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대학 입학사정관제

입시 패러다임 바꿀 다크호스? 예산 잡아먹는 헛물켜기?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10-07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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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시철이다. 올해 각 대학 수시전형을 앞두고 열린 입시설명회마다 빠지지 않은 주제가 있다. 바로 입학사정관제다. 입학사정관제란 사정관이 성적을 포함한 학생의 소질과 능력을 평가, 합격자를 결정하는 미국의 입시제도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처음 실시됐다.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 점수 경쟁식 입시는 물론 교육 풍토까지 개선할 묘책”이라는 의견과 “교육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실책”이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장기적이고 신중한 안목이 필요하다. 막 첫걸음을 뗀 입학사정관제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대학 입학사정관제
    “입학사정관제? 아, 팔방미인 뽑는 미국 입시제도?” 한국에도 입학사정관제가 막 첫발을 내디뎠다. 2007년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은 10개 대학이 일부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시범 실시한 데 이어 올해는 지원규모와 실시 대학이 대폭 확대됐다. 지원금은 158억원, 지원 대학은 40곳으로 늘어났다.

    요즘 교육계 핫이슈는 입학사정관제다. 입시관련 행사도 대부분 입학사정관제를 다루는 추세다. 분주한 교육계와 달리 일반의 인식은 아직 미미한 수준. 바이올린, 스포츠, 봉사활동, 경시대회 등으로 바쁜 TV 속 미국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과외활동이 중요하겠거니 짐작하는 정도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인상비평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번에도 그러다 말겠지”와 “입학사정관제 같은 주관적인 입시제도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수십년 동안 한국 교육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은 극단을 오갔다. 교육 관계자나 입시 전문가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그 와중에 교육정책은 수험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잃었다. 첫 번째 우려는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 우려는 비뚤어진 한국 교육 풍토에 기인한다. 입학사정관제는 고교 교사와 사정관, 그리고 학부모의 ‘3중 페어플레이’로만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일류대 진학이 교육의 목표이자 인생의 과제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는 입학사정관제가 정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는 장점이 많은 제도”라는 의견도 있다. 단국대 입학처장을 지내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업무를 경험한 남보우 교수(경영학과)의 말이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대학은 시험 점수로 학생을 뽑아왔습니다. 다른 소질이 있어도 90점이 100점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였지요. 이런 점수 위주 입시제는 교육계 구석구석에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고교 풍경은 황폐화됐고, 대학은 점수에 의한 서열 경쟁에만 몰두했습니다. 소질, 경험, 적성과 상관없이 암기식 시험에 뛰어난 학생만이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요.

    대학 입시는 한국 교육의 나침반입니다. 초·중·고 교육 전체가 대학 입시의 성격에 좌우됩니다. 점수 위주의 체계를 흔들지 않으면 입시문제 개선이 불가능하고, 입시가 바뀌지 않으면 점수 따기 경쟁식 교육도 바뀔 수 없습니다.

    문제가 예상된다고 입학사정관제 자체를 반대하는 발상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 입시제도와 입학사정관제의 장단점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60년 동안 계속된 고질적인 입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입학사정관제는 입시전형을 선진화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입시 패러다임을 바꾸는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연 입학사정관제가 우리의 입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연착륙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착한다면 새로운 교육환경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선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부터 짚어본다.

    ‘정보 없는 정보전’

    현재 대학 신입생 모집단위는 정시와 수시로 나뉘며, 각각 정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정시는 수능 점수 위주로 선발한다. 수시는 수능점수를 제외한 학생부 성적, 특기, 실적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학생부와 논술 성적이 6:4 정도로 반영돼 당락을 좌우한다.

    수시는 지원자격 제한 유무에 따라 다시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나뉜다. 특별전형은 외국어능력, 리더십, 지역균형 등 다양한 요건을 기준으로 삼는다. 모집인원은 전체 인원의 5% 내외. 즉, 대부분의 학생은 수능과 학생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셈이다.

    문제는 입시 전형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같은 정시라도 학교별, 과목 점수별 반영 비율이 제각각이다. 수시전형은 수십 가지가 넘으며, 내신, 논술, 기타 성적, 대외활동 등의 항목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매년 바뀌는 입시제도와 세부 전형에 수험생과 학부모는 머리가 아파온다. 볼펜을 쥐고 성적과 전형표를 번갈아보며 점수를 계산해도 어떤 전형이 가장 유리한지 좀체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한국의 대입 전형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걸까.

