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사형 집행 안 했지만 극악 범죄 늘진 않아… 폐지 고려할 때”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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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9-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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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변 회장→헌법재판관→검찰개혁위원장

    • 文과 개인적 친분 없고 李와 만난 적 없어

    • 헌재에선 ‘사형제 합헌’ 판단했지만…

    • 절대적 종신형, 사형제 대안으로만 의미

    • 검·경 수사권 조정, 조금 미흡한 건 사실

    • 대북송금 특검과 쌍방울 수사 비교하면…

    9월 8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지호영 기자]

    9월 8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지호영 기자]

    그는 현직 장관급 인사 중 가장 이질적인 사람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냈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문재인 정부 초엔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장이었다. 임기 말 문 대통령은 그를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했다. 오래 묵은 이야기도 있다. 1970년 11월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전태일을 마석 모란공원으로 운구하는 차량에 탔던 서울대생 세 명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 앞에 ‘진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그의 삶에 비춰보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2007년 3월 23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송두환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동아DB]

    2007년 3월 23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송두환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동아DB]

    이 사람, 송두환 위원장은 74세다. 전태일이 살아 있다면 75세였을 것이다. 마침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채택 75주년이 되는 해다. 송 위원장과 인권위에 의미가 남다른 해다. 윤석열 정부 이너서클과 교집합이라곤 없어 보이는 송 위원장이 여태 현직인 이유는 인권위의 특수성과 무관치 않다. 인권위는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기구다. 대통령의 지휘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정권이 바뀌어도 인권위원장은 으레 임기를 채웠다. 송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송 위원장은 지금껏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취임 1주년이 된 지난해 9월 기자간담회만 한 차례 했다. 그 외에 형사정책을 다루는 전문지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선입견대로라면, 그가 인터뷰에 응할 첫 번째 언론사는 ‘진보 성향’이 또렷한 곳일 수도 있었다. 선입견을 깨고 싶었는지, 혹은 긴 지면에 그간 숙성한 생각을 꾹꾹 눌러 담고 싶은 요량이었는지 그는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다. 그가 쌓아올린 다채로운 이력을 고려하면, 마주 앉아 끌어낼 말이 적지는 않을 테다.

    9월 8일 만난 송 위원장은 악수를 나누곤 “예습을 했어야 했는데…”라며 겸연쩍은 듯 말했다. 막상 문답이 시작되자 그는 모든 현안에 대해 정리된 의견을 내놨다. 배경 설명에 긴 시간을 할애하는 답변이 이어지다 보니 인터뷰는 세 시간이나 진행됐다. 말로 인한 시빗거리를 남기지 않겠다는 심리가 읽혔다. 표정은 좀체 변화가 없었으나, 마냥 딱딱하지만은 않았다. 헌법재판관보다 인권위원장 업무가 고되다는 애기를 할 땐 헛웃음을 지으며 “푸념을 털어놓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법연수원 12기

    인권위 업무가 그렇게 많습니까.

    “인권위가 1년에 접수하는 진정 사건의 숫자가 1만 건이에요. 진정 사건으로 분류되지 않은 민원 사건 수는 연 3만 건이었다가 접수 경로를 정비한 결과 지금은 연 2만 건가량 됩니다. 또 인권 측면에서 문제가 될 만한 사회 이슈에 관해 정책권고나 의견표명을 하고 필요하면 사법부에 의견을 제출할 때도 있고요. 제가 판사나 변호사, 헌법재판관으로 있을 때는 일정한 배당 절차에 따라 주어진 사건만 검토하면 됐거든요. 인권위원장은 기관을 운영해야 하고, 다른 부처나 국회에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할 부담이 또 별도로 있습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2기 동기다. 나이는 송 위원장이 문 전 대통령보다 4살 위다.

    임명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연수원 동기가 거의 150명 됩니다. (문 전 대통령과) 동기로서 서로 존재는 알았지만 특별한 개인적 교류는 없었어요.”

