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던 자괴감, 가족의 힘으로 극복했다
‘오빠는 풍각쟁이’에 꽂힌 중학생 소녀
‘전국 트롯체전’서 ‘인간축음기’라는 별칭 얻어
데뷔 후 생계 위해 음식점 서빙, 물리치료사 ‘알바’ 병행
일 없어 허공 바라볼 때 가장 속상했다
심사 판정 문제 삼은 국민청원에 마음 무거워
직접 만든 유튜브 채널 구독자 6만 명 늘어 인기 실감
지난해 12월 ‘전국 트롯체전’을 통해 트로트 샛별로 떠오른 신미래. [지호영 기자]
그의 삶에 빛이 든 건 지난해 12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이하 ‘트전’)에 출연하면서다. ‘트전’은 그가 마지막으로 한자락 희망을 품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출연한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초반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데뷔 7년차 무명가수예요. 행사가 없어서 ‘알바(아르바이트)’로 물리치료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트로트 가수를 꿈꿨지만 지금은 노래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저를 알릴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절박한 심정이 담긴 첫 고백이 보는 이들의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면, 이어진 무대는 매회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선보인 지난해 12월 12일 방송에서 그는 “신미래의 노래로 물리치료를 받은 것 같다”는 평과 함께 8개 지역코치로부터 모두 별을 받아 ‘8도 올스타’로 등극했다. 진방남의 ‘꽃마차’라는 만요(漫謠·1930~40년대를 풍미한 유머러스한 가사의 풍자곡)를 부른 1월 9일 방송에서는 ‘인간 축음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래하는 음색이 1940년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와 비슷해서다.
결승 문턱에서 탈락했어도 감사해
지난 2월 종영한 KBS 경연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서 열창하는 신미래. [포켓돌스튜디오 제공]
- ‘트전’에 출연한 후 많은 것이 달라졌을 듯하다.
“사실 무명 시절이 길어지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차에 출연 기회가 왔다.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전했는데 예전과 다르게 많은 팬이 생기고 응원해주는 분도 많아졌다. 내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미래테레비’ 구독자 수도 2만 명에서 8만 명(4월 9일 기준)으로 6만 명 늘어났다. 출연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결승 문턱에서 탈락했을 땐 어떤 심정이었나.
“준결승에 오른 것만도 기대 이상의 성과였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었다. 그것만으로 너무나 감사했기에 결승에 가지 못하고 탈락했을 때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팬들이 많이 슬퍼하셔서 더 잘하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오빠는 풍각쟁이’에 꽂힌 중학생 소녀
- 편파 판정 논란이 있었다. 국민청원에까지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올랐다.“내 얘기가 국민청원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내 탈락 소식을 듣고 팬들과 시청자들이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거라 생각한다. 날 위해 마음을 써주신 점에 너무도 큰 감동을 받았다. 팬들이 어서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고 미래의 내일을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
그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1990년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줄곧 이곳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이 트로트 가수였다. 춘천 YMCA 청소년 가요제 대상, 춘천 소양강 처녀 가요제 금상 등 학창 시절 받은 상도 여러 개다. 2009년 한림성심대학교 물리치료과에 재학 중일 때는 TBS ‘제2회 대학생 트로트 가요제’에 나갔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그의 독특한 음색은 일반 대중가요보다 트로트와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꽃마차’나 ‘오빠는 풍각쟁이’ 같은 만요를 부를 땐 다시 듣고 싶을 만큼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만요는 그와 인연이 깊다. 그가 트로트 가수를 꿈꾸게 된 것도, 가요계에 데뷔한 것도 만요 덕분이다. 2013년 그는 ‘미라클 코리아’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21세기 만요 소녀’로 출연했다. 이때 그를 눈여겨보고 앨범을 내준 이가 바로 지금의 소속사 심플엔터 이선주 대표다.
- 음색이 독특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희소성이 있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타고난 창법인가.
“어릴 때는 이런 창법이 아니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오빠는 풍각쟁이’고, 만요를 즐겨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창법을 갖게 됐다.”
- 1990년생이 1940년대 유행하던 만요를 좋아하는 것이 신기하다.
