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조직에서 죽느냐 사느냐 치맥집에서 판가름 난다?

치맥집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4-07-23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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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영향인지 치맥집(치킨과 맥주를 파는 식당)이 주목을 받는다. 이곳은 술자리의 종착역이다. 술자리에선 정치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그뿐이랴. 치맥집에선 사내정치(社內政治) 관련 정보의 수집, 분석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조직에서 죽느냐 사느냐 치맥집에서 판가름 난다?
    치맥집을 찾는 손님들의 제1 주제는 아마 사내정치일 것이다. 1차에서는 조심스러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도 이때는 마구 터져 나온다. 술 취한 김에 용기를 내 하기도 하지만, 술을 빙자해 은근슬쩍 흘리기도 한다. 만취해서 솔솔 불고 마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다. 술이다. 술이 말한 것이다.

    테이블에 널브러진 정보들

    아무튼 이렇게 치맥집 테이블에 널브러진 정보를 누군가는 알뜰하게 쓸어 담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 정보를 선별하고 완결성을 높인 다음 적재적소에 흘린다. 그는 정보 정치의 달인이다.

    치맥집은 이처럼 사내정치 정보의 저수지다. 동시에 진원지이기도 하다. 치맥집을 경유한 정보는 다음 날 아침 신속하게 사내로 퍼져 나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다. 정보는 거의 눈 깜짝할 새에 천리를 간다. 이토록 중요한 곳이 치맥집이지만 상당수는 이곳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치맥집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치맥집을 잘 활용하면 직장생활에 유리한 점이 많다. 첫째, 사내정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사내 권력관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그 결과로 연말 인사(人事)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다. 권력관계는 수시로 변한다. 회사를 움직이는 실세가 바뀌는 것에 대처를 잘 못하면 직장생활에 애로가 많다. 승진에도 불리하고, 업무 추진에도 제동이 걸린다.



    가장 중요한 일은 참석

    치맥집을 사내정치 정보 수집에 활용하고자 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참석이다. 아예 술을 못 마신다면 불리하다. 술을 마실 줄 알지만 회식에 늘 빠지면 아예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회식에 잘 참석하지만 2차 또는 3차로 가는 마지막 코스인 치맥집까지 가지 않는다면, 그다음으로 불리하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회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회식에 참석하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다. 치맥집에서 파한 다음에 집으로 가라는 말이다.

    치맥집에 가서는 청취와 수집을 잘해야 한다.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취한다. 취한 상태에선 집중력이 떨어진다. 기억력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참석자들이 하는 말을 집중 청취하고 또 수집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머릿속에 꾸역꾸역 저장해야 한다.

    청취, 수집, 분석

    다음 날 아침 머리가 맑아지면 전날 밤 치맥집에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어젯밤에도 분석하고 평가했겠지만, 다시 해야 한다. 술 깨면 분석과 평가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술 취한 상태에선 모든 결론이 멜랑콜리(Melan-choly)한 쪽으로 난다. 술 취해 건 전화, 아침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취하면 필름이 끊기는 현상, 블랙아웃을 습관적으로 경험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은 치맥집에 가서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 더욱이 자신이 아는 정보를 남김없이 쏟아내는 정보원 구실만 충실하게 할 뿐이다. 술만 마시면 예외 없이 블랙아웃 상태로 가는 스타일이라면, 당신은 치맥집의 정보 정치를 절대 장악할 수 없다. 장악하기는커녕 안 당하면 다행이다. 아마 동석자들은 당신을 경쟁 상대로도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임원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블랙아웃 빈도가 잦아지면 경계해야 한다.

    유출의 기술

    시간의 태엽을 치맥집으로 돌려보자. 당신은 어떤 말을 쏟아냈는가?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 혹시 그 정보도 흘렸는가? 흘려서는 안 되는 그 정보를? 만약에 그랬다면 이제부터 당신에게는 당할 날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니면 수습을 해야 한다. 수습, 잘해야 한다. 수습 작업을 잘못 걸었다가는 더 호되게 당할 수 있다.

    치맥집에서는 사내정치 기술을 걸 수 있다. 참석-청취-수집-분석이라는 정보 정치의 기본 활동에 더해, 유출이라는 기술을 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출은 치맥집 술자리에 참석해서 정보를 청취하고 수집하면서, 내가 아는 정보 가운데 남들에게 알리면 내게 유리할 법한 정보를 슬쩍 흘리는 것을 말한다. 유출하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근거 또는 물증이 분명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증거가 부족한 가십성 정보를 흘릴 경우에는 출처라도 분명히 해야 한다. 나중에라도 누구로부터 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십성 정보를 흘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일임엔 분명하다.

    활활 타오르게

    유출할 땐 타이밍도 잘 잡아야 한다. 치맥집까지 간 상황이면 다들 어느 정도 취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유출의 약발이 잘 받는 반면 유출한 정보가 유실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모두 집중력 해이에 기억력 감퇴를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한 정도를 잘 판단해 적기에 정보를 유출해야 한다. 직장생활 초기 그 시점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별로 취하는 시점 또는 주량이 다르기 때문에, 경험으로 이것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대상도 잘 선택해야 한다. 정보를 흘려줬을 때 보이는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심부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사전에 개인별 반응을 충분히 살펴두는 것이 좋다. 누군가 정보를 흘렸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체크해나가다 보면, 전체 참석자의 반응 태도가 보일 것이다. 이 역시 경험으로 알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보를 유출할 때는 그 사람만 알기를 원하는 경우보다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회사의 정보통, 빅 마우스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사람만 듣기를 원한다면 굳이 치맥집을 택할 이유도 없다. 일대일로 만나서 전하면 그만이다.

