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대신 히틀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압박을 받자 이렇게 응수했다.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러시아 국민은 통쾌해했고, 서방 지도자들은 흠칫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불쾌했을 것이다. 감히 우리를 히틀러에 비유하다니! 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대응하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은 나폴레옹도 러시아를 침공한 적이 있다. 그런데 푸틴은 나폴레옹 대신 히틀러를 택했다. 이 점이 포인트다. 히틀러를 택함으로써 비유의 적정성을 높인 것이다.
“우린 가까울 수 없는 사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두 사람이 조화를 잘 이룰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2009년 5월 취임 후 첫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전 세계로 확산 중이던 신종플루에 빗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린 여전히 가까울 수 없는 사이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멕시코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으면서 직접 멕시코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멕시코는 신종플루 첫 발생 국가이고, 포옹하고 가볍게 키스하는 서양식 인사가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이 한창이던 때였다. 폭소가 터졌고 두 사람의 긴장관계를 걱정하던 우려의 시선도 누그러졌다.
롯데 직원은 소?
비유의 실패 사례 역시 적지 않다. 롯데그룹 인재교육원은 지난 3월 포스터를 만들어 계열사에 배포했다. ‘칭찬과 배려의 말, 우리 모두를 힘나게 합니다.’ 아름다운 제목이었다.
그런데 삽화가 문제였다. 황희 정승 일화가 담겼는데, 황희 정승이 농부에게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농부는 “소도 듣는다”면서 “둘 다 소중한 소”라고 답한다. 황희 정승을 경영진으로, 농부를 중간관리자로, 소를 직원으로 비유한 것이다. 롯데 직원이 소처럼 일하는 것이 비록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직원을 소로 취급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무고한 사람에게 불쾌감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은 얼마 전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든다면, 중요한 건 사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게 하는 것…기존 소상공인들은 맛없는 빵을 만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홈플러스)에게도 맛없는 빵을 만들라고 한다.”
이 말에 소상공인단체와 장애인단체가 반발하고 나섰고 홈플러스는 결국 사과문을 내야 했다. 굳이 비유의 대상을 장애인으로 택한 이유는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상공인은 장애인이고 홈플러스는 비장애인이라는 차별의식에 더해, 장애인은 빵을 맛없게 만든다는 그릇된 인식까지 심어줄 우려가 있는 비유였다. 무고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말만 하지 않아도 비유의 역풍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다.
비유와 막말의 차이
악의적 비유는 상대방을 비난할 때 자주 활용된다. 유독 정치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데, 수위가 지나치면 막말이 된다. 즉, 막말은 적정성에서 실패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막말 때문에 당원권 정지를 당했다. 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공갈 발언을 한 까닭이다.
“일왕 묘소에 절할 수 있나”
그의 막말 논란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문재인 당 대표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자 “독일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하거나,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일왕 묘소에 가서 절할 수 있느냐”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문재인=유대인 또는 한국인·박정희=히틀러 또는 일왕 등식을 전제로 한 비유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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