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입력2009-05-08 16: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서울에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한강중심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세계 일류도시’를 지향하는 문명사적 변화가 막 시작됐다. 그러나 역사는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많다. 서울이라는 국가중심공간의 재편. 그 원칙, 방법, 목표를 논박해볼 긴급성이 있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서울 도심 광화문 일대.(좌) 울 강남 청담동의 한 복합문화공간.(우)

    ①원칙의 부재 | 한강변 초고층 ‘졸작’ 우려

    자금성(紫禁城). 이곳이 없다면 중국 베이징 여행의 매력은 절반쯤 감소할 것이다. 명(明)왕조 때 지어진 이 궁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 때까지 대대적 복원을 거듭했으니 역사유물로서의 가치가 탁월하다 할 수는 없다. 자금성이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첫째 비결은‘규모’에 있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사방 4km 성곽과 800채에 달하는 건물의 웅장함과 정제된 복잡성이다.

    그러나 자금성의 실제 크기는 지하철 한 코스면 지나치는 서울 시내 뉴타운과 비슷할 뿐이다. 결국 ‘규모의 미(美)’란 ‘산술적 규모의 큼’보다는 구조물들을 한 곳에 끌어 모은 ‘집적성(集積性)’에서 나온다. 여기서 전체 덩어리를 구성하는 동질성과 그 안의 이질성을 동시에 표출해내는 것이다.

    ‘초일류’ 삼성에 실망

    집적성은 현대 도시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핵심적 가치다. 이 점은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 없는 악시옴(axiom·공리)이다.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카고 도심엔 108층 시어스타워(442m) 같은 초고층 빌딩이 50~70층의 고층빌딩, 중층빌딩, 저층빌딩과 함께 수직적, 수평적으로 조화롭게 집적되어 있다. 시카고가 도시 건축물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유다. 반면 대만의 101층 타이베이금융센터(509m)는 주변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다. 도시의 수직적 단절과 분리다. 미학(美學)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타이베이금융센터가 시어스타워보다 더 높다는 ‘높이 경쟁’은 이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하다.



    초고층 빌딩 사이에서 이 같은 질적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운이나 우연 때문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현대 도시는 철저히 인공적 조작의 산물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천지개벽”이라며 놀라워했던 중국 상하이 푸둥. 사회주의 중국은 모래밭에 불과했던 이곳을 단 10여 년 만에 ‘아시아의 맨해튼’으로 바꿔놓았다. 건물 하나하나의 높이, 배치가 모두 집적성의 원칙 아래 기획됐다.

    한 중국 관리는 “자금성과 푸둥의 마천루는 같은 원리다. 과거와 현대의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적 명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은 고층건물의 총 개수에서는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뉴욕과 같은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서울 상암동(서울라이트), 잠실(제2롯데월드) 초고층빌딩 조감도. ‘나홀로 초고층’이 여기저기 띄엄띄엄 들어설 경우 오히려 도시경관의 퇴보를 가져올수 있다.

    서울 한강변 여러 곳에서 초고층 빌딩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마포구 상암동의 서울라이트(seoullite·133층·640m·9월 착공),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드림타워(152층·620m·계약 후 추진 중), 뚝섬의 현대차그룹 사옥(110층·550m·제안서 제출), 잠실의 제2롯데월드(112층·555m·정부 최종확정) 등이다.

    이들 사업은 타이베이 방식에 더 가깝다. 사업 추진기관이 제시한 조감도를 보면, 도시의 수직적 단절과 분절이 두드러진다. 높이 경쟁만 홍보하고 주변 경관과의 조화엔 침묵한다. ‘세계 일류’ 삼성(용산 국제업무지구 참여)이 이 정도의 도시감각밖에 없는지 실망스럽다. 설계를 다시 내놓는다고 한다. 이 회사는 최근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로 반포 한강변에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워놓았다. 굴뚝 모양의 초고층 빌딩에 저층 부속건물들로 구성된 제2롯데월드는 재벌 오너의 ‘마초주의’ 노욕(老慾)을 충족시켜주는 것 외에 어떠한 공익적 조형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제2롯데월드는 ‘마초주의’ 노욕

    한두 곳도 아닌 네 곳이 모두 그렇다는 게 큰 문제다. 한 일간지는 3월4일 “한국이 세계 초고층 시장의 맹주로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의 견해는 다르다. 원칙을 모르면 예측을 할 수 없다. 다 지어놓고 실제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상암, 용산, 뚝섬, 잠실의 100층대 초고층 건물들은 서울시내 동서 한강 구간을 비슷한 등간(等間) 거리로 4등분해 거대한 빼빼로 과자처럼, 혹은 거대한 전봇대처럼 늘어서서 솟아 있는 형상이 된다. ‘서울 근대화’의 혹독한 유물인 ‘판상형 아파트 경관’의 ‘21세기판’이다.

