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로마서 만난 BTS와 피피… 확장하는 K-컬처

[Special Report | 성취의 기록, 대한민국 75년] 익숙하지만 파괴적인 새로운 취향

  •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jmg84@kyungnam.ac.kr

    입력2023-08-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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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적 K-프랜차이즈화 현상

    • ‘고유’하고 ‘유동’적인 韓 대중문화

    • 美힙합·팝+日아이돌 시스템

    • 아시아적이면서 서구적인 K-아이돌

    • 팬들이 밀고 끄는 2차 콘텐츠의 힘

    • 세계 보편 서사와 한국 형식 융합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서 정상을 거머쥔 뉴진스. [어도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에서 정상을 거머쥔 뉴진스. [어도어]

    K-컬처의 세계적 확장이 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놀랍게도 십수년째 안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BTS(방탄소년단)에서 시작해 ‘킹덤’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넘어 이제는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한류의 한복판에 섰다. K-컬처는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는 기존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The Korean Wave라는 단어 그 자체처럼 지속적으로 파급력을 키우고 있다. K-컬처라는 용어의 유행은 전 세계 소비자가 한국 대중문화를 하나의 브랜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류의 요소 또한 확장하고 있다. 대문자 K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힘입어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 울타리는 드라마, 음악, 게임, 영화, 웹툰을 이미 넘어섰다. 이제는 패션, 뷰티, 음식, 그리고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프랜차이즈가 넓게 확장하는 모양새다. 그야말로 대중문화의 전 세계적 K-프랜차이즈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줄 알았던 한류가 동아시아를 넘어, 다양한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곳곳에 유통되는 것이다.

    로마에서 뉴진스와 피피를 듣다

    필자가 이탈리아 출장 중이던 7월, 베니스의 작은 서점에서 발견한 BTS의 에세이 영문판.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필자가 이탈리아 출장 중이던 7월, 베니스의 작은 서점에서 발견한 BTS의 에세이 영문판.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이탈리아에 출장 중이던 7월, 로마의 코스메틱 매장에서 쇼핑을 하던 중이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그 공간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마치 서울의 한 매장에 들른 것처럼 너무 익숙했다. 바로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의 ‘큐피드’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번에는 뉴진스의 ‘Hype boy(하입 보이)’가 흘러나왔다. 며칠 뒤 베니스의 작은 서점에 들렀는데, 수많은 이탈리어 서적 가운데 BTS의 에세이 영문판이 꽂혀 있었다. 우리는 이제 외국에 나가 한국을 아느냐고 묻지 않아도, 그들이 먼저 한국인인지 물어오는 상황에 마주한다. 대중문화에서 K-컬처는 더는 자문자답의 대상이 아닌 셈이다.

    6월 15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아트미디어터널에 BTS 데뷔 10주년 축하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이 발표한 예약 현황에 따르면 6월 12일부터 25일까지 열린 ‘BTS 페스타’ 기간 중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객 수가 지난 달 대비 13% 증가했다. [뉴스1]

    6월 15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아트미디어터널에 BTS 데뷔 10주년 축하 영상이 나오고 있다.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이 발표한 예약 현황에 따르면 6월 12일부터 25일까지 열린 ‘BTS 페스타’ 기간 중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객 수가 지난 달 대비 13% 증가했다. [뉴스1]

     6월 12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서 세계 각국의 팬들이 BTS 10주년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6월 12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에서 세계 각국의 팬들이 BTS 10주년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5월 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DB]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5월 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DB]

    K-컬처가 이토록 성공적으로 세계에 도달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은 미디어 환경 변화라는 변수를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소개되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에 선행해 글로벌 유통망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취향에 소구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전까지 서구에는 기타 ‘아시아’ 권역으로 소개되던 한국이, 어떻게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한국의 대중문화가 굉장히 ‘고유’하지만, 동시에 언제든 변형이 가능한 ‘유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시아를 넘어 서구로 뻗어나가는 한류에는 한국의 문화적 특징인 ‘변형 가능성’과 ‘유동성’이 스며들어 있다. 해외에서 가장 먼저 한류의 확장성을 증명한 것은 K-팝이다. 이 또한 한국이 성공적으로 서구문화를 이식했음을 방증한다. 한국의 기획사들은 미국의 힙합과 팝(pop)의 색채를 최대치로 수용하되, 이를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에 명민하게 이식했다. 이로써 아시아적이면서도 서구적인, 창조적이고 융합적인 형태의 ‘새로운’ K-아이돌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K-팝을 접한 서구인들은 대중적이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실제로 너무 급진적이고 이질적인 것, 혹은 수용적이지 못하거나 포용성이 없는 콘텐츠는 보편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K-팝은 새로운 방식으로 서구의 힙합 음악을 융합해 또 다른 형태의 취향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대중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된 셈이다. 그 덕분에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쉽게 유통될 수 있던 것도 물론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K-콘텐츠는 또 다른 방식으로 파괴적이고 창조적인 변형을 지속해 나갔다.

    서구 좀비물에 갓 씌운 넷플릭스 ‘킹덤’

    K-컬처의 확장성을 증명한 장르가 K-팝이라면 한류의 시초이자 기반을 다진 콘텐츠 산업의 중심은 ‘방송과 영화’다. 초기 한류의 성장사(史)를 보면 드라마의 공헌이 크다는 점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겨울연가’를 생각해보라) 동시에 영화 ‘쉬리’ ‘장화홍련’ ‘올드보이’ 등도 한류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렇듯 방송과 영화는 한국의 문화 수출을 밀고 끄는 성장 동력이 돼왔다.

