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최대한 객관적 기준으로 공시가격 책정”
서초구 “시세보다 높은 공시가격 나왔다”
제주도 “같은 동 공시가격 라인별로 오르고 내려”
정수연 제주검증센터장 “국토부, 조사 산정 훈령 부정”
권대중 교수 “주택조사의 전문성, 투명성 높여야”
심교언 교수 “잘못된 가격, 저소득층에 더 큰 타격”
조은희 서초구청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4월 5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에 세종시, 서울 송파구, 노원구 등 3개 지자체는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의견서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세종시는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평균 70.68% 올랐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대 상승폭이다. 노원구와 송파구는 각기 34.66%, 19.22%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는 “국토부의 공시가격 현장 조사와 산정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이의신청 기간 마지막 날인 4월 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산정한 공시가격에 오류가 많다”며 여러 사례를 증거로 내놨다.
원희룡 지사는 “제주공시가격검증센터에서 조사한 결과, 제주도 공동주택 7채 중 1채가 공시가격 오류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류가 저가의 서민주택에 집중돼 서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은희 구청장은 “정부의 불공정하고 불명확한 깜깜이 공시가격은 세금이 아닌 벌금”이라며 “당장 서초구에서만 아무런 소득이 없는 105명의 어르신이 공시가격 급등으로 기초연금대상자에서 탈락하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공시가격 산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공시가격 부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뭘까. 서초구와 제주도의 공시가격 검증 결과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서초구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높다”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단지. [뉴스1]
서초구는 3월 19일 감정평가사와 부동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부동산 공시가격 검증단’(이하 검증단)을 출범하고 관내 공동주택 12만5294호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된 공동주택 4000호 가운데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90% 이상인 곳이 208호(약 4.8%), 100% 이상은 136호(약 3%)로 파악됐다. 서초구 검증단은 “신규 아파트 또는 규모가 작은 아파트의 경우 거래 사례가 적어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국토부의 현실화 평균치 로드맵보다 아주 높게 산정됐다”며 서초동 A아파트와 우면동 B아파트를 예로 들었다.
검증단에 따르면 A아파트(80.52㎡)는 지난해 준공됐다. 대로변에 자리한 역세권 주상복합아파트다. A아파트의 지난해 거래가격은 12억6000만 원, 국토부가 산정한 공시가격은 15억3800만 원이어서 현실화율이 122.1%에 달한다. B아파트(51.89㎡)는 2013년에 준공됐다. 서초구가 조사한 이 아파트의 지난해 거래가격은 5억7100만 원인데 공시가격이 6억7600만 원으로 산정돼 현실화율이 118.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주택에 해당하는 연립이나 다세대주택 중에도 공시가격이 100% 이상 급등한 집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방배동 A다세대주택은 공시가격이 지난해 1억8600만 원에서 올해 3억7500만 원으로 101.6% 올랐다. 서초동 B연립은 지난해 4억7700만 원에서 올해 11억2800만 원으로 136.5%의 상승률을 보였다. 서초구는 “그동안 거래가 뜸하던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이 지난해 일시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그 가격이 공시가격에 반영된 탓”이라고 분석했다.
서초구 검증단 관계자는 “서초구 공동주택의 평균 가격상승률이 13.53%”라면서 “이를 3배 이상 초과한 주택이 3101호인데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이나 연립 같은 서민주택”이라고 밝혔다. 공시가격 급등으로 올해 서초구 기초연금 대상자 1426명 중 105명(7.5%)이 자격을 잃게 된다.
서초구에 따르면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역전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준공연도가 비슷하고 면적(84.95㎡)이 같은 우면동 LH 5단지 임대아파트와 인근에 자리한 서초힐스 아파트가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LH 5단지의 공시가격이 전년보다 53.9% 올라 10억1600만 원을 기록했다. 서초힐스는 공시가격이 그 절반 수준인 26.9% 상승해 9억82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제주도 “공시가격은 고무줄”
올해 제주도 단독주택 공시가격 산정에 기준이 된 표준주택(왼쪽). 펜션에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적용한 경우. [제주도 공시가격검증센터 제공]
제주검증센터는 “공시가격 오류가 빌라, 소형, 저가의 서민주택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A빌라의 공시가격은 지난해 1400만 원에서 올해 1600만 원으로 14.3% 상승했다. B주택은 지난해 1840만 원에서 올해 2260만 원으로 22.8% 올랐다. C빌라는 지난해 2040만 원에서 올해 2420만 원으로 18.6%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아무런 개발 호재도 없는 지역에 위치해 있고 서민들이 사는 주택임에도 공시가격이 급격히 오른 사례들이다.
