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연한 주장과 내성적 성격의 공존
“샤이한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야인 시절 최대 관심은 외교·안보
“부동산 정책, 욕망에 물꼬 터줘야”
“우파, 아버지 아닌 어머니 마음 돼야”
“김종인, 영혼 갈아 넣어 방패 역할”
제21대 총선 약 3개월 뒤인 2020년 7월 8일 만난 오세훈 서울시장. 그는 이날 “총선 패배의 충격을 추스르느라 보름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오세훈은 10년간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과거와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이 궁금할 법한 대목이다. 기자는 2018년 11월부터 최근까지 그와 다섯 차례 인터뷰했다. 길게는 150분, 짧게는 40분간 마주 앉아 문답을 주고받았다. 근래 인터뷰는 재보선 선거운동 일정 탓에 서면으로 진행했다. 직접 겪은 경험에 더해, 오 시장과 가까운 인사들의 발언을 모아 그를 탐구했다.
달변(達辯)이되 다변(多辯)은 아닌
그는 달변(達辯)이다. 예시를 들어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쟁점을 벗어나는 답변은 좀체 하지 않는다. 경제·복지·안보에 대한 자기주장은 도드라지게 선연하다.그러나 다변(多辯)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내성적 면모가 엿보인다. 감성적 표현도 꺼린다. 대개 정치인들은 인터뷰 앞뒤로 의례적이나마 기자와 사담(私談)을 한다. 그는 오히려 인터뷰 내용과 관련한 수치가 담긴 자료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딱딱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으나, 달리 보면 효율적 소통 방식일 수 있다. 주된 업무에만 에너지를 쏟겠다는 생각이 읽혀서다. 한가로이 신변잡기나 하자고 인터뷰에 응한 게 아니라는 점을 그는 그렇게 표현한다.
그래서 그에게 흔히 붙는 말이 ‘샤이(shy)하다’거나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병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싫어도 그냥 ‘예, 예’ 하면서 만나는 걸 여의도에서는 정치적 스킨십이라 이야기하는데, 오 시장은 그런 걸 잘 하지 않는다”면서도 “대신 실용적 성향이라 일할 때 꼭 필요한 경우라면 오히려 계급장 떼고 소통한다”고 했다. 김 위원은 지난해 총선 때 서울 광진갑에 출마해 광진을에 출마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췄다.
이와 관련해선 몇 가지 일화가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과거 오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적이 있는 한 국회 보좌관은 이렇게 기억했다.
“선거 때 식당 앞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식당 안에서 밥 먹는 주민들과 눈이 마주쳤다. ‘식당에 들어가서 악수라도 한번 하고 가자’고 했더니 오 시장이 ‘식사하시는 데 불편하다’며 멀리서 인사만 하고 가자고 했다. 사실 예의가 바른 것이다.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태도이기도 하고.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다른 정치인은 식당에 들어가서 웃으며 어깨까지 주무른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4월 7일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4·7 재·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오 시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박찬구 전 서울시의원은 “오 시장의 샤이한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 전 시의원은 당내 경선 단계에서부터 후보 일정 수행을 맡았다. 지금도 오 시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이번 선거 때 보면 먼저 가서 손잡고 고개도 숙이는 등 적극적인 표현을 하는 모습이 많았다. 어르신이 계시면 가서 무릎도 꿇고, 젊은 유권자가 와서 사진 찍자고 하면 키 낮춰 눈높이도 맞췄다. 이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적극적으로 많이 바뀌셨고, 또 노력도 한다.”
2018년 11월에 만났을 때 오 시장은 “정치인들이 휴지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정점에만 있으면 안 보이는 게 있다”고 했다. 그가 정점에서 내려온 뒤 관심을 둔 분야가 외교·안보다. 이에 대해 박 전 시의원은 “(오 시장이) 그전에는 서울시에 있었으니 안보 쪽은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시장을 그만둔 뒤) 공부를 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안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2018~2019년 인터뷰에서 안보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했다. 문재인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과의 정상회담 이벤트에 부쩍 신경 쓰고 있을 시점이다. 오 시장은 “지금 좌파들처럼 핵 개발도 금기시하고, 미국 전술핵 재배치한다는 얘기에조차 ‘평화협정 국면에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반문하면 북한은 눈도 깜짝 않는다”면서 “전술핵을 갖다놓겠다는 얘기 정도는 나와야 중국과 북한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또 “상대방의 자비심에 의한 평화는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부실한 평화”라고도 했다.
