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文 대통령이 영입한 인재
2020년 광주 서구갑에서 당선
보좌진 성추문으로 민주당 탈당
2016년 1월 12일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가 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마치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와 밖으로 나서고 있다. [뉴시스]
헌법 46조 2항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 원칙을 이렇게 규정한다. 이 같은 헌법 규정은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는 거대 정당의 행태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보임됐다가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무소속 양향자 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양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충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검수완박 관련) 법안을 공부했고, 이렇게 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오늘내일 사이에 바로 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협조할 뜻이 없음이 확인되자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을 자진 탈당시켜 법사위에 배치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양 의원을 법사위로 배치한 것은 안건조정위에서 다수결로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시키기 위함이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인 민주당 3명, 국민의힘 3명으로 구성되는데 무소속 의원이 있을 경우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무소속 1명으로 꾸려진다. 무소속 양 의원이 법사위에 보임되면서 민주당 3, 국민의힘 2, 무소속 1명으로 위원 구성이 3:2:1로 짜여진 것. 즉 양 의원이 민주당 주장에 동조했다면 안건조정위에서 4:2로 검수완박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았던 것. 그런데 양 의원이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신속한 처리에 제동이 걸렸다. 급기야 민주당은 양 의원을 법사위에서 빼고 대신 민형배 의원을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배치하기 위해 ‘탈당’이라는 ‘꼼수’까지 동원한 것이다.
“모욕이다”
양향자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16년 1월 영입한 인사다. ‘여상 출신 첫 삼성전자 상무’라는 신화를 쓴 그는 입당 소감에서 “출산이 출세를 막고, 육아가 경력 단절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치에 있다”고 강조했다.20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전략 공천 돼 출마했지만, 천정배 당시 국민의당 공동대표에게 패했다.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 최고위원 겸 전국여성위원장에 선출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는 광주시장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고, 그해 8월 차관급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 광주 서구을에 다시 도전, 20대 총선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의정활동은 순탄치 못했다. 2021년 7월 지역구 사무실 직원의 성폭력 사건으로 당 윤리위원회가 출당을 결의하자 스스로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민주당 현행 당규는 징계가 임박한 상황에서 징계를 피하기 위해 탈당할 경우 5년간 복당이 허용되지 않는다. 즉 현행 당규가 양 의원에게 그대로 적용될 경우 2024년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할 수 없는 것.
양 의원이 만약 법사위 안건조정위에서 민주당 견해에 동조, 검수완박 처리에 협조했더라면 복당이 실현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민주당 복당도 약속받았지만, 앞으로 정치를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에 따라 반대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안을 보니 (민주당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이거 해주면 복당시켜준다? 그건 내게 모욕이다”라고 강조했다.
“스펙은 결론 아닌 자부심”
양향자 무소속 의원. [뉴시스]
그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1985년 당시만 해도 상고 출신 연구보조원이 하는 일은 연구원 책상을 닦거나 커피 심부름을 하고, 각종 자료를 복사하는 일이 전부였다. 호칭도 ‘미스 양’이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계발을 통해 새 역사를 써 나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 비해 기술력이 뒤쳐졌다. 따라서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일본어로 된 논문을 읽는 게 필수적이었다. 양 의원은 ‘고졸에게 일본어 사내 강의 수강신청을 받아 준 전례가 없다’는 거듭된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듭 수강신청을 한 끝에 일본어 강의 수강 기회를 얻었다. 그는 주말에도 기숙사에 머물며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한 끝에 수강 3개월 만에 일본어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본어 자격증은 ‘연구보조원’에서 ‘연구원’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팀 회의 참석 기회가 주어졌고, 일본어 서적 번역을 통해 기술력을 쌓아 반도체 설계 업무도 맡게 됐다.
고졸 출신에게 좀처럼 열리지 않던 ‘일본어 수강’이란 첫 관문을 성공적으로 뚫어낸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삼성전자 기술대학 반도체공학과에 지원한 것. ‘고졸 여사원이 지원한 전례가 없다’ ‘심사 대상이 아니다’며 해당 부서에서는 거듭 반려했다. 그는 “전례가 없으면 내가 선례를 만들겠다”며 기어이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1991년 입학 때는 꼴찌였지만 1995년 졸업 때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공업수학, 유기화학, 고체물리학 등 여상 출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의 경우 틈틈이 과외를 받기 위해 회사 멘토 선배 아랫집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공부에 매진한 끝에 여상 졸업 10년 만에 대졸 사원이 됐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한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반도체 기술 전문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이후 DRAM설계팀 수석연구원과 플래시설계팀 수석연구원을 거쳐 2014년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로 승진했다. 2008년 2월에는 성균관대에서 공학석사까지 취득했다.
여상 출신 연구보조원이 반도체 세계 1등 기업 삼성전자 기술직 임원으로 성장한 스토리는 환경 탓, 여건 탓, 조건 탓하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정치권 입문 당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스펙은 결론이 아니라 자부심이 돼야 한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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