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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인생은 짧아요, 혁명은 더 짧아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 글 · 사진 오동진|영화평론가

인생은 짧아요, 혁명은 더 짧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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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넘은 남자

쿠바 여행사가 짜놓은 마지막 저녁 일정은 대부분 클래식 오픈카를 타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가서 한바탕 신나게 노는 것으로 돼 있다. 결론적으로 충고를 하나 하자면 오픈카는 굳이 안 타도 된다. 일단 많이 비싸다. 1인당 쿠바 돈으로 70쿡(CUC), 우리 돈으로 8만 원이 든다. 아바나를 한 바퀴 도는, 그래서 그 정도면 돈이 아깝지 않게 주행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아바나 신시가지 베다도를 순회한 뒤 내시오날 호텔 안에 있는 클럽으로 안내한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오픈카는 매연이 문제다. 겉모습만 화려할 뿐 기능적으로는 진짜 ‘옛날식’이어서 승차감도 좋지 않다.

오픈카를 이용하든 아니면 다른 교통시설을 이용하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있자면 빔 벤더스의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영화 한 편이 지니는 위대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꿔 내고 개혁해내는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을 국가와 민족, 인종, 계급과 계층, 남녀노소의 차이 없이 하나로 만들어낸다. 영화 한 편은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궁극의 소통에 이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는 이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념비적인 평가를 받는다. 영화감독이 거장 소리를 듣는 것은 걸작 때문이다. 그 걸작은 찰나적인 영감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이 떠오를 때까지 수없는 고민과 번뇌가 뒤따랐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뇌우(雷雨)처럼 번쩍이는 생각은 비교적 젊을 때보다 인생의 이런저런 일을 거친 후에야 떠오를 때가 많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1999년 빔 벤더스는 54세였다. 사람은, 특히 남자는 50이 넘어야 세상을 제대로 보기 마련이다.

쿠바를 가면 모두들 이 클럽을 찾는 게 유행이 됐지만, 정작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얘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모두들 이 영화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너무 사랑해서일까.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가 결국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얘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

인생은 짧아요, 혁명은 더 짧아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영화를 정말 다 본 걸까. 그건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하도 얘기를 듣다 보니 언제부턴가 자신이 책을 읽은 것처럼 착각하게 되거나, 아니면 사실은 책을 안 읽었다는 걸 고백할 타이밍을 놓친 탓에 그냥 읽은 것처럼 넘어가는 것과 같은 걸까. 물론 모두들 영화의 줄거리는 꿰고 있는 듯 보였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은 미국의 음반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쿠바의 잊힌 재즈의 전설들, 그러니까 콤파이 세군도와 이브라힘 페레르, 루벤 곤잘레스를 찾아내 그들과 6일 만에 해낸 새 앨범 작업과 그들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담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까 얘기한 것처럼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정작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지니는 가치와 인식은 점점 희미해져간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1999년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빔 벤더스는 어쩌면 새로운 100년이 오는 것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전의 100년과 앞으로의 100년이 분절된 시대가 되지 않으려면 뭔가 예술적 가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으로써 삶은 계속된다는 것, 세상은 직선과 곡선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전작 ‘파리 텍사스’(1984)와 ‘베를린 천사의 시’(1987)를 이어가는 가장 적절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빔 벤더스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넘어서면서 세상에 대해 좀더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9·11사태 이후 미국을 횡단하는 두 남녀(삼촌과 조카)의 이야기를 그린 ‘랜드 오브 플렌티’(2004)가 그랬고, 30여 년 만에 아들을 찾아온 망나니 서부극 스타의 이야기 ‘돈 컴 노킹’(2005)’이 무엇보다 그랬으며, 피나 바우쉬 사후(死後) 그녀의 주변을 인터뷰하고 공연 리허설 장면을 3D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피나’(2011)를 통해서는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심오한 철학을 더욱 다져나가는 듯 느껴졌다. 빔 벤더스의 영화세계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갈린다.

영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위대함은, 혁명이 치열하다 한들 예술이 지니는 지속적인 끈기와 인내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끝내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사회적 혁명이 완수돼서가 아니라 예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가가 예수와도 같은 성인(聖人)의 대우를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 속 세군도처럼, 페레르처럼, 곤잘레스처럼 예술이, 예술가가 낮은 데에 임했을 때만이 비록 늙고 초라하더라도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휘황찬란한 척 진실로 곤궁한 삶을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 영화는 정치와 종교를 뛰어넘어 예술적 신념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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