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산업생산 증감률도 4월보다 0.6% 줄었다. 올 2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세다. 6월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수출 주력품목인 반도체(-7.9%), 자동차(-3.5%), 화학제품(-4.3%)의 하락폭이 컸다. 특히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4월보다 0.7%포인트 하락한 73.4%를 기록했고, 재고율은 6년 5개월 만에 최고치(127.3%)를 나타냈다.
통계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첫 확진 환자가 5월 20일 발생했지만,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6월에 본격화하면서 5월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메르스 이전부터 수출과 생산지표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경기가 회복하고 있다”던 정부의 진단은 ‘눈 가리고 아옹’이었을까.
정부가 호언장담하던 올해 경제성장률 3.3%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7월 9일 한국은행은 2.8%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의 1월, 4월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3.4%, 3.1%였다. 6개월 만에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6%포인트 추락했다. “정부의 경제 전망이 산업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CEO는 “기업이 시장을 분석하고 산업 동향을 파악할 때 기초 자료로 삼는 것이 정부의 경기 진단”이라며 “정부가 산업 현장과 괴리된 분석을 내놓으면 기업의 연간 생산계획도 어그러지고, 정부 신뢰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속이 타들어간다”
오전 6시 40분. 조식이 나올 무렵 마주 앉은 50대 CEO가 불쑥 말을 꺼냈다. 여행사를 운영한다는 그는 “속이 타들어간다”며 답답해했다.
“방한 일정을 잡아둔 중국, 필리핀 관광객들이 대부분 여행을 취소했다. 엔저 현상에 메르스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관광객 발걸음이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여행사의 연간 매출 규모는 7~8월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말 난감하다.”
그의 여행사를 통해 지난 6월 한국여행 상품을 예약한 외국인 관광객은 158명. 대부분 중국인인데, 이들 중 156명이 메르스 때문에 여행을 취소했다. 제주도 여행 상품을 예약한 2명은 9월로 여행 일정을 늦췄다. 예약 취소율은 98%.
하지만 그가 우려하는 건 메르스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고객이 줄고 장사가 안 돼 매출이 떨어지는 건 참고 버텨내면 되지만, 더 큰 문제는 메르스 여파로 발길을 끊은 외국인 관광객을 향후 다시 한국으로 유도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자금이 넉넉한 대규모 여행사는 반값 이벤트를 실시하거나 다른 산업과 연계한 패키지 상품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규모 여행사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 7~8월 성수기를 놓친 상황에서 무리하게 저가 상품을 마련할 경우 장기적으로 내상(內傷)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정부의 긴급자금 지원 방안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특히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여행자보험을 들어주는 정책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당장 외국인 관광객 신규 예약이 없는데, 여행자보험 혜택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지만, 이런 방안이 외국인 관광객을 다시 모으는 데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여행업협회에 따르면, 7~8월 여행을 목적으로 한국 패키지 관광상품을 예약한 외국인 관광객은 20만2541명. 전년 동기 대비 82% 감소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인이 가장 많이 줄었다. 지난해보다 84%(81만628명→13만2132명) 감소했다. 이래저래 타격을 입은 국내 여행업계가 내수경기 침체를 부를 가능성도 크다. 한국여행업협회가 추정하는 여행업계의 손실액은 1085억 원. 외국인 관광객이 국내에서 하는 쇼핑, 먹을거리와 엔터테인먼트에 지불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충격이 여행업계를 넘어 내수업종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15%가 ‘한계기업’
강연은 오전 7시가 넘어서 시작했다. 김한얼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강연 주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 파괴적 혁신이 해답’. 김 교수는 “과거엔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시장에서 쫓아낸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아니다”며 “파괴적인 혁신으로 백화점을 대체한 월마트의 사례처럼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넘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이 시내 A급 상권에 매장을 낸 데 비해 월마트는 땅값이 저렴한 변두리에 창고형 매장을 지었다. 그 결과 백화점에서 파는 것과 동일한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게 돼 약진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CEO들은 김 교수의 강연을 경청했지만 표정은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서울 구로구에 소프트웨어회사를 차린 청년 CEO는 “주로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하는데, 요즘 앱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데다, 소수의 앱이 시장을 지배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앱은 대기업 인수합병(M·A) 대상으로 거론된다”고 전했다.
3년차 CEO라는 그는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가 올리는 한 달 매출은 회사를 빠듯하게 운영해갈 수준이라고 한다. 사무실 임차료 내고, 직원 급여 주고, 영업비를 지출하고, 각종 유지비와 공과금을 내면 남는 게 없다. 그나마 사업 초창기니까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직원 급여일이 돌아오는 게 무섭다.
한국은행이 6월 30일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수익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 하락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2013년보다 0.4%포인트 떨어진 4.3%에 불과했다. 1000만 원어치를 팔면 수익은 43만 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익으로 이자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는 한계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에 못 미친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기준 15.2%(3295개)였다. 2009년에는 2698개(12.8%)였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15.3%로 대기업(14.8%)보다 높았다. 중소기업의 15%가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 도서관 시스템 개발업체 CEO는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2015년 경영환경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필사즉생(必死則生)’을 선정했다”며 “이순신 장군은 아니지만 ‘필사즉생’ 자세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 중소기업 CEO들의 절박한 심정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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