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오히려 진입장벽 쌓은 아파트 전자입찰 시장

신기술 벤처기업 적극 육성한다고?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입력2015-07-22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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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진입장벽 쌓은 아파트 전자입찰 시장
    대기업 주도 성장정책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 특히 신기술과 아이디어로 승부를 겨루는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국 경제에 미래가 있다는 게 대다수 경제전문가의 견해다. 김대중 정부 이래 역대 정부가 다양한 벤처기업 육성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올해부터 벤처기업육성법과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벤처기업을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정부가 신생 벤처기업을 배척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자입찰 관련 특허를 보유한 (주)삼빛원텍 박대원 대표의 하소연도 그런 사례다.

    전자입찰은 입찰 서류를 직접 제출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물품조달 또는 시설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입찰 방식이다. 서류입찰 방식보다 투명성, 공정성, 안전성, 편리성 등이 뛰어나 부정과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아파트 전자입찰 10조 시장

    박 대표는 2000년 4월 전자입찰 시스템 관련 특허를 출원하고 2002년 4월 특허 등록했다. 정부가 삼성SDS를 통해 개발한 전자입찰 시스템보다 1년 6개월 전에 특허 출원했고, 특허 등록은 2년 6개월이나 앞선다. 하지만 그동안 전자입찰은 주로 정부와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서만 활용됐기에, 정부가 개발한 ‘나라장터’나 원리가 같은 자체 전자입찰 시스템을 통해 진행해왔다. 그런 까닭에 박 대표의 특허기술은 사실상 사장(死藏)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박근혜 정부 들어 전자입찰 시대가 본격화했다. 부정·비리 근절과 공정성, 편리성을 위해 민간에서도 전자입찰을 적극 추진하게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올해 1월 1일부터 아파트 등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의 모든 물품조달, 시설공사는 전자입찰을 통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아파트 전자입찰 시장만 해도 10조 원대 규모로 추정된다. 앞으로 중소기업, 영농조합에까지 확대할 계획이니 그 규모는 훨씬 커질 전망이다.

    또한 전자입찰 시장을 민간에 개방했다. 정부는 먼저 아파트 전자입찰을 개방했다. 한국감정원에서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뿐만 아니라 민간 전자입찰회사도 아파트 전자입찰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게 한 것. 이에 따라 아파트 관리소는 물품조달이나 시설공사를 할 때 ‘K-apt’ 전자입찰 시스템이나 K-apt에 연동된 민간 전자입찰회사 시스템 중 한 곳을 선택해 전자입찰을 진행할 수 있다.

    K-apt 시스템은 나라장터 시스템과 기본 원리가 같다. 나라장터 시스템은 입찰 신청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가격을 투찰하면 이를 자동으로 암호화해 외부에서 입찰 가격을 볼 수 없게 한 뒤 개찰시간에 시스템 관리자(제3자)가 암호화한 입찰 가격을 보안키로 한꺼번에 푸는 방식이다. 즉 시스템 관리자가 입찰 가격을 관리한다.

    K-apt를 관리하는 한국감정원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K-apt 시스템 역시 투찰자들의 입찰가를 암호화한 후 개찰 시간에 시스템 관리자가 공인인증서를 사용해 암호화한 입찰 가격을 푸는 방식이었다. 보안키가 아닌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는 것만 다르다. 그는 “다른 민간 전자입찰업체들도 우리 시스템처럼 공인인증서를 활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개 든 전자입찰 비리

    보안키를 사용하든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든 외부에서 해킹이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투찰자들의 입찰 가격을 빼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보안키나 공인인증서를 관리하는 시스템 관리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투찰자들이 낸 입찰가를 미리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입찰 마감 전에 미리 보안키나 공인인증서로 열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장터 전자입찰 시스템의 입찰가격 사전 유출 가능성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다. 2005년 조달청 국정감사에서 박병석 의원은 “1년에 10억 원 이상 공사를 9차례나 낙찰받은 회사가 있는데, 이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느냐”며 의혹을 제기했고, 최경환 의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자입찰 시스템 조작이 가능하다면 국가적 큰 피해가 우려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공식적으로 문제 삼았다.

    올해 초, 나라장터 시스템과 같은 유형의 한전 전자입찰 시스템에서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한전KDN에 파견된 정보통신업체 직원이 가담한 일당이 한전KDN 전자입찰 시스템 서버에 접속해 낙찰가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10년 동안 83개 업체에 133건의 공사(계약금액 2709억 원)를 ‘100%’ 낙찰시켜주고, 134억 원의 뒷돈을 챙긴 게 검찰에 적발됐다. 모 공기업의 경우 수십억 원대 기념품을 전자입찰을 통해 납품받았는데 6년 연속 같은 회사가 낙찰받은 것으로 밝혀져 의혹을 키웠다.

    삼빛원텍 박대원 대표는 “보안키가 하나뿐인 정부의 전자입찰 시스템은 보안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내가 개발해 특허를 보유한 전자입찰 시스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가 보유한 특허는 보안키를 시스템 관리자가 아니라 투찰자가 가진 구조다. 개찰 시간이 돼 투찰자들이 모두 보안키를 입력해 암호를 풀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전체 입찰 가격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사전 유출 가능성이 없어 부정·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것. 투찰자들이 모두 보안키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가격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보안 기술에 자신이 있던 박 대표는 아파트 전자입찰 시장 개방을 누구보다 반기며 전자입찰 시스템 개발을 서둘렀다. 민간 전자입찰 회사가 아파트 전자입찰 영업을 하려면 K-apt와 연동돼야 한다. 입찰 공고도 K-apt 홈페이지에 연동돼 함께 올려야 하고, 입찰결과도 K-apt에 공시해야 한다.