    필터링 된 정보 vs 날것 그대로의 정보

    유출 시엔 확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를 택하는 것이 좋다. 뉴스도 흐름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이슈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데에 쏠려 있을 때 이야기하면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관심사를 보도하면 반응이 곧바로 폭발적으로 온다. 사내에서도 여론이 있고 또 여론의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잘 파악해 적절한 때 터뜨려야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활활 타오른다. 그 시기를 잡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꾸 해보면 감이 온다.

    유출 기술을 쓴 다음에는 피드백도 해야 한다. 내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왔는지, 원하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고른 상대방이 정보를 제대로 소화해 다른 사람에게 퍼뜨렸는지 평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유출 시점이 적절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빨랐다면 얼마나 빨랐는지, 늦었다면 얼마나 늦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출 효과도 파악해야 한다. 효과가 없었다면 왜 효과가 없었는지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

    역정보에 유의

    이쯤에서 치맥집 정보만 정보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지당한 의문이다. 치맥집에서만 정보가 떠도는 건 아니다. 일과 중에도 수많은 정보가 사내를 떠돌아다닌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냐는 것이다. 아니다. 맨 정신에 퍼뜨리는 정보는 이성으로 한 차례 걸러서 내보내는 정보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의 이성 필터를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행간이 생략되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날것 그대로의 정보가 아니라는 말이다. 걸러진 정보는 사실 죽은 정보다. 술자리, 그중에서도 특히 이성 필터가 무력화된 치맥집의 정보는 이것과 다르다. 오히려 감정 필터가 개입해 각자의 해석이나 느낌까지 더해진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풍부하다. 배경을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잘 취합해보면 행간이 모두 읽힌다.

    몸이 안 받쳐주면…

    술 취한 상태에서 쏟아낸 정보를 어떻게 믿느냐며 신뢰도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신뢰도?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감정 필터도 개입하지만, 집중력과 기억력도 마비 상태기 때문이다. 횡설수설, 전달력도 떨어진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인지 내가 제대로 전달한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문제는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있다. 복수의 타인에게 확인하거나 술 깬 이후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자료의 크로스 체크를 통한 검증도 물론 가능하다. 그런 정보라도 없는 편보다는 있는 편이 훨씬 낫다. 대화 소재로라도 말이다.

    신뢰도와 관련해서는 역정보를 수집할 위험성도 없지 않다. 내가 유출을 시도하듯이 다른 사람도 유출을 시도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가공한 역정보를 그대로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특히 치맥집 정보는 이른바 지라시, 증권가 정보지 수준인 것이 적지 않아서 역정보도 많다고 봐야 한다. 당사자가 직접 치맥집에 와서 역정보를 흘릴 수도 있지만, 빅 마우스를 경유해서 흘릴 수도 있다. 그런 역정보는 확인 절차를 거쳐 걸려야 한다.

    자연의 섭리

    연일 치맥집까지 쫓아다니다 보면 몸이 감당을 못하는 문제도 따른다. 6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8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85.4%가 만성피로에 시달린다고 한다. ‘업무 과다’와 ‘잦은 회식’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직장인 3명 가운데 1명은 잦은 회식이 만성피로로 이어진다고 호소한다. 상황이 이런데, 회식 빠지지 말고 치맥집까지 가라는 것은 가혹한 요구임에 분명하다. 몸이 감당하지 못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 경우에는 치맥집 정보 정치를 사내정치 기술 목록에서 빼야 한다. 다만 대체할 방법은 찾아야 할 것이다. 술이 아니라면 식사라도 자주 해야 한다.

    일부는 정보 정치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나의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이다. 어떤 경우에도 정보의 수집, 분석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온갖 논란에도 우리나라가 국가정보원을 두고, 미국이 CIA를 두고, 러시아가 KGB를 두는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정보를 미리 알아야 다가오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고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치맥집에서 정보 정치를 하는 것은, 기자들이 주로 취재원과의 술자리에서 고급 정보를 얻어내고, 비즈니스맨들이 술자리를 통해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과 유사하다.

    국내 치맥집 10만 개

    실제로 상당수 직장인은 공식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다. 은근히 하지만 상시적으로 한다. 인사 관련 정보가 대표적이다. 아무개가 승진할 거다, 아무개가 승진에서 탈락할 거다, 새로 오는 이사는 이런 사람이라 카더라…이런 이야기를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복도에서 끊임이 나눈다. 다 자신의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서다. 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사표 내고 나가라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에 치맥집이 몇 개나 되는지 혹시 아는가? 안전행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영업 중인 60만2524개 음식점 중 호프집은 10.1%인 6만793개다. 대다수 호프집은 치킨 안주를 판다. 또 치킨집은 5.5%인 3만3152개다. 치맥집으로 합치면 15.6%, 무려 9만945개, 거의 10만 개에 달한다. 치맥집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치맥집과 호프집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영향이 아니라 정부가 오는 8월 중순부터 출점거리제한을 폐지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은퇴자나 명예퇴직자 증가도 여기에 한몫을 할 것이다.

    ‘치킨에 소맥’ 문화

    조직에서 죽느냐 사느냐 치맥집에서 판가름 난다?
    이종훈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국회도서관 연구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치맥집이 직장인들을 부른다. 아예 1차 때부터 바로 오라고 유혹한다. 치킨 안주에 소맥 폭탄주가 직장인 음주 문화의 대세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치맥집 정치라도 해서 버텨야 하나?’라고. 적지 않은 직장인이 “안되면 회사 때려치우고 치킨집이나 차리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치킨집은 어디 쉽나? 치킨집은 매년 7400여 개가 창업하고 5000여 개가 폐업하는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다. 이 정도면 답은 나와 있다고 봐야 한다. 치맥집 정치라도 잘해서 회사에서 살아남자! 미심쩍으면 회사 근처 치맥집 주인에게 장사 잘되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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