    국가기관이 ‘세계 일류도시 건설’을 외칠 뿐 변화의 원칙을 확고하게 세워두었는지 의문이다. 서울시내 지도를 펴 들고 종합적으로 검토해봤다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각각의 사업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이다.

    영국 ‘더 타임스’의 앤드루 새먼 서울특파원은 최근 모 일간지에 “서울의 도시경관이 최악”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색채 모양 크기 등 디자인적 측면에서 한국 건축가들의 국내 작품은 끔찍할 정도다. 왜 지역 정부는 구획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재개발을 허가해 이런 미(美)적인 참사가 지속되도록 놓아둘까.” 서울은 지금 ‘근대화’에서 ‘글로벌화’로 진입하려는 전환점에 서 있다. 초고층 건립, 한강 르네상스, 신도시 운영계획 시행 등에 따라 서울시내 수십여 군데 금싸라기 땅이 앞으로 본격 개발된다.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자금 수십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서울 개조를 기획하는 국가기관은 솔직한 평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은 계속 “1980년대의 어딘가를 표류(새먼)”하고만 있을 것이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시카고 건축협회의 보트투어에 오른 관광객들이 시카고강을 따라 도심의 초고층빌딩 숲으로 들어서고 있다. 초고층 빌딩이 고층, 중층, 저층 빌딩과 함께 수직적, 수평적으로 집적되어 경관미를 연출한다.

    ②실패한 방법론 | 용산 프로젝트 좌초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capitalism) 체제가 주름잡고 있다. 세계적 금융-경제 위기가 찾아왔지만, 대다수 국가에선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때 세계를 양분했던 공산주의(communism)가 몰락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의문도 “자본주의는 왜 망하지 않는가”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르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창출한 이익 중 최저생활 유지에 필요한 임금 이외의 모든 이익을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있고 이런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은 생산량의 증대에 따라 증폭돼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몰락으로 이끌어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이 생산량의 증대에 따라 실제로 증폭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몰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마르크스 이후의 서구 맑시스트는 ‘자본주의의 유연성(flexibility)’에서 찾았다. 즉, 생산량 증대에 따라 자본의 이익이 극대화돼 독점자본의 형태가 되면,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엄청나게 올려주어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해버리는 유연성을 발휘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해나가더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균형점을 찾아 모두 이익을 얻는 평화스러운 곳이다. 타의에 의해 내적 갈등과 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주의는 스스로 대처하고 관리하고 지연시켜 결국 갈등과 위기를 타넘고 평화스러운 윈-윈 상태를 회복한다. 그것이 맑시스트가 보기에는 ‘가식적인 평화’임에도 말이다.

    ‘단군 이래 최대사업’이라더니

    ‘단군 이래 최대사업’으로 불린 28조원 규모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서울 개조’의 간판 격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최근 좌초 위기에 처했다. 경제위기 등 외부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반자본주의적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위기는 사업주체인 (주)용산역세권개발이 2차 중도금 8000억원을 납부기한(3월31일)내 토지 매각사인 코레일 측에 지급하지 못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용산역세권개발과 코레일은 소송을 벌일지 모른다. 2년 이상의 사업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차 중도금 연체 이자만 매월 120억원(연리 17%). 서울시와 국민연금 등 4200억원을 출자한 공공기관도 사업 연기나 무산 시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이렇게 된 데는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대출 중단이 일차적 이유다. 그러나 토지보상 문제를 둘러싼 서부이촌동 주민들과의 갈등이 이 사업을 위태롭게 한 것도 사실이다. 투자자들에게 부정적 요소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사업 초기, 서울시는 코레일 소유 용산 철도기지창 부지(44만3000㎡)만을 국제업무지구로 조성하려는 코레일 측 계획을 바꿨다. 인근 서부이천동 한강변 주택지역(12만5000㎡)도 사업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세계적인 명품 수변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었다. 사업주체 측은 이 지역 아파트, 주택 소유자 2240가구 중 50% 이상에게서 동의서를 받아 전체 토지를 수용한 후 한강변인 이곳에 초고층빌딩을 세우고 그 뒤편으로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어 입주권을 주는 방식(수용식 보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동의서가 잘 걷히지 않았다. 일부 주민은 보상 방식에 불만을 나타냈다. “땅부터 내주고 나중에 토지보상금을 책정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보상금이 적게 나와 쫓겨나더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불만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강변북로 방향 아파트 벽면에 서울시를 성토하는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한강 공공성 회복’의 그늘

