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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음악의 힘, 하여간 믿어보세요!”

‘현(絃)의 전설’ 정·경·화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음악의 힘, 하여간 믿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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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0년의 꿈, 바흐 무반주曲 녹음
  • ● “바흐는 내 피와 살과 뼈”
  • ● “인생에서 터득한 것 담아 무의식적으로 연주”
  • ● 외할머니, 어머니의 代 이은 교육열
  • ● “음악 들려주는 게 하나님의 선물이자 내 즐거움”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입니다. 거의 60년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프로젝트인 바흐 무반주 작품 녹음을 실현하면서, 저는 지금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과업은 제 음악 여정에서 영원한 탐구였으며, 이제 제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해서 복귀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적인 일입니다. 인생의 지금 시점에서 정말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60년 넘게 헌신한 악기로 사랑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새 앨범 재킷에 수록된 정경화의 글 중에서



‘에베레스트’ 오른 女帝

청명한 가을, 살아 있는 전설 정경화(68)를 만나러 갔다. 1967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번트릿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래 ‘현(絃)의 여제’로 군림한 그는 2005년 현을 짚는 왼손 집게손가락을 다친 뒤로는 미국 줄리아드대 교수, 이화여대 석좌교수,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해왔다. 고요한 서울 구기동 빌라. 그의 둥지에 들어서자 소속사 관계자가 “선생님이 오전에 라디오 출연 때문에 연습을 못해 지금 하고 계신데 곧 나오실 것”이라고 일러줬다.

2001년 이후 15년 만에 새 앨범(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내놓은 정씨는 11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앞두고 있다. 소나타 3곡, 파르티타 3곡 등 6곡을 CD 2장에 담은 새 앨범은 연주시간만 2시간 2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바이올린만으로 바흐의 음악 세계를 재현해야 하는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비유된다.



따라서 이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는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 등지에서 바흐 무반주 전곡 순회연주도 할 예정이다. 내년 5월에는 레번트릿 콩쿠르가 열린 카네기홀 무대에 꼭 50년 만에 다시 올라 이 곡을 연주한다.

아늑한 거실. 한쪽 벽면은 김환기 화백의 그림으로, 맞은편 벽면은 물고기가 그려진 민화 병풍으로 채워졌다. 김 화백의 그림 옆에는 구형 BOSE 오디오와 작은 CD장, 빛바랜 금장 보면대가 놓여 있다. 거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랜드 피아노 밑에는 한아름이나 되는 백자 두 점이 눈에 띄고, 집안 곳곳에 가족의 옛 사진들이 있다.  

10여 분 지났을까. 연습실에서 나온 ‘전설’이 하이 톤으로 인사를 한다. “벌써 오셨어요? 오신 것도 몰랐네.” 제과점에서 사들고 간 빵을 명함과 함께 건네자 “아이고 고마워라. 가만있어봐, 이렇게 받을 수만은 없지” 하면서 곧장 주방으로 가더니 한과 꾸러미를 들고 온다. “자, 회사 분들과 같이 들어요.”

“어머니(이원숙 여사)의 책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동아일보사, 2005)를 읽고 왔다”고 했더니 여제는 “어머니가 내신 책이 두 권인데 한 권은 아주 오래전에 나온 거라 못 봤을 것”이라며 방으로 가서는 ‘너의 꿈을 펼쳐라’(김영사, 1990)를 꺼내와 쥐여줬다.

“생각날 때 바로바로 행동해야 해요, 안 그러면 잊어버리니까(웃음).”



peace, passsion, humanity

인터뷰엔 그의 애견 ‘요하네스’와 ‘클라라’도 함께했다. 물론,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와 그의 연인 클라라 슈만에게 빌려온 이름이다. 강아지들이 짖으면 아이 달래듯 했다. “냠냠 못 먹어서 그러지?” “자, 엄마 옆에 와 있자….”

▼ 유튜브에서 ‘내 영혼 바람 되어’(김효근 작곡) 연주를 듣고 팬이 됐습니다. 2001년 이후 13년 만에 발매한 디지털 싱글 음반(유니버설뮤직)에 담긴 곡이더군요.

“세월호 참사로 아파하던 대한민국에 바치는 헌정곡이에요. 세월호, 정말 너무나 가슴 아프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도 아들 둘 낳아 길렀으니…예쁜 아이들을 그렇게 보냈다는 게…너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그 곡은 2014년 5월 명동성당 치유음악회, 그리고 그해 안산 세월호 추모음악회에서 연주했어요.”

▼ 15년 만에 내놓은 이번 정규 앨범(워너클래식)의 의미도 각별할 것 같습니다.