    문 전 대통령과 송 위원장의 연수원 동기는 이력이 화려하다.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박병대 전 대법관, 김신 전 대법관, 김용덕 전 대법관, 박시환 전 대법관, 김창종 전 헌법재판관, 황찬현 전 감사원장, 이성호 전 인권위원장, 고승덕 전 의원, 조배숙 전 의원 등이 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 감사원장, 대법관 4명, 헌법재판관 2명, 인권위원장 2명을 배출한 이례적인 기수다.

    “그분(문 전 대통령)이 연수원 수료 후 부산에서 줄곧 변호사를 했어요. 저는 서울에 있어 서로 연락하거나 만난 바가 없고요. 나중에 보니 민변 부산경남지부 회원 활동을 했더라고요. (잠시 뜸들이다) 이런 얘기까지는 할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언젠가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행사에서 문재인 변호사가 주제 발표를 했어요. 그걸 듣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망라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호의적인 느낌을 가진 적은 있어요.”

    문 전 대통령이 변호사일 때니 공직에 나서기 전이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다 대북송금 특별검사를 맡게 돼 임명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에 갔는데, 그분이 민정수석이었어요. 그때 ‘오래만입니다’라며 악수한 적이 있고요. 그 정도입니다. 그 인연이 인권위원장 업무의 독립성을 저해할 염려가 있다는 지적에는 자신 있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권위원장은 독립성을 갖춰야 하나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 때문에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대통령과의 인연이 주목받았을 테고요.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은 추천 경로가 셋으로 나뉘어 있어요.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우, 국회가 선출해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우,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우입니다. 인권위원은 임명된 순간 추천 주체가 누구인지는 잊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인권 규범과 국제인권규범을 판단 및 행위 규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입니다.”

    송 위원장은 2019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 재판의 변호인이었다. ‘친형 강제 입원’ 의혹에 관해 이 지사가 방송 토론회에서 허위 사실을 말했다는 혐의가 재판의 골자였다. 한 일간지는 송 위원장을 두고 “이재명 무죄 만든 그 변호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2003년 4월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북비밀송금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열린 현판식 도중 송두환 특검(왼쪽에서 세 번째)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2003년 4월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북비밀송금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열린 현판식 도중 송두환 특검(왼쪽에서 세 번째)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민변 후배, 민변 출신 대통령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변호인을 맡았던 경력도 입길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저 이재명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민변 후배입니다’라고 해요. ‘대형 법무법인 두 군데에 맡겼는데, 원체 억울한 점이 있어 민변의 원로 선배들께 선처를 바라는 서면을 부탁드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용을 알 수 있을 만한 자료를 보내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직접 쓴 상고이유서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읽어봤더니 (사건에 대한) 실질적 내용은 다 있어요. 제 평소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떤 증언 등이 허위냐 진실이냐에 대한 판단은 발언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특정 부분만 문제 삼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 부합하는 판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 대표가) 상고심에서 주장할 바가 있을 것이고, 내가 선처를 해주면 좋겠다는 정도의 얘기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이 대표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요.”

    지금까지도 말인가요.

    “지금까지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민변 후배라면서 얘기가 시작된 거죠. 대형 로펌 두 곳이 상고이유서를 냈고 (이 대표) 본인도 따로 또 낸다고 했어요. 나는 상고이유서 대신 민변 선배의 입장에서 내는 탄원서가 좋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죠. 그랬더니 즉답을 안 하더라고요. 당사자로서는 탄원서라고 쓰면 성의 없는 재판부는 ‘굳이 볼 필요 있나’ 생각할까 싶어 꺼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찌 됐든 연명 서명에 동참한 셈이 됐죠.”

    변호라기보다는 탄원에 동참했다는 의미인가요.

    “민변 변호사들도 동료 회원을 아끼는 마음이 당연히 있지 않겠어요? 민변은 특정 이념이나 가치, 강령에 타율적으로 맞추는 조직이 아닙니다. 사회정의와 변호사의 공공적 책무를 중시한다는 정도의 공통분모가 있는 단체거든요. 꼭 필요한 공익적 소송인데 널리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 연대감을 표한다는 의미로 대리인 또는 변호인 명단에 연명으로 참여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저는 (이 대표 변호인 참여도) 그런 과정의 하나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돼서 언론에 나오니까 좀 당혹스러웠죠.”

