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정대세, 정동영 & 노무현

  • 입력2009-05-09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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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후보였던 정치인과 전직 대통령에 앞서 축구선수 얘기부터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축구선수의 이름은 정대세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다. 그의 별명은 ‘인민 루니’다.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처럼 저돌적인 공격 본능을 지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위의 3명 중 ‘말다운 말’로 치자면 그가 단연 으뜸이다.

    4월1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정대세는 거의 골을 넣을 뻔했다. 후반 초 정대세는 한국 수비수 둘을 따돌리고 헤딩슛을 했다. 공이 골라인을 넘기 직전 한국팀 문지기 이운재가 필사적으로 쳐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공이 골라인을 이미 넘어선 것 같기도 했다. 북한 측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우리라도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 측의 불만 표시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데 있다. 북한축구협회는 “경기 전날 2명의 문지기와 공격수 정대세 선수가 구토, 설사를 하면서 심한 머리아픔으로 침상에서 일어설 수 없는 사태가 빚어졌다. 의심할 바 없이 그 어떤 불량식품에 의한 고의적인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대세의 헤딩슛에 대해서는 심판이 “공이 상대편 골문선을 넘었지만 득점이 아니라고 혹심한 편심(편파 심판) 행위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결론은 “남한 정부의 반(反)공화국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해명까지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축구 경기를 두고 ‘반북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는 데야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말이란 말 같을 때에야 말이 되는 법이니까.

    그들의 말 같지 않은 말에 비한다면 정대세의 말은 말다운 말이다. 정대세는 “한국은 정말 강한 팀이었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한국 신문에 기고한 글에 “제 헤딩슛은 골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현장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은 이상 확실한 건 누구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팀 골키퍼 이운재 선수가 역시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생각도 듭니다”라고 썼다. 경기 전날 설사와 구토를 한 데 대해서는, 해외원정이 계속되면 몸 컨디션이 나빠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며 “근육 단련은 빈틈없이 했으나 앞으론 강인한 내장을 만드는 트레이닝도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군요”라고 했다.(한겨레신문 2009년 4월9일자)



    1984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이중 국적자’다. 대한민국 국적도 갖고 있고, 북한 국적도 갖고 있다. 그의 조부모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정대세는 조선학교에 다녔다. 그는 2006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북한이 일본에 패하는 걸 보고 북한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때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국적 포기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중 국적자’가 된 사연이다.

    정대세는 일본 프로축구팀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고 있다. 그가 북한축구대표팀 선수이면서도 북한축구 관계자들과는 달리 열린 마음으로 말다운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닫힌 체제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닫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정일 평양정권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든, 로켓을 발사하든 그들이 닫힌 체제에 갇혀 있는 한 ‘정대세의 조국’은 영영 슬픈 조국이지 않겠는가.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실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 한 구절이다. 정동영씨는 민주당이 4·29 전주 덕진 국회의원 재선거에 자신을 공천하지 않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고 했다. 13년간 몸담아왔던, 자신이 대선후보이기도 했던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적 스승인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어떤 경우에도 당이 깨지거나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지만 그는 당을 떠났다. “잠시 민주당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할 것”이라며.

    그런 정씨의 행태가 과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일까. 혼자서 가서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8개월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고통 받는 국민 곁에 서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제가 덕진에 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치에 입문한 15대 총선(1996년), 그리고 16대 총선 때 거기서 전국 최다득표를 했습니다. 지금 옛 선거구인 전주 덕진에서 재선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겁니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비판을 받을 각오를 하고 갑니다. 저를 정치인으로 키워준 모태(母胎) 지역 재선거를 통해 다시 원내에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그게 당과 국민을 위한 도리입니다.”(2009년 3월27일자 국민일보 인터뷰)

    정치인의 수사(修辭)는 늘 그렇듯이 ‘욕먹고 비판받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다. 그 진정성을 모두 허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개는 ‘욕먹고 비판받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가 진실에 가깝다. 민주당은 다른 후보를 전주 덕진에 공천했다. 하지만 우리네 지역연고 정서에 비춰볼 때 정동영의 당선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정세균(민주당 대표)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동영을 밀어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면 정동영이 고향사람들에게서 지지를 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터이다. 그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설마 뿌리칠 줄은 몰랐다. 내민 손이 부끄럽고 민망하다”고 했다. 그리고 전주로 내려갔다.

    “13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정치를 시작했는데 전주의 아들로서 다시 전주 시민 앞에 섰다. 제 마음은 상처 받은 아들이 돌아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심정이다. ‘어머니,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화려한 언변이다. 하지만 울림은 미약하다. 정대세의 말만 못하다. 왜일까? 교언영색(巧言令色)이기 때문이다. 남의 환심을 사려는 교묘한 말과 꾸미는 얼굴빛으로는 감동을 주기 어렵다. 정동영씨는 조급했던 것 같다. 손쉽게 금배지를 달 수 있는 기회가 오자 그는 더 기다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더 기다려야 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던 서울 동작을로 돌아가 무엇이 진정 고통 받는 국민의 곁에 있는 것인지 성찰하고 묵묵히 실천함으로써 지역을 뛰어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손쉬운 지름길을 택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은 손쉬운 지름길이 아니다.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이권 개입이나 인사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말했다. ‘노무현다운’ 말이었다. 2004년 3월에는 “좋은 학교 나오시고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이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형님인 노건평씨에게 인사청탁 명목으로 돈을 건넨 건설회사 사장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건설회사 사장은 자살했다. 충격이었으나, 대통령 친인척의 부패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009년 4월7일,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미리 사실을 밝힙니다. 지금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검찰의 조사에 응하여 진술할 것입니다. 그리고 응분의 법적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자신의 대통령 재임 중 부인 권양숙씨가(남편인 대통령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부탁해 100만달러를 빌려 빚 갚는 데 썼는데, 심부름했던 전 총무비서관이 죄를 뒤집어쓸까 걱정이라는 얘기다. 그는 조카사위가 500만달러를 받은 것은 퇴임 후에 알았고, 자신과는 무관한 투자성격의 돈이라고 해명했다.

    하루 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글을 올렸다. 전날의 ‘사과문’을 보고 일부 열성 지지자들이 (빚을 갚아주기 위한) 모금행사와 (위로하기 위한) 봉하 방문 등을 제안하자 그를 만류하고자 올린 글이었지만, 그는 핵심을 빠뜨리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프레임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지켜보자”고.

    4월12일, 세 번째 글을 올렸다. 박 회장이 자신의 요구로 100만달러를 전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박 회장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 참 구차하고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몰랐던 일은 몰랐다고 하기로 했다. 사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대세, 정동영 & 노무현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물론 ‘박연차와 검찰의 입’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 곧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검찰이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총체적 진실에의 접근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이 건건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궁색하고 낯 뜨겁다. ‘프레임’은 뭐고, ‘부담을 져야 할 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이미 ‘노무현의 도덕성’은 만신창이가 됐다. 사실을 지키기에 앞서 국민 앞에 ‘내가 아는 진실’은 뭔지를 밝혀야 한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진보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던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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