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원희룡 “대권 도전, 마다할 이유 없다…진중권 영입할 수 있어야”

총선 후 '신동아' 최초 인터뷰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5-18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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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대 국회 통합당 초선이 뽑은 ‘야권 대선후보’ 1위

    • 확장·조화보다 고립·대립 추구한 야당

    • 선거는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판정

    • 성찰 후 토론·경쟁해야…‘비대위’는 방법론일 뿐

    • ‘우리 함께 가자’는 플랫폼 리더십 추구

    • 조광조의 실패…리더는 비판만 해선 안 돼

    • 남원정 ‘시즌 2’? 부모가 청춘 역할 하겠나

    • ‘강남 모녀’ 소송…도민 억울함 대변한 것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원희룡(56)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4·15 총선 야당 참패에 대해 “말로는 통합과 혁신을 주장했지만 고립과 대립을 택한 결과”라며 “경쟁 대신 울타리를 치고, 새로운 변화를 폄하한 당의 정치 토양부터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권 도전에 대해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비판과 통합을 추구하는 ‘남원정 시즌 2’ 활약을 예고했다. 

    2016년 총선 이후 잇따른 선거 패배로 사실상 야권 차기 대권주자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보수 유권자의 시선은 원 지사로 향한다. 동아일보가 21대 미래통합당(한국당 포함) 초선 의원 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원 지사는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 1위(19.6%)에 올랐다. 실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한국갤럽 5월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 황교안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각각 1%에 머물렀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보수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리더도 부재한 상황. 4·15 총선 이후 그동안 침묵하던 원 지사는 5월 8일 ‘신동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처음 심경을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4·15 총선 결과는 어떻게 보나. 

    “야당은 큰 패배를 했다. 충격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결과다. 국민은 ‘여당에 문제가 있지만 야당은 더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국민이 요구한 보수당의 자기 정리도, 보수의 가치인 상대에 대한 배려와 포용, 미래 과제들에 대한 비전 제시도 못 한 거다. ‘차라리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근본에서부터 모든 것을 바꿔나가야 한다.”

    “패배한 당에 소금을 뿌리는 건…”

    - 구체적으로 참패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누가, 무엇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건 패배한 당에 소금을 뿌리는 거 같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보수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 원리이자 장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 핵심 원리이자 장점? 

    “그렇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는 치열한 경쟁이다. 경쟁을 통해 끊임없이 좋은 상품, 즉 좋은 인물이 나오게 해 소비자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보수 자신은 이런 원리를 따랐는가. 늘 수직적으로 기득권과 권위에 의지하고, 경쟁 대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기득권을 지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폄하하지 않았나. 그러니 점점 인물은 사라지고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정책과 메시지도 없어졌다. 보수당의 강점이라는 안보나 미래 비전에서도 나은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말로는 통합과 혁신을 주장했지만 확장과 조화보다 고립과 대립을 택했다.” 



    - 원 지사도 총선을 앞두고 보수대연합을 주장했다. 

    “통합을 위한 통합은 무의미하다. 국민은 분열 문제도 제기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보수당의 자기 변화를 요구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갖춰야 할 것은 갖추고…. 그래서 결과까지는 나오지 않더라도 그러한(바꾸겠다는) 치열함이 있어야 했다. 단지 선거 때 되니깐 모여서 ‘포장’만 바꾸는 건 국민이 다 안다. 보수 측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이 좀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옳다’는 방향에서 시작해야 답이 나온다.”

    더 세지는 국민 회초리

    - 버릴 것은 무엇인가. 과거 ‘제왕적 총재’ 논란부터 친이, 친박 등 특정 인물 중심의 계파정치를 말하는가. 

    “예를 들면 4년 전 선거(2016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쥐었을 때, 우리가 집권했을 때, 국회의원이라는 대표직을 맡으면서 한 잘못된 일들이 있었다. 국민이 지탄했는데도 그런 걸 버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신뢰가 쌓이지 않는 거다. 자연 도태되고 걸러져야 하는데 계속 끌고 갔다. 그러니 국민들은 ‘어, 이래도 안 버리네’ ‘어, 이래도 과거의 잘못된 모습 고집하네’ 하면서 선거 때마다 점점 더 세게 회초리를 들었다. 2016년 이후 네 번 연속 선거에서 패했다.” 

    - 원 지사는 2017년 1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미래당을 거쳐 무소속, 그리고 미래통합당에 입당했다. 

    “나는 그동안 보수에 머물러 있었고, 혁신의 가치를 좇았다.” 

    - 정치는 결국 인물이다. 이번 선거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야권 인사들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이다. 

    “책임감을 느낀다. 인물난이 심각한 건 앞서 말한 경쟁의 장점이 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당에서 인물이 자리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토양이 척박한 건 큰 문제다. 이런 토양을 갈아엎기 위해선 ‘플랫폼(정거장)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 플랫폼 리더십? 

    “‘나를 따르라’ 식의 수직적 리더십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유연하고 열린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 함께 가자’는 식의 리더십이다. 다양한 계층과 아이디어들이 플랫폼 위에 모이고, 수평적 토론과 경쟁, 협력을 통해 다수가 공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리더십의 바탕에 보수 정의와 기초부터 세우고 나가야 한다. 시대적, 국가적으로도 ‘플랫폼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위기에 처한 야당은 더더욱 절실하다.” 