“아빠의 음악적 취향 덕에 트로트풍의 노래가 친숙하다. 아빠가 나훈아 선생님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트로트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오빠는 풍각쟁이’를 듣고 그 노래에 꽂혔다.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만요를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만요를 부르는 가수의 독특한 음색도 자연스럽게 닮게 됐다.”
- 또래 친구들은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빠져 있을 때 아닌가.
“나도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런데 노래를 부를 땐 만요를 즐겼다.”
- 학창 시절 좋아한 아이돌 가수를 떠올린다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닐 땐 특정 가수를 팬이라고 자부할 만큼 좋아한 적은 없다. 요새는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 언제부터 가수를 꿈꿨나.
“중학교 때부터다. 트로트를 좋아해서 처음부터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었다.”
- 소녀 신미래는 어떤 아이였나.
“성격이 활달하거나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눈에 띄게 존재감이 있진 않았다. 얌전한 편이면서도 장난도 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 노래 실력이 좋은 걸 친구들은 몰랐나.
“앞에 나서서 노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노래방에 갔을 때 친구들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노래방 애창곡이 심수봉 선생님의 노래와 ‘오빠는 풍각쟁이’였다.”
생계 위해 음식점 서빙, 물리치료사 ‘알바’ 병행
- 가수를 꿈꾸면서 왜 방송연예 쪽이 아닌 물리치료를 전공했는지 궁금하다.“대학 진학을 앞두고 엄마한테 가수가 되고 싶다고 털어놨다. 엄마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하셨다. 그래서 내가 평소 관심을 뒀던 보건 계열을 선택하게 됐다. 물리치료사와 간호사 사이에서 고민하다 나와 더 잘 맞는 분야로 판단돼 물리치료과에 들어갔다.”
- 가수 연습생을 뽑는 오디션에 도전했을 법한데.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춘천에서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서울까지 자주 오갈 수 있는 여건도 아닌 데다 엄마는 내가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뒤 가수의 꿈을 실현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
- 2012년 대학 졸업 후 개인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했다고 들었다. 현 소속사 대표와는 어떻게 만났나.
“데뷔하기 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한 적이 있다. 대학에 다닐 때 참가했던 대학생 트로트 가요제 영상을 작가가 보고 연락을 했더라. 본선에 진출해 상을 받진 못했지만 목소리가 독특해서 인상이 깊었다고 했다. 또 ‘스타킹’ 출연이 계기가 돼 2013년 ‘미러클 코리아’에도 ‘만요소녀’라는 이름으로 나갔다. 거기서 ‘오빠는 풍각쟁이’를 불렀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지금 소속사 대표님이 연락을 해왔다. 그 덕분에 앨범을 내고 정식으로 가수가 될 수 있었다.”
- 가수의 꿈을 이뤘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처음에는 기쁜 환상에 부풀었다. 나도 곧 장윤정 선배님처럼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 무명 시절을 견디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나.
“일이 없어서 춘천 집 방 안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속상했다. ‘내가 많이 부족한가?’ 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느낌이랄까.”
- 데뷔 후에도 계속 알바를 했다고 들었다.
“용돈벌이라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일이고 꿈이었기에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지만 트로트 가수만 해서는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데뷔 후 춘천에서 지낼 땐 삼겹살구이집 같은 음식점에서 알바를 하고, 2017년 서울로 이사해서는 파트타임으로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 아닌가. 용돈이 부족했을 법한데.
“부족하면 덜 쓰면 된다. 그리고 물리치료가 시급이 세기 때문에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용돈 벌기에 좋았다. 서울로 이사한 것도 춘천에서 구하기 힘든 물리치료사 알바 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원룸텔에서 살았는데 숙박비를 내고도 용돈이 풍족할 만큼 벌었다. 돈을 모아 원룸으로 이사했다.”
-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자괴감이라 했다. 그런 감정을 견디고 극복하게 해준 힘이 뭔가.
“가족애가 아닌가 싶다. 내가 우울해하면 엄마는 치킨을 시켜주신다. 그것으로 위로와 격려를 대신하신다. 우울해하지 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분 전환하라는 나름의 처방전이다. 아빠는 그럴 때 ‘잘될 거야’라고 말씀해 주신다. 여동생은 되게 웃기다.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해 나를 많이 웃게 해준다.”
