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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드럼통 치켜들고 삽 휘두르면 일단 후퇴할 수밖에요”

  • 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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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조(48) 경위가 중국어선을 검색하던 중 숨졌다. 이후 해경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중국선원 구속, 3003함 함장 직위 해제, 특수기동대 창설, 헬기 탑재한 3000t급 경비함정 상주 배치까지. 그러나 오늘도 우리 측 EEZ 해역을 지키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경에겐 아직 먼 얘기였다. 10월3일부터 3박4일간 49명의 해경이 탑승한 경비함(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509함)에 동승해 중국어선 검문 현장을 지켜봤다.
‘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정말 이런 날이 없어요. 호수죠, 호수. 꼭 누가 오시기만 하면 이렇다니까. 그러니 우리 고생하는 걸 제대로 알려드릴 수가 없죠. 출동한 지 3일이 지나도록 바다가 이리 잔잔하긴 어려운데…. 꼴랑거리기 시작하면 밥도 못 먹고 토하고 드러눕기 일쑤거든요. 롤링(좌우로 흔들리는 것)도 없고 피칭(상하로 흔들리는 것)도 없고. 게다가 중국어선도 국경일이다 뭐다 해서 한 척도 보이질 않으니, 운이 좋아요 운이 좋아.”

목포 앞바다 EEZ(배타적경제수역) 선상을 나흘째 오가던 1509함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시간. 함장, 부함장, 기관장이 연이어 기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허탈한 마음에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해경이 중국어선을 어떻게 잡는지’ 취재하러 왔는데 3일 동안 본 거라고는 해경들의 심심한 일상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밤을 새우는 수밖에. 혹시나 배가 나타나나 싶어 배 꼭대기 조타실에 자주 올라갔지만 ‘역시나’였다. 레이더에는 점 하나 찍혀 있질 않다.

‘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중국어선 검문시 단정요원 8명이 출동한다. 사진은 배에서 단정을 내리는 광경.

기관실에 내려가니 마침 당직자들이 야식을 먹고 있다. 메뉴는 오이김치와 속이 꽉 찬 참치김밥, 다시마와 콩나물 우려낸 국물에 끓인 라면이다. 기관실 직원들은 “내무반장이 음식솜씨가 좋다”며 “김치도 직접 담근 것”이라 치켜세운다. 야식을 만든 임현섭 내무반장이 구석에서 수줍게 웃는다. 밤늦게 과식한 터라 운동 삼아 배 꼭대기에 있는 조타실에 올라갔다. 시곗바늘은 새벽 3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전탐자(레이더 들여다보는 사람)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레이더에 중국 어선으로 추정되는 배 두 척이 잡힙니다!”

조타실 양옆에 설치된 레이더에 형광빛 초록색 물표(점)두개가 찍혀 있다. 어두운 조타실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 전탐자가 그 물표를 클릭하자 속도와 위치, 이 배와의 거리가 찍힌다.

당직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함장님, 지금 EEZ 내측 4마일 선상에서 중국어선 두 척이 조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2분도 지나지 않아, 조타실 바로 밑 자기 방에 머물러 있던 함장이 정복을 갖춰 입고 뛰어올라왔다. 전탐자는 레이더를 가리키며 함장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그 사이 육안에 들어온 어선 숫자는 두 척이 아니라 여덟 척으로 늘어났다. 철선과 달리 목선은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다. 20t급 목선의 경우 5마일 이내에 있어야 레이더에 포착된다.

“검색해보자고. 부함장, 출동 준비시키소!”

부함장이 마이크를 붙잡고 알리는 공지가 배 전체에 쩌렁쩌렁 울린다.

“알림, 알림, 잠시 후 중국어선 검색 예정, 거리 3마일, 검색요원을 다음과 같이 하달함. 단정장 경사 한원산, 단정요원 수경 정부용, 검색 1조 경위 배준, 경장 석충환, 순경 이태묵, 검색 2조 경사 신철호, 경장 주희안 순경 정명환, 잠시 후 검색 예정, 바로 준비 바람!”

“허가 있는지 파악해라!”

이미 조타실에서는 현장 증거를 모으기 위한 채증이 시작됐다. 담당요원이 캠코더를 잡고 전자해도와 레이더를 비추며 경비함과 중국 어선의 위치를 기록으로 남긴다. 허름한 배가 여러 척 나타나자 해적선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어선들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겹쳐 있던 배들이 각각 식별되자 여덟 척이 아니라 열 척임이 확인된다. 채증요원이 확인된 사항을 캠코더로 기록한다.

“2008년 10월6일 공삼백시(03:00시), 본함의 위치 북위 35도 28.56분, 동경 124도 33.41분, 홍도 북서 55마일. 중국어선으로 추정되는 타깃 번호 33번과 34번, 위치 북위 35도 33분 동경 124도 37분에서 3노트로 이동 조업 중에 있음. 홍도 북서 57마일, EEZ 내측 5마일임!”

3분이 지나도 검색요원들이 나오지 않자 함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부함장이 다시 마이크를 든다. 갑판에는 단정(인명구조용, 불법어선 검거용 소형 배)요원으로 호명된 이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구명재킷과 헬멧을 착용 중이다. 단정장비를 내리기 위해 전경도 10여 명 나와 있다. 함장이 다시 소리친다.

“허가 여부 파악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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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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