    만난 적 없는 정치인을 변호한 이유로 ‘민변’을 드는 점이 흥미롭다. 민변은 그가 가진 세계관의 구심점이라 할 만하다. 삐딱한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변 출신이 입법·사법·행정부 곳곳에 진출해 ‘민변의 권력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소위 민주 정권이 탄생하면서 동참하는 변호사들이 생기고, 민변에서 이를 만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죠. 민변 활동 경력이 있는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아마 (자신의) 철학을 이해해 줄 수 있는 후배 몇 명을 기용한 사례가 생긴 것 같아요. 다만 그것이 ‘민변의 권력화’라고 표현할 성질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변의 권력화’라고 하면, 민변이 권력을 누리거나 행사한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민변은 아직도 일체의 외부 지원 없이 회비만으로 사회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거든요. 민변 출신 대통령의 도움을 요청받고 공무원으로 복무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자동적으로 종료된 상태죠. 지금은 민변과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변호사) 단체도 무수히 많고요. 민변이 권력화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형제 폐지 본격 숙고할 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8월 28일 중앙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며 “가해자에게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응보도 형벌의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했다. 송 위원장은 2003년 ‘신동아’ 인터뷰 때 “나는 확고한 사형폐지론자는 아니지만 폐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했으나, 2010년 헌법재판관 때는 사형제 합헌 의견을 냈다. 보충의견으로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가치를 밝히기 위해 역설적으로 그 파괴자인 인간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게 불가피한 예외적 상황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헌법재판관 때는 사형제 합헌 판단을 했는데요.

    “저는 2010년 헌재 결정문에도 썼다시피 이론적으로는 사형제 폐지 주장에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형법 총론에 형종이라는 조항이 있고, 거기에 형의 종류 중 하나로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데 마침 그 사건에서는 총론에 있는 사형이 위헌이냐 아니냐가 쟁점이었어요. 형법 총론에 있는 사형을 위헌이라고 삭제하면 법체계 전체에서 사형이 빠지게 되죠. 그럴 경우를 생각하니 인간 존엄성에 반하는 극악무도한 반인륜 범죄가 발생할 때 충분히 대처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러한 염려를 밝히면서 현재로서는 형법 총론에서 사형을 삭제하는 것에 차마 찬성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고요. 다만 사형제가 오·남용될 소지가 많으니, 정치적 범죄 내지 반인륜 범죄로 분류되지 않는 사회적 범죄에서 사형이 법정형으로 규정된 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보충의견을 냈죠.”

    인권위원장으로서는 견해가 어떻습니까.

    “헌재 결정이 있고 나서 13년이 지났죠. 그사이에 상황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기간이 25년을 넘겨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형이 폐지되면 극악무도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최근 염려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곤 있지만 25년 전과 비교해 극악 범죄가 통계상 확연히 늘어난 건 아니거든요. 이를 감안하면 사형제 폐지를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론조사를 보면, 단순히 사형제 폐지 여부에 대해 물을 때에 비해 절대적 종신형(가석방 없는 무기형) 신설을 전제로 물었을 때 사형제를 폐지해도 되겠다는 의견 비율이 높아지는 건 분명하거든요. 그런 것까지 감안해 (사형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숙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동훈 장관은 절대적 종신형과 사형제가 함께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형제 존치가 전제라면, 사형제와 무기징역 사이에 형종을 신설하자는 얘기거든요. 현재의 제도로 운영이 가능한데 굳이 추가로 만들어야 하나 싶고요. 또 절대적 종신형은 수형자로서는 아무 희망이 없는 수형 생활을 종신토록 감내하는 셈이라 논자에 따라선 사형제보다 인권침해 요소가 강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의견에 찬성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무거운 형태의 형종을 만드는 건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사형제 폐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대체 형벌 제도로 절대적 종신형을 구상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잇따른 흉기 난동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8월 4일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현장 투입 경찰에 총기를 보급하기 위한 예산을 14억 원에서 86억 원으로 늘렸다. 물론 플라스틱 재질의 ‘저위험탄’을 쓴다.