    법적으로 아파트 전자입찰 시행일은 올해 1월 1일부터였다. 따라서 그 이전에 구체적인 시행지침이 확정, 공고돼야 하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박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날 K-apt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자입찰 내역을 보니 이미 민간업체 두 곳이 K-apt에 연동돼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K-apt에 연동하기 위해 5월 21일 오후 한국감정원에 연락했더니 ‘내일(5월 22일)쯤 공지가 올라가니 참조하라’고 하더라. 다음 날 확인해보니 5월 21일자로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민간 전자입찰 시스템 사업자 지정 신청 접수 알림 공지였다. 거기엔 ‘민간 전자입찰 시스템 사업자 지정 지침’ 문서가 첨부됐는데, 지정 지침 시행 일자는 4월 30일이었다.”

    시행 후 뒤늦게 시행 공고

    그는 사전 예고도 없이, 그것도 지정 지침 시행 일자보다 20여 일이나 지나서 공고문을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더구나 민간사업자 지정 신청 기간이 공고 다음 날인 5월 22일부터 31일까지로 일정도 촉박했다. 그는 “내가 문의하자 그제야 부랴부랴 공고문을 올린 게 아닌가 싶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지정 지침은 그야말로 내부 행정 지침일 뿐이다. 또한 지침을 정하는 과정에서 관련 업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련 업체 몇 곳으로부터 의견을 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 지정받은 두 곳으로부터 들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곳들이다. 모든 업체의 의견을 다 들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담당 공무원의 설명처럼 사업자 지정 지침은 행정규칙이기 때문에 미리 행정예고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엔 “행정규칙이라도 상위 법령이 행정기관에 구체적인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그 권한 행사나 절차에 관한 내용을 직접 규정하지 않고, 수임 행정기관이 행정규칙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면 대외구속력이 있는 법규명령의 효력을 갖는다”고 돼 있다. 법규명령은 행정예고를 해야 한다. 따라서 시행 전에 행정예고를 하고, 국민의 의견을 취합한 후 공고를 내고 시행하는 게 국민을 위한 열린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진입장벽 쌓은 아파트 전자입찰 시장
    ‘자본금 2억, 신용등급 B등급’

    박 대표는 사업자 지정 기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자본금 2억 원 이상, 기업신용평가 B등급 이상 업체로 자격을 제한했다. 자본금 2억 원 이상인 신생 벤처기업이 얼마나 되나. 전자입찰은 IT 분야다. IT는 자본금이 아니라 기술력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업종이다. 예를 들어 자본금 5000만 원인 회사가 뛰어난 전자입찰 관련 특허기술을 갖고 있어 기술보증기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해도 자본금은 그대로 5000만 원이라 전자입찰 시장 진입이 불가능하다.

    기업신용평가 B등급 이상도 그렇다. 실적이 없는 신생 벤처기업이 B등급 받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기준이라면 기존 전자입찰 업체들만 참여할 수 있고 신생기업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자격 자체가 안 된다. 이럴 거면 정부가 뭐하러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나. 벤처기업 육성 정책에 역행하는 행정처리다.”

    국토부가 만든 ‘규제영향분석서’를 보면 전자입찰 시스템처럼 보안성이 중요한 분야인 공인전자문서센터나 공인인증기관 지정 요건에 신용등급 제한은 없었다. 박 대표는 ‘최근 3년 이내 국세 3회 이상 체납이 없는 사업자’로 한정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성공한 벤처기업 대표들에게 물어보라. 첫 번째 창업으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보통 몇 번씩 망했다 오뚜기처럼 재기해 성공했다. 사업하다 망하면 국세를 체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국세를 체납한 적이 있는 사업자에게 자격을 주지 않는 건 이 시장에 벤처기업은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다. 국세청에 문의했더니 ‘국세를 체납해도 회사를 만들 수 있고, 회사도 운영할 수 있다’고 하더라. 보증이나 담보 등 직접적으로 돈을 거래하는 분야라면 신용에 문제가 있어 제한할 필요가 있겠지만, 전자입찰 시스템은 발주자와 입찰자를 연결해줄 뿐 중간에 돈이 오가는 게 아니다. 이런 기준을 설정하는 건 지나친 규제다.”

    이에 대해 국토부 담당자는 “사업 계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지정했다가 그 업체가 부도가 나 운영을 못한다든지, 시스템이 다운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결국 국토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신생 벤처기업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 안정적으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지속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설정한 것이다.”

    “의견 더 수렴하겠다”

    하지만 박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아파트 전자입찰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게 하려면 오히려 보안성 등 업체 시스템의 차별성과 우수성에 더 비중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장터처럼 관리자 보안키(공인인증서 포함)로 암호를 푸는 구조는 부정·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전 입찰 비리를 통해 확인됐다. 우리 것은 그보다 더 안전한 시스템이다. 관련 특허까지 취득했다. 그런 우리 회사조차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국토부 담당자는 “5월에 고시된 지정 지침이 최종안은 아니다. 현재 국토부에서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 민간 전자입찰 시스템 사업자를 지정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개정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내용에 대해 6월 11일부터 행정예고하고, 6월 18일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의견이 있으면 이 기간에 하면 된다. 의견을 취합해 8~9월 중 최종 지침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정 지침을 수정할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아파트 전자입찰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통과를 주도한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회가 2013년 주택법을 개정해 아파트 전자입찰을 의무화한 가장 큰 이유는 부정과 비리를 차단하는 깨끗한 시스템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당연히 전자입찰 시스템 운영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도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이 필요하다는 국토부 주장도 설득력이 있지만, 기술력 있는 영세업체의 진입 자체를 막는 ‘행정 안전 제일주의’도 문제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법안 발의자로서 국토부에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담당 국장으로부터 모든 걸 고려해서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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