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세력 교체 상징, 윤석열과 이준석
‘친윤’ 핵심 3인방 정진석-권성동-장제원
박근혜는 보수 통합 촉매? 분열 씨앗?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장제원 비서실장. [동아DB]
‘다이내믹 코리아’는 단지 월드컵 축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다이내믹 코리아’를 연상시키는 역동성이 여럿 발현됐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초까지 서울 광화문과 시청 일대를 뒤덮은 ‘촛불시위’는 2002년 길거리 응원의 ‘정치 버전’이다.
촛불시위 여파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현직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상황을 두고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촛불혁명’이라고 치켜세웠다.
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가 아닌 국민 요구로 현직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질서 있는 권력교체’를 영국의 명예혁명에 빗대 촛불혁명이라고 칭한 것이다. 대통령 탄핵 이후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혁명을 거론한 것은 자신들의 집권 정당성이 촛불시위에 동참한 국민 뜻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박근혜 탄핵, 정통 보수 사망선고
그들 표현대로 촛불혁명은 한국 정치를 주름잡아 온 보수 진영의 궤멸을 의미했다. 자신들이 권좌에 올려 세운 대통령이 끌려 내려오는 모습을 변변한 저항도 못 하고 지켜봐야 했던 보수 세력은 한동안 지리멸렬했다. 2017년 대선 패배와 2018년 지방선거 참패, 2020년 총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다.무기력한 보수 진영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조국 사태와 추-윤 갈등 과정에서 탄핵 이후 구심점을 잃고 방황하던 보수 진영에 ‘윤석열’이 ‘희망의 빛’으로 떠오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친문을 중심으로 진보 진영에서 ‘닥치고 정치’를 외치며 문재인 대통령을 호출해 대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이번에는 보수 진영에서 ‘닥치고 정권교체’를 구현할 선봉장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연호했다. 20대 대선을 1년여 앞둔 2021년 1월, 보수 논객들은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로 정권교체를 향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 같은 요구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해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 정권교체 선봉장에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닥치고 정권교체
4월 8일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석열 당선인의 죽마고우인 권성동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동아DB]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에 임명하며 키운 성장 과정이나,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관여하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지휘한 ‘구원(舊怨)’보다 보수세력에 더 절박한 것은 정권교체 그 자체였다. 탄핵 이후 궤멸적 상황에 빠진 국민의힘을 재건할 구원투수로 국민의힘 당원과 보수 성향 유권자는 윤석열을 택했고, 윤 후보는 대선 승리로 그 같은 요구에 보답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보수 진영 인사들의 갈망은 대선 경선 전인 지난해 6월에 실시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부터 발현됐다. 풍부한 정치 경력을 갖춘 ‘검증된 인물’ 대신 보수 진영 취약점으로 거론되던 2030세대의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준석 대표를 당대표로 선택한 것. ‘닥치고 정권교체’에 대한 보수 진영의 열망은 이준석 대표, 윤석열 후보 선출로 이어졌다.
보수 진영은 20대 대선 승리로 5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았다. 당면 과제이던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지만 보수 진영의 세력 재편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정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 중심의 상도동계-이회창계-이명박계-박근혜계 순으로 주도해 왔다. 친박계 궤멸 이후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에는 주류라고 할 만한 세력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못했다. 다만 20대 대선을 거치면서 ‘윤핵관’ 등 친윤석열계가 새로운 구심으로 등장했다. 전통적 정치 문법은 세력화된 조직이 대선을 통해 권력을 확대 재생산해 왔지만 국민의힘은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주류가 부상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내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친윤계가 급속히 득세하고 있는 것.
지방선거 공천을 총괄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지방권력 교체를 주도하는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4월 8일 선출된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표적 ‘친윤’ 인사다.
지방선거 전후로 부의장직에서 물러날 정 부의장은 향후 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해 윤석열 정부를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당내 세력 기반을 공고히 한 후 2027년 대선에 도전할 공산이 크다. 부친의 고향이 충남 논산이라는 점에서 윤 당선인은 ‘충청 대통령’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정 부의장은 부친 정석모 전 장관까지 충남에 정치적 기반을 둔 ‘오리지널 충청 출신 정치인 가문’이다.
정 부의장과 함께 당내 친윤계 구심점 구실을 할 이는 권성동 원내대표다. 윤 당선인의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어릴 때부터 교류해 온 권 원내대표는 윤 당선인의 정치 입문 이전부터 함께해 온 측근 중 측근이다.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장제원 의원도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당에 복귀해 친윤 세력 구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윤핵관’ 윤한홍 의원은 PK(부산·경남)를 기반으로 한 당내 친윤 세력 구심점으로 역할하며 정치적 몸값을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이후 정진석,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 등 윤 당선인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들이 국민의힘 ‘신주류’로 부상했다. 여기에 선대위 총괄본부장, 인수위 부위원장을 거쳐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권영세 의원과 선대위 정책본부장, 인수위 기획위원장을 지내고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지명된 원희룡 후보자도 윤석열 시대를 주도할 대표적 신주류 인사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 탄생에 앞장선 세력이 신주류로 역할을 해왔다”며 “국민의힘 역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이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변수는 있다.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보수세력 재편 과정에 독자 세력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이 대표와 안 위원장은 친윤계로 흡수되기 어려운 독자적 정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30세대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세대교체, 정치세력 교체의 구심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안철수 위원장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견고히 함으로써 보수 진영 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새로운 중심축이 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세대와 이념을 기반으로 한 이준석-안철수 두 사람의 세력 경쟁은 향후 보수세력 재편 과정에 불협화음을 일으킬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또한 신주류로 부상한 친윤계와의 주도권 다툼도 피할 수 없다. 아직 어느 세력도 당내 확실한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친윤계+이준석 또는 친윤계+안철수의 합종연횡 가능성도 예상된다. 결국 국민의힘 내부 세력 재편은 지방선거 이후 차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尹’은 누구?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윤석열 당선인과 가까운 측근 인사다. [동아DB]
4월 13일 윤 당선인이 대구 달성 사저로 박 전 대통령을 찾아감으로써 구원(舊怨)은 어느 정도 해소했다. 다만 누가 TK 적자로 떠오르느냐에 따라 보수 세력 재편은 새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결국 충청 정진석, 강원 권성동, PK(부산·경남) 장제원, 제주 원희룡 등 범친윤 중심의 지역 소맹주가 등장하는 것으로 세력 균점이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한동안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겠지만, 언제든 ‘포스트 윤’을 노린 경쟁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 분란을 촉발할 화약고와도 같다.
정권교체를 위한 캠프와 선대위 구성, 인수위 및 첫 조각이 보수 재편의 시작이었다면 보수 진영 내 세력 재편 완성은 2년 뒤 2024년 4월 총선 공천이 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부 임기 중반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중간평가’ 성격이 크고 임기 후반 안정적 국정 운영과 ‘포스트 윤석열’을 향한 차기 주자들의 경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탄핵 이후 궤멸적 상황에서 5년 만에 ‘정권교체’에 올인 해 회복탄력성을 발휘한 보수 진영은 윤석열 시대 출범에 맞춰 친윤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질서 있는 재편에 성공했다. 5년 임기 동안 친윤이 계속해 한몸처럼 움직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기업가들이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권력은 잡는 것도 어렵지만, 집권 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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