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코로나가 가져온 고통, 청년이 더 크게 겪었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12-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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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바나]

    • 청년 뽑는 회사 없는데 60대 고용은 증가 일로

    • 15~29세 체감실업률 24.4%, 4명 중 1명 실업 상태

    • 젊은 비정규직 많은 서비스업, 코로나19에 치명상

    • 노동시장에서 희망 잃은 청년들 앞다퉈 ‘빚투’ 대열로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시 ‘삼십 세’의 첫 구절이다. 취업준비생 김모(27) 씨는 “요즘 이 문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뇐다”고 했다.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는 시인의 말이 꼭 지금 자기 심정 같아서라고 한다. 

    김씨는 서울 한 사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하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을 뒤덮기 시작한 올해 구직 전선에 나섰다. 원래 계획은 2월 졸업 후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현지에서 일하면서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를 떠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19 창궐로 포기했다. “취업해 1년쯤 돈을 모은 뒤 다시 생각해 보자”고 방향을 선회했는데 곧바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다. 매년 신입사원을 뽑던 회사들마저 줄줄이 채용 계획을 접었다. 그는 “종일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봐도 도무지 사람 뽑는 회사가 안 보였다”고 했다. 

    김씨의 기억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올 3월 채용공고 등록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2.7% 줄었다. 특히 신입사원 모집 공고 감소 폭이 44.4%로 경력직(-28.0%)에 비해 훨씬 컸다. 김씨와 친구들은 단톡방에서 “어디든 원서 낼 기회라도 좀 있으면 좋겠다” “불합격 통보라도 받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다 덜컥 서른 살이 되면 어쩌나.” 이것이 요즘 김씨를 짓누르는 고민거리다.

    “사람 뽑는 회사가 없다”

    채용공고 감소는 신규 취업자 축소로 이어졌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11월 중소기업 504개사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올해 신입직원을 계획대로 충원했는지’ 물은 결과 ‘모두 충원했다(달성+초과달성)’는 응답은 36.3%에 그쳤다. 중소기업 10개 중 6개 이상이 당초 계획보다 적은 인원만 선발한 셈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을 봐도 10월 기준 국내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보다 42만1000명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5~29세(-25만 명) △30~39세(-24만 명) 취업자 수 감소가 두드러졌다. 9월에도 △15~29세(-21만8000명), △30~39세(-28만4000명) 등 젊은 층 신규 취업자가 전년보다 50만2000명 적었다. 

    취업자 수 감소 추세는 우리 경제에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한 3월 시작돼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8월에도 8개월간 연속해 취업자 수가 전년보다 준 적이 있다. 이후 11년 만에 겪는 비상 상황이다. 

    눈에 띄는 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국내 고용시장에서 60세 이상 취업자 수만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3월부터 10월까지 내내 전년 동월보다 더 많은 ‘노인’이 취업에 성공했다. 최근 두 달을 보면 증가 폭이 9월 41만9000명, 10월 37만5000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배경에 정부가 있다고 본다. 공공재정을 투입해 60세 이상을 위한 일자리를 계속 만들고 있어서다. 유승민 전 국회의원은 10월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를 꼬집으며 “정부가 일자리 통계를 분식(粉飾)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년 4명 중 1명, 사실상 실업 상태

    고용 관련 재정이 고령자 일자리 사업 쪽에 쏠리면서 젊은이를 둘러싼 노동환경은 악화 일로다. 10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3.7%인 반면 청년(15~29세) 실업률은 8.3%에 이른다. 이때 청년 실업률은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젊은이만 대상으로 계산한 것이다. 단시간 노동을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이른바 ‘불완전 취업자’ 등까지 포함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10월 현재 24.4%까지 치솟았다. 청년 4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자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는 구직에 나선 젊은이뿐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 삶도 뒤흔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742만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만5000명 줄었다. 업종별로 보면 숙박·음식점업(-7만1000명), 제조업(-6만9000명), 교육서비스업(-4만1000명) 등의 비정규직 인력 감축 폭이 컸다. 모두 코로나19로 영업 피해가 크게 발생한 분야다. 이곳에 몸담은 청년 상당수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8월 기준 20·30대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전년 동월에 비해 16만8000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60대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는 19만5000명 늘었다. 보건업및사회복지서비스업(15만명), 공공행정·국방및사회보장행정(4만 명) 등의 분야에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서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조차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분노와 좌절감을 호소하고 있다.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는 이모(28) 씨는 “우리 세대는 유난히 인구가 많아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경쟁에 시달렸다. 대학 가기도, 취업하기도 다른 세대보다 훨씬 힘들었는데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 코로나19까지 덮치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씨가 태어난 1992년 우리나라에서는 73만여 명의 아이가 첫울음을 터뜨렸다. 1983년(76만여 명) 이후 감소세를 거듭하며 한 해 60만 명대 이하로 떨어졌던 출산율이 일시적으로 급등한 시기다. 통계를 보면 1991년부터 6년 동안 국내 출생아 수가 매년 70만 명 안팎을 오갔다. 이들의 부모는 이른바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로 이들 또한 인구가 많다. 학계에서는 1991~1996년 사이 태어난 이들을 ‘에코붐 세대’라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메아리(Echo)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에코붐 세대 덮친 코로나19 충격

    에코붐 세대의 나이는 올해 24~29세, 학교를 마치고 사회 진출을 본격화할 때다. 한정된 일자리에 많은 구직자가 몰려들어 취업난이 심화할 것이 우려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월 “에코붐 세대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뾰족한 해법이 마련되기도 전, 코로나19가 이들을 덮쳤다. 구직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정규직 직장인까지 고스란히 그 영향에 노출된 상황이다. 

