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전영길 부원장의 한국 기업 지배구조 진단

“평균 점수 50점 이하 수준, 세계 초일류 기업은 없다”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08-10-07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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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8등급 중 6등급 이상 비율 고작 28.77%
    • 금융기관 및 통신업체 등급 상대적으로 높아
    • 한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굴욕’
    • “‘주주 행동주의’ 통해 지배구조 개선 요구해야”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전영길 부원장의 한국 기업 지배구조 진단

    전영길 부원장은 “시장의 힘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국내 한 상장기업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오너 회장보다 그의 부인이 회사 업무에 간섭하면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 상태. 그녀에게 ‘찍히면’ 아무리 유능한 임직원이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임직원들은 그녀가 저질러놓은 일을 뒷수습하느라 골치 아플 때도 많다고 한다. 회사 내에 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는 그녀가 기업 경영권의 일부를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셈이다.

    이 회사에선 회장 부인이 이사회나 대표이사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사회에는 사외이사들도 포함돼 있지만 이들 역시 오너 부인 앞에선 입을 다물 뿐. 이 회사의 지배구조가 후진적이라고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특수한 경우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문화에서는 이 회사처럼 공식 직함도 없는 오너 가족이 기업 경영권의 일부를 행사하는게 당연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의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와 낮은 투명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8월 말 공개된 사단법인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의 지배구조 평가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센터 전영길 부원장은 “올해 평가에서 643개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중 6번째 등급인 보통 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은 185개사에 불과하고, 2등 기업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42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8개 등급 가운데 6번째 등급인 보통 등급 이상 기업을 비율로 보면 지난해 28.46%(657개사 중 187개사)에서 올해 28.77%로 미미하게나마 상승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 기업은 절대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다. 코스닥시장 등록 기업까지 포함해 1800여 기업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이 보통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올해 역시 최고 등급인 최우량 등급을 받은 기업은 없었다. 2등급인 우량+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KT와 KT&G가 받았다. 두 기업 모두 이 센터가 제시한 기업 지배구조 확립 모범 규준에 맞게 내부 규정을 개정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다고 한다.

    전 부원장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수익력 측면에서 국내 최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4등급인 양호+ 등급에 그쳤다는 사실. 그나마 올해엔 이건희 전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되는 등 지배구조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돼 등급을 부여받지 못했다.

    현대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등급 부여를 보류했다. 현대차는 지난해와 올해 6번째 등급인 보통 등급을 받았다. 전 부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이 수준이니 다른 기업들에 대해선 새삼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평균적으로 국내 금융기관과 통신업체의 등급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 전 부원장은 “금융기관의 경우 관련 법률에 지배구조 규정을 엄격히 정해놓았기 때문”이라며 “통신업체의 경우 업체 수도 적은 데다 자산 규모가 커 등급이 상대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의 인식 변화”라고 강조했다. “오너나 CEO 입장에서 지배구조 개선이란 자기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한국적인 기업문화에선 고위 임원들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

    외환위기가 탄생한 배경

    “물론 법이나 강제 규정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결국 시장의 힘을 동원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가령 투자자들이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에 투자를 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외면한다면 오너나 CEO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국민연금이 3000억원 규모의 ‘사회적 책임 투자펀드’를 조성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이 펀드에 편입되려면 당연히 지배구조도 좋아야 한다.”

    이 센터의 고민은 코스피200 종목과 지배구조 우량 종목이 겹친다는 점. 따라서 기업 지배구조 지수의 ‘상품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뉴욕 증권거래소의 경우 S&P500 종목과 지배구조 우량 종목이 나름대로 분리된다. 과거 연구 결과를 보면 경기 하강 국면에선 지배구조 우량 종목의 주가 하락률이 주식시장 하락률보다 덜하다(반대로 주식시장이 폭등할 때는 시장 수익률보다 못하다)고 한다.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환경 경영이나 사회공헌, 지배구조 등을 함께 평가해 SRI(사회적 책임 투자) 지수를 만들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이 센터는 기업 지배구조 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하기 위해 2002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기업 지배구조 연구·평가·개선 지원이 이 센터의 3대 목표다.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업협회, 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 자산운용협회 등의 참여로 발족하게 됐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IMF 경제위기 이후의 일이다. 이를 계기로 회계 투명성, 투자자 보호,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광범위한 제도 개편이 이뤄졌기 때문. 그러나 여전히 질적인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이 센터가 탄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민간부문이 중심이 돼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다.

    “기관 투자가의 ‘주주 행동주의’ 도울 것”

    지배구조란 일반적으로 이사회와 감사, CEO, 주주 등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틀을 말한다. 여기엔 경영권을 누가 어떻게 행사하며 기업의 의사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시스템이 포함돼 있다.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통해 기업 실패를 방지하는 게 지배구조의 목표다.

    “원래 이 센터 이름을 기업지배구조평가원이라고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 등 경제단체의 반발이 심했다. 무엇보다 ‘평가’받는다는 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기업의 의견을 받아들여 현재 이름으로 출범했다. 세계적으로 지배구조 평가 업무를 맡고 있는 ‘비영리’ 법인은 없다고 알고 있다. 영리 목적으로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기관으로는 신용평가기관인 S&P의 자회사가 대표적이다.”

    임기 3년의 원장은 비상임으로, 1, 2대 원장은 기업 지배구조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중앙대 경영학부 정광선 교수와 고려대 경영대 남상구 교수가 각각 맡았다. 3대 원장은 현재 공석으로 올 7월 취임한 전영길 부원장이 대행하고 있다. 전 부원장은 1977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입사한 이후 감사실 부장, 총무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자본시장의 산 증인.

    이 센터의 가장 큰 사업은 바로 기업 지배구조 등급을 평가해 이를 해당 회사에 알리고 일반에 공개하는 일이다. 평가 대상은 ▲소액주주 보호 ▲이사회 운영 ▲공시(경영 투명성) ▲감사위원회 운영 ▲배당 5개 항목이다. 구체적인 평가 기준과 항목은 이 센터 산하 지배구조 개선위원회 및 지배구조 연구위원회에서 정한다.

    “평가 등급을 처음 발표한 2004년엔 등급 공개에 동의한 60개 기업만을 발표했다. 그만큼 반발이 심했다는 얘기다. 특히 경쟁 업체가 자기 기업보다 등급이 높은 경우 심하게 항의했다. 다음해엔 80여 기업으로 늘었다. 2006년엔 반발을 무릅쓰고 공개 범위를 5등급(양호)까지 확대했다. 지난해에 처음으로 발표 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6등급(보통)까지 공개했다.”

    전 부원장은 “내년부터는 안건 분석 서비스 사업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관투자가에게 특정 기업의 안건을 분석해 서비스함으로써 이들의 ‘주주 행동주의’에 도움을 주기 위한 차원이다.

    “얼마 전 한 제약회사에서 부자 간에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을 때 이 회사 주식을 소유한 기관투자가들이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양쪽에서 서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치열한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배구조지원개선센터에서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슈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했다면 이들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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