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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⑨

김동유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를 허물다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김동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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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의 예술은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처럼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이 정말 그려진 풍경인지 창을 통해 본 풍경인지 모를 만큼 경계가 모호한 그림 같은 것이다. 어느 것이 실제 바깥이고 어느 것이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림처럼 그의 그림은 어느 것이 그려진 것이고 어느 것이 바탕인지 모를 경계선상에 그림을 놓아둠으로써 혼란스럽게 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강요하거나 잘못 보고 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는 기세다.

이런 경향은 그가 2004년경 부지런히 그린 대나무 그림에서 나타난다. 사실 여기서도 대나무와 바탕 중 어느 것이 그려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하얀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씨라는 썰렁한 크리쉐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의 대나무 그림은 어느 것이 그려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바탕을 칠하다 보니 남은 것이 대나무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대나무를 그린 것이 아닌데 대나무가 그려진 셈이다. 그려진 것과 바탕 사이에는 혼돈만이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는 이중초상을 제작했다. 이중초상은 그를 대표하는 브랜드이지만 그의 전부는 아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그는 회화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에게 인물은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자 작품을 이루는 기본 단위다. 그리고 그려진 얼굴의 이미지는 어느 존재를 대신해 그를 상징하는 기호이기도 하다.

언어는 단독으로 사용되는 데 반해 기호는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 지어지면서 하나의 구조를 만든다. 그런 점에서 기호화됐다는 것은 실체 세계와 떨어져서 새로운 존재로서 재현되고 복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구조로 존재한다.

시뮬라크르 된 것들은 복제된 것이며 이렇게 복제된 것들이 또 다른 기호로서 시뮬라크르 한다는 점에서 김동유 작품은 매혹적이다. 복제가 거듭되면서 원본인 마릴린 먼로나 고흐, 그리고 케네디나 마오쩌둥은 역사상 위인이나 인기스타가 아니라 의미 없는 하나의 기호, 그림을 구성하는 단위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장자의 나비의 꿈과도 닿아 있다.



근원의 부재

우리는 섹시스타 이효리를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TV에서 재현된 그의 이미지만을 근거로 그녀를 단정 짓는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이미 고정된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정치가나 종교인, 영화배우 등은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일 뿐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사전적 의미의 절대적인 상징체로 받아들이는 일은 허구이자 허상이다. 나와 나의 의지나 판단과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기호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언제나 있는 존재를 표상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단지 그림만을 통해서 본다면 그 실체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에게 진실은 너무나 멀리 있고 또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그는 현실을 묘사하기보다는 현실, 즉 그림의 허구성을 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함으로써 그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바탕을 칠함으로써 대나무가 화면에 드러나듯 말이다.

그는 부재하는 근원을 탐구하기보다는 표면에 넘쳐나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대상을 중시한다. 외곽을 때림으로써 중심을 흔드는 전술을 구사한다. 게다가
김동유
丁俊模

1957년 서울 출생 중앙대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 석사 (미술학)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 국립 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덕수궁 미술관장 現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중앙대·고려대 강사 논문 : ‘미술품은 땅인가’ ‘제3의 미학, 새로운 출구’ ‘한국의 모던이즘, 모더니즘’ 등
그의 외곽을 때리는 수단인 망점 또는 픽셀이 디지털적인 속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작업을 통해 마티에르(matiere)가 넘쳐나는 단위 단위로 아날로그화하고 있는 점은 다소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회화에 인간의 살 냄새를 보탬으로써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다.

멀리서 보면 하나이고 가까이서 보면 다른 각각의 존재들은 개개의 속성보다는 큰 덩어리, 명분에 집착하는 우리에게 가까이 가서 보고 멀리 가서 보게 하는 노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라는 경계에 서서 김동유의 일면만을 보면서 그의 전체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신동아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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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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