    저위험탄 총기 보급의 조건

    극악 범죄가 통계적으로 확연히 늘어난 건 아니라고 했는데, 대중은 흉기 난동 범죄에 불안감을 느낍니다. 정부는 현장 투입 경찰에 ‘저위험탄’ 총기를 보급하겠다고 했고요.

    “경찰관이 피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신변 위협을 느껴 체포·단속 행위가 위축됐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한쪽 현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다른 쪽에 부작용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저위험탄을 사용해 범죄 현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전 경찰이 저위험탄이긴 해도 총기를 소지하게 되면 반대의 폐단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총기를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필요한 총기 보급은 현재의 경찰관 직무집행법상으로도 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경찰관의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면 나중에 국가배상이 문제 되더라도 경찰관에게 구상 책임은 묻지 못합니다. 보완을 위해 노력하는 건 좋지만, (폐단이 없도록) 적절한 비례 관계를 찾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흉악 범죄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고, 경찰 선발과 교육훈련 과정을 정비해 현장 대처 역량을 강화해야지요. (저위험 총기 보급이) 그런 노력과 병행해서 적절한 선에서 추진되기를 바랍니다.”

    학생인권조례를 강조하면서 교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교사를 보호하고 교권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개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주장은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무분별한 민원을 넣거나 근거 없는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것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은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이 선생님을 상대로 폭력적 언행을 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도 존엄한 인권의 주체라는 인식하에 그간의 잘못된 행태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겁니다. 그 덕에 잘못된 관행의 상당수가 개선됐고요. 마침 교육 당국도 제가 드린 말씀과 비슷한 취지로 입장을 내고 있어 다행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했다.

    대통령이 인권운동가의 의미를 나쁜 뉘앙스로 언급했는데,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 발언 자체에 관해 언급하기는 어렵고, 정치권 내에서 평가가 있겠지요. 다만 인권은 보수 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삼아온 개념입니다. 인권 보호와 향상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고 알고 있고요. 국제적으로는 인권운동가보다 인권옹호자라는 개념을 씁니다. 유엔 총회가 세계인권선언 채택 50주년인 1998년 인권옹호자선언을 채택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활동한 분을 아우른다면 이 표현이 좋다고 생각해요. 혹여 일부 잘못된, 그러니까 겉으로만 인권을 외치는 사례가 있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인권옹호 활동을 해온 분들의 노력과 성과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송두환 위원장은 “사형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숙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지호영 기자]

    송두환 위원장은 “사형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숙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지호영 기자]

    자꾸 질문받으니 괴롭다

    근래 인권위가 휘말린 갈등 이슈 중 하나가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2일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해군이 나포한 북한 선원 2명을 닷새 만에 추방했다. 조사 당시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 송환해 논란이 일었다. 인권위는 6월 26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밝혀달라는 진정을 각하했다. 2020년에 이어 두 번째 각하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송 위원장도 각하에 찬성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유가 뭡니까.

    “인권위 내의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 공히 ‘사건의 전반적인 과정을 볼 때 인권침해적인 행위와 결과가 있던 건 맞다’고 봤습니다. 남북관계가 원체 특수해서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같은 사례에 적용할 지침과 매뉴얼이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관련 기관들이 지침이나 기준 없이 각자의 판단에 따라 대처한 겁니다. 유사한 사례에 대비해 지침과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 의견을 낸 건 (인권위원 사이에서도) 공통된 생각입니다. 다만 진정을 받아들이는 인용 결정 형태로 할 것이냐, 진정은 각하하고 동일한 내용을 정책권고 형태로 할 것이냐의 차이였는데요. 이 사건의 피진정인이 9명입니다. 진정을 받아들이면서 피진정인들이 인권침해 행위를 했다고 판시하려면, 피진정인 각각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분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우리가 전혀 모릅니다. 피진정인이 입장을 밝힌 답변서는 받았어요. 피진정인에게 판단하기 위한 자료를 또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온 자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에는 7호 각하(인권위법 32조 1항 7호, ‘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했던 겁니다.”

