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호

‘어용 지식인’ 유시민이 윤석열 時代에 준 교훈

[노정태의 뷰파인더] 당파성이 훈장 돼버린 2017-2022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2-04-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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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파 이익 복무하겠다는 자기배반

    • 피포위의식 모범적 예제

    • 편파적이지만 과정은 공정하다?

    • ‘알릴레오형’ ‘알쓸신잡형’ 득세

    • 지식생산 헤게모니 싸움 밀린 보수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발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21일 첫 공판에 참석하고자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발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21일 첫 공판에 참석하고자 서울서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2017년 5월 5일, 제19대 대선을 나흘 앞둔 날. 친노·친문 성향의 작가 유시민이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인데다, 더불어민주당은 단일대오를 구성하고 있지만 반(反)민주당 표심은 안철수와 홍준표 두 후보로 갈린 상황.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유시민은 선언했다.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

    유시민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진보 지식인이라는 자들은 “언제나 권력과 거리를 두고 고고하게, 깨끗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아무리 진보적인 정권이더라도 ‘내가 진보 지식인으로서 권력에 굴종하면 안 되지’라고 해서 사정없이 깔 것”인데, 그건 옳지 않다. 왜냐하면 2017년 5월 현재, “한국 사회는 복잡하고 여러 층위의 권력들이 있는데, (정권이) 바뀌더라도 청와대 권력 딱 하나만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무릇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모두 다 그대로 있고 대통령만 바뀌는 것이다. 대통령은 권력자가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도 없고,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이 사방에 포진하고 연합해 괴롭힐 것이다. 아마 야권 정당들이 서로 손잡고 연정을 하지 않겠나. 제가 정의당 평당원이기는 하지만, 범진보 정부의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

    ‘선량한 우리 편’과 ‘사악한 적’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물질적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대신 지적 활동에 매진하는 계층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지식인’은 공부나 글쓰기 등을 전업으로 삼는 사람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신분제가 폐지된 시민사회를 배경으로 공적 사안에 대해 대중의 이해를 돕고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이들, 즉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을 뜻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어용 지식인’ 선언은 그런 면에서 형용모순이다. ‘어용’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임금의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지식인이 시민사회 일반이 아닌 특정 정파, 그것도 곧 집권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과 정파의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자기배반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대신 다가올 윤석열의 5년이 있다. ‘윤석열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주제에 대한 답은, 그러므로 ‘문재인 시대의 지식인’에 대한 고민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유시민과 그의 아류가 택한 길은 무엇이었을까. 어찌하여 그들은 그런 모습이 됐을까. 그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

    유시민의 발언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정권이 바뀌어도 대통령만 바뀐 것이며, 대통령보다 더 강한 기득권 세력은 건재하므로, 대통령을 지키고자 뭐든지 해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사고방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논리다.

    이러한 집단의식에 제대로 된 명칭이 부여된 것은 2020년 이후의 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집권 세력이 된 민주당과 청와대를 두고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덕분이다. 본디 피포위의식은 군사 용어로, 적에 포위당한 군대가 위기감과 공포에 쫓겨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악수를 두는 경우를 일컫는다.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크리스티는 이 개념을 확장했다. 피포위의식은 ‘선량한 우리 편’이 ‘사악한 적’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시민의 ‘어용 지식인’ 선언은 피포위의식을 설명하는 모범적 예제나 다름없다. 물론 그는 “사실에 의거해 제대로 비판하고 옹호하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전통적 공공 지식인의 역할을 버리겠다는 취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더 중요한 건 유시민 스스로가 말한 ‘어용 지식인’의 일이라는 것이 ‘사실에 의거한 비판과 옹호’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는 편파중계다”

    시간을 건너뛰어 2020년 1월 1일로 향해보자. 서울 상암동 JTBC 스튜디오. 신년 특집 토론이 한창이었다. 시청자들의 이목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유시민의 대결로 쏠려 있었다.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던 유시민은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채널인 ‘알릴레오’를 통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및 그의 가족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내용을 반박하는데 한창 열을 올렸다. 진중권은 바로 그 점을 문제 삼았다. “조국 일가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인데 (‘알릴레오’ 등은) 조국은 얼마나 청렴한가로 가고 있다.”

