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패, 민주당 실수, 후보 리스크가 패인
5년 만에 정권교체, 전례 없는 패배
졌지만 잘 싸웠다 위로할 때 아니다
국회 다수당으로 국민께 능력 보여야
3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영철 기자]
대선에서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박용진 의원이 가장 먼저 복기에 나섰다. 3월 16일 ‘20대 대선이 한국 정치에 남긴 과제들’이라는 이름의 토론회를 열었다. 박 의원은 “선거 승패와 관련 없이 복기는 필요하다. 대선 과정에서 네거티브만 오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수준 낮은 대통령선거였다.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선거 패인을 찾았을까.
“국민이 민주당 호되게 꾸짖었다”
0.73%포인트, 아깝게 졌다.“선거 기간 5일만 두고 보면 아깝다. 선거 두 달 전만 해도 윤석열 후보 당선을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선거를 앞둘수록 격차가 줄어들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는 선거 5일 전에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당내에서도 아깝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 같다.
“지지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정치인은 그래선 안 된다. 작은 격차로 진 것은 중요하지 않다. 졌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큰 차이로 진 것이 아닌 데다 분투해 얻은 결과라는 인식도 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10%포인트 이상 불리한 선거를 당과 후보, 당원들이 노력해 0.73%포인트의 격차까지 줄였다”고 말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대선이라는 표현도 있다.
“2017년 집권 초기를 돌이켜 보자. 그때만 해도 목표는 20년 장기 집권이었다. 결과가 어땠나.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놓쳤다. 1987년 대통령선거 직선제 도입 이후 5년 만에 정권이 바뀐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쩌다 정권을 뺏겼는지에 집중해야지, 얼마나 적은 격차로 패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패배라 생각해선 안 된다?
“이번 결과는 국민들이 민주당에 매를 든 것이다.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정신을 잘 차리라고 꾸중했는데, 뼈아프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잘했다’고 이야기한다면 앞으로 민주당에 미래는 없다.”
닥친 상황 모면하려다 국민 신뢰 잃어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3월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한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동아DB]
“정권을 잡은 정부와 후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당의 책임이라면?
“지난 5년을 돌아보면 민주당은 소탐대실의 정치를 해왔다.”
어떤 것을 탐했고, 무엇을 잃었나.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만을 썼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등한시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의 위기로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2019년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이하 조국 사태). 두 번째는 2020년 20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든 것, 세 번째는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다.
박 의원은 “조국 전 장관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당과 정부가 조 전 장관을 끌어안았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도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2021년도 마찬가지다. 당시 당헌에 따르면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서는 안 됐는데 당헌 개정까지 해가며 후보를 냈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사퇴했다. 민주당은 2020년 11월 당헌을 개정해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냈고 패배했다.
원칙을 어긴 건데 당내에서 지적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나를 비롯한 몇몇 의원이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질타였다.”
민주당도 박 의원이 지적한 부분을 뼈아픈 실책으로 보긴 했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이재명 상임고문은 12월 조국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에 대해 사과했다.
‘조국의 강 건넜다’는 말 믿은 국민은 없다
‘조국의 강을 건넜다’는 평가도 있었다.“사과만 했을 뿐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조국의 강을 건넜다곤 하지만 바지가 젖어 있지 않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단적인 예로 조국 사태에 연루된 최강욱 의원이 원내대표 최종 후보로까지 선출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들이 과연 조국의 강을 건넜다는 당의 자평을 믿어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선거 기간 중 위성정당 등 다른 부분에 대한 반성도 함께 했다면 결과가 달랐다고 보나.
“반성과 사과는 말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위성정당 문제만 두고 봐도 당 주류는 제대로 반성하는 것 같지 않다.”