그가 부동산시장을 보는 시각도 안보에 대한 시각과 묘하게 통한다. 낭만주의와 선의(善意)는 걷어내고, 행위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인간은 욕망의 존재다. 경제적 판단을 하는 국민은 1원이라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서 “그런 국민의 마음을 읽고 물꼬를 터주는 게 현명한 부동산 정책”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시장(市場)은 “이익을 추구하는 한 명 한 명의 경제주체로 이루어진 곳”이다. 또렷한 자유주의 경제철학이다.
2020년 서울 광진을에서의 총선 패배는 그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총선이 끝나고 약 3개월 뒤 만난 오 시장은 “패배의 충격을 추스르느라 보름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 말을 한 시점은 7월 8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한 채 발견되기 하루 전이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는 아예 선택지에 없었을 때다.
그는 정치적 돌파구로 연구소를 만들려고 했다. 그가 당초 구상한 연구소의 철학을 살피면 향후 서울 시정(市政)의 방향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 오 시장의 말을 들어보자. 언뜻 보면 민선 4·5기(2006~2011년) 서울시장 시절에 대한 자기성찰처럼 읽히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경영해 왔습니다. 아버지들은 좌절할 때가 많죠. 밖에 나가 피땀 흘려 돈 벌다 보면 자존심을 팔 때도 많잖아요. 못 먹는 술 먹어가면서 가장(家長) 노릇하려 노력해 가계를 일궜는데 아이들은 아빠 볼 때 뜨악하단 말이에요. ‘아버지는 술만 먹고 다녀. 가족에 애틋한 마음을 표시한 적도 없어.’ 저는 우파정당이 그런 아버지 처지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됐어요. 그 방법을 연구하려 해요. 연구소 이름을 가칭 ‘미래10’이라고 지었어요. 10년 내의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정책 측면에서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연구하는 곳이라고 정의하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격노한 김종인, 吳 최대 조력자로
4·7 재보선에서 그의 최대 조력자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상투어를 곱씹어 보게 하는 사례다.오 시장은 1월 7일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힘) 입당이나 합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서울시장 출마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하며 이른바 ‘조건부’ 출마 선언을 했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이 “세상에 그런 출마 선언이 어디 있느냐”며 격노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뒤끝이 없는 사람이고, 또 중도로 외연 확장이 가능한 후보가 그래도 오세훈이라는 점을 곧 직시했다”고 했다. 민심을 읽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닌 김 전 위원장이 오 시장의 본선 경쟁력을 주목한 셈이다.
상황은 마냥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은 4월 12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둔) 3월 17일 오 시장이 나를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 오 시장이 ‘중진들 압력과 압박이 너무 심해서 견디기 힘들다’라고 했다. 자포자기 상태더라”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1월 22일 기자와 만나서도 “몇몇 사람이 안철수를 부추겨 나를 좀 어떻게 흔들어보려고 한다”고 했다. 내년 대선을 고려해 야권 단일화의 모멘텀으로 ‘안철수 서울시장’을 구상한 비박(非朴) 중진 그룹과 자강론을 내세운 김 전 위원장이 오 시장을 고리로 정면충돌한 것이다.
앞선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의 뚝심이 두 가지 국면에서 오 시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과의 경선 과정과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 과정이다.
“김 전 위원장이 오 시장만 전면적으로 지원한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 시장이 충분히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었다. 경선 때 나경원 후보 측에서 100% 여론조사 말고 당원 투표를 반영해야 한다고 계속 요구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이 뚝심 있게 룰(rule)을 유지했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경선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 시장이 당내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마포포럼’을 비롯해 중진들이 오세훈·안철수 두 사람을 두고 계속 장난칠 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도 김 전 위원장이 어떻게든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생각해 안 대표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영혼까지 갈아 넣어 방패 역할을 했다.”
文의 레임덕, 吳의 귀환
돌아보면 오 시장은 야당일 때 존재감이 컸다. 그는 4·7 재보선에서 정권 심판 바람을 타고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18.32%포인트 차로 이겼다. 2006년 지방선거 때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을 발판으로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를 33.74%포인트 차로 눌렀다. 지난해 총선 때 서울 광진을에서 고민정 민주당 후보에게 졌지만, 험지에서 선전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반면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지방선거 때는 ‘현직 프리미엄’에도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0.6%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치른 2016년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에 나가 정세균 후보(현 국무총리)에게 12.9%포인트 차로 패했다.지도자는 시대가 만든다. 오 시장은 언어의 정치에 능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의 언어는 날카롭고 명징해졌다. 그가 야당일 때 민심을 얻은 이유는 그의 언어가 권력의 심장에 비수를 겨눈 데 있다. 어쩌면 집권여당의 권력이 빠지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그에게는 진짜 시험대일지도 모른다. 언어가 아닌 행정력으로 ‘귀환의 이유’를 증명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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