춘천 공지천, 서울 중랑천 걷기 좋아
신미래는 팬들과 소통 공간인 유튜브 채널 ‘미래테레비’ 방송을 다시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맞다. 2019년 ‘미래테레비’라는 유튜브 채널 ‘미래테레비’를 만들어 운영할 때 많은 분이 팬카페는 왜 없느냐고 궁금해하셨다. 동생이 그 얘기를 듣고 언니랑 팬들이 같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했으면 한다며 지난해 3월 ‘미래정’을 만들어줬다. 이름은 내가 직접 지었다. 미래와 정을 나누는 맛집 같은 공간이라는 의미다.”
- 팬카페를 자주 찾나.
“매일 들어간다. 팬들이 어떤지 궁금해서(웃음). 미래정 회원 수가 처음에는 30명밖에 안 됐다. ‘찐팬(진짜 팬)’들과 재미있게 노는 공간 같았다. 지금은 1600여 명으로 늘었다. ‘트전’ 효과다. 카페지기인 동생은 자주 찾지 않는다. 동생이 저보다 아홉 살 적다. 이제 막 취업해서 쉬는 날엔 놀러 다니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 ‘미래테레비’로도 팬들과 소통하나.
“커버송 영상을 최초 공개 형식으로 올린 다음 팬들과 실시간으로 채팅한다. 시간이 남을 때는 ‘미레테레비’에 공을 들인다. 방송할 영상을 직접 찍고 편집까지 다 한다. 커버송을 정하기 위해 흘러간 노래, 요즘 노래 가리지 않고 많이 찾아 듣는다. 여가 시간을 활용해 친구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노래방에 가기도 한다. 쉴 땐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 주량은 센 편인가.
“소주보다 맥주를 좋아한다. 맥주 두 잔이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주량이다. 원샷에 들이켜기보다 홀짝홀짝 마시는 것을 즐긴다.”
- 요즘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을 것 같다.
“식당에 가면 이모님들이 알아보시고 반겨주신다. 그런 반응이 감사하고 신기하다. 무대 위에 설 때처럼 풀 메이크업을 하지 않으면 알아보는 분이 많지 않다(웃음).”
-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
“건강을 위해 딱히 하는 건 없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자는 생활 패턴을 일이 없을 때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루 세 끼도 다 챙겨 먹는다. 아침엔 요거트에 과일, 점심에는 밥을 맛있게 먹고, 저녁엔 샐러드를 간단히 먹는다. 아침저녁을 가볍게 먹고 점심은 잘 챙겨 먹으려고 한다.
- 날씬한 몸매를 갖고 있다. 나름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밝힌다면.
“원래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을 좋아해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살이 금방 찐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헬스클럽에 다니는 건 아니고 걷기를 좋아해 하루 1시간 정도 걸으려고 노력한다.”
- 좋아하는 걷기 코스가 어딘가.
“춘천에서는 공지천, 서울에서는 중랑구 중랑천을 자주 찾는다. 둘 다 경치가 아름답고 걷기 길이 잘 조성돼 있다. 우울할 때 한 번씩 걷고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교’ 신봉자
- 가수가 안 됐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졸업 후 물리치료사로 취업해 한길을 가고 있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 정도 됐으니 작은 병원의 물리치료실장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
-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나 그런 존재가 있나.
“내게 나침반 같은 존재는 엄마아빠다. 많은 사람이 힘들 때 종교를 찾는다. 힘들 때 엄마아빠를 생각하면서 힘을 얻는다. 길을 잃고 헤맬 때 엄마에게 여쭤보면 방향을 가르쳐주신다. 엄마, 아빠가 항상 바른 길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잘 따른다. 그래서 내 종교는 ‘엄마교’다. 하하하.”
-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는 뭔가.
“긴 무명 생활 끝에 한줄기 빛 같은 ‘트전’ 출연 기회를 얻었다. 그 덕분에 많이 알려진 만큼 가늘고 길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가수가 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분들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해 매 순간 그 기회마다 최선을 다하는 가수가 되겠다.”
-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나.
“올해는 일주일에 하나씩 계속 일이 있으면 좋겠다. 계속 일이 있다는 건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유튜버로도 사랑받고 싶다. ‘트전’ 출연하느라 중단했던 ‘미래테레비’ 방송을 다시 시작하려고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신미래 #인간축음기 #신동아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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