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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러든 프로야구, ‘움짤’ 허용하고 오후 7시 시작하자 [베이스볼 비키니]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움츠러든 프로야구, ‘움짤’ 허용하고 오후 7시 시작하자 [베이스볼 비키니]

  • ● 인기 주춤한 이유는 야구장 밖에 있다
    ● 야구 보려면 반차 내야 할 판
    ● 40년간 물가보다 2.2배 더 오른 야구장 입장료
    ● 야구 잘한다고 관객 늘지 않아
[GettyImages]

[GettyImages]

“나는 9회말 1사 만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올라온 구원투수라고 생각한다.”

허구연(71)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3월 29일 야구회관에서 열린 공식 취임식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프로야구가 위기라는 건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졌다’는 게 프로야구 인기가 뒤처진 제일 큰 이유인 만큼 KBO 총재가 바꿀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기 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MLB) 커미셔너가 제일 먼저 내린 결정이 ‘자동 고의사구’ 제도 도입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제도 도입으로 MLB 경기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제도조차 바꾸지 못한다면 ‘커다란 변화’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3월 31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3월 31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허 총재도 마찬가지로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 결국 ‘큰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 총재가 한국 야구에서 ‘세이브 투수’로 이름을 남기려면 꼭 시도해야 하는 변화로 △평일 경기 시간 조정 △야구장 첫 방문 입장료 면제 제도 도입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평일 경기 시작 시각을 오후 7시로 30분 늦추는 게 ‘팬 퍼스트’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허 총재가 진짜 MZ 세대(1981~1996년 출생)를 공략하고 싶다면 ‘움짤(움직이는 그림)’ 제작 및 배포 허용과 함께 이 결정을 반드시 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포털사이트·통신3사 컨소시엄은 야구 경기를 짧게 편집한 영상과 움직이는 그림을 소셜커뮤니티서비스(SNS)에 올린 사람들에게 영상을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19년 2월 KBO가 해당 컨소시엄에 5년간 뉴미디어 중계권을 넘겼기 때문입니다.)



너무 이른 평일 야구경기 시간

4월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렸다. [동아DB]

4월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렸다. [동아DB]

1980년대라면 몰라도 2020년대 평일에 프로야구 경기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1983년 공채로 입사한 뒤 운영부장, 홍보실장 등을 두루 거친 이상일 전 KBO 사무총장은 2016년 ‘여름보다 뜨거운 야구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서 이 전 총장은 프로야구 평일 경기를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게 된 제일 큰 이유로 ‘신문 마감 시간’을 꼽았습니다. 프로야구가 너무 늦게 끝나면 신문기자들이 마감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시각으로 정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어차피 못 지킵니다. 1983년에 프로야구 한 경기는 평균 2시간 51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에는 3시간 14분으로 23분이 늘었습니다. 경기 시간은 늘어난 반면 신문 발행부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문 발행부수가 줄어든다는 건 기사 마감시간이 빨라진다는 뜻입니다. 이제 종합 일간지 가운데 지면에 프로야구 상보(詳報)를 고정적으로 내보내는 건 발행부수 1, 2위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뿐입니다.

반면 프로야구 기사는 여느 때보다 많이 쏟아집니다. 야구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 기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경기 시작 전 더그아웃에서 취재진과 감독이 나눈 이야기가 기자들 대부분이 기자석에 돌아가기 전에 이미 포털사이트에 뜨는 세상입니다. 여전히 ‘종이 신문’ 천국인 일본은 오후 6시 시작을 고수하지만 메이저리그 역시 오후 7시에 시작하는 경기가 제일 많습니다.

오후 6시 30분은 대학생은 몰라도 직장인이 맞추기에는 빠듯한 시각입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소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전국 18~34세 20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은 하루에 평균 8시간 12분을 일합니다.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했다면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오후 6시 12분이 돼야 일이 끝나는 겁니다.

6시 30분은 직장인이 맞추기 빠듯한 시각

4월 2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프로야구 2022 신한 SOL KBO리그 공식 개막전 SSG랜더스와 NC다이노스의 경기. 주말에 열린 개막전 경기임에도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 [뉴스1]

4월 2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프로야구 2022 신한 SOL KBO리그 공식 개막전 SSG랜더스와 NC다이노스의 경기. 주말에 열린 개막전 경기임에도 좌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 [뉴스1]

회사가 야구장 바로 앞이 아니라면 이동하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 지난해 펴낸 ‘2020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프로야구 팬 가운데 45.6%는 경기장을 찾는 데 30분~1시간을 씁니다. 그러니 같은 조사에서 20대(35.1%)와 30대(43.0%) 모두 경기장을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를 꼽은 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만약 시간을 못 맞추면 어떻게 될까요. 경기장에 갈 마음을 아예 접습니다. 이 조사에서 경기 시작 시각 이후 경기장에 도착한 팬 비율은 0.5%가 전부였습니다. 경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는 팬도 9.9%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면 55.3%가 최소 1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한다고 답했습니다.