    한국의 방송과 영화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이내 방송과 영화산업이 결합한 형태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같은 포맷이 유통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한국의 문화적 특징인 ‘변형 가능성’과 ‘유동성’이 십분 활용된 장르물이 등장했다.

    서구의 대표적 장르인 좀비물을 조선시대에 대입한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서구의 대표적 장르인 좀비물을 조선시대에 대입한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예컨대 ‘킹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시즌2와 외전 격인 ‘아신전’까지 글로벌 시장에 유통됐다. ‘킹덤’의 원작은 웹툰 ‘신의 나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좀비물이다. 좀비는 서구에서 유래한 대표적 괴물 형상이다. 좀비는 부두교에서 기원한 것으로 살아 있는 시체를 뜻한다. 한국에서 좀비물은 그리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좀비물은 다양한 플랫폼(드라마, 영화, 게임 등)에서 인기를 구가해 왔다. ‘킹덤’은 이러한 좀비물을 한국 상황에 맞게 훌륭히 이식한 작품이다. 즉 서구 장르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적 의미’를 담은 K-스토리로 변용해 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이는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에 동시 공개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배우 이정재는 미국 TV 부문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인 ‘놀이’와 ‘게임’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전형적인 배틀 로열(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경쟁하는) 장르다. 이 익숙한 장르를 누구보다 새롭게,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와 색으로 담아내고 변화시켜 전 세계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 바로 한국 콘텐츠의 힘이다.

    팬덤의 콘텐츠화, 2차 창작의 주류화

    한국은 팬 문화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팬들의 적극적인 문화적 실천이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팬들은 자발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의 서브(sub)-콘텐츠를 창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만든 콘텐츠를 널리 공유하면서 확산시킨다. 다시 말해 국내의 많은 콘텐츠 이용자들은 원작을 2차적으로 변용하고 이를 유통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가령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해석이나 상상을 덧붙이면서 맥락을 만들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뜨린다. 이 모든 행위는 물론 자발적이다.

    흔히 이것은 팬에 의한 2차 콘텐츠라고 불린다. 2차 콘텐츠 유통 방식은 팬이 원작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팬이 이용자이자 생산자로서 정체성을 갖게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콘텐츠 생산이 단순히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변용을 통해서도 이뤄지며, 이것이 이용자들의 몰입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뜻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미디어 환경 변화에 의해 가속화했다. 그 덕분에 세계의 많은 콘텐츠 소비자는 한국의 콘텐츠는 물론 이에 몰입하는 국내의 팬 문화도 함께 접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K-팝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던 초기, K-팝의 팬들이 생산한 ‘팬 응원 문화’와 다양한 형태의 팬 콘텐츠는 글로벌 팬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선사했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팬들이 K-팝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자연히 이러한 팬 문화는 팬들에게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팬들이 콘텐츠 유통과 홍보, 확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팬들은 자신이 만든 2차 콘텐츠를 단순히 그 자체로만 생산·유통·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2차 콘텐츠의 원작자로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K-팝을 둘러싼 콘텐츠의 유통망을 재구성한다. 그야말로 한국의 팬들은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소비자, 생산자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피프티 피프티의 공식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빌보드 핫 100’ 진입 기념 이미지. [피프티 피프티 트위터]

    피프티 피프티의 공식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빌보드 핫 100’ 진입 기념 이미지. [피프티 피프티 트위터]

    셰익스피어와 창극… 끊임없이 유동하는 K-컬처

    최근 국립창극단의 공연을 접할 기회가 생겨 우연히 라인업을 살펴보다가,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창극으로 변용해 공연을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 세계인이 알만한 대중적 서사를 한국적인 창극으로 재탄생시키고 이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이 사례를 보면서 세계 보편 서사와 한국적 형식의 융합이 전 세계인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극 자체만으로도 새로웠지만, 무대의상으로 등장한 차이킴의 한복은 한국의 전통적 선을 살리면서 동시에 일상적 모던함을 담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콘텐츠를 ‘한국’이라는 국가적 경계 안에 가두고 우상화하는 일은 주의해야 한다. 다만 한국의 콘텐츠와 그 이용자들, 그리고 이들이 콘텐츠 생산자와 함께 문화를 ‘브랜딩’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본 한류 연구자로서 또렷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K-컬처에는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마치 하나의 대상으로 수식하기엔 모순적 특성이 모두 담겨 있다.

    K-컬처가 하루아침에 떠오른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분명하다. 한류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 특성에 변용과 유연성이 곁들여지고, 이에 더해 팬들의 문화적 실천이 한데 뒤엉켜 형성된 것이다. 무엇보다 익숙하지만 파괴적인, 새로운 취향이 바로 한류다. 그것은 콘텐츠 ‘생산자’만의 전유물이 더는 아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주체는 ‘이용자’다. K-컬처의 생산과 유통뿐만 아니라 소비, 그리고 이용자 문화에 주목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K-컬처는 이러한 까닭에 이제는 일상처럼 스며들 수 있는 이용자 관습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됐다. 한류가 더 확산할 수 있는 힘은 이렇듯 일상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실천으로부터 비롯할 것이다. 한류 연구자이자, 나 스스로 이용자로서 대문자 K가 프랜차이즈로서 영향력을 지속 확장해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일상에서 비롯해 세계인의 일상을 바꾸는 취향이 된 한류는 앞으로도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遊動)하면서 또다시 변화할 것이다. 한류의 역사가 끊임없이 다시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민지
    ● 1984년 출생
    ●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학 석·박사
    ● 前 한국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
    ● 現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저서 :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한류와 문화다양성’(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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