    “수능이 끝나면 입시는 정보싸움입니다. 그러나 각 대학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실질 반영률을 알아야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데, 오히려 입시전형 요강을 복잡하게 만들어 반영률을 속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이유는 내신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학은 고교 내신을 믿지 않습니다. 3불(不)정책으로 고교등급제가 적용되지 않는 이상 고교 내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난 정부는 공교육 강화를 목적으로 학생 선발에서 내신을 50% 이상 반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전형 방식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수험생과 학부모는 불안한 마음에 시간당 수십만원씩 지급하며 입시상담을 받게 됐고, 정보가 없는 지방 학생들은 우왕좌왕하는 폐단이 생긴 것이지요.”

    대학 입학사정관제

    미국 대학은 거의 모든 전형에서 SAT 점수, 학과 성적, 특별활동 등 교과와 비교과 영역을 종합평가한다.

    고려대 입학처장을 지낸 박유성 교수(통계학)의 말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평준화 정책으로 대학은 학생 선발권을 갖지 못했다. 규제하는 정부와 규제를 피해 좋은 학생을 뽑으려는 대학 간 줄다리기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 정책은 자율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는 단계별로 2012년 이후 학생 선발권을 완전히 대학에 넘긴다는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2010년까지는 3불 정책이 유지되는 등 현재는 과도기 상태다.

    입학사정관제는 지난 정부 때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다. 점수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자는 취지였다. 점수를 등급화하는 수능등급제도 같은 맥락에서 도입됐다. 수능등급제는 “변별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 올해 점수제로 회귀한 반면, 입학사정관제는 정권이 바뀐 뒤에도 자율화 정책과 맞물려 계속 추진 중이다.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처음으로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계기였다. 참가 대학은 가톨릭대, 건국대, 경북대, 경희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인하대, 중앙대, 한양대 등 10개교.

    사정관제는 성적을 안 본다?

    교육부는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행 초기 대학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입학사정관제 지원 공고에 여러 대학이 당황하며 신청을 포기했다. 신청한 대학들 역시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지원금을 타내자는 의도로 지원했다”라고 귀띔했다.

    이를 두고 “입학사정관제의 특성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둘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교육학)는 “입학사정관제는 개별 대학이 실시하는 입시제도다. 그래서 유형과 성격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교육부는 ‘잠재력을 위주로 선발하는 미국식 입시’라는 큰 그림을 주고, 각 대학이 위치한 지역, 설립 주체, 학교 위상 등 특성에 따라 적합한 사정관 전형을 개발하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재력을 위주로 선발하는 미국식 입시’란 미국 대입제도의 평균 모델을 말한다. 여기서 하나. 입학사정관제를 두고 흔히 이런 오해를 한다. 사정관 전형은 성적을 보지 않으며, 다른 전형과 별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사회학)의 설명이다.

    “사정관제는 사정관을 활용하는 전형입니다. 따로 사정관 전형을 둘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성평가가 필요한 모든 전형의 일정 또는 상당 부분에 사정관이 참여하는 방식이 그것이지요. 그리고 대부분 전형에서 성적을 보게 될 겁니다. 소년소녀가장 같은 특별전형이라도 성적에 하한선이 있지 않겠습니까.”

    미국에서도 사정관제는 지역과 대학별로 다양하게 운영된다. 하지만 교과, 비교과,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골고루 평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우리처럼 성적만 우수하다고 뽑지는 않는다.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에서 1920년대경 시작해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했다. 미국에서 사정관은 AO(Admission Officer)로 불린다.

    양정호 교수는 “미국 대학은 전형별로 가중치는 다르지만 모든 영역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한다. 예컨대 누가 봐도 합격할 만한 학생 30%, 자격은 되지만 살펴봐야 할 학생 30%, 자격이 안 되지만 고려해봐야 할 학생 30%를 1차로 뽑은 뒤 사정관들이 정성평가를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책상머리에서 길들지 않아도 자신만의 특출한 재능이 있다면 명문대 진학이 가능하다.