    한강변 서부이촌동 토지의 수용 과정은 서울시가 내건 개발방식인 ‘한강 공공성 회복’과 맥이 닿아 있다. ‘공공성 회복’이라는 어휘는 위압적으로 들렸다고 한다. 한강변 주민은 ‘나는 공공재(公共財)인 한강변을 부당하게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이는 ‘내 아파트는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자기 자산(資産)으로부터의 ‘소외’를 강요하는 것이다. 주민은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상대편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됐다. 이런 가운데 상대편은 “땅부터 내놓으면 나중에 보상비를 결정해주겠다”는 수용방식을 추진했다. 위기와 불신은 사실로 확정됐다. ‘온건보수’적이던 주민은 갈등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게 됐다.

    용산 사업을 시행하는 ‘대기업 자본’과 한강변에 주택과 토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 자본가’는 사업 집행 이전에는 계급적 이해를 공유했다. 그런데 ‘한강 공공성 회복’이라는 개발 방식은 이들을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했다. 애초 존재하지도 않던 적대관계, 갈등관계를 새로 낳은 ‘반(反)자본주의 방법론’이며 ‘유연성이 결핍된 커뮤니케이션’으로 평가될 수 있다. 가스통 대신 인감도장으로 개발에 저항하는 중산층 자본가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청계천 복원’ 방식과 대비된다. 당시 서울시는 ‘영세세입자 강제퇴거’라는 필연적 계급갈등이 발생하자 물질적 보상(대체상권 조성)과 설득(친환경 이슈로 생존권 이슈 덮기)이라는 자본주의적 유연성으로 갈등을 해체하고 사업을 성사시켰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③목표는 일류도시 브랜드 | 서울 vs 강남

    서울시는 한강변의 판상형 아파트를 걷어내고 한강중심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 지향점은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정책 집행에 있어 원칙의 모호함, 방법의 미숙함을 드러냈다. 현재의 초고층화 방식은 도시 경관의 퇴보를 가져올 우려가 나타나고 있고 한강중심시대의 상징인 용산 프로젝트는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디테일(detail·섬세한 부분)에서 뛰어나야 명품이 나온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서울시는 비전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초고층, 강남이 하면 다르다

    이러는 사이 강남구청은 서울 변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 강남구청은 2월5일 삼성동 한국전력, 서울의료원, 한국감정원 이전 예정 부지에 114층 랜드마크 타워, 75층 빌딩, 50층 빌딩, 미술관, 콘서트홀, 부티크, 공공청사를 포함한 ‘그린 게이트웨이(Green Gateway)’ 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연면적 106만4742㎡의 이 초대형 복합단지는 용산 프로젝트의 2배에 달한다. 주변 지역과의 시너지 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센터, 코엑스몰, 아셈타워, 호텔, 백화점, 여러 IT-금융 빌딩 등 지하철 삼성역 주변 기존 업무시설과 단일권역으로 통합된다. 114층의 초고층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여러 층고의 빌딩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도록 했다. 빼어난 마천루 경관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한강변에서 떨어져 있는 약점은 탄천의 물을 끌어와 인공적으로 워터프런트를 만드는 것으로 보완했다. 수변에 카페, 쇼핑몰, 공원을 조성하고 구겐하임, 소더비, 크리스티,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적 문화예술기관의 입주를 추진할 예정이다. 서울의 새로운 경제, 소비, 문화, 관광 중심이 되고 세계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잠재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용산 국제업무지구 예정지인 철도기지창.

    강남구청은 민간 제안형 도시개발 방식을 내놓았다. 서울시의 결단 이외엔 갈등 소지가 없다. 서울의 초고층 프로젝트 중 가장 빨리(2015년) 완성되고 사업성이나 도시 브랜드 기여도도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몇 발치 앞서가던 사상최대 용산 프로젝트의 갑작스러운 좌초. 침묵하던 후발주자 강남의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실속 있는 움직임. 이런 상황전개는 놀랍다 못해 다소 충격적이다. 국가나 광역단체가 밀어주지 않아도 강남은 실현 가능성 있는 상상력으로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강남이 자본주의의 원리, 시장의 속성, 인간의 욕망을 정확하게 읽고 준비한 결과다.

