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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정원식

고담준론에 빠져 이어진 38년 인연의 끈 이력, 화법, 제스처까지 닮아버린 師弟

  •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moon@plaza.snu.ac.kr

정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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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적성검사 개발 전문가

그 무렵 나는 공군장교로 근무하면서 저녁에 대학원 과목을 수강했는데, 근무처인 대방동 공군본부에서 관악 캠퍼스로 군복을 입은 채 등교하는 날이 많았다. 선생님은 그런 내게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힘들지는 않은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주 묻곤 하셨다. 그러고는 당신의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정 선생님도 육군 장교 신분으로 용두동 사범대를 1년 가까이 다닌 적이 있다. 그리고 6·25전쟁 통에 입대한 군대에서 하신 일이 바로 공군본부에서 당시 내가 맡고 있던 일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사병과 장교를 선발하고 분류하는 데 필요한 군대용 적성검사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선생님은 20년 전에 육군본부에서 그 일을 하셨고, 나는 20년 후에 공군본부에서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정 선생님은 한국의 군인 적성 및 자질검사 개발의 일등공신이자 유일한 전문가다. 6·25전쟁 중 육군본부의 특명을 받아, 미국 군사고문단에서 파견돼온 장교들과 더불어 그 검사를 직접 개발하셨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정 선생님의 이런 이야기가 그저 흔한 군대 생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금쪽 같은 조언이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일의 생생한 역사였기 때문이다.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가 군대 내에서 나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 데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던 상관이나 동료 장교들도 정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의 일부만 털어놓으면 나를 ‘꽤 많이 아는 친구’로 인정해줬던 것이다. 정 선생님은 이렇게 내 군대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 분이다.



“네가 간사를 맡아다오”

제대하고 대학원을 마친 후 세종대에서 약 2년간 전임강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81년 봄에 유학을 떠나서 1986년 봄에 돌아올 때까지 만 5년을 미국에 있었다. 이 기간이 아마도 정원식 선생님을 가장 오래도록 뵙지 못한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유학을 끝내고 귀국해서 미처 짐도 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이 틈나는 대로 연구실에 들르라는 전갈을 보내셨다. 며칠 후 시간을 내 관악산 연구실로 찾아뵈었다.

그때 선생님은 사회봉사직의 일환으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직을 겸하고 계셨는데, 윤리적 또는 교육적 관점에서 도서를 분류하는 모형이나 기준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 이미 저명 학자들로 연구진용을 짜놓은 상태였다. 그러고는 연구를 맡아서 추진할 젊은 간사를 찾고 있었는데, 나의 귀국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으시고는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타나질 않자, 마침내 사람을 시켜 날 부르신 것이었다. “네가 간사를 맡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나는 그때부터 연구진의 간사로 활동했다.

연구진의 첫 모임이 마침내 열렸다. 송복, 손봉호, 김윤식 등 쟁쟁한 교수들이 속속 나타나셨다. 정 선생님의 주재로 회의가 진행됐는데, 화기애애하면서도 진지하며 아카데믹한 논의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나는 간사에 불과했으므로 말할 위치도 못 됐지만, 말할 기회를 준다 해도 말할 수가 없었다. 이른바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며 감탄하기에 바쁜데, 어떻게 감히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정원식 선생님의 말솜씨는 익히 아는 바였지만, 학교강의나 대중강연을 통해서였지 동료학자들 사이의 학문적 대화를 통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대화에서 선생님은 말씀을 극히 절제하신다. 유려하게 술술 풀어가는 대중 강연 때와는 분명하게 다르다. 자신의 말은 줄이되, 참석자 모두에게 골고루 말할 기회를 배분하신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면, 아주 간략하게 그러나 핵심 내용을 자신의 말로 요약해서 확인 한 후에 다음 사람에게로 말 차례를 옮긴다. 사회자 또는 주재자로서 참석자 하나하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요약을 선생님은 놀라울 정도로 잘 해내신다.

이런 연구모임은 열 차례도 넘게 지속됐고, 내가 하는 일은 그날그날의 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연구가 목표로 하는 모형과 기준의 얼개를 고안하는 것이었다. 연구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여러 개의 나무 블록을 한 무더기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3차원 기준의 도서분류 모형 아이디어를 내 선생님께 보고드렸다. 나는 열심히 설명했는데, 선생님은 선뜻 이해한 표정이 아니셨다.

그렇게 미진한 채 보고를 끝내고 나서, 며칠 후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시더니 책상 위에 무언가를 쏟아 놓으셨다. 10개도 넘는 작은 나무 블록이었다. 내가 말씀드린 모형을 실제로 확인해보기 위해서 어디에선가 나무 블록을 구입해오신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내 눈앞에서 쌓아올리시면서, 세 가지 기준을 검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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