    전체 입학생을 사정관들이 일일이 정성평가하는 게 가능할까. 물론 선발 과정의 모든 부분을 사정관이 평가하는 건 아니다. 성적처럼 점수 계산이 가능한 부분은 컴퓨터로 작업하고, 입시철에는 행정을 돕는 직원을 따로 둔다. 교수도 때에 따라 평가에 참여한다.

    미국 대학은 보통 50~100명의 입학사정관을 두고 있다. 이들은 학생 선발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선호 학생과 입학 학생의 통계자료를 분석해 원하는 학생상(像)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좋은 학생이 매력을 느낄 만한 전형을 개발한다. 입시철에는 학교 방문, 입학 상담 등 전형 홍보, 평가를 거쳐 학생을 선발한다. 보통 교수, 오랜 기간 입학 업무를 담당해온 이, 정년퇴임 교사 등이 사정 업무를 담당하며 입학처장, 책임입학사정관, 선임입학사정관, 입학사정관으로 직급이 나뉜다.

    미국의 사정관 전형에서는 응시생의 어떤 면들을 살필까. 1차 평가는 우리의 학생부처럼 고교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한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대교협 주최 워크숍 자료에 따르면, 미국 MIT는 2개 파트 6개 항목에서 성적, 교과 이수과목, 학점, 장래 희망과 포부가 담긴 에세이, 인성, 과외활동, 개인 신상 등을 평가한다. 2005년 기준 미국 전체 대입 결정 주요요인은 교과 성적, SAT 성적, 고교 진학 상담교사 추천, 에세이 등으로 나타났다.

    사정 과정도 복잡하다. 보스턴 매거진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4차례의 심사과정을 거치는데, 순서는 이렇다. 학업·과외활동·품성·스포츠 4개 부분에 대한 서류 심사를 한 뒤, 지역별로 분류된 1차합격자를 복수의 사정관이 다시 평가한다. 최종 합격자는 사정관들의 투표를 거쳐 결정된다. 입시 노하우를 가진 대규모 인력이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작년에 한국 대학이 시범 실시한 입학사정관제는 이와는 거리가 있다.

    특별전형 vs 사정관제도

    “지난해에는 사정관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입시전형은 1년 전에 계획을 세워 진행되는데, 8월 말 지원제가 공고됐고, 9월 초에 수시전형이 시작됐거든요. 그래서 시범 실시에 큰 의미를 두기는 힘듭니다. 대부분의 대학이 리더십, 지역균형 등 기존 특별전형에서만 사정관을 활용했고, 모집 인원도 수십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입학사정관제와 유사한 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은 있었습니다. 예컨대 카이스트는 주로 과학고 출신 학생들을 뽑는데, 학교 현장에서 커리큘럼을 살펴 전공별 특성이 적합한지를 평가했습니다. 연세대는 언더우드 학부에서 외국 학교 출신 학생을 선발할 때 입학전문요원을 활용했고요.”

    지난해 입학사정관제 시범실시 대학의 결과 점검을 맡은 동국대 김무봉 교수(국문과)의 말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시범실시에 대해 “지원 대학 측이 수명의 입학사정관을 뽑기는 했지만, 경험이 없는데다 시기도 늦어 사실상 입시 보조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고, 연세대 김현정 입학관리부장은 “지난해 새로 뽑은 입학사정관들은 시일이 촉박해 연구를 주로 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수시 특별전형과 입학사정관제가 다른 게 뭐냐” “특별전형에서 하던 것처럼 교수들이 면접을 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경희대 정완용 입학처장(법학)은 “사정관은 1년 내내 입시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지만 교수가 그러기엔 제약이 있다. 또 특별전형의 평가는 단순·단선적이지만 입학사정관제에서는 단계별로 절차를 걸쳐 종합·다면 평가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학사정관제가 틀을 갖추기까지는 5~10년, 정착하기까지는 40~5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시범사업은 대학들이 사정관 전형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학들은 그간 사정관제에 대한 준비작업이 미흡했다. 몇몇 대학에서 4, 5년 전부터 입학생의 특징과 입학 후 성적의 연관관계 등을 통계 분석한 정도가 전부다. 10개 학교는 특성에 맞는 전형, 입학사정관제 활용 방법, 입학생 분석 등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준비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건국대는 보직교수들을 대상으로 입학사정관제 설명회를 열어 구성원들의 이해를 도모했다. 인하대는 기존 논술전문요원을 사정관으로 초빙해 대안학교의 우수 학생을 발굴하는 한편 학교가 위치한 인천지역 특성을 살려 중국인 사정관을 초빙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가 나아갈 방향은 개별 대학이 결정할 일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형 입학사정관제’의 전망은 대체로 이렇다. 우선 전면 도입은 어렵다. 김무봉 교수는 “입학사정관제의 전면 도입은 사정관 수십~수백명을 둬야 가능하다. 현재 학교별로 4, 5명의 사정관을 뽑았는데, 점진적으로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시범실시 때 선발 학생 인원은 학교별로 50명 내외였는데, 매년 10여 명씩 늘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미국처럼 모든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양정호 교수는 “전국에 220여 개의 대학이 있는데 모든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많이 참여해야 50개 남짓일 것이다. 대학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수능, 내신, 입학사정관제 중 학교별로 특성에 맞는 입시제도를 운영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정완용 입학처장은 “장기적으로 전체 입학생의 60~70%는 성적, 나머지는 인성과 창의력을 기준으로 뽑는 조화로운 입시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박유성 교수는 “현재 한국 교육계 상황에서는 제도상 문제를 개선한 뒤에 20% 이내로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정서적 합의’ 없이는 100% 실패”

