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닫혔던 北·中 국경 5월 개방 전망
北 대북 사업가들에 “이르면 4월 세관 개방”
평북 신의주세관까지 물자 배송 허용 예정
北 김정은, 中 시진핑 친서로 우호 과시
中, 코로나19 유행 중에도 방호복 생산·수출로 북한 경제 지원
北·中 국경 개방 후 대북제재 위반 더욱 노골화될 듯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연결하는 ‘조중친선다리’. 북한과 중국은 최근 국경 재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도 중국과 북한 간 교류가 완전히 끊겼던 건 아니다. 중국 내에는 여전히 북한노동자를 고용한 봉제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코로나19 의료진 방호복 생산에 주력했다. 중국은 이들 공장에서 만든 방호복과 북한 내 공장 생산물량 등에 ‘중국산’ 마크를 달고 세계로 수출해왔다(신동아 2020년 10월호 ‘北노동자 제조 ‘코로나 방호복’, 중국산으로 유럽·북미 수출’ 참고). 그런데 3월부터 방호복 주문이 줄어 이들 공장에서 일반 의류 제품 주문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北, 대북 사업가들에게 ‘세관 개방’ 통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해 7월 27일 소개한 ‘국경연선 방역사업’ 관련 사진. [노동신문=뉴스1]
“5월 1일부터 평북 신의주세관을 연다. 준비가 잘 되면 4월 중순이 될 수도 있다. 인부가 물건을 싣고 와 신의주세관에 내려놓고 돌아가면 된다. 들여올 물건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둬라.”
지난해 초 코로나19 유행 시작 뒤 북한은 중국과 맞닿은 국경을 폐쇄했다. 양측 간 공식적인 인적 물적 왕래는 끊겼다. 암암리에 밀수만 이뤄졌다. 중국 당국은 “밀수도 때려잡는다”고 큰소리치며 단속을 펼치곤 했지만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적절하게’ 단속하며 북한 경제 숨통을 터줬다. 지난해 코로나19 진원지로 세계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중국은 올해 고강도 대응으로 코로나19 확산세를 분명하게 꺾었다. (신동아 2월호 ‘美 거주 中 사업가가 경험한 ‘구멍 숭숭’ K방역의 민낯’참조) 이를 계기로 북·중 교류가 다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사업가 A씨는 “중국에서 공장 인부가 트럭에 물건을 싣고 가 신의주세관에 내려놓고 돌아온다. 그러면 세관에서 물자 소독 등 방역 작업을 한 뒤 목적지로 배송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중국인이 물건을 싣고 북한 세관을 통과한 뒤 평양과 나선특구 등에 있는 공장 내부까지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북한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외부 바이러스 유입을 최대한 막고자 중국인 왕래 범위를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전파 위험은 줄이면서 경제 활동은 장려하려는 조치다.
북한이 봉쇄 조치 완화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3월부터로 보인다. 3월 3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제14기 13차 전원회의를 열어 ‘수입물자 소독법’을 채택했다. 북한 매체는 이 법에 대해 “국경 통과지점에서 수입 물자 소독과 관련한 제도·질서를 엄격히 세워 국가 안전을 지키고 인민 생명을 철저히 보호한다. 수입 물자의 소독 절차·방법, 소독 질서를 어긴 행위에 따르는 처벌내용 등을 규제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물자 소독 절차 및 방법을 제도화한 것이다.
‘수입물자 소독법’ 채택 이후 북·중 정상 구두친서
그로부터 19일 뒤인 3월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구두 친서를 주고받았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적대 세력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두 공산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자. 적대 세력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 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서방세계가 홍콩과 신장(新疆) 인권 문제로 중국을 계속 압박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또 “올해는 중국 공산당 창건 100돌과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대한 조약체결 60돌을 맞이하는 해로 북·중 친선 관계가 시대적 요구에 맞게 승화·발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과도 칭찬했다.조선중앙통신은 시 주석 친서 내용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며 지역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라며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나타냈다. 이어 “새로운 형세 아래서 북한 동지들과 손잡고 노력함으로써 (중략) 두 나라 인민에게 좀 더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대북 경제 지원 의사를 비친 부분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리룡남 신임 중국 주재 북한 대사가 부임하자마자 3월 22일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을 만나 양국 지도자의 구두 친서를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리룡남 대사는 북한의 전 무역상(장관급)으로 대표적인 ‘무역통’이다. 북한 외무성은 2월 19일 주중대사를 지재룡에서 리룡남으로 교체한다고 밝혔다. 앞서 1월 열린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통역원을 지낸 ‘중국통’ 김성남을 당 국제부장에 임명했다. 이처럼 북한이 올해 들어 김성남 당 국제부장과 리룡남 주중 대사를 잇달아 임명한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구두친서를 주고받은 직후 중국 정부는 국제 사회에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거듭 촉구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월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제재 조치, 특히 민생 관련 규정을 조정할 것을 여러 차례 호소했다”면서 “제재 완화는 북한 민생 상황을 개선하고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조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中, 방호복 생산·수출로 북한 경제 지원
지난해 5월 촬영한 중국 단둥 봉제공장. 북한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생산한 코로나19 방호복은 세계로 팔려나갔다. [김승재 제공]
해당 기고문을 접한 영국 일간 가디언지 기자가 필자에게 연락이 왔다. 가디언지 역시 유사한 이슈를 장기간 탐사 취재 중이라며 필자 기사에 실린 여러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가디언지는 지난해 11월 20일 탐사 보도 결과물을 내놨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처하려고 중국으로부터 전신 보호복 수십만 벌을 수입했다. 중국 단둥의 여러 공장에서 생산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공장에서는 각각 수백 명의 북한 노동자가 ‘현대판 노예’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들 공장과 거래하며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필리핀, 미얀마 등도 북한 노동자가 생산에 참여한 보호 장비를 수입했다.”