실천 없는 반성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비대위원장은 2020년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발언했다. [동아DB]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윤호중 의원만 봐도 알 수 있다.”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3월 13일 비대위 인선 발표 기자회견에서 “위성정당 창당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앞으로 그런 일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위성정당의 시작과 반성 모든 장면에 윤 위원장이 있었다”며 “위성정당을 만든 것도 윤 위원장이다. 그런 사람이 비대위원장에 앉았다. 바람직한 정당이라면 이 인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대선 패배의 핵심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채이배 의원은 3월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퇴임사에 잘했다고만 쓸 수 없지 않으냐. 못한 내용도 쓰고 그러려면 반성도 담겨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 발언에 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일부 의원들은 채 의원의 비대위원직 사퇴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박 의원은 3월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채 의원을 두고 일어난 당내 갈등에 대해 “입을 막는 식으로 논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채 의원의 지적에 동의하나
“아니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대선 패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지배적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 어떤 부분이 지배적 요인인가.
“앞서 설명했듯 정부의 정책 실패, 당의 소탐대실 정치, 후보가 가진 리스크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긴 결과다. 어느 하나가 지배적 요인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채 의원을 두둔하는 이유는?
“대선 패배 후 반성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의견 표명만으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지지층 아닌 무당층 목소리 들어야
이재명 상임고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고 수준을 자랑했는데도 선거에 졌다.“이 전 지사가 대통령의 지지율도 다 흡수하지 못한 셈이다.”
박 의원은 3월 16일 페이스북에 “투표율 77.1%의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득표율 47.83%는 전체 유권자 분모로 환산하면 36.88%”라며 “문 대통령의 대선 직전 지지도 43.9%에 미치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왜 우리가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는지 돌이켜 봐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 패배에 후보자인 이 상임고문의 책임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상임고문을 둘러싼 의혹이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고 보나.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 부분?
“후보 경선의 룰을 고쳐야 한다. 지금의 경선 방식으로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민주당도 여론조사 결과를 경선에 반영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나.
“국민의힘과 비교해 보자. 국민의힘은 최근 당대표를 선출할 때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를 절반씩 반영했다. 반면 민주당은 당대표를 뽑을 때 여론조사 결과가 5~10% 정도밖에 반영되지 않는다.”
역선택은 실체 없는 얘기
채이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 패배의 책임이 대통령에게도 있다고 발언했다. [지호영 기자]
“역선택을 방지하겠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들에 한해서만 여론조사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무당층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역선택이 실체가 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하나.
“역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존재하더라도 전체 여론조사에 미치는 결과는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역선택이 두려워 여론조사를 제한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당의 후보를 뽑는데 굳이 다른 정당 지지자 의견을 들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당 지지자들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영원히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민주당 바깥의 잠재적 지지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무당층도 잠재적 지지자가 될 수 있고, 다른 정당 지지자도 민주당 지지자로 변모할 수 있다.”
국민의힘 지지자가 민주당 지지자로 변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대선이 역대급 ‘깜깜이’ 선거가 된 것은 국민의힘 지지자 일부가 민주당으로 지지를 돌렸기 때문이다. 1월만 해도 10%포인트가량 나던 지지율 격차가 0.73%포인트로 줄었다. 선거운동과 후보 선출 과정에서 민의 반영에 노력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야 할까.
“기름값, 부동산 등 민생 과제를 빠르게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특히 윤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등 민생과 무관한 사안에 집중할 때가 기회다. 민주당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대권은 놓쳤지만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이다. 야당 노릇을 하겠다며 상대 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만 집중해선 안 된다. 국민의 신뢰를 두고 하는 경쟁에서 어떻게 이길지 고민할 시점이다.”
비판만 늘어놓으면 실패한 야당으로 남는다
야당들은 집권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에 집중하게 마련이다.“여당과 싸움을 잘한 야당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이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대표는 조 전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민주당 입법을 막겠다며 강경히 맞섰다. 투쟁 일변도의 결과가 어땠나.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뒀다.”
민주당의 당면 과제는 뭘까.
“국민들은 그간 민주당의 오만한 태도를 질타하려고 회초리를 들었다. 그 결과가 대선 패배다. 민주당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입법 권한은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에 있다. 이를 이용해 국민의힘보다 더 국민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야 2년 뒤 총선은 물론 다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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