    일류도시 많아야 선진국

    너무 저평가된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과제다. 대통령 산하에 ‘국가브랜드위원회’까지 설치했을 정도다. 그런데 사실 세계는 ‘국가중심 생활권’에서 ‘도시중심 생활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의 7, 8할이 도시에 사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일반화된 현상이다. 일본에 사는 사람이 한국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도쿄에 사는 사람이 서울을 찾는 것이다.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설적으로 이 문제를 국가 차원이 아닌 도시 차원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서울과 같은 핵심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이러한 일류도시 브랜드가 국가 브랜드를 견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런던의 이미지가 영국의 가치를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과 같다. 서울의 궁극적 목표는 일류도시가 되는 것이다. 초고층 빌딩, 한강르네상스 등 여러 ‘서울 개조사업’은 여기에 필요한 핵심적 수단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일류도시 브랜드는 좋은 도시 이미지에서 나온다. 뉴욕=맨해튼, 상하이=푸둥, 파리=에펠탑처럼 ‘한 도시에 하나의 이미지 상징’이 좋다. 서울은 웬만한 외국 대도시 2~3개를 합쳐놓은 정도로 넓고 비대한데다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어 대표 이미지를 구축하기 어렵다. 다운타운(downtown)만 도심, 여의도, 강남 등 세 개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선 ‘서울 하면 딱 떠오르는’ 표상(表象)이 없다. 또한 현재의 서울 브랜드에는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권’이 누락돼 있다. 최근 엔고 현상에 따라 서울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명동 등 도심에만 머문다. 일본에 소개되는 서울 브랜드로는 강남까지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남은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고급스러운 아우라(aura)가 있다. 영어발음의 용이성 등 국제적 지명(地名)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강남권은 인구, 도시화 규모, 경제력, 문화, 소비 수준에서 이미 세계 일류 대도시 수준에 올라 있다. 국내에서 서울에 필적하는 유일한 권역이다. 삼성동 초고층 그린게이트웨이는 계획대로라면 강남을 한눈에 세계에 각인시키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서울과 강남으로 이원화하는 문제는 이제 진지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전략은 서울의 이미지 통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동시에 강남이라는 새로운 일류도시 브랜드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강남권이 분리된 서울의 이미지는 도심, 용산, 여의도 중심으로 압축 강화된다. 예를 들어, 관광산업 측면에서 도심과 강남은 거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교통체증도 심하다. 굳이 이 두 지점을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는 현재의 관광상품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멀다’는 것은 단점도 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선 각각을 지리적으로 차별화하는 장점도 된다. 외국에 서울과 강남이라는 독립된 별도의 관광지로 특화시킨 이미지를 심는 게 낫다. 걷는 관광이 가능해진다. 한국을 두 번 찾게 하는 방법이다.

    서울-강남 이원화의 경쟁력

    5월 강남과 국제공항을 이어주는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된다. 강남이 세계와 바로 연결되는 것은 좋은 징조다. ‘강남 특화’는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적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강남권 행정부서 신설, 삼성동 초고층 프로젝트와 연계한 광장-행정청사 등 도시 상징 공간 조성, 특정 거리로의 한류(韓流)회사 집적, 강남판 한강중심시대, 강남권 축구전용경기장-프로축구단, 대대적 강남 해외광고 등 콘텐츠와 홍보의 강화가 고려될 수 있다. 만약 서울-강남 프로축구 더비가 현실화된다면 거의 ‘전쟁’ 수준일 것이다.

    냉혹한 생존경쟁의 국제화 시대에 ‘양극화 프레임’에만 갇혀 강남이라는 경쟁력 있는 지역 브랜드를 사장(死藏)시키는 현 상황은 재검토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일류도시 브랜드가 ‘서울’ 하나에서 ‘서울’과 ‘강남’ 두 개로 늘게 된다면 이는 국가브랜드 상승, 신성장동력 창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일류도시가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정부는 부산, 인천, 제주 등을 유명 국제도시로 육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강남이 다른 점은 이미 인프라, 잠재력, 민간자본이 충분해 정치적 결단과 약간의 행정지원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