    국민은 상식과 기본 요구

    - 주호영 통합당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등 새로운 지도부를 꾸리면 변화가 가능할까. 

    “우선은 내부에서 뼈아픈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의 소리를 듣고 국민 생각을 끌어들이는 토대 위에서 당을 만들어가면 비대위는 방법론적 문제일 뿐이다. 이런 경쟁 원리가 작동하면 국민은 손을 내밀 것이고, 당은 빨리 회복될 거다. 그런데 변화 조짐이 없으면 통합당은 지지율 20%를 넘지 못할 거다. 양대 정당 체제에서 20% 미만 지지율은 사실상 존재 의미를 부정당하는 거다. 지지율 상승 추세부터 만들어야 한다.” 

    5월 8일 한국갤럽의 5월 첫째 주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 미래통합당 정당 지지율은 2월 정당 출범 이후 최저치인 17%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46%, 미래통합당 17%, 정의당 7%, 열린민주당 4%, 국민의당 3% 순이었다.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통합당 지지율은 19%로 2%포인트 올랐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 선거 막판 불거진 통합당 후보들의 막말 논란도 패배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국민과의 ‘공감 능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렇다. 국민은 복잡한 게 아니라 상식과 기본을 요구한다. 정치의 기본이 국민의 아픔과 문제를 자기 걸로 받아들여서 국민이 공감하는 메시지와 해법을 내는 거다. 국민은 이런 일을 하라고 위임장을 써서 정치인에게 일을 맡겼는데, 자기 뱃속 차리는 일만 하면 당연히 위임 계약을 파기한다. 그리고 국민적 상식에 반하는 얘기를 억지로 이념, 진영, 정치논리로 강요하면 국민으로부터 퇴출 명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아픔을 챙기고 문제 해법까지 낸다면 능력이 있는 것이고, 해법이 없다면 최소한 공감이라도 해야 한다.” 

    - 국민과의 공감이 ‘처방전’인가. 

    “그렇다고 공감만 하라는 건 아니다. 국민 삶은 현실 문제이고 결과로 얘기해야 한다. 따라서 공감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도 필요하다. 흔히들 진보는 이상과 감성을, 보수는 현실에서의 능력과 성과를 중시한다고 하는데 이 둘을 모두 갖춰야 한다. 이제는 보수-진보 이념을 가를 필요도, 의미도 없다. 외형적으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같은 인물을 영입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 바다’에서 삶의 비전을 제시하고, 문제를 실력 있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여당도 국민통합에 대해선 대놓고 외면하는 만큼 미래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국민통합이란 가치도 실현하는 상품을 내놓으면 야당은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영원히 ‘남원정’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4월 30일 제주국제공항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에 마련된 다목적 음압·양압 검체 채취 부스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4월 30일 제주국제공항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에 마련된 다목적 음압·양압 검체 채취 부스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 원 지사는 과거 남경필, 정병국 의원 등과 함께 당 지도부를 향해 끊임없이 개혁과 비판의 목소리를 내 ‘남원정’ 트리오로 불렸다. 이제는 비판을 넘어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남원정 시즌 2’가 필요할 거 같은데. 

    “국민 선택을 받으려면 개혁과 그 개혁을 뒷받침하는 기본 바탕이 있어야 한다. 지지층, 리더도 있어야 한다. 리더가 되려면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 개혁도 주변의 바탕이 없으면 조광조처럼 실패로 귀결된다. 그리고 부모가 돼서도 청춘의 역할을 하겠다는 건 안 맞다. 나는 ‘남원정’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영원히 ‘남원정’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대신 개혁적 비판 정신은 살리면서 동시에 통합을 추구할 수 있는 한 단계 성숙한 역할을 해야 한다. ‘남원정’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겠다.” 

    - 차기 대권 말인가. 

    “차기 대권 도전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2년 뒤 대선을 위해 내가 뭘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여러 현안,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문제와 미래에 대한 고민에 집중할 때다. 다음 대선에서 국민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얼마나 돼있는지를 보고 선택할 것이다. 지금 제주도에서 하고 있는 카본프리아일랜드(탄소제로제주) 프로젝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선도 시범사업 등은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2년 뒤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나도 같이 걱정하고 힘을 모을 생각이다.” 

    - 관광산업이 주력인 제주도는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클 거 같다. 원 지사는 지난 1월 정부에 무비자 입국 제한을 요청하고, 3월에는 서울 강남 확진자 모녀를 상대로 1억 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강수’를 뒀는데. 

    “방역은 늘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제주도는 연간 1500만 명이 방문하는 국제관광도시인데, 머뭇거리다가 최악의 관광도시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제주는 공항과 항만이 곧 국경이어서 처음부터 ‘국경 방역’ 개념을 동원했다. 안전 관광이 담보돼야 관광 수익도 생긴다. 그리고 ‘강남 모녀’가 방문한 업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졸지에 자가격리를 당한 분만 40명이 넘었다. 이들의 피해를 합치면 1억 원은 크지 않은 액수다.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지만 방역에 협조하는 도민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대변하는 건 도정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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