필자는 북한 노동자가 만든 방호복이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수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디언지는 더 나아가 아시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수출된 사실까지 파악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북한 노동자 손으로 만든 제품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중 국경 열리면 대북제재 위반 더욱 노골화될 듯
이처럼 코로나19 특수 상황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1년 남짓 폭주하는 방호복 주문 생산에 주력했다. 하지만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3월부터 주문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다시 일감을 찾고자 공장 관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거에 해오던 일반 의류 제품 주문을 따내려 사업가들을 접촉하고 있다. 북한 인력을 300명 정도 고용한 중국 단둥 한 공장 관계자 역시 새로운 주문을 찾으려 대북 사업가들에게 연락했다. 그는 “단둥에서는 그동안 엄청난 물량의 방호복을 생산해왔는데, 이제 더는 주문이 오지 않는다. 어떤 주문이라도 좋으니 해 달라. 생산하겠다”라고 말했다.방호복이든 일반 의류든 중국산 제품 생산에 북한 노동자가 가담하는 행위는 모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와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75호에는 “북한은 자국 영토로부터 또는 자국민에 의해 섬유 물품을 직·간접적으로 공급·판매·이전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는 북한을 원산지로 하는지에 관계없이 북한으로부터 섬유 물품을 조달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를 2019년 12월 22일까지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2021년 4월 현재에도 여전히 상당수 북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단둥은 물론 지린(吉林)성 투먼(圖們) 등 북한 접경 지역 곳곳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봉제공장이 성업 중이다.
북한 및 중국에서 북한 국적 노동자가 의류 봉제품을 만든 뒤 원산지를 속여 해외로 판매하는 행위는 미국 행정명령 13810 위반이기도 하다. 행정명령 13810은 지금까지 나온 대북제재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으로, 위반 시 금융거래 금지와 미국 내 재산 몰수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북한 노동자가 만든 방호복이 세계로 공급되는 현실이니, 유엔 안보리 결의나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 조치가 모두 유명무실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리면 대북제재 위반 행위가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패권 경쟁하는 美·中, 밀착하는 北·中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앞줄 오른쪽부터)이 4월 2일(현지 시간) 미국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왼쪽). 4월 3일 중국 푸젠성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외교부 제공, 뉴시스]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가 끝나자 곧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회담에서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양국의 발전 방안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방안을 논의했다. 회담 이후 정 장관은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가급적 조기에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회담이 끝난 후 중국이 공개한 발표문에는 시 주석 방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중국은 대신 “양국이 코로나19 백신 및 백신 여권과 관련해 협력하기로 했다. 한국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축하하고 중국의 해외동포 백신 접종 계획을 지지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 측 발표에는 없는 내용이다. 중국의 해외동포 백신 접종 계획은 중국산 백신을 국내로 도입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런 가운데 동아일보가 4월 2일 북·중 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해 눈길을 끌었다. 해당 기사 주요 내용은 이렇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방한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북·중 정상회담 개최를 준비 중인 정황을 전하며 이는 북·미 대화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같은 해 3월과 5월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진 전례를 상기시키며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파악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정의용 장관은 블링컨 장관에게 중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존재라고 밝혔다.”
그런데 현 단계에서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국 백악관의 젠 사키 대변인은 3월 29일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의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 준비돼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김 위원장과 만나는 것이 포함되는가”하는 기자 질문에 “바이든의 접근방식은 매우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아무 조건 없는 정상 간 만남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5월부터 북·중 국경 재개방을 통지한 북한은 4월 초에는 평양에서 출발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하는 고려항공 항공편 운항을 공지했다. 실제로 항공기를 띄우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북·중 항공노선 재개를 준비하는 차원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온다. 3월과 4월 북한과 중국 곳곳에서 밀착 조짐이 뚜렷하게 포착되는 반면 북·미 관계는 북한의 거친 언사와 미국의 냉담한 반응 등을 볼 때 경색 국면인 게 분명하다. 게다가 북한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들며 7월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도쿄올림픽에서 남·북·미·일 4자 간 대화를 통한 ‘한반도 데탕트(긴장완화)’를 이룰 것을 꿈꿨던 우리 정부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북한의 외면 속에 우리 정부는 미·중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채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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