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는 5월 중순 산란을 시작한다. [gettyimage]
알이 소복한 봄에 즐겨야 제 맛
큼직한 주꾸미는 언뜻 낙지처럼 보이나 길이가 짧다. 손바닥에 그득할 정도로 큼직한 주꾸미도 가끔 보이지만 낙지처럼 길쭉한 다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색이나 질감에서도 약간 차이가 있으나 크기와 다리 길이로 구분하는 게 제일 쉽다. 사실 구분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누가 낙지를 주꾸미로 속여 팔겠는가.이맘때가 되면 먹이를 찾아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주꾸미가 몰린다. 주꾸미는 한 마리씩 낚아 올리기도 하지만 어부들은 주꾸미를 잡기 위해 특별한 그물을 준비한다. 소라나 고둥의 빈껍데기 등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주꾸미의 습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물에 빈 소라껍데기를 주렁주렁 달아 놓고 바닷속에 가만히 풀어 두면 그 안에 주꾸미가 스스로 들어와 앉는다. 이걸 끌어 올리면 된다. 자신의 알도 빈껍데기 안에 낳으니 산란기가 가까워지면 이 아늑한 ‘소라방’을 찾는 주꾸미도 자연히 늘어난다.
주꾸미는 산란을 시작하는 5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는 잡을 수 없는 해물이다. 이 말은 지금 맛볼 수 있는 봄의 주꾸미 중 많은 수가 머리에 소복하게 알을 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봄의 주꾸미를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주꾸미의 머리에 가득 찬 알을 보면 밥알을 아주 작은 그릇에 소복하게 담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색도 밥처럼 하얗다. 잘 익은 알은 토독토독 터지듯 입으로 들어가 진득하고 구수한 크림이 돼 입안을 장악한다. 비린 맛은 하나도 없으며 오로지 고소함과 구수함뿐이다. 봄에만 잠깐, 귀하게 맛볼 수 있는 생명의 맛, 고마운 미식이다.
‘새콤단짠’ 양념과 찰떡궁합
새빨갛게 양념한 주꾸미볶음. [gettyimage]
멸치국물에 무와 배추 등의 채소를 썰어 넣고 주꾸미를 데쳐 먹는 방법이 쉽고도 제격이다. 그 국물에 밥을 말고, 국수를 익히고, 죽을 끓이는 건 입맛대로 하면 된다. 산뜻하게 즐기고 싶다면 탱탱하게 데쳐낸 주꾸미를 봄 미나리와 곁들여본다. 한입 크기로 자른 주꾸미와 통통한 미나리를 함께 집어 초장에 살짝 찍어 먹는다. 아삭아삭, 쫄깃쫄깃한 맛과 봄의 향들이 잘 어우러진다. 미나리뿐 아니라 참나물, 취나물, 방풍, 데친 원추리 등과 곁들여도 좋다. 물론 간장, 설탕, 식초, 참기름을 섞어 만드는 ‘새콤단짠’ 양념과도 잘 어울린다. 이때는 콩나물을 데쳐서 곁들여 함께 버무려 먹으면 맛있다. 다양한 샐러드 채소를 먹기 좋게 찢어 주꾸미와 섞어 드레싱을 끼얹어도 좋다. 올리브 오일에 다진 양파를 잔뜩 섞고 오렌지 주스나 레몬즙처럼 새콤한 시트러스 즙을 섞어 새콤하게 만들어 뿌린다. 골고루 섞어 맛이 살짝 배도록 두었다가 먹는다. 봄에 나오는 감자를 삶아 작게 조각내어 주꾸미와 함께 새콤한 드레싱에 절여보자. 서양에서는 문어로 이런 샐러드를 많이 만드는데 탱탱하고 부드러운 주꾸미가 그 자리를 대신할 만하다. 주꾸미를 넣은 샐러드는 꽤 든든하고도 상쾌한 한 끼 요리다.
주꾸미라고 하면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 맵게 볶기도 하고, 라면에 넣어 끓이기도 하며, 파스타 재료로도 활용한다. 그러나 봄철의 주꾸미는 그 맛 그대로를 오롯이 볼 수 있게 간략하고, 간소한 조리법을 거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