D공동주택은 지난해 거래가 2건이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거래가 성사된 맨 꼭대기 6층의 두 집만 공시가격 상승률이 각각 29.6%, 12.1%로 더 많이 올랐다. 소형 평형인 601호(46.85㎡)가 602호(80.23㎡)보다 2배 이상 높은 상승률이 적용된 점도 눈에 띈다. 나머지 층은 모두 전년 대비 공시가격 상승률이 11.7%로 동일했다. 원희룡 지사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집값 잡는 보유세 개혁’이 아니라 ‘서민 잡는 보유세 개혁’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주검증센터의 조사를 통해 총 11개의 공동주택이 주택이 아닌 숙박시설로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펜션 등 숙박시설로 영업 중임에도 공동주택으로 과세된 곳도 있었다.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인 정수연 제주검증센터장은 “이는 현장에 가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수년간 공동주택 공시가격으로 공시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한국부동산원의 현장 조사 부실은 오랜 기간 지속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제주검증센터는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의 공시가격 산정 기준인 도내 표준주택에 대한 정밀 검증 결과도 발표했다. 제주도에 있는 표준주택 4778호 가운데 약 10%에 해당하는 439곳을 점검한 결과 47곳이 요건에 맞지 않았다. 폐가(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훼손이 심각한 집)나 빈집(사람이 살지 않아 전기가 끊긴 집), 무허가건물, 절까지 표준주택에 포함돼 있었다. 정수연 센터장은 “표준주택에 대한 이해도 없이 현장 조사가 얼마나 부실하게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사례”고 꼬집었다. 정 센터장은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부세는 물론이고 건강보험료나 기초연금 등 다수의 세금과 조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표준주택 관리는 물론 한국부동산원 조사자의 현장 조사와 산정이 원칙대로 공정하고 성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토부는 “서초구와 제주도가 제기한 오류에 오류가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초구에서 제시한 LH 5단지는 이미 2011년에 분양된 토지임대부분양주택”이라며 “현재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시세도 형성된 아파트를 일반 임대주택인 것처럼 설명한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서초동 A아파트와 우면동 B아파트도 서초구가 밝힌 바와 달리 적정 수준의 시세를 고려할 때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70%대라고 주장했다. 국토부의 전언은 이렇다.
“A아파트는 지난해 10월 1건이 거래됐다. 첫 거래이자 마지막 거래된 가격이 12억6000만 원이다. 주변 아파트 거래가와 차이가 많이 났다. 해당 단지의 전세가도 11억 원 정도에 형성된 점을 고려할 때 12억6000만 원을 적정 시세로 보기 어려웠다. 비슷한 유형을 근처에서 찾다가 800m 떨어져 있는 역세권 주상복합 아파트의 시세를 참고했다. 그곳은 59㎡ 규모의 거래가격이 17억 원이었다. 이건 그보다 큰 80.52㎡ 규모여서 보수적으로 판단해 시세를 19억~20억 원으로 잡았다. B아파트의 경우는 임대아파트를 입주자 등에게 분양 전환한 사례로 실제 시세는 10억 원 이상으로 형성돼 있다.”