    하나의 교육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큰 진통이 따른다. 입시 관련 제도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철저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에는 수많은 선결 과제가 거론된다. 그 가운데 전문가들이 으뜸으로 꼽는 부분은 ‘정서적 합의’다.

    한국은 혈연·지연이 뿌리 깊이 얽힌사회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관계와 정(情)을 소중히 생각한다. 입학사정관제는 사익보다는 공익이,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사회라야 정착이 가능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중지를 모으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점수 위주 입시제는 결과 예측이 가능하다. 수능과 학생부 성적에 따라 진학 서열이 매겨지기에 합격여부 및 진학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반면 입학사정관제는 고교 교사와 사정관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과거에는 80점이 절대 90점을 이길 수 없었지만 사정관 전형에선 그렇지 않다. 그래서 ‘정서적 합의’와 같은 맥락으로 ‘공정성 확보’도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공정성은 오랜 기간 입학사정관제를 운영해온 미국도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이다. 완벽한 제도는 없지만, 입시는 공정성을 잃으면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미국 브라운대 입학사정관이었던 윌리엄 캐스키(William Casky)는 2007년 봄 USA투데이에 ‘대학입학은 보드게임’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 입학사정관제의 이면을 들추며 쓴소리를 했다.

    “수험생들이 지원 대학의 결정을 기다리는 봄이면 나는 늘 선발과정을 본뜬 보드게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학교성적, 자기소개서, SAT성적, 특별활동, 봉사활동 실적 등 기준에 따라 진퇴가 결정되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임은 다른 기준에 의해서도 말의 진퇴가 결정됩니다.

    학생은 학교성적이 상위 10%안에 들죠? 그럼 그 자리에 정지. 호텔 주방 봉사활동을 했군요. 그건 너무 흔한 이야기입니다. 두 칸 후퇴.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인데 학교성적은 별로군요. 괜찮습니다. 열 칸 전진. 자기소개서는 그저 그렇군요. 어,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 학교 이사라고요? 그럼 학생이 승자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대입이 문제 덩어리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입학생의 3분의 2 가량은 자율적으로 의미 있게 선발된다고 평가한다.

    수시 전형에서도 성적을 거스른 결과가 나오면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사정관제에서 학부모와 수험생이 겪을 혼란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부패와 불공정성을 막기 위한 장치로는 학생부 평가의 신뢰 확보, 사정관의 신뢰 확보, 다단계·복수 평가제 확립 등이 거론된다.