“온 지구가 테러로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선 문화 르네상스가 생겨나야 합니다. 문화가 있어야 사회가 풍성해지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으니까. 솔리대리티(solidarity, 연대감) 있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겠어요? 9·11테러로 21세기를 시작했으니 이젠 평온을 되찾아야 해요. 바흐를 들어보세요. 그 속엔 피스(평화)밖에 없죠. 바흐는 아이를 20명 가까이 낳았어요. 그 많은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와중에 아이들과 아내가 죽으면서 말로 다 못할 아픔을 겪습니다. 그의 음악에 패션(열정)과 휴머니티(인류애)가 담긴 것도 그 때문이죠.”

▼ 음악의 힘?

“엄청나죠. 음악은 괴로움을 잊게 하고 행복감을 자극할 수 있어요. 예술엔 ‘성공’이란 말이 없습니다. 예술은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분야예요. 아름다움을 느낄 때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뒤에 있는 병풍 그림이 얼마나 퓨어(순수)해요. 새끼를 잉태한 잉어, 새끼들을 바라보는 잉어…이런 걸 보면 뭔가가 전해지지 않나요. 예술의 힘은 하여간, 믿어보세요. 의심하지 말고 느껴보세요.”

▼ ‘클래식은 특권층이 누리는 음악’이란 편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어코 레코딩을 한 거예요. 공연장에 안 가고 유튜브에만 들어가도 ‘바흐 샤콘’이라고 치면 바로 쫙 들을 수 있잖아요. 언제 어디서든 아이폰만 검색하면 되잖아요. 저만 해도 음악을 편히 듣게 된 건 아이폰을 갖고 난 뒤부터예요. 그렇게 듣다 보면 영혼을 흥미롭게 하는 음악을 만나게 됩니다. 만 프로(%) 확신해요.”


 “인생에서 터득한 것 담았다”

▼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세계 최고령 녹음’ 기록을 1년 경신했다고 들었습니다(이전 기록은 67세의 이다 헨델).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13세(1961년) 때 줄리아드예비학교에서 이반 갈라미언 선생님께 바흐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단 한 번도 바흐를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때부터 5년 동안 바흐 무반주 전곡 6곡을 트레이닝 시켰어요. 저도 제자들에게 바흐 무반주라는 큰 산을 꼭 넘으라고 말해요. 막상 바흐 음반이 나오니까 꿈인지 현실인지 실감이 안 나요. 바흐 무반주곡 녹음은 정말 오랜 꿈이었는데…. 바흐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 바흐의 어떤 점이 매력적입니까.

“바흐의 하모니는 영적이고 순수합니다. 인간성에 관한 모든 표현이 들어 있어요. 저는 바흐를 좀 더 자유롭게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흐를 준비하면서 특히 집중한 건 다양한 비브라토(떨림)를 구사하는 거였어요.”

▼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2005년 부상 후부터 2010년까지 은퇴했지만, 바이올린을 못했을 뿐 음악을 그만둔 적은 없어요. 그렇게 꿈꿔오던 바흐 무반주 6곡을 2012년 명동성당에서 2회로 나눠 연주했는데, 제 연주를 듣고 우는 분이 많았어요. 올 5월 8일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선 3000명이 이 곡에 숨죽여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바흐의 힘이 통한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2012년부터 4년간 레코딩 작업에 집중했는데, 손가락 통증이 오면 진통제도 먹었습니다.”

▼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니 어떻던가요.

“너무 황송하게 들려요. 내가 정말 저걸 했나 싶기도 하고. 갈라미언 선생님을 신으로 모시며 공부한 것, 그리고 오늘날 내 나름대로 연구해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 모두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바흐 파르티타 2번 샤콘의 폭발적인 필링을 제가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흥분되고 기적적인 일입니까. 손가락이 회복되면서 샤콘을 그렇게 연주하고 싶어했거든요. 바흐 자신도 무반주 전곡이 3000명 앞에서 연주될 거라곤 상상 못했을 겁니다.”



그 엄마에 그 딸, 또 그 딸

▼ 한창 힘 좋은 20대 때 녹음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테크닉만 익히고 무대에 쓱 나와서 한다? 난 그런 식으로 못해요. 1974년에 바흐 무반주 2곡을 녹음하다가 그만뒀어요. 내가 이걸 정말 제대로 소화해서 무대에서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하려고요. 스승으로부터 바흐라는 과제를 받은 후 바흐는 제 피와 살과 뼈가 되도록 지녀왔습니다. 인생에서 터득한 것들을 담아 연주했기에 곡을 들으면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 인생에서 터득한 걸 연주한다?  

“살면서 1980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5개월 사이에 3명이 떠났습니다. 아버지(정준채), 스승 갈라미언, 10년을 함께한 매니저(마이클 리스)…. 도무지 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바로 아래 동생(정명철)이 갑자기 숨을 거둔 게 17년 전(1999년)이에요. 2007년 엄마처럼 따르던 큰언니(정명소)가 위암으로 내 품에 안겨 떠나고, 어머니가 2011년에 돌아가시고…. 하도 많이 울어서 눈물이 싹 없어졌어요.”