    그에 대한 유시민의 답. “우리는 편파중계다. 편파적이지만 그 과정은 공정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팀의 편파중계도 있어서 전체적으론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알릴레오’와 유시민은 검찰에서 발표된 수사 내용이라는 이유로 조국 일가를 향한 혐의를 송두리째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했다. 그런 상황에서 ‘편파적이지만 과정은 공정하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른 팀도 편파적이므로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룬다'는 말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유시민과 친(親)민주당 성향의 언론 및 유튜브에서 주장하듯 검찰이 사실을 왜곡하고 혐의를 과장하고 있다 한들, 그 반대편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혐의를 축소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상대가 진실을 왜곡했다면 이쪽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음수와 음수를 곱하면 양수가 되지만, 거짓말을 반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두 개의 거짓말이 남을 뿐 진실은 아니다. 이쪽의 왜곡과 저쪽의 왜곡이 서로 균형을 이뤄 올바른 진실을 찾아간다는 논리는 결국 자신들의 거짓과 왜곡을 무마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2022년 4월 현재, 조국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수감 중이다. 조국의 딸 조민 씨 역시 입시전형 당시 제출했던 서류에 허위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이어 고려대에서 입학 취소 결정을 받았다. 유시민 본인은 ‘노무현재단 계좌 검찰 조회’ 발언 등으로 재판 받고 있으며,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용 지식인의 길은 처참한 실패로 마무리되고 만 것이다.

    지식 소매상 노릇 하기 애매해진 까닭

    한국 대중문화와 출판의 역사에서 유시민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80년대 말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상업 출판, 그 중에서도 대중 교양서 시장의 ‘대장주’ 격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내 머리로 읽는 역사 이야기’ 등 유시민은 대학교 신입생 혹은 조숙한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도록 교양서를 써내는 능력이 있다.

    대중 교양서 저자 유시민은 그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아님을 떳떳하게 인정했다. 대신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이라고 부르며 전문가들 앞에는 겸손한 태도, 대중 앞에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렵고 복잡한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소화하기 쉽도록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본인의 본령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 들어 그 ‘지식 소매상’이 너무도 노골적인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물론 유시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 논객이며 그의 책을 구입할 사람들도 진보 독자층이다. 문재인 정권을 전후로 유시민 스스로가 무색무취한 지식과 교양이 아닌 적극적인 정치적 텍스트를 생산했다. 유시민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식 소매상’ 노릇을 하기 애매해졌다.

    인문 교양서 시장의 독자층 역시 급격한 성향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라는 두 명의 보수 정권 대통령을 겪는 동안 진보 성향의 비소설 독자층은 일종의 ‘저항의 논리’를 원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 세상의 잘못된 점을 탐구하고, 고발하고, 후벼 파는 ‘독한’ 책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출판 시장 전체의 규모가 축소되기도 했다.

    평범한 혹은 진보적인 독자층에게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지식과 교양을 전달하는 것은, TV나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통해 이미 인지도를 쌓은 저자들의 몫으로 넘어왔다. 바야흐로 예능 인문학, 혹은 ‘인포테이너’의 시대가 열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기획회의’ 2018년 9월호에서 그러한 현실을 이렇게 적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는 책들이 인기였다. 이런바 실용인문학, 소프트 인문학이 붐을 이뤘다. (...) 이제 인문서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방송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이들의 인문학 서적들이다. 이른바 ‘예능 인문학’의 시대다. 방송에 얼굴을 알린 이가 쓴 책이 아니면 잘 팔리지 않는 세상이 됐다.”

    선동에 나서거나 아닌 척 하거나

    학원 강사로서 많은 팬층을 확보한 최진기라던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줄여서 ‘지대넓얕’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로 선풍적 인기를 끈 채사장 등, 인문 교양서 시장의 새로운 강자는 단지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추세에 조응한 것은 유시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대넓얕’과 유사한 어감을 지닌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을 뿐더러, 같이 출연한 다른 지식인들 역시 많은 경우 베스트셀러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대중 교양이란 말 그대로 대중이 원하는 재미있는 지식을 발굴하고 전달하는 분야다. 오늘날의 추세에 맞춰 저자 군이 달라지고 홍보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을 탓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엔터테인먼트와 흥미에 집중하다보니 잘못된 사실을 전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둘째로는 그러한 ‘실수’에 정치적 함의가 종종 담기곤 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뀐 직후인 2017년 6월 30일 방영된 ‘알쓸신잡 경주편’이 대표적 사례다. 출연자인 유시민,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가수 유희열이 경북 경주시 원자력 발전소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유시민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 위험을 거론하고, 정재승은 ‘한국처럼 원전을 많이 쓰는 나라 프랑스는 원전을 전면적으로 줄여 나가겠다고 한다’며 운을 띄운다. 그러자 유희열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반색한다. “아,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탈석탄, 탈원전 정책을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탈원전은 문재인 정권의 핵심 공약이자 중점 과제 중 하나다. 해당 에피소드를 통해 전달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온갖 장밋빛 청사진이 에너지 산업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 또한 당연하다면 당연할 일.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방영된 ‘알쓸신잡’의 해당 에피소드가 ‘정치적으로 중립’이었다고 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의 지식인 사회는 그렇게 돌아갔다. 노골적으로 정치색을 드러내고 사실을 왜곡하며 지지자를 선동하는 ‘알릴레오형 지식인’, 정치색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일정 수준의 정치 편향성을 지니고 대중 교양 시장을 공략하는 ‘알쓸신잡형 지식인’으로 나뉘어 있었다. 유시민은 두 영역 모두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으니, 문재인 정권의 지식인이란 결국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용 지식인’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대중이 지식인의 정치 성향 소비할 경우

