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좋아하는 이유는 “공정해서”
수능 1점에 목맨 세대…‘룰’이 우선
文 정부, 조국·LH 사태 보니 ‘말로만 공정’
청년비례 의원들의 국회 진출은 공정한가
이준석은 험지에서 세 차례 낙선, 공정하게 승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도 불공정에 기인
인터뷰에 응한 20대 남성 5명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개 토론에서 실력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뉴스1]
이 중에서도 20대 남성(이대남)의 지지세가 눈길을 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6월 5일부터 이틀간 전국 유권자 1001명에게 ‘국민의힘 대표로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물은 결과, 이 대표는 48.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모든 세대에서 다른 후보를 앞섰지만, 이 중에서도 만 18세~20대(56.8%)와 남성(56.4%) 지지율이 도드라졌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를 지지한 ‘이대남’ 다섯 명을 만나 ‘이준석 신드롬’에 대해 물었다. 대구에 사는 김상원(19) 씨는 경북대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인 대학 새내기다. 서울에 사는 김석환(29) 씨는 정의당 당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3월 탈당했다. 정의당이 청년들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껴서다. 대학 4학년 박정현(23) 씨는 부산에 거주 중이다. 그는 이 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당원 가입을 독려하자 국민의힘에 입당신청서를 냈다. 지현우(27) 씨는 경기 수원에 거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다. 한원종(28) 씨는 경기 김포에 살며 지난 4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에게 표를 던졌다.
이들에게 능력주의·페미니즘·세대교체 등 이 대표를 수식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질문했다. 이들은 일제히 ‘이대남’이 이 대표를 지지하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보수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공정’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20대 남성 5명. [문영훈 기자, 오홍석 기자]
1점으로 대학 갈려…‘공정한 룰’로 불확실성 줄여야
이 대표를 수식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능력주의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자신의 동명 소설 ‘능력주의(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처음 사용했다. 영은 완전한 능력주의가 실현된 사회가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되는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 없다고 경고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2020년 낸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패자에겐 ‘전부 내 탓’이라는 좌절감을, 승자에겐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는 오만을 안겨준다”고 했다. 흔히 국내 진보진영에서 이 대표를 비판할 때 영과 샌델의 주장이 자주 쓰인다.정의당 당원 출신인 김석환 씨는 “공정만 추구하면 샌델이 말하는 (나쁜 의미의) ‘능력주의’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도 이렇게 부연했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일단 규칙은 지키자는 거다. 지금의 20대는 수능 점수 1점으로 대학이 갈리는 입시 경쟁을 겪었다. 취업시장은 날로 작아진다. 이준석 대표의 ‘공정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만 20대가 왜 공정에 집착하는지 기성세대가 이해했으면 한다.”
취재에 응한 이 대표 지지자들에게 ‘공정의 렌즈’는 세상을 바라보고 매사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취업준비생 한원종 씨는 “과정만 공정하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 그러지 않은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대학 4학년생 박정현 씨 생각도 대동소이하다. 그는 “적어도 취업·임금·승진에서는 능력주의가 공정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성별이나 거주지를 이유로 더 이익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1990년대생이 겪은 한국 사회는 정글이다. 치열한 입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 졸업장은 취업을 보장하지 못한다. 재화는 한정돼 있다. 이들은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경쟁에서 패한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체득했다. 그러니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체계를 선호한다. 1994년생 임명묵 작가는 책 ‘K를 생각한다’에 이렇게 썼다.
“90년대생 사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여 규칙이 해킹당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하고, 외부의 개입으로 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 불확실해지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 개입과 교란으로 시스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시험으로 평가되는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며 그 결과에 따른 차등과 불평등을 감수하는 것을 차라리 더 선호한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 “공정하지 않다”
이준석표 공정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현 정부와 기성 정치인들은 공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신동아’가 만난 ‘이대남’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있다. 지현우 씨는 “성인이 된 후 줄곧 정치 지향은 보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에 대해서는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박정현 씨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이들은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계기로 ‘조국 사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꼽았다. 임명묵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공히 ‘규칙이 해킹당한 상황’에 해당한다. 조국 사태는 공정한 룰이 작동한다고 받아들여지던 입시에서 ‘반칙’이 드러난 경우다. LH 사태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규칙을 깨고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를 축적한 사건이다. 박씨는 “조국 및 LH 사태로 이번 정부가 말로만 공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20대들은 이런 불공정한 상황을 보다가 공정을 강조하는 이준석이 등장하니 환영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이 공정의 렌즈로 감지한 불공정은 정부와 여당에 국한되지 않았다. 김상원 씨는 “이 대표가 당 실세나 측근에게 유리한 지역구를 배정하는 공천 관행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원종 씨도 “국회의원 선수가 높다고 다음 공천도 또 따내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 공천부터 능력 위주로 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정치’도 이들에게는 불공정의 키워드로 읽힌다. 공무원 준비생 지씨는 “정의당은 ‘우리는 여성 청년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류호정·장혜영 의원에게 국회 의석을 할당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류·장 의원이) 공정하게 그 자리에 올라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기성과 신진을 나누는 기준은 세대가 아닌 공정성 여부다. 기성 정치에 대한 피로감은 연줄에 의한 정치, 연공서열이나 할당제에 따른 공천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1992년생 류 의원과 1987년생 장 의원 또한 ‘제도를 해킹해’ 여의도에 입성한 또 한 명의 기성 정치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2011년 ‘박근혜 키즈’로 정치에 입문한 이 대표는 ‘이대남’의 공정의 렌즈에 어떻게 비쳤을까.