    그러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은 2021년 1월 4일 인권위의 각하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선 진정의 본안 판단에 나아가기에 충분한 정도의 자료수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행정8-2부)도 “피해자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건 각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상고를 포기했다. 송 위원장의 말이다.

    “재판부가 실제 우리가 자료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자료를 갖고 있겠지’라고 짐작한 건지, 아니면 증거 서류 등은 없더라도 여러 기관이 입장을 낸 서면을 조합해도 어느 정도 증거가 된다고 본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우리가 취득한 자료가 실제로는 없거든요. 재판부가 판시한 내용에 대해선 조금 아쉽게 생각합니다.”

    이후 인권위는 ‘진정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이후라도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고 있거나 종결된 경우라면 각하할 수 있다’는 인권위법 32조 1항 5호, 32조 3항을 근거로 다시 사건을 각하했다. 6월 26일 전원위원회에서 내린 바로 그 결정이다. 송 위원장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수사·재판이 진행 중이니 5호 각하 요건에 맞고, 검찰 역시 (피진정인 9명 중) 일부만 선별해 기소하고 나머지는 수사 중이잖아요. 사건 내용이 간단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죠.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피진정인들이 보낸 답변서만 보고 인권침해 사실을 특정하며 권고를 낸다는 건 어려운 면이 있죠. 그렇다고 피진정인 9명 전부가 전체적으로 인권침해를 했다고 뭉뚱그려서 판단하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그런 점 때문에 각하 형태를 부득이 취하지 않을 수 없던 건데, 자꾸 질문받으니 사실은 괴롭기도 합니다.”

    대북비밀송금 특검의 기억

    그는 2017년 대검 검찰개혁위원장 신분으로 진행한 신동아 인터뷰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검찰이 국민을 많이 실망시킨 면이 있어 최소한의 조정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을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 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했다.

    인권위가 국회의장에게 ‘이태원 특별법’을 조속히 심의·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조사 주체의 독립성 결여”를 강조했습니다. 한데 ‘검수완박’ 시행으로 대형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개시권이 사라지면서 경찰에 의존해야 하는 ‘법의 공백’ 상황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법의 공백’ 상황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틈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검찰의 기소권과 경찰의 수사 종결권은 사실은 접점이 있습니다. 그 접점을 정말 정교하게 다듬어야 했는데, 막상 그 작업이 쉽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조금 미흡한 부분이 생긴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법의 공백’이라고 보기 어려운 건, 검·경 수사권 조정이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나 처리가 달라졌을까 물으면 그럴 거라고 상상하긴 어렵거든요. 그래서 검·경 수사권 조정 때문이라 단정하는 데 굉장히 조심스럽고요.”

    그러면 검찰개혁의 현주소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검찰개혁위원장을 마무리하면서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의 1년’이라고 하는 보고서를 냈어요. 14건의 권고를 했고, 2건의 의견 표명을 했습니다. 의견 표명 중 하나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것이었고 제가 가진 생각을 요약해 적었는데,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검·경이 머리를 맞대고 지금보다 효율적이고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짰으면 좋겠습니다.”

    ‘한동훈 법무부’는 검사도 재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야당은 검찰개혁 법안 무력화라고 반발합니다.

    “제가 책임감을 갖고 발언하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요. 말씀한 부분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습니다. 원론 차원에서 말할 수는 있어요. 헌법재판소에 있을 때 법체계의 일정한 위계질서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어요. 시행령의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만, 국민의 권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거나 사법절차 측면에서 기본이 되는 사항은 반드시 법률에 규정돼 있어야 합니다. 원칙과 기준은 법률로 정해지고, 그에 입각한 세부 방법과 절차는 하위 체계에 속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차례차례 위임돼야 합니다.”

    그는 2003년 대북비밀송금 특별검사를 지냈다. 당시 특검팀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논의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1억 달러를 송금하기로 약정했고, 현대를 통해 이 돈을 대납했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 과정에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구속기소됐다.