▼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견뎠습니까.

“내가 살아 있는 이유를 신에게 끝없이 물었어요.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들어요. ‘내가 이 기가 막히게 위대한 작곡가의 심부름꾼이구나, 메신저구나.’ 드뷔시는 연주자에게 ‘내가 잉태한 애(작품)니까 네(연주가)가 잘 기르라’고 했다잖아요. 천재적인 작곡가의 음악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할 수준이 되려면 암만 노력해도 모자랐죠.”

▼ 칠순을 앞둔 나이에 녹음하는 것이 두렵진 않았나요.

“매일같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작업에 임했어요. 어머니도 67세 때인 1984년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한 69세 때부터 뉴욕주 한인교회에서 3년간 목회를 했어요. 전도사에게 설교를 맡길 법도 한데, 1년 주일 설교 52회 중 50회를 당신이 직접 했어요. 3년 동안 설교를 150회 한 겁니다. 그 후 73세 때 한국에서 세화음악재단을 만들고, 영 오케스트라를 7년 동안 운영했어요. 제가 힘든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건 어머니 덕분이에요. 어머니는 하루 20시간씩 일하면서도 자식들에게 편지를 10장씩 써 보내면서 함께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줬어요. 편지에서 에너지가 팍팍 느껴지니까 그걸 읽고 난 다음엔 팔딱팔딱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 어떤 얘기를 쓰셨길래….   

“그냥 뭐, 일상 얘기 이것저것. 얘는 너무 잘하고 있다, 얘는 어려움을 겪었다 등등인데, 결론적으로는 아주 긍정적인 리포트예요. 편지 마지막에는 ‘네가 녹음한 연주 테이프를 잘 듣고 있다’면서 용기를 팍팍 줬지요.”



“받을 수 있는 교육 다 받아”

▼ 6·25전쟁 때 피아노를 싣고 피란 가서 자식들에게 레슨을 받게 한 어머니뿐 아니라 외할머니의 열정도 대단했더군요. 어머니의 자서전에서 외할머니가 이화여전 가사과에 다니는 딸을 위해 재봉틀을 머리에 이고 산길을 넘어 몇 번이나 갖다줬다는 일화를 읽었습니다.

“외할머니는 글자도 모르는 분이 성경책을 외워서 줄줄 꿰셨대요. 저를 귀여워해서 여름엔 부채질하면서 재워주셨고요. 원래 제 이름이 어머니 이름의 ‘숙’, 외할머니 이름(김애화)의 ‘화’를 따 숙화였어요.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가 작명가에게 부탁해 아이들 이름을 바꿔 경화가 됐죠. 외할머니가 딸 둘 사이에 아들을 둘 뒀는데 아들들을 다 잃었대요. 외할아버지(이가순)가 독립운동 때문에 집안을 제대로 못 돌보셨는데도 큰딸은 의사, 작은딸(어머니)은 교사로 키우셨죠. 어머니는 이화여전 시절 피아노 연주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기절을 해서 공연을 못 했답니다. 어머니는 결단성이 빠른 분이라 그날 바로 피아노를 접었고요.

어머니가 식당 하시면서 번 돈은  모두 7남매의 교육비로 들어갔어요.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다 받은 것 같아요. 발레, 화성악, 피아노…. 여덟 살 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신 양해엽 선생님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셔서 저도 가겠다고 조르니까 이후에 불어 선생님을 붙여주시더군요.”

▼ 예체능 외에 국·영·수 같은 학과목도 따로 배웠습니까.

“그럼요. 우리 자랄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 아주 힘들었어요.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서 중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이었죠.

저도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밤새운 기억이 나요. 근데 뭐 공부가 되겠어요? (눈동자를 왼쪽, 오른쪽으로 굴리며 책 읽는 시늉을 하면서) 눈은 뜨고 있지만 글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거지, 하하.”


가장 마음 아픈 일

▼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찰싹 붙어서 강압적으로 코치하진 않았습니까.

“제 옆에 계신 적은 1967년 레번트릿 콩쿠르를 준비하던 3개월이 전부예요. 어머니는 자식들이 ‘싫다’고 하면 바로 그만두게 했어요. 연습량 체크도 안 했어요. 우리가 연습을 했다고 하면 그대로 믿어주시곤 책 선물이나 영화 관람 같은 대가를 주셨죠. 연습도 안 하고 대가를 받으면 찔리니까 결국은 하게 되더군요. 어머니가 통행금지가 풀리는 새벽에 지프  타고 나가셔서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받던 모습이 기억나요.