    지난해 9월 10일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국민 시그널 면접’에 참가한 윤석열 당시 후보가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이 현장에서 중계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9월 10일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국민 시그널 면접’에 참가한 윤석열 당시 후보가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이 현장에서 중계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은 0.74%p라는 초박빙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4월 8일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2석이다. 여기에 정의당(6석)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을 합하면 180석이 넘는 세력이 곧 야당이 된다. 전례를 찾기 쉽지 않은 여소야대 정국이다. 게다가 6월 1일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정권교체 여론이 매우 컸던 대선과 달리 국민의힘의 승리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가 그리 많지도 않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윤석열의 지지자들 역시 5년 전 문재인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피포위의식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새 정부 지지자들 중에는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 특히 부동산과 관련된 실정에 실망한 중도층만 있는 게 아니다. 열렬한 보수층이 대거 포함돼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저들이 했던 일 우리가 그대로 갚아주리라’는 일종의 원한 감정을 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석열 시대의 지식인 사회가 또 다른 ‘어용 지식인’ 대열을 이루거나, 아닌 척 하면서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인포테이너’의 연대를 갖추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여론의 기준을 제시하는 공공 지식인이 노골적 정치색을 드러내며 당파적 편향성을 훈장처럼 내세우기 시작하면 지식 사회 본연의 기능이 마비되고 흔들린다. 대중이 지식인의 지식이나 통찰을 따르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을 소비할수록 지식인과 대중의 수준은 동반 하락한다.

    더 슬픈 소식도 있다. 윤석열을 옹위하기 위해 ‘보수 어용 지식인’을 꾸려 싸우겠노라는 발상은 실현 불가능하다. 그럴만한 역량도 인적 자원도 없기 때문이다. 범 보수 진영, 혹은 민주당 지지 성향을 띄지 않는 중도·보수 진영은, 지식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헤게모니 싸움에서 완전히 밀린 상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왼쪽부터)가 2020년 9월 25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흑서)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김경율 회계사(왼쪽부터)가 2020년 9월 25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흑서)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진보 진영의 ‘어용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논리를 허물고, 입을 다물게 하고, 그 허위를 까발린 주체가 누구인가. 진중권을 비롯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이른바 ‘조국 흑서’를 쓴 5총사다. 대선 과정을 거치며 참여자들의 입장과 태도와 진영이 서로 많이 갈라졌으나, 적어도 그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조국 흑서팀’은 모두 진보 논객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진보와의 담론 투쟁에서 보수 논객들은 스스로 그 무엇도 해내지 못했다.

    대선이 끝나기 전 진중권은 정의당으로 복당했다. ‘조국 흑서’를 쓴 이들은 각자의 길을 갔으나, 단일 대오를 형성하고 민주당과 싸우던 시절의 아우라는 잃은 지 오래다. 요컨대 현재 보수는 진보와 같은 방식으로 지식인을 동원하고 담론 투쟁에 나설 수 없다.

    해법은 어디 있을까. 지식인 본연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만이 답이다. 윤석열 본인의 신조이기도 한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확고히 되새기며,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함부로 배척하지 않는 인간적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이나 ‘이대남’들의 관심 사항으로 여겨지는 ‘공정’을 매우 좁게 해석하며 문자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인위적 개입과 관리가 필수다. 새 정권의 출범과 함께 ‘어용 지식인’의 시대가 끝나고 진정한 ‘공공 지식인’의 시대가 돌아와, 이러한 정치적, 철학적 토론이 왕성하게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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