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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이었다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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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 의장 부친 신상묵, 1940년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에 등재
  • ●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 후 일본군인 신분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좌담회에 참석
  • ● 대구사범 동기생 “1943년 일본군 헌병 오장이 된 신상묵은 충북 옥천에서 일본군 징병기피자 정보수집 했다” 증언
  • ●신 의장 “부친은 일제시대 교사로 있다 광복 후 경찰에 투신” 주장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은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이었다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좌). 신기남 의장 부친 신상묵씨(우).

최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부친의 친일행적이 논란이 되었다. ‘진보누리’ 등 인터넷 사이트에 “신 의장 부친 신상묵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일제 시대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잠시 교사로 재직하다가 (일본) 경찰에 투신했으며 광복 후 다시 한국 경찰에 몸담아 고위간부가 됐다”는 글이 실린 것. 일부 언론은 이 글을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기남 의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2004년 7월15일 신기남 의장은 열린우리당 정책의원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모 신문 가판에서 제 선친에 대해 일경 간부를 지냈다느니, 친일파라고 쓴 것 같다. 본판에는 그 기사가 빠졌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다른 신문에서는 그 기사가 본판에 실렸다. 두 신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기초적인 사실확인 작업도 없이 오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이날 신 의장은 한 인터넷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선친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8·15 광복까지 전남 화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광복 후인 1946년 국립경찰 양성 1기로 경찰에 입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선친 관련 보도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의 순수한 의도를 훼손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신 의장은 또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논란이 있는 일부 인물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되는 문제와 관련, “농사꾼은 잡초를 뽑을 때 가리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신기남 의장은 과반수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대표로서, 친일조사 대상자들을 ‘잡초’에 비유하면서까지 열린우리당의 친일행위 진상규명을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 선친의 친일의혹에 대해선 “일제시대 교사로만 재직했다”며 여러 차례에 걸쳐 강하게 부인했다. 신의장의 이러한 주장은 진실일까. ‘신동아’는 관련 자료와 핵심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신 의장의 부친 신상묵씨의 일제시대 행적을 추적해보았다.



청풍소학교 훈도로 사회생활 시작

신상묵(辛相默)씨는 1916년 8월 전북 익산시 춘포(春浦)면 용연(龍淵)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3년 4월8일 대구사범학교(경북대 사범대 전신)에 5기생으로 입학한다. 이러한 사실은 대구사범 졸업생들의 인적 사항과 졸업 후 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대구사범심상과지(誌)’(‘심상(尋常)’이란 ‘보통’이란 뜻) 등 관련 문헌,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대구사범학교 전체 졸업생 중 신상묵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신기남 의장의 부친 이외엔 단 한 명도 없다. 당시엔 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사범학교에서 5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소학교로 발령받아 훈도(訓導·현재의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일제시대 대구사범학교는 전국 각지에서 최고의 수재가 모이는 학교였다. 졸업생들은 기자에게 “면내 소학교 전체에서 1, 2등 해야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졸업하면 당시 ‘엘리트’ 직업인 교사직이 보장되는데다 5년간 학비가 전액 면제되기 때문에 빈곤층이 절대다수였던 조선인들의 입학경쟁이 치열했다는 것이다. 신상묵씨의 동기인 5기의 경우 조선인이 82명, 일본인이 18명 입학했다.

‘대구사범심상과지’(이하 ‘심상과지’)는 신상묵씨의 학창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5기생들에게 학창시절 가장 지긋지긋했던 기억으로는 아무래도 교련시간, 검도시간을 들 수 있다. 5학년 여름방학 때는 경남 창녕까지 걸어가서 2주 동안 야영훈련을 받기도 했다. 황윤주가 대대장이요 신상묵이 나팔수였다.”

신상묵씨의 5기 동기생인 이정덕씨는 기자에게 “신상묵씨는 대구사범 재학시절 처음엔 나팔수를 했지만 나중엔 대대장까지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신상묵씨의 대구사범 1년 선배(4기)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대구사범 재학시절 나팔수였다.

신상묵씨는 1938년 3월20일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고 같은해 6월 훈도로 발령받았다. 신기남 의장은 부친의 근무처를 전남 화순초등학교라고 밝혔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전남 화순군 청풍소학교에서 훈도 생활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신기남 의장은 “부친이 광복 후까지 교사로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논란의 발단이 된 진보누리 사이트의 글은 조금 다르다. “신상묵씨가 잠시 교사로 있다가 일본경찰이 된 뒤 광복 후 경찰에 다시 몸담았다”고 한 것이다. 진보누리의 이 글은 대구 ‘매일신문’의 ‘청년 박정희’라는 연재물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기자는 이 연재물의 저자에게 글을 쓴 경위를 물었다. 저자는 “신상묵씨 동문들의 증언을 토대로 쓴 글이다. 신상묵씨는 일제시대에 경찰이 아니라 일본군 헌병이었다. 고인의 명예를 고려해 경찰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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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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