, 소위 링크스랜드가 그 토대였다. 링크스랜드에 잔디나 관목이 자생하기 시작하고 야생토끼나 들쥐 등 자그마한 동물들이 서식함에 따라 이들을 포획하려는 포수들이 이 녹지대를 드나드는 사이에 길이 생겨났다. 이것이 골프코스의 페어웨이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자연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해안 링크스랜드에 조성된 골프코스는 링크스 상황에 따라 조성됐기에 일률적으로 18홀이 될 수 없었다.

    왜 18홀인가

    그러면 골프코스는 언제부터, 왜 18홀이 정규 라운드가 됐을까. 이에 관해 3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위스키설이다. 골프가 처음 시작될 무렵 스코틀랜드 바닷가에 인접한 동토(凍土)의 링크스코스에는 차가운 북풍이 몰아쳤다. 그래서 골퍼들은 1홀 홀아웃 할 때마다 위스키를 한 잔씩 들이켜 몸을 데웠다.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다 보니 18홀이 끝날 무렵에는 갖고 있던 술병(sporran)이 비게 되어 플레이를 마치고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골프에 관한 담소를 나눴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위스키 병량에 맞춰 골프코스도 18홀이 됐다는 것이다. 스카치위스키의 원산지답게 골프와 위스키가 교묘하게 조합된 이야기지만, 이는 후세에 지어낸 것으로 역사적 사실에 터 잡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둘째는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가 그 기원이라는 주장이다. 세인트앤드루스의 링크스에서는 처음엔 해안을 따라 직선에 가까운 형태로 12홀 플레이를 했다. 그러다 공식 경기를 개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자 12홀 가운데 10홀을 커다란 더블그린으로 만들어 같은 홀을 왕복으로 사용하면서 출발점에 돌아오도록 22개 홀로 개조했다. 그 후 1764년에 큰 폭으로 개조했는데, 홀 간의 거리가 너무 짧은 처음 4홀을 두 홀로 만든 결과 왕복 4홀이 줄어들어 18홀이 됐다는 것이다.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가 18홀이 되자 1834년에는 윌리엄 4세로부터 ‘로열 앤드 에인션트(Royal & Ancient)’라는 칭호를 하사받았고 동시에 영국골프의 통괄권이 주어졌다. 그렇게 되자 R&A는 명실공히 골프계의 주도권을 거머쥐었고, 그 후 영국 각지에서 결성돼 전용코스를 가지게 된 골프클럽들이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를 본받아 18홀 코스를 조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18홀의 기원이 로열윔블던코스라는 유력한 주장도 있다. 700명의 회원을 가진 런던 근교의 호화클럽 로열윔블던코스도 1865년 창립 당시에는 7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회원이 늘자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았고 1870년에 이르러 코스를 확장했다. 확장 당시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출된 설계가가 골프코스 설계의 제1인자로 불리던 톰 던이었다.

    아웃코스·인코스 설계의 기원

    윔블던은 당시 데이비스컵대회 장소로 유명했는데, 템스 강 상류에 있어 아름다운 숲과 완만한 지형으로 풍광이 뛰어났다. 톰 던은 이미 조성된 7홀을 기초로 이 천혜의 아름다운 환경에 어떻게 코스를 확장할 것인지 절치부심했다. 그는 온갖 지혜를 다 짜낸 끝에 2주 만에 설계를 완성했다. 자연과 인공이 정교하게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각 코스의 연관성을 원활히 하고, 전체 코스의 반쯤 돌면 클럽하우스 앞으로 나오게 되는 매우 합리적인 새 축을 채택했다. 즉, 10홀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클럽하우스 앞으로 나왔다가 그 후 9홀을 다 돌고 나면 다시 클럽하우스로 돌아오게 되는 합계 19홀의 설계였다.

    회원들은 즐거이 새로운 코스에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그들은 길고 긴 코스의 반을 끝마치면 자연스럽게 클럽하우스 앞에 도착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차가운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힘을 얻어 남은 9홀을 돌기 위해 나갔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회원들의 습관으로 정착됐다. 사람들은 초반 10홀을 마치면 클럽하우스에서 그때까지의 스코어를 계산하고 서로 비교했다. 스코어가 나쁜 사람은 나머지 9홀에 만회하려 마음을 다잡았다. 때때로 후반 9홀에서 대세를 뒤집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전반 10홀 스코어에 후반 9홀 스코어를 대비해 계산하는 것이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회원이 “나는 45타를 쳤다”라고 하면 동반자는 “10홀이야, 9홀이야?”라고 되묻곤 했다.

    불편이 거듭되자 회원들 사이에 “톰 던은 왜 20홀을 만들지 않았을까? 1홀만 더 만들었으면 계산이 얼마나 편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쏟아졌다. 회원들의 불만이 마침내 위원들을 움직였다. 위원들은 윔블던코스를 20홀로 확장하는 안을 심의했다. 단 1홀이기에 그 과업을 그린 위원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증설 임무를 맡은 그린위원으로부터 “지금의 부지 여건으로는 1홀을 증설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내용의 보고가 위원회에 제출됐다. 그래서 후속조치를 위한 위원회가 개최됐고, 여기에서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려 그린위원에게 통지했다.