    과거 현대의 대북송금과 최근 쌍방울의 대북송금은 구조가 비슷합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초반에는 들여다보다가 요즘에는 거의 안 봅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더군요. 수사의 구조도 다릅니다. 정치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연결해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궁금해했어요. 대가성 여부는 특별법에 명시된 특검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에서는 대출 과정이 통상적 범위를 벗어난 면이 있었어요. 나머지는 수사 대상이 되지도 않았고, 따로 더 밝혀진 것도 없었어요.”

    DJ가 관련돼 있느냐가 관심사였습니다.

    “수사를 해본 결과 그에 관한 의견은 어떠냐고 묻기에 답변하는 데 고심했죠. 대가라고 하는 말이 굉장히 복합적인 의미가 있더군요. ‘거래의 상대방이 주고받는 의미의 그런 대가는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으로부터 연원한 대가 관계라면 있다고도 할 수 있다’는 정도의 톤으로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쌍방울 수사)은 대가성 여부 자체가 수사 대상이더군요. 그래서 수사 구조가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할뿐더러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어요. 드릴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

    수사 구조는 다릅니다만, 사건 구조는 유사합니다. 현대가 정부가 북한에 약속한 돈(1억 달러)을 대납했는데, 쌍방울 역시 경기도 내지 이재명 지사가 부담할 돈(800만 달러)을 대신 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일단 금액 차이가 있고요. 2003년 특검에서 낸 결론에 의하면, 현대가 자체 필요에 의해 보낸 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정부 몫을 떠안는 것도 일부 있었는데, 그렇더라도 작은 부분이었죠.”

    당시 현대 계열사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 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박지원 씨를 긴급체포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사하면서 봤더니 저는 주로 대출 과정에 분개하게 되더군요. 일반인들이 여신 심사를 거쳐 대출받으려면 굉장히 까다롭거든요. 그때는 초스피드로 상당한 거액을 대출받아 (북한에) 송금하면서 절차 규정을 위반한 경우가 있었지요.”

    평등법에 대한 오해

    취임 뒤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일이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법, 특히 기본권의 장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평등입니다. 근래에는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 사회적 참사 피해자 등을 향한 혐오 표현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넘쳐납니다.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차별이죠.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조롱하는 현수막이나, 대구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에서 이슬람 신자를 모욕하는 표현을 보면 인권 상황이 어떤 면에서는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헌법 제11조에 평등이 규정돼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평등에 관한 개별 조항이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포괄적 평등법이 필요합니다. 국회에 4개의 평등법이 발의돼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입니다. 의원들과 만나 대화하면 평등법에 찬성하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종교계 일부가 반대하고, 의원들은 선거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반대하는 분 중에는 평등법에 성소수자를 미화·권장하는 내용이 담겼다거나, 교회 설교 중에 ‘성소수자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의 말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과 달라요. 성소수자 등이 사회의 일정 부분을 점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경멸·조롱하거나 노동과 교육 현장에서 불이익을 가하는 건 하지 말자는 내용입니다. 심의 과정에서 특정 조항이 지나치다 여기면 적절한 선에서 수정·보완하면 돼요. 선입견 탓에 토론이 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남은 임기에 역점을 두고 추진할 일이 있습니까.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 대형 참사, 인공지능(AI) 기술 고도화에 따른 문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 남녀 간 의견 대립의 격화, 플랫폼 노동에 따른 계약 구조 문제 등 새로 제기되는 인권 문제가 있어요. 인권위가 여기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는 그러면서 ‘파리 원칙’을 강조했다. ‘파리 원칙’은 독립적 국가인권기구의 필요성과 조건을 담고 있다. 올해가 채택 30주년이다.

    “인권위는 조직·인력에서 행정안전부, 예산 편성에서 기획재정부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파리 원칙’도 요구하는 바고,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이 5년마다 등급을 분류할 때 살펴보는 것이기도 한데요. 인권위원을 선출할 때 단일한 후보 추천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는 요구를 받습니다. GANHRI 등급 심사를 받을 때 추천 경로가 셋으로 나뉜 점에 대해 ‘우리나라가 삼권분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러한 관념이 제도에 투영됐다’고 해명했어요. 궁극적으로 단일한 후보 추천위를 구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인권위가 A등급을 받았습니다만, 언젠가 제도개선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신동아 10월호 표지]

    [신동아 10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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