    이씨는 올봄 공연·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며 회사 요청으로 두 달간 무급휴직을 했다. 이후 출근을 하고 있지만 주당 근무시간이 30시간이 채 안 된다. 동료들과 ‘퐁당퐁당’ 일하며 공연계가 정상화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공포”라고 털어놓았다. 

    이씨 말처럼 현재 청년들 앞에 놓인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기업들이 꽁꽁 닫아 건 신규 채용의 문이 조만간 열리기도 힘들어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9월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네 곳 중 한 곳은 ‘하반기에 새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24.2%)고 밝혔다. ‘아직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50%)고 답한 회사도 많았다. 

    10월 12일 ‘사람인’이 197개사를 대상으로 ‘하반기 채용계획 변동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도 암울하다. 응답 기업의 50.3%가 올 하반기 계획했던 채용을 미루거나 축소, 취소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보면 ‘하반기 채용 전면 취소’(19.8%), ‘채용 규모 축소’(19.3%), ‘채용 일정 연기’(11.2%) 순이다. 채용 계획을 수정한 기업들은 부족한 인원을 ‘기존 인력의 업무 분담’(67.7%, 복수응답)이나 ‘해당 업무 축소 및 통폐합 등 조직개편’(23.2%) 등의 방식으로 해소할 방침이다. 결국 올해 사라진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고, ‘취업 재수’가 불가피한 청년들은 내년 고용시장에서 새로 진입한 후배들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저축은행 마이너스 통장 이용자, 절반이 20대

    11월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 한때 1400선까지 추락한 코스피지수는 이날 2543.03을 기록했다. [뉴스1]

    11월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 한때 1400선까지 추락한 코스피지수는 이날 2543.03을 기록했다. [뉴스1]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건 시장에 공급된 과잉유동성이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 목적으로 돈을 풀었다. 이는 부동산 및 주식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만 해도 올 초 1400대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지수가 11월 중순 기준 2500을 넘어섰다. 서울 등 주요 도시 부동산 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기약도 없는 ‘미래 준비’에 매달리다 눈앞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20대 사이에 팽배한 이유다. 대학원생 진모 (25)씨는 “요즘은 공부하겠다고 학교에 남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수시로 투자 얘기가 오간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주식,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까 고민하는 친구도 많다”고 전했다. 

    통계를 봐도 최근 20대 대출이 증가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9월 기준 20대 1인당 총 대출액은 767만4000원이다. 전월보다 5.36% 늘었다. 30대(3.0%), 40대(1.23%), 50대(0.53%) 등 다른 연령층과 비교할 때 증가율이 확연히 높다. 7월에 전월 대비 4.08%, 8월에도 4.27%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직장이 없고 금융거래 실적도 충분치 않은 청년이 어디서 돈을 빌리고 있을까. 상당수는 제2금융권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보인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6월 말 기준 저축은행 마이너스 통장 이용자 2만4997명 가운데 1만4245명(57%)이 20대다. 이 가운데 4978명은 올 상반기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 통장은 그동안 30·40대 직장인이 주로 이용하던 상품이다. 저축은행 대출 창구에 20대가 몰리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미래 꿈꿀 수 있게 일을 달라”

    20대들이 이 돈을 어디 썼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최근 주식시장에 젊은 투자자가 급증하는 것을 보면, 20대 상당수가 빚을 내 투자 하는 이른바 ‘빚투’에 뛰어들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10월 25일 발표한 ‘신용융자 잔고 추이’를 보면 20대 잔고는 지난해 말 1600억 원에서 9월 15일 기준 4200억 원으로 9개월 만에 162.5% 늘었다. 신용융자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30대(83.9%), 40대(88.9%)도 신용융자액이 늘었지만 20대와 비교하면 증가율이 절반 수준이다.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청년들의 ‘빚투’에 대한 질문을 받고 “20대가 취업 시장에서 기회가 줄다 보니 어떻게 보면 계층 사다리를 타려고 주식 투자나 주택 구매 등에 나서는 것 같다”며 “근로소득을 늘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는 게 해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취업준비생 김씨도 “20대 시절부터 빚을 내 투자하길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만 생기면 자연스레 무리한 투자가 사라질 것”이라며 “정부가 청년 고용환경 개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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