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호

고졸 vs 명문대생, 계급장 떼고 맞짱 뜨는 프로그래머의 세계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2021-05-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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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로 돌아가도 대학에 안 가겠다”

    • 유명 IT 기업의 고졸 프로그래머들

    • 개발자 품귀 현상에 학벌보다는 실력 선호

    • 코딩 테스트, 오픈소스 기여도…공정한 경쟁

    • 대학 IT 교육의 실효성 논쟁도

    최근 IT업계에 개발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IT업계뿐만 아니라 금융·유통업계도 개발자 채용에 열을 올리면서다.
 [GettyImage]

    최근 IT업계에 개발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IT업계뿐만 아니라 금융·유통업계도 개발자 채용에 열을 올리면서다. [GettyImage]

    “저는 열여덟 살로 돌아가도 대학에 가지 않고 코딩을 할 겁니다.”

    최희재(가명·24) 씨는 유명 IT(정보기술) 기업에 다니는 프로그래머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코딩을 처음 접하며 흥미를 느낀 최씨는 컴퓨터 특성화고교에 진학했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채용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첫 직장을 구했다. 이곳에서 1년 3개월을 일하다 군에 입대했다.

    그는 제대 후 현재 다니는 회사의 채용 전환형 인턴 공고에 지원했다. 채용 면접장에는 230명이 모였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졸업한 지원자와 외국계 IT기업 재직 경력이 있는 지원자도 있었다. 채용 과정에서 회사는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코딩 테스트와 두 번의 심층면접을 봤다. 최종 합격한 최씨는 두 달간의 인턴 과정을 거쳐 정규직이 됐다. 현재 연봉은 세전 기준 6000만 원이다.

    윤현승(가명·26) 씨는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때 처음 코딩을 접했다. 그는 국내 명문 국제고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3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 제대 이후 대학을 중퇴했다. “IT업계가 학력보다 실력을 중시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라는 게 윤씨가 밝힌 중퇴의 이유다.

    윤씨는 중퇴 뒤 곧바로 회사에 취직했다. 초봉은 세전 4500만 원. 채용 과정에서 회사는 윤씨가 친구들과 제작한 게임 애플리케이션(앱)과 오픈소스(open source·자신이 만든 소스 코드를 저장하고 공유) 기여도를 높이 평가했다. 요즘도 그는 다른 회사로부터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이직 제안을 받는다고 한다. 윤씨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다니는 출중한 개발자에게 CTO(최고기술책임자) 직급을 제안해 스카우트하는 사례는 IT 업계에서 흔하다”고 말했다.



    학벌, 학력 보지 않고 실무 역량 평가

    개발자 사이에서 “프로그래머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격언처럼 통한다. [GettyImage]

    개발자 사이에서 “프로그래머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격언처럼 통한다. [GettyImage]

    한국고등교육개발원이 지난 1월 14일 발표한 ‘교육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68.5%다. 이 통계에 따르면 앞서의 최씨와 윤씨는 상대적 소수, 그러니까 31.5%에 속한다.

    두 사람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취직에 성공한 데는 IT업계의 개발자 품귀 현상이 한몫했다. 최근 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 등 일명 ‘네카라쿠배’로 불리는 기업들이 개발자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토스, 쏘카, 마켓컬리, 당근마켓 같은 중견 스타트업도 영입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비단 IT업계뿐만 아니라 금융과 유통업계에서도 IT 직군의 중요성을 인식해 개발자 채용에 힘쓰고 있다. 한 스타트업 인사담당자는 “지금 업계에 개발자는 많지만 일 잘하는 개발자는 귀하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학벌, 학력까지 보면 선택지가 크게 제한된다”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프로그래머 선발 과정도 고졸 프로그래머 등장의 요소 중 하나다. 핀테크 기업 토스에 다니는 김재민(29) 씨는 “IT업계는 특성상 채용 과정에서 다른 업계에 비해 바로 실무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며 “최근에는 서류 전형 과정을 블라인드 전형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생략하고 코딩 테스트부터 보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대학에 가지 않고 18세부터 커리어를 쌓은 11년차 개발자다. 채용 과정에 직접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도 있다.

    김씨에 따르면 코딩 테스트는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시험이다. 쉽게 말해 회사가 지원자에게 수학 문제를 내주는 격이다. 코딩 테스트는 지원자의 기본 코딩 소양과 문제 해결 능력을 판단하는 지표 구실을 한다. 다른 실무 역량 평가 기준은 오픈소스다. 오픈소스는 개발자들이 온라인에 자신이 만든 소스 코드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곳이다. 소스 코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코드 또는 코드 묶음을 뜻한다. 오픈소스에 올라간 코드는 누구나 조회가 가능하고 또 자유로이 쓸 수 있다. 이에 2차 창작이나 상업적 사용에도 열려 있다.

    대부분 프로그래머는 오픈소스에 프로필을 만들고 자신이 사용한 코드를 공유한다. 프로그래머 업계는 이와 같은 집단지성 기여도를 높게 평가한다. 김씨는 “전에 다닌 한 회사는 오픈소스에 내가 공유한 코드를 보고 입사 제의를 했다”며 “오픈소스는 개발 이력이 모두 공개돼 있어 프로그래머의 코딩 역량과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간판’에 얽매이지 않는 투명한 평가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뜻하기도 한다. 윤현승 씨는 “개발자 사이에서 ‘프로그래머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격언처럼 통한다”며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라고 했다.

    노동시장은 구인자와 구직자 사이에 노동력 서비스에 대한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다. 구인자가 인재 선발 과정에서 학력을 보는 것은 학교만큼 구직자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제공해 주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 모델을 이용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구직자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많은 반면 구인자는 구직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둘 간 정보의 양은 비대칭 상태다. 이때 흔히 ‘명문대’라고 하는 정보는 구직자의 성실함과 명석함을 어느 정도 담보한다. 스펜스 교수는 학력이 구직자가 구인자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말한다. IT업계는 코딩 테스트와 오픈소스 포트폴리오로 스펜스 교수가 설명한 정보 비대칭 상태를 극복했다. 실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형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기에 학력이라는 신호에 의존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독학이냐 대학이냐!

    고졸 프로그래머가 늘면서 대학 IT 교육의 실효성을 놓고도 논쟁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이른바 ‘코딩 독학’을 놓고 이견이 형성된 것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 기업과 국내 대형 포털사를 거쳐 현재 스타트업의 CTO로 일하는 한 개발자는 “대학 교육만으로 실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에는 부족하다. 요즘에는 다양한 경로로 대학 커리큘럼을 학습할 수 있다”면서 “독학으로 실력을 키운 훌륭한 고졸 프로그래머를 여럿 만났다”고 말했다.

    반면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대학이 실무에 쓰이는 프로그래밍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고차원적인 알고리즘 설계는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런 내용은 대학에서 훈련받지 않는 이상 독학으로는 익히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졸 #프로그래머 #코딩 #네카라쿠배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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