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익 가차 없이 부딪치는 사각 링
약해 보이면 더 함부로 대하는 불편한 진실
부당한 외국 압력에 저항하는 게 진정한 지도자
“‘죽창가’ 부르는 靑 수석 나오지 않을 것”
여느 국가정책도 마찬가지이지만 외교정책도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 국내 정책과 달리 외교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일방이 마음대로 결정하기도, 궤도수정을 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현 정부가 사실상 무효화했으면서 아직도 ‘공식 합의’로 남아 있다고 인정하는 어정쩡한 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외교정책에서 중대한 궤도수정을 하면 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의 궤도수정으로 손해를 보는 상대방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손실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외교 목표와 전략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이념 간극이 큰 우리 사회에서는 어려운 과제이지만, 한국호(號)가 가야 할 항로에서 객관적 외교 좌표를 세우는 시도는 지속돼야 한다.
‘부상하는 중국’과 한국의 좌표
2017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가 중국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중국은 필요하면 언제든 폭력적으로 힘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에 대해 중국이 거칠게 보복 조치를 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 영토에 대한 야심도 숨기지 않는다. 1996년부터 시작된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협상에서 중국은 국토의 크기와 해안의 길이를 반영해 해양의 경계를 나눠야 한다는 ‘놀라운 주장’을 하고 있다. EEZ를 정할 때 양국이 주장하는 EEZ가 겹치면 겹치는 부분 ‘중간선’을 택해 경계를 확정하는 게 관례이지만 중국은 전혀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공 방위를 위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KADIZ)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는 것도 그 사례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가 강력해지고 있는 것은 악몽이다.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아직은 미국에 밀린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결정적 차이는 없다. 중국은 언제든지 우리를 ‘해코지’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엄청난 힘을 가진 권위주의 국가가 국민의 배타적 민족주의까지 조장·이용하고 있어 어디로 그 공격성이 튈지 예상하기 어렵다. 한복, 김치 등 우리의 문화 자산마저 엿보는 정도다.
우리의 딜레마는 이렇게 위험한 이웃이 경제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점이다. 안보에는 위협인데 경제적으로는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국가이다 보니 결정이 쉽지 않다.
외교 사안의 결정 기준은 당연히 ‘국익’이다. 철저하게 국익이 확보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국익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은 데 있다. 특히 국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안보’와 ‘경제적 실익’ 간 선택은 쉽지 않다. 사드 사태에서 보듯이 둘 다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안보를 위해 사드 도입은 당연하지만, 중국의 경제 보복도 아프다.
필자는 2004년 오스트리아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담당했다. 당시 이란 핵이 국제적 문제로 처음 대두했는데, 북한 핵 문제를 안고 있던 우리로서는 이란 핵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대사가 상당히 강한 원칙적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정부는 이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건설 입찰 참여를 배제해 버렸다. 우리 건설업체들이 외교부에 몰려와 항의했고, 결국 외교부는 이란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당시에 외교차관이 주오스트리아 대사에게 전화해 한마디 했다.
“니가 흑기사가? 와 그리 쓸데없이 나대노?” (두 사람이 통화할 때 마침 필자는 대사 바로 옆에 있었는데, 전화기 넘어 들려오던 차관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두 사람은 고교 동기였다). ‘안보 원칙’과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외교부 본부는 실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차관과 대사 둘 다 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경륜 있는 전문 외교관들 간에도 국익에 대한 견해차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결정이 어려울 때에는 상황을 단순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게 좋다. 그런 측면에서 또 다른 국익 요소인 ‘가치’가 실효적인 기준이 된다. 민주주의, 인권 등 우리가 중시하는 가치는 가장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국익 요소다. 판단이 어려운 문제는 가치를 기준으로 결정하면 실수 가능성이 줄어든다. 미·중 가운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가치가 가장 중요한 좌표가 돼야 한다.
韓美동맹이 두 번째 좌표인 이유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3월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외교·국방 장관 공동기자회견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로서는 미·중 중 한 국가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도록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미·중 간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미·중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3월 31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기자 브리핑 발언)라고 되뇔 수만은 없다. 노회한 외교전문가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우리는 더욱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로서는 정말 괴로운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선택과 관련해 생각나는 사례가 하나 있다.
10여 년 전 미국의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하원의원 선거에서 우리 동포단체들이 특정 후보를 지원키로 결정하고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내가 한인회장에게 “양쪽에 모금액을 나눠주면 양쪽 모두 좋아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한인회장의 답볍은 시사점이 많았다.
“우리가 한쪽만 지원하면 선거 직후에 양쪽 모두 인사를 온다. 지원해 주지 않은 쪽은 ‘다음부터는 자기를 지원해 달라’고, 지원받은 쪽은 ‘감사하다’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양쪽 모두 지원하면 둘 다 우리를 무시한다. 어차피 모금액의 절반만 확보하는 것이니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쪽만 지원하면 그 자체가 양쪽 모두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가 된다. 이와 같이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랜 기간 선거를 겪은 동포들의 지혜다.