좋은 기회도 많이 만들어주셨죠. 제가 네 살 때 라디오 방송국에서 라이브로 노래 부르게 해주고, 해외에서 온 오케스트라를 무작정 찾아가 연주 실력을 점검받게 해주셨죠. 비행기표가 비싸니까 저희더러 입양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게 해서 외국에 보내시기도 하고요.”

▼ 두 아드님에게도 그런 어머니였나요.

“어머니와 달리 제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큰아이는 10대 때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사가 ‘아이들한테 공간을 주나, 엄마의 공간은 어디에 있나’ 묻더라고요. 스페이스는 무슨 스페이스. 내 스튜디오에 애들이 자전거 타고 다니면 잘한다 하고, 애들이 잠든 새벽에나 연주했다고 했죠. 상담사가 ‘엄마도, 아이들도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자식이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성장한다는 겁니다. 또한 아이들은 기본 바탕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다가도 제자리로 잘 돌아온다는 거예요.”

▼ 정말 잘 돌아왔나요.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제가 애들한테 ‘네가 정말 미칠 정도로 좋은 걸 찾으면 행복하다’고 일러줬다는 거예요. 근데 하루는 둘째가 ‘엄마, 난 엄마가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없을 것 같아’라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저는 재능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는데…. 급한 대로 ‘할아버지가 돼서도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걸 결국 찾게 된다’고 둘러댔는데, 지금 뉴욕에서 구글 다니면서 너무너무 행복해해요. 첫째도 시티그룹 부사장으로 열심히 살고요.”



神童의 무게

▼ 선생님은 바이올린이 왜 그렇게 좋았습니까.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게 6세 때인데, 피아노에 별 흥미를 못 느끼니까 어머니가 바이올린을 사주셨어요. 딱 2주 후에 초등학교 조회시간에 단상에서 연주했죠. 어머니가 교장선생님을 설득해 저를 올려 세운 건데,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듣는 게 으쓱하고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엄마랑 선생님들이 ‘어쩜 이리 감정이 좋으냐’며 칭찬을 하고…. 그러면서 음악이 점점 좋아졌어요.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죠.”

▼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가령 비발디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데요.

“작곡은 시도도 안 했어요. 저는 연주에 스페셜라이즈드(전문화)됐죠. 저는 여러 개는 못해요. 바이올린 하나 터득하는 데도 한평생이 모자랐는데. 곡 하나를 갖고 끝까지 길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하죠.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고 즐거움입니다.”

▼ 지금 뵈니까 참 편안해 보이는데요.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혹독하게 군 것이 후회되진 않습니까. 콩쿠르에서 1등을 해도 연주가 마음에 안 들면 벽에 머리를 박으며 괴로워했다고 들었습니다.

“젊을 때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때 그 고민이 불필요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 시간을 거쳤기에 지금의 내가 있겠죠. 살아오니까 10, 20, 30, 40, 50, 60대의 의미, 이런 게 보여요. 인생은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 같지 않나요?”



숨 끊어질 때까지 지킬 약속

▼ 젊은 시절엔 뭐가 어려웠습니까.

“신동(神童)이라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 숨도 쉬지 못하겠더라고요. 어릴 때는 신동이란 게 자부심의 원천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다르게 다가왔어요. 게다가 연주가란 직업이 너무나 외로운 거예요. 무대에서는 많은 갈채를 받지만, 텅 빈 호텔 방으로 돌아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으니까 처량한 거예요. 그렇다고 혼자 나가서 먹기는 싫고.

18세 때 미국 볼티모어에서 묵은, 그 호텔의 괴상한 벽지는 평생 잊을 수 없어요. 그 벽지를 보면서 고생한 생각이 나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바이올린에 미쳤으니까. 이게 내 인생인데 뭘 새로 합니까. 피지컬리(육체적으로) 몸을 울리는 바이올린이 제일 신비한데요.”

▼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저는 지금 신의 축복 덕에 살고 있어요. 음악을 나눠줄 능력을 하나님에게서 받았다면 이제 돌려줘야죠. 세계 투어에 나서는 것도 바흐 연주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니고 갈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에요. 제 공연이 자기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다는 관객을 만날 때마다 행복합니다. ‘스승에게 보답하겠다’는 약속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지킬 겁니다. 저를 통해서 그 기막힌 바흐의 세계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제 끝! 그만!”

인터뷰를 마친 뒤 ‘전설’은 급성 심정지로 사망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장례식에 갈 시간을 소속사 관계자와 상의했다. “인성도 좋고 실력도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갑자기 떠났다”고 말하는 거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만 해도 제가 무리라고 생각되는 선까지 플레이 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재능 많은 혁주는 너무 착해서 제안이 오면 거절을 못하고 다 응했나 봐요. 그러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성급하게 가지 말고 차근차근 가길 바랍니다.이렇게 허망하게 가면 무슨 소용입니까. 이 얘기를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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