실력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 정치인
2012년 12월 11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과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19대 총선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웃고 있다. [뉴스1]
박씨는 이 대표의 청년할당제 폐지 주장을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닌 ‘공정함을 세우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또 이 대표가 ‘박근혜 키즈’로 정치에 입문했을지언정 실력으로 특혜 논란을 잠재웠다고 주장했다. 김석환 씨는 “이 대표는 실력으로 ‘박근혜 키즈’라는, 20대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해 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에게는 ‘-3선’(20·21대 총선과 2018년 6·13 재보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서 낙선했다는 의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을 부정하지 않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모습도 좋았다. 자신의 경험이 부족하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는 ‘(노원병처럼 보수정당에는 험지인) 지역구에 한번 나와봐라’고 받아치더라.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실력으로 붙어보자고 말하는 모습이 좋았다.”
김상원 씨도 “이 대표가 청년 비례대표로 출마했다면 ‘0선 중진’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험지인 서울 노원병에 세 번이나 출마해 모두 낙선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이 대표는 경쟁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지만 쉬운 길인 청년 할당을 거부하고 험지에 도전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온실 속 화초’ 같은 이미지인 ‘박근혜 키즈’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패자라는 조롱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면서 10년간의 실패 끝에 당대표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또 이 대표의 토론 능력에도 주목했다. “공개토론에서 이준석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기성 정치인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고, 페미니스트의 모순을 짚어내는 모습에 매료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 지지자인 만큼 ‘이준석표 사이다 발언’이라 불리는 어록 하나씩은 기억하고 있었다. 박정현 씨는 이 대표가 2018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시절 “(미세먼지에 대해) 왜 중국에 아무 말 못 하느냐”며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비판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김상원 씨는 6월 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진행자 김어준 씨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논란을 꺼내자 “남자 김어준은 아내를 버릴 거냐”라고 받아치는 모습을 떠올렸다. 한원종 씨는 5월 18일 MBC ‘100분 토론’에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논리로 깨부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대표와 신 대표는 당시 젠더 갈등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는데, 유튜브 조회수 81만 회를 기록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공정에서 출발
이 대표가 ‘페미니즘 논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점도 ‘이대남’들의 시선을 끈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대표는 2019년 출간한 책 ‘공정한 경쟁’에서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래디컬(급진적) 페미니즘’에 시달리지 않는 삶”을 꼽은 바 있다.이와 관련해 김석환 씨는 “20대는 페미니즘을 바라볼 때 공정의 눈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이대남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진 이유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상원 씨는 “남자는 군대에서 1년 6개월을 보낸다. 그런데 사회로 나가면서 친(親)여성 정책을 접하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모든 남자가 극단적인 반(反)페미를 외치는 게 아니라 2등이 1등을 부러워하듯이 정부 정책이 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섭섭함을 느끼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원종 씨는 작금의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라고 표현했다.
실제 5월 25~27일 한국일보·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남녀평등보다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는 질문에 20대 남성 75.9%가 동의했다. 전체 남성(61.9%)과 비교해 높은 수치다. 20대 남성 응답자 중 “페미니즘·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든다”는 말에 동의한 이는 77.3%였다.
박정현 씨 역시 “지금 페미니즘은 본질을 잃었다”고 단언했다. 그의 요지는 이렇다.
“이대남이 성평등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여성 위주로 치우쳐 있는 사회에 대해 반감을 가진 거다.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는 수년 동안 계속 나왔다. 그런데 분명히 실재하는 남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 대표는 젠더 갈등 이슈가 나올 때마다 남성들의 입장을 지지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마음을 대변해 준다는 것에 통쾌함과 연대감을 느낀다.”
“할당제는 나의 노력에 대한 폄하”
2020년 4월 3일 당시 이준석 서울 노원병 미래통합당 후보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유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1]
지역인재할당제 역시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지역인재할당제는 공공기관 채용에서 지역별 인구비례 기준을 적용하거나 특정 소재지 대학을 졸업한 이들을 일정 비율로 선발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10월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북 부안군청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전국 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 채용에서 절반에 달하는 인원을 지방 인재로 채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김상원 씨는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한 논의는 경북대 에브리타임(대학 내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하다. 그런데 이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너무 과한 우대라는 이야기가 다수다. 과도한 배려로 내 능력이 폄하되는 느낌이었다. 노력하면 실력으로도 취직할 수 있다고 본다.”
책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6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정의(justice)와 달리 공정은 정의(definition)가 없다”며 “공정은 그 사회가 공정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1일 이 대표는 당대표 당선 연설에서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우리(국민의힘)의 방식이 현 집권 세력의 코드인사 방식보다 공정하다는 확신이 대선 승리로 이끌 것”이라 말했다. 이 대표의 공정을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많다. 그렇지만 ‘이대남’의 지지를 받는 이 대표가 새로운 공정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연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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