경기 시작 시각이 늦어지면 경기 종료 시각도 늦어집니다. 대책이 필요하겠죠? 역시 같은 조사에서 프로야구 팬 가운데 가장 많은 44.1%는 자기 차량을 타고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자기 차량을 타고 온 이들은 경기 종료 시각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많은 팬은 지하철(40.1%)을 타고 야구장에 도착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서울 지하철 막차 시각은 오전 1시였습니다. 프로야구 경기가 지하철 막차를 놓칠 때까지 이어지는 일은 KBO로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일 겁니다.

결국 야구장을 한번 찾으려면 △이동 시간 30분 △관람 준비 1시간 △실제 경기 3시간 10분 △이동 시간 30분 등 5시간 정도는 필요합니다. 물론 돈도 필요합니다. 프로야구 팬은 야구장에서 1인당 평균 4만6195원을 씁니다. 프로야구 팬 가운데 가장 많은 48.7%는 2명이 야구장을 찾습니다. 야구장에 한 번 오려면 9만2390원 정도는 필요한 겁니다. 시간과 돈 모두 여유가 없으면 함부로 찾을 수 없는 곳이 야구장입니다. MZ세대를 야구장으로 끌어오려면 이 부담을 어떻게 줄여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가파르게 오른 야구장 입장료

1982년 10월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미친선프로야구 경기 입장권. 특별경기임에도 입장권 가격이 4000원에 불과하다. [동아DB]

1982년 10월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미친선프로야구 경기 입장권. 특별경기임에도 입장권 가격이 4000원에 불과하다. [동아DB]

예전에는 야구장이 이렇게 ‘비싼 곳’이 아니었습니다. 푯값만 놓고 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프로야구 10개 구단 평균 입장료는 1만1781원이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6개 구단 평균 입장료는 1481원이었습니다. 한국은행 화폐가치계산 서비스로 변환해 보면 1982년 1481원은 2019년 5401원에 해당합니다. 야구장 푯값이 물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2.2배 빠르게 오른 겁니다.

물론 당시 야구장과 지금 야구장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전혀 다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야구장이 훨씬 쾌적하고 세련된 공간입니다. 그렇다고 빠듯한 MZ세대 주머니 사정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앞서 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18~34세는 첫 월급으로 평균 213만 원을 받았습니다.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 70%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야구장 입장 ‘허들’이 내려가면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한국갤럽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프로야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올해 조사 결과를 보면 프로야구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답한 건 40대(39%)였습니다. 올해 40대는 10년 전인 2012년에는 30대였고, 당시에도 30대는 프로야구에 관심 있다고 답한 비율(50%)이 가장 높은 세대였습니다.

생애 첫 야구장 방문은 무료로

이들이 이렇게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물론 이 한 가지가 100%는 아니겠지만, 이들이 20대이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적당한 신용카드만 있으면 야구장 입장료가 ‘공짜’였다는 사실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대학생도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게 크게 어렵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신용카드를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게 꼭 사회 전체적으로도 옳은 일이었다는 건 아닙니다.)

다시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조사로 돌아가면 프로야구 팬 가운데 28.4%가 20~24세에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생애 첫 야구장 직관 무료’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요?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게 혜택을 줄 때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이 제도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액션’입니다.

사실 진짜 처음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직관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TV 중계도 시청하고 구단 SNS 계정도 팔로우하고, 또 구단 ‘굿즈’에 지갑도 열면서 ‘마니아’가 돼가게 마련입니다. 프로야구장을 찾는 게 직업인 한 사람으로서 아직은 프로야구 ‘직관 경험’이 그렇게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첫 경험’ 기회를 얻기가 너무 버거울 뿐입니다.

2019년 한국스포츠학회지 게재 논문 ‘빅데이터로 본 한국프로야구 관중의 소비감정’에 따르면 프로야구 관중 소비 감정은 △프로야구 자체가 주는 재밋거리 △야구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유희적 요소 △주류 문화의 향유와 과시적 표현 등 세 가지였습니다. 연구진은 특히 ‘프로야구를 어느 좌석에서 누구와 함께 소비하고 있는지 과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체가 야구장을 다시 찾게 하는 동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야구장 방문 기록을 과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려면 일단 첫 방문이 의미 있어야 합니다.

야구장 바깥에서 이유를 찾자

요컨대 프로야구가 인기를 회복하려면 인기가 떨어진 이유를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야구장 안에서 이유와 원인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야구를 못해서 인기가 없는 게 아니라 ‘야구만’ 잘하려고 들어서 인기가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역시 2019년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지에는 ‘한국 프로야구 리그의 관중 수 결정요인 분석’이라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전력 균형 지수’는 제한된 경우에만 관중 수 증가에 영향을 끼칩니다. 몇몇 인기 구단이 성적이 올라가면 관중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 역시 ‘야구장 안에서’ 생각하는 주장이라는 뜻입니다. 국제대회 성적 역시 관중 숫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닙니다. 대신 소득 증가는 관중 증가에 영향을 줍니다.

연구진은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은 전력 균형 수준 제고가 아니라 사회·경제학적 변수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처를 강구하고, 야구팬들의 새로운 트렌드를 정확히 분석해 수요에 부합하는 야구팬 확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제언으로 논문을 마무리합니다.

그러니 허 총재님, 야구장을 찾은 팬들과 자주 접촉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야구장을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이들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신동아 2022년 5월호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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