미·중 간 선택은 후보 선택보다는 복잡한 문제다.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지만 중대한 손실을 입힐 힘이 있다. 미·중 간에는 갈등이 많지만 서로 필요한 부분도 있어서 관계가 단순치 않다. 그러나 선택을 하지 않는 게 우리의 이익을 보전하는 방법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단호하게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일시적인 손실이 두려워 결정을 미루다 보면 양쪽 모두로부터 무시당한다.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대신 무시를 당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소프트파워 활용…립서비스도 아끼지 말라”
다음으로 중요한 좌표는 중국과의 ‘무난한 관계’다.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협이다. 중국과 척지는 것은 손실이 너무 많다. 가능한 대로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서로 간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정부 인사들, 국민들, 전문가들, 경제인들 간 최대한 교류하고 친분을 쌓아야 한다. 우리의 소프트파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이므로 ‘립서비스’도 아낄 필요가 없다.문제는 우리가 가치와 안보를 기준으로 결정을 하면 그것은 거의 언제나 한미동맹 강화가 되고, 중국은 이를 적대시 조치로 보고 ‘조자룡 헌 창 쓰듯’ 보복을 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이 문제는 미·중 패권 경쟁과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 탓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외교적 기술’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 4개국 안보협의체) 등 반(反)중국 그룹에 가입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사전정지 작업이 필요하다. 쿼드 안에서도 가능하면 미·중 간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이를 중국에 설명하는 등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에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더해 주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오히려 대중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반도체같이 중국이 우리에게 의존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우월적 지위를 지켜야 하고, 새로운 전략적 기술 분야도 발굴해야 한다. 중국이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일본의 기술력이 중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버티려면 경제력 등 기본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우리가 부득이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면, 중국의 압력에 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약해 보이면 더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의 사드 압력에 대해 우리가 2017년에 ‘3불(不)’(사드 추가 배치, 한미 군사동맹,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 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합의)을 내준 것은 ‘하책’이었다. 한 정부의 고심은 이해하지만, 안보의 근본을 건드리는 조치를 약속해 준 것은 적정선을 넘은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상대의 압박에 결연히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 부당한 외국의 압력에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다음 중대한 좌표는 일본과의 관계다. 일본과는 ‘전면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우리에게 이미 상수(常數)이므로, 일본과의 협력관계 구축은 어쩌면 가장 시급한 조치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 제일주의’는 미국 내에서 여전히 강고히 살아 있다. 미국이 언제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고립된 성으로 틀어박힐지 모른다. 게다가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혹은 우월한 힘을 가지게 된다면 중국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겠지만, 그러기에 중국은 우리에게 너무 위험한 나라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와 ‘세력균형’은 동서고금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국제관계 전략이다. 중국이라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해 중국을 제어할 만한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과거 역사 때문에 우리에게 일본은 영 내키지 않는 나라이지만, 지금의 국제관계는 우리가 과거사에 연연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국제관계는 국가이익이 가차 없이 부딪치는 사각의 링이다. 이것이 수천 년간 변함없는 국제관계의 본질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히 계산적이어야 한다. 나와 내 가족, 우리 국민 모두의 안전과 재산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나라를 무시하면 링 위에서 난타를 당하게 된다. 다행히 일본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경제적 이익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용한 파트너다. 일본과 각을 세우던 현 정부도 근래에는 관계를 개선하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링에서 살아남기 위한, 괴롭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이벤트를 만들기 위한 얄팍한 시도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북한문제 ‘힘 빼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우리가 햇볕정책을 쓰든 압박정책을 쓰든 상관없이 오로지 체제보전을 위해 핵개발에 매진해 왔다. 지금까지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게 무슨 도움이 됐나. 우리가 아무리 용을 써도 북한은 정해진 길을 간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을 상대하듯 북한도 상호주의로 대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용하다. 그래야 북한도 쓸데없는 기대를 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빈도가 차츰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효과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이 우리를 테스트하기 위해 도발해 오겠지만 견뎌내야 한다. 질병이 낫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명현반응일 뿐이다.
북한이 여러모로 우리에게 특별한 나라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민족이면서 주적이고, 인도적 지원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상호주의와 달리 북한에는 추가적인 고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을 특별하게 대우하면서도 우리의 힘을 빼기 위해서는, 북한을 대우하는 기준을 만들어두고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이 ‘라인’을 최대한 지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핵과 무관하게 일정한 수준의 인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 대한 선의와 관계 개선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안보를 위협하는 북측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한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 필요하면 북한의 제재 강도도 높여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외교도 결국은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 아닌가. 이러한 기준을 계속 지키면 북한도 차츰 내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
좌표 설정을 위한 공감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힘 빼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북핵은 우리 민족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므로 마지막까지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 청와대와 그 주변 몇몇 인사뿐이다. 북한의 핵 포기를 기대하고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온몸에 힘이 들어간 모습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오히려 북핵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대비해 나가는 게 정답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자체의 핵무장을 완전히 배제하면 안 된다. 여차하면 우리도 부득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무언의 제스처를 보이고, 국민들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시켜나가야 한다. 꼭 핵을 가져야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결연한 자세를 유지해야 주변 강대국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들과 협상하면서 하나라도 더 얻어낼 수 있다.이념이나 정파적 이익과 무관하게 우리의 외교적 목표와 좌표를 설정하는 것은 국제관계에 의해 절대적 영향을 받는 국가에는 필수다. 조금이라도 좌표 설정에 위한 공감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청와대에서 ‘죽창가’를 부르는 수석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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