    전문성, 도덕성, 그리고 신뢰

    미국 입학사정관제의 1차 평가는 서류 심사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처럼 명문대 숫자가 적고, 명문대 지원 학생이 넘쳐나는 환경에서는 서류 평가가 특히 중요하다. 그 서류 평가의 핵심은 학생부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사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자질과 도덕성을 토대로 한 교사의 권위 없이는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은 대구가톨릭대 정일환 교수(교육학)의 말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개별 학생의 잠재력을 정확히 판단하는 게 관건입니다. 그 1차 자료는 고등학교 학생부가 제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여부는 곧 대학과 고등학교의 신뢰에 달려 있지요. 물론 기존 수시 특별전형에서도 학생부 평가를 활용했지만, 입학사정관제는 그 범위와 활용도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교사가 권력을 남용해 똑같은 추천서를 여러 학생에게 재활용하거나, 특정 학생을 과대·과소평가할 소지도 있습니다. 그것을 막으려면 파일을 남겨 추후 확인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학생부 기록과 사실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 징계를 내리거나, 경고를 받은 교사명단을 작성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저항이 있겠지만 하나의 제도로 확립된다면, 교사 간 경쟁은 물론 학교 간 경쟁도 유도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다음은 학생부의 평가 작업을 담당하는 사정관의 자질. 사정관은 학생의 선발을 책임지는 재량권을 갖는다. 그 재량권이 존중받으려면 학부모와 수험생의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렇다면 사정관이 갖춰야 할 전문성은 무엇이며, 그 전문성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현재 입학사정관에 대한 자격 규정은 없다. 여러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격 제도를 두기보다는 일정 기준 이상의 자격을 갖춘 자가 관련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본 자격은 ‘입시 관련 업무 2년 이상 종사자’ 또는 ‘입시 관련 박사학위 취득자’ 등으로 제한할 수 있다. 연수 방법으로는 합동 연수과정을 개설하거나 대학 스스로 교육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에서는 보통 대학이 자체 사정관 교육을 실시한다. 다음은 대교협이 제시한 미국의 사정관 교육 사례. 촘촘한 가이드라인은 판결 시비를 막는 예방장치의 기능을 한다.

    ‘시험성적의 전국·주 단위 경향과 인구 배경 자료의 특성을 검토. 학교 프로파일 검토 방법 숙지. 샘플 성적표를 검토해 사정 기준에 맞춰 고등학교 성적을 재산출. 여름방학이나 주말에 학업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확인. 추천서, 활동, 자기소개서 등을 통해 지원자의 학습에 대한 동기 수준을 파악….’

    사정관에게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이 있다. 바로 도덕성이다. 1차적으로 사정관 본인의 책무감이 중요하지만, 공정성 담보 시스템도 고려할 수 있다. 즉, 한 학생을 복수의 사정관이 담당하고 다단계로 평가를 진행하는 감시 체제를 갖추는 식이다.

    대학 입학사정관제

    ‘100일 공부해서 100년 놀자.’수능 고득점 획득이 명문대에 가는 지름길. 출입문에 쓰인 문구가 수험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말해준다.

    남보우 교수는 이에 대해 “사정관제는 자연스레 사회적 감시가 이뤄지리라고 본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학부모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느냐. 또 시스템이 갖춰지면 한 사람이 전권을 갖지 않은 한 입시에 있어 비위를 저지르기란 힘들다. 단 사정관 인사에는 학교 측이 개입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정관의 불안한 직위도 공정한 제도 운영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박유성 교수의 말이다. “현재 사정관 직위에 대한 어떠한 법률적 보장도 없습니다. 지난해 시범사업 때 선정된 사정관은 대부분 계약직입니다. 그들이 계약직으로 있는 한 사정관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정관이 선발의 전권을 가져야 책임감을 갖고, 학교 눈치 안 보고 일할 수 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복도 최소화할 수 있고요. 또 계약직이라면 전직 교사, 입시 경험자 등 고급인력이 사정관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업무와 책임의 한계도 불분명합니다. 학생 선발이라는 재량권을 행사하는데 법적인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소송에 휘말릴 경우 골치가 아픕니다. 그런 분쟁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이밖에 “컨설팅 학원의 도움을 받은 상류층 학생이 유리할 것이다” “넘쳐나는 사정관 전형에 오히려 수험생이 혼란스러울 것이다”라는 우려도 있다. 이는 시행착오를 겪은 미국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입시 상담을 고등학교 상담교사가 맡는다. 그래서 미국에도 컨설팅 업체가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사정관 전형의 난립은 ‘공통 폼’을 사용해 최소화할 수 있다. 꼭 필요한 항목만 포함된 공통 폼을 활용하되 필요에 따라 추가 폼을 활용하는 식이다.

