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하)

인문계와 이공계 위기 ‘취업정거장’ 된 대학, 추락하는 교육에 날개는 있나

  • 정정길 울산대 총장 chungkchung@ulsan.ac.kr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하)

2/5
대학원 나와도 혜택이 없다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하)

지난해 가을, 전국 80여 개 대학교 인문대 학장들이 이화여대에 모여 인문계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모색했다.

예를 들어 서울대는 2003년부터 베트남의 일류 공과대에서 1년에 20여 명의 대학원생을 스카우트해오는데, 등록금과 생활비 기숙사 등 모든 편의를 학교에서 제공한다. 울산대도 똑같은 조건으로 2003년부터 매년 15~20명의 베트남 학생을 유치한다. 베트남 학생들은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근면해 인기가 높다. 베트남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러시아나 몽골, 중국의 우수한 학생들도 비슷한 대우를 받고 국내 대학원으로 유학 오는 실정이다. 외국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국내 대학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머지않아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베트남의 웬만한 명문대들은 한국의 대학총장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는 통에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대학원 붕괴는 이공계 위기, 또는 인문계 위기의 근본원인이 된다. 전부터 심심치 않게 거론되던 이공계 위기가 최근 새삼스럽게 논란이 된 것도 대학원 실험실을 지켜야 할 학부 졸업생들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외국, 특히 미국 대학원으로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일류대 졸업생이 외국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그 빈자리를 다른 대학 졸업생이 메우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지방대 대학원은 늘 정원을 채우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정부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BK사업이 일부 우수 대학원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면서 지방대는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더욱이 정부가 평생교육 차원에서 수도권에 대학원대학교가 설립될 수 있도록 한 뒤로 지방대 대학원이 더 곤란해졌다.

대학원을 나와본들 학부 졸업생보다 더 나은 대우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대학원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평생교육 차원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은 많다. 직장에서 인사상 혜택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중·고등학교 교사가 대학원 석사 수준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야간에 수업하는 특수대학원에 진학하기 때문에 전일제 수업을 하는 일반 대학원생과 사정이 다르다.

교수직이나 연구원직은 대체로 석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연구소 연구원직과 대학 교수자리는 극히 한정돼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이공계 연구소와 연구요원의 숫자가 감소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국책연구소가 연구원 인력을 감축했고, 일반 기업도 여기에 가세했다. 이러한 연구직 규모 축소는 이공계를 크게 위축시켰다.



진퇴양난 인문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급속하게 상승하면서 대학은 계속해서 팽창했다. 그에 따라 필요한 연구요원과 교수 숫자도 늘어나 대학원을 졸업하면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 신입생 숫자가 감소하면서 이런 호시절이 막을 내렸다. 그로 인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분야가 인문계다.

인문계의 위기는 대학원생의 공급과잉이 심각해지면서부터 나타났다. 대학이 팽창하던 시절에 학부를 졸업한 많은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런데 이들이 졸업할 무렵 대학이 팽창을 멈춰 공급과잉 우려가 나타났지만, 이를 간파하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원으로 계속 밀려들었다.

대학교수가 선비의 표상으로 인식되는 한국 사회풍토가 대학원 진학을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인문계 졸업생은 전통적으로 중·고교 교사직을 선호했는데,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대학교 교수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인문계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획득하려 했다.

인문계는 보통 문학, 사학, 철학 분야를 가리킨다. 이 분야는 이공계(공과와 자연과학계열)나 사회계(정치 경제 경영 사회 행정 등)와 달리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갈 만한 자리가 연구소나 대학 외에는 거의 없다. 학부 졸업생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도 다른 분야에 비해 턱없이 좁다. 이러한 점들이 인문계 위기를 부채질한다. 인문계는 영어나 중국어 같은 일부 어문계열을 제외하고는 취업이 잘 안 된다. 대졸자 취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학생들은 취업이 잘 안 되는 분야를 기피한다.

그런데도 대학이 팽창할 때 많은 대학에서 인문계를 신설하거나 확대하는 바람에 인문계 위기가 더 악화됐다. 어느 인문계 교수가 한탄했듯 인문계는 ‘칠판과 백묵만으로’ 가장 값싸게 교육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돼 대학 팽창의 손쉬운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물론 인문계 교수들 스스로 반성했듯 실용적인 교육을 시도하지 않고, 상아탑 속에서 아카데미즘을 강조하거나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나치게 존중한 것도 졸업생의 취업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인문계의 위기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다.

2/5
정정길 울산대 총장 chungkchung@ulsan.ac.kr
목록 닫기

한국 대학사회의 대혼란 (하)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