국토부 “오류 주장에 오류 있다”
국토부는 “제주도와 서초구에서 공시가격이 급등한 주택이 대부분 서민주택이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서초구 공동주택 중 공시가격이 3억 원 이하인 주택의 71%는 공시가격 변동률이 10% 이하”라는 게 이유였다. 또 “제주도의 경우 공시가격이 3억 원 이하인 주택 52.8%가 공시가격이 하락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나머지 47.2%의 제주 주택 공시가격은 상승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공시가격 상승폭이 100%를 넘는 서민주택이 다수 존재한다”는 서초구의 주장을 부인할 만한 근거로도 미흡해 보인다.국토부 관계자는 “제주도 공동주택의 같은 동에서 라인별로 공시가격이 차이가 난 것은 평형이나 선호도, 개별 특성을 두루 고려해 시세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제주도의 여러 숙박시설에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책정한 사안과 관련해 “공동주택으로 허가받은 건물을 불법으로 숙박시설로 사용하더라도 공동주택으로 공시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지자체는 주택이 불법적으로 숙박시설로 사용되는지 여부를 관리 감독해 허가받은 용도로 사용되도록 시정명령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 빈집 목록 관리도 지자체의 몫이다. 게다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조사를 담당하는 한국부동산원은 매년 공시가격 조사 과정에서 각 지자체에 표준주택 목록을 공유하고 주택이 아닌 경우 수정이나 삭제하도록 요청한다. 현장 조사는 가격을 조사하고 산정하기 위한 것이다. 폐가, 숙박시설 등을 건축물대장이나 과세대장에서 삭제하는 등의 행정 업무는 영역 밖의 일이다.”
이에 대해 정수연 제주검증센터장은 “국토부가 국토부 스스로 만든 공동주택 조사산정 업무요령과 훈령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토부가 발간한 2021년 공동주택 조사산정 업무요령 27페이지를 보면 “건축물대장과 실제 조사 현황이 다르면 공시대장에서 제외하라”고 적혀 있다. 이는 건축물대장에 공동주택인데 현장 조사해 보니 펜션이면 공동주택 공시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 센터장은 “현장조사자의 역할은 공시 대상이 있는 현장에 가서 먼저 조사한 후 그걸 바탕으로 가격을 산정하는 것”이라며 “무허가건물이나 주택이 아닌 건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현장 조사가 잘못되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국민 개개인에게 미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주 표준주택 가운데 빈집이 전체의 0.38%(18호)가 있다”며 “제주 전체 단독주택 중 빈집이 0.5%(515호)여서 대표성을 갖기 위해 일부러 넣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센터장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표준주택은 대표성·중용성·안정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산정, 지방 이양도 좋은 선택지
일각에서는 한국부동산원에 공시가격 평가를 일임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가 평가하게 하면서 왜 공시가격은 감정평가사가 아닌 한국부동산원에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조사자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소해야 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국토부의 해명은 이렇다.“한국부동산원은 국내 최고의 주택감정평가 전문인력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 이보다 더 전문성이 높은 기관은 없다. 우리는 공시업무에 대한 교육과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현장 조사와 가격 산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한국부동산원은 통계전문기관이기 때문에 각종 시세 정보와 주택가격 동향으로 대표되는 가격통계데이터도 축적하고 있다.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를 무시하고 조사기관을 바꾸는 비효율적인 선택은 정부가 해선 안 될 일이다.”
권대중 교수는 “조은희 구청장이나 원희룡 지사의 요구처럼 공시가격 평가를 지방에 이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조사 인원을 늘리거나 감정평가협회로 이관하는 게 비용 문제로 힘들다면 차라리 전문성 강화 등 제도 정비를 조건으로 지방에 이양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공동주택은 층별, 위치별, 향별, 인테리어에 따라 효용가치가 달라 일률적 기준을 적용하면 공시가격 산정이 공정하지도 않고 정확할 수도 없다. 주변 여건에 따라 조망권도 달라진다. 전문성이 없으면 평가에 오차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전문성을 강화하거나 평가 기법을 바꾸거나 평가 인원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안 그러면 이런 문제와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가격이 미치는 영향이 가볍지 않기 때문에 저소득층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며 “제주도 같은 지방에서는 5000만 원짜리 집이 7000만 원이 돼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공시가격이 급격히 올라 조세부담률이 지나치게 높아진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 교수는 “집값이 올랐다고 당장 소득이 늘어난 것이 아님에도 재산세, 종부세, 건보료 같은 세금과 조세도 껑충 뛰어 가정에서 체감하는 세금 부담이 엄청나게 커졌다”고 전했다. 그는 “소득은 1% 늘어났는데 세금은 수십% 늘어나게 하는 건 정말 잘못된 것”이라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바꾸고, 산정 방식을 세부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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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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