    “ 지원 없이? 글쎄…”

    대학 입학사정관제

    2009 입시설명회에서는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을 주요하게 다뤘다.

    “그간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금주령을 내렸다. 그런데 술값을 주면서 이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했다. 정부의 입학사정관제 예산 지원금은 아버지가 주신 술값과 같다. 돈을 받지 않은 아들은 ‘술을 마셔도 좋은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답은 ‘마셔도 좋지만 돈은 알아서 충당하라’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부의 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원 대상이든 아니든 대학들은 이제 입학사정관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완전한 자율권이 주어지지 않은 현재,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에 무심하려면 눈치가 보인다. 이런 이유로 여러 대학이 자체적으로 사정관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그중 상당수는 “규제가 우려돼 정부의 지원금은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예산 지원이 끊긴 뒤 대학들의 행보는 어떨까. 한 학교는 매년 평가를 통해 최대 3년 동안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대체로 “두고 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지원금을 받았지만 아직 제도가 흐지부지될지, 정착할지, 정착한다면 어떤 방향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김영수 처장은 “시범실시의 결과 분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정관 전형의 객관성이 담보됐느냐, 즉 사정관이 뽑은 학생들이 진학한 뒤에 어떤 결과를 보였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비용 문제로 자금력이 달리는 대학들은 사정관제 시행을 꺼릴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원받은 학교는 대부분 계약직으로 사정관을 채용했습니다. 사정관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죠. 내부인력으로 충원했는데 사정관제가 흐지부지되면 곤란해지니까요. 대학 입장에서는 사실 과거식 입시 구조가 편합니다. 점수 위주로 계산하면 간편하고 공정성 논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이유로 각 대학은 그동안 점수위주 입시체제가 바람직하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대학 자율화 정책이 진행되면서 입시제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지요. 자율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은 한동안 계속될 겁니다.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장기 지원이 있어야 사정관제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 몇몇 관계자는 입학 전형료에 대한 법제도 변경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대학은 매년 약 50억원을 입학전형료를 벌어들인다. 그런데 이 전형료 사용에 제약이 있다. 전형 수수료는 입시경비, 즉 교수 면접비, 직원 수당, 홍보비 등으로 써야 한다는 것. 입시 경비 30억원 정도를 제외하면 각 대학은 매년 20억원을 남기는 셈. 남보우 교수는 “전형료를 입학사정관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정부 지원이 끊긴 뒤에도 적극적으로 사정관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자율화’와 ‘책임감’

    “대학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 경영학부라면 큰 경영자가 될, 미래의 정주영 회장이 될 학생을 뽑고 싶다. 하지만 그간 대학은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객관적인 기준을 점수에 두고, 그 요건을 충족하는 학생을 원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학생을 뽑는 데 걸림돌이 됐던 객관적인 기준인 점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바꿀 기회를 가졌다.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이 선발권을 갖는 제도다. 권한이 커진 만큼 악용될 공산도 크다. 그래서 “사정관제가 특목고 출신, 해외고 출신, 특정지역 출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경쟁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학 입시 관계자들 사이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학은 ‘선발 대학’과 ‘모집 대학’으로 나뉘는데, 이 두 학교의 이해관계가 달라 입시 관계자들끼리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 간 이해관계가 얼마나 다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대학의 의지는 제각각이다. 자율화를 바라보는 태도 또한 제각각이다. 상위권 대학은 뒤돌아서서 ‘자율화가 주어지면 본고사를 보는 게 최선’이라는 셈을 한다. 그렇지 않은 대학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전형방법의 개발에 고심한다. 그래서 사정관제와 관련, 입장이 비슷한 학교끼리 공통된 툴을 만들어야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 상위권 일부 대학의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정관제의 본질은입시에 찌든 학생들에게 전인교육을 하자는 데 있다. 몇몇 대학이 사정관제에 출신 지역, 고교별로 부당한 차등을 둔다면 학교 현장은 또다시 파행을 맞게 될 것이다.

    대학입시 자율화. 듣기에는 좋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자율화에는 개별자율화와 공동자율화가 있다. 대학입시는 개별자율화로 가기에는 위험이 크다. 도덕성의 테두리 안에서 공동자율화를 추구해야 한다. 사정관제를 발판으로 입시의 뒷문이 넓어지게 되면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며 누군가가 실책을 비웃을 게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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