    “한 홀을 증설할 여지가 전혀 없다면 현재의 전반 10홀 중에서 적당하게 한 홀을 줄여달라.”

    이리하여 윔블던코스는 18홀로 변모했다. 회원들은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완전하게 둘로 나뉜 두 개의 코스 가운데 하나를 ‘Going Out’, 다른 한 코스를 ‘Coming In’이라 부르며 구분했다. 즉, 클럽하우스를 나가서 처음 맞는 코스를 아웃코스라 했고, 플레이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되돌아오는 나중의 9홀을 인코스라 불렀다.

    티잉그라운드 전략

    우리 일행이 클럽하우스 쪽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나바타니 10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다다르니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스타터의 말 그대로였다. 오전 8시 무렵이면 이른 시간이 아닌데도 티잉그라운드는 물론, 그 앞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페어웨이도 아침이슬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골프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는 상황에 따라 14~18타의 핸디캡을 주고 1타에 1달러씩 내기를 한다. 그날은 내가 블루티와 화이트티 중 어느 곳에서 플레이할 것인지에 대해 설왕설래했다. 서울에서 방콕으로 날아오자마자 이른 새벽에 골프장에 나온 것을 감안, 핸디캡 15를 주는 대신 그날만은 화이트티에서 플레이하기로 합의했다. 나는 드라이버를 꺼내들고 약간의 스트레칭을 한 다음 나바타니 10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나는 어디에서든 골프장의 첫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설 때면 나바타니 골프장을 설계한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의 저서 ‘GOLF by DESIGN’의 2장 ‘THE TEEING GROUND’ 부분을 떠올린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티잉그라운드는 19세기말까지만 해도 비전략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티잉그라운드의 전략성에 최초로 관심을 가진 사람은 프로골퍼이자 코스 설계가이던 윌리 파크였다. 그는 티잉그라운드가 가능하다면 플레이 방향으로 약간 오르막경사를 가진 채 코스의 편평한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종전에 한 곳이던 티잉그라운드 지역이 보다 잘게 나뉘어 여러 곳으로 배치됐다. 이러한 경우 어떤 티잉그라운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홀의 전체적인 전략성이 달라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골프 설계가들 중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의 아버지는 티잉그라운드를 거리면에서뿐 아니라 정확성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특히 비행기의 활주로에 비유되는 길고 똑바른 티잉그라운드를 선호했다. 이런 형태의 티잉그라운드는 플레이어에게 놀랄 만한 시각적 효과를 부여한다. 잘 배치된 티잉그라운드는 올라서면 이상적인 볼의 낙하지점이 어디인지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그런데 대개 이상적인 티샷의 낙하지점은 페어웨이 벙커와 같은 큰 해저드나 장애물 근처에 있다. 골프 설계에 있어 이러한 경향은 전후 196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그후 골프 설계가들은 전략적 다양성을 제공하는 목표지점에 이르기 위한 여러 각도의 공격루트와 거리를 확보하려 애썼다. 그래서 현대의 티잉그라운드는 자연경관과 어울리면서도 모양이나 크기, 높이 등이 다채롭다.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홀의 전체적인 모양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각 홀의 특징적인 모양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홀을 공략하기 위한 기본 전략이 떠오른다. 그러고는 티잉그라운드 주변을 걸어다녀본다. 가령 뒤쪽으로 가서 퍼팅그린을 바라보다가 다시 앞쪽으로 옮겨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티잉그라운드의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걸어가면서 시야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티마크 사이에 서서 볼의 낙하지점을 결정한다. 이러한 자세를 습관화하면 볼의 이상적인 낙하지점과 목표지점에 이르기 위한 루트를 선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공격루트를 설정함에 있어 스코어카드와 야디지북(난이도에 상관없이 각 홀 또는 코스의 거리만을 야드 단위로 표시해놓은 책)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 책을 읽은 이후부터는 티잉그라운드에 올라가서 티샷한 볼이 슬라이스나 훅이 나서 OB가 되거나 러프에 빠지거나 해저드로 들어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왜냐하면 오늘은 홀이 퍼팅그린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고, 온그린 시킨 볼이 어느 곳에 멈춰야 쉽게 홀아웃할 수 있을지, 그렇게 온그린 시키려면 어디가 IP(Intersection Point·목표)지점이 돼야 할 것이며, 설정한 IP지점에 볼을 보내려면 티잉그라운드의 어느 지점에서 볼을 티업하는 것이 좋을지 등 각 홀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그러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공격루트를 찾느라 티샷이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골프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코어가 괄목하게 향상됐다. 그래서 나는 골프 스코어가 샷 메이킹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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