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인생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실험해 보고 싶었다”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2-12-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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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시골살이 하는 한국 엘리트

    •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받는 시대

    • 강남서 자랐지만 거기서 살 수 없던…

    • 육아, 존재 자체를 흔들 질문을 제기

    • 하찮으니까 몰두하는 집안일

    • 포기와 체념이 즐겁다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즌2로 선보이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는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이번호 주인공은 ‘숲속의 자본주의자’ ‘도시인의 월든’을 펴낸 박혜윤 작가다. <편집자 주>

    10월 20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스튜디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박혜윤 작가. [박해윤 기자]

    10월 20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스튜디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박혜윤 작가. [박해윤 기자]

    저자 ‘박혜윤’의 이름을 검색창에 치면 ‘미국 시골살이 하는 한국 엘리트’ ‘미국에 살고 있는 자연인’ 같은 제목들이 뜬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4년 동안 일하다 워싱턴대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시애틀 외곽 시골 이동식 주택에서 두 딸, 남편과 함께 반(半)자급자족을 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도 본인도 딱히 직업 없이 8년째 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미국 시골살이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낸 ‘숲속의 자본주의자’에 이어 이번에는 ‘도시인의 월든’이란 책을 냈다. 그를 만나보고 싶었던 건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난 그의 삶이 아니라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정직함 때문이었다. 생각과 삶의 불일치가 만연한 요즘, 그는 어떻게 둘을 일치시키며 살고 있는 걸까.

    “진짜 쑥스러운 게 뭐냐면…”

    오랜만이죠. 한국?

    “거의 3년 만이네요.”

    모처럼 사람들이랑 이야기해 보니 어떤 것 같아요?

    “진짜 쑥스러운 게 뭐냐면 저는 늘 똑같았어요. 일관되게 이상한 애였거든요(웃음). 건방지고 싸가지 없고 물정 모르고. 저도 ‘이렇게 살다 죽겠다’ 했는데 시대가 바뀐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이 주목을 받으니. 조금 쑥스러운 건 저보다 앞서나가는 사람이 미국이건 한국이건 되게 많다는 거죠.”



    앞서나간다?

    “정말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주소지도, 집도 없이 여행하며 사는 사람들이요. 미국도 많고 한국서도 많이 만나요. 그분들은 농사든, 여행이든, 애들 교육이든 진짜 ‘찐’으로 해요. 저는 코스트코에서 장도 보고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니까 그런 분들에 비하면 약간 창피하죠. 어떻든 이전까진 전혀 없었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껴요.”

    왜일까요.

    “세상이 좋아진 동시에 나빠진 거죠. 옛날보다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점에서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이 전혀 하지 않았던 질문들, 예를 들면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게 뭐냐? 삶의 진짜 의미는 뭐냐’ 이런 질문을 하죠. 부담스러운 질문이죠.”

    어떻든 미국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시골에서 자연인 비슷하게 살게 된 계기가 뭐였을까 궁금해요.

    “남편이나 저나 애당초 돈 벌 능력이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부모님 세대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삶을 살았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너무 힘든 거예요. 강남에서 자랐지만 거기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일단 기분이 좋지 않죠(웃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밀려나는 거잖아요. 지금이야 강남에 살라고 해도 살지 않겠지만 어떻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자각하고 나니 ‘그럼 다른 능력을 개발해 볼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지 않는 능력’이고 그 능력을 개발하니 또 굉장히 가치를 높이는 면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빵 만드는 걸 예로 들고 싶어요. ‘빵을 직접 굽느니 사 먹을 돈을 벌겠다’ 이렇게 흔히 말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빵을 사 먹을 때의 기쁨도 있지만 직접 만들면서 누리는 기쁨도 있어요. 그 기쁨을 증폭시키면 훨씬 많은 다른 능력이 내게 있었다는 걸 발견하죠. 빵을 사는 일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이거 아껴서 저걸 사는 ‘산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평행우주예요. 사실 비싼 유기농 빵을 사려면 그걸 파는 동네에 살아야 하고, 안 되면 차를 타고 가야 해요. 빵만 사는 게 아니고 다른 것도 사게 되고 이런 식으로 소비가 증폭되죠. 그런데 집에서 만들면 일단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 쓸 시간이 없고 만들고 배우는 데 대한 기쁨이 증폭되면서 소비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저도 처음부터 알고 한 건 아닌데 해보니까 놀란 거예요.”

    빵 만드는 게 재미있던가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나중에 정말 재미있는 오락이 됐어요. 저는 통밀을 직접 빻아 즉석에서 만드는데 마트에서 파는 빵과는 공정이 완전 달라요. 밀가루가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거든요. 남이 빻아놓은 밀가루로 만든 것과 내가 직접 갈아서 하는 건 같은 행위가 아니에요, 제가 만드는 빵은 매번 구울 때마다 다른 빵이 나오니까 순간순간 집중하게 되죠. 밀가루를 만지며 느끼는 그 시간은 굉장히 집중하는 시간이고 창조적인 활동이에요. 단순히 먹는다는 차원을 떠나서 즐거움을 느끼니까 오락이 되는 거죠.”

    자랄 때 집안일 많이 했어요?

    “책에도 썼지만 저는 화장실 변기가 노래진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엄마는 ‘공부만 해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면서 모든 걸 해줬기 때문에 저는 가사에 완전히 무능력자였죠.”

    나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깨달음

    박혜윤 작가가 쓴 ‘숲속의 자본주의자’와 ‘도시인의 월든’. 미국 시골살이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낸 저작들로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다산초당]

    박혜윤 작가가 쓴 ‘숲속의 자본주의자’와 ‘도시인의 월든’. 미국 시골살이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낸 저작들로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다산초당]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에게선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성찰하고 사유하는 철학자의 면모가 읽힌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시인의 월든’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이 집안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책에 있는 부분을 띄엄띄엄 인용한다.

    “나는 집안일은 하찮다고 말하면서도 그 무게를 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집요할 정도로 관찰하고 실험한다…집안일은 하찮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집안일의 하찮음이 바로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집안일이 하찮다고 인정하고 나니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다른 일들이 하찮게 여겨졌다…다이어트도 주식투자도 공부도 양육도 결국 단순하게 버티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엄청난 노력보다 아마 더 중요한 건 그냥 무심하게 기다리면서 계속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불안이나 기대에 발목 잡히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납득할 수 있는 만큼 지속하는 것이다. 이 어려운 걸 하는 동안 갖는 무심하고 건방지고 진심으로 결과를 하찮아하는 마음이, 어쩌면 악을 쓰며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오래 기다리게 만들지 않을까…이때 집안일은 엄청나게 중요한 닻이 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말든지 ‘네가 먹은 걸 스스로 치우는 건 여전히 멋진 일이야’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집안일이 하찮다고 전제한 뒤 그래서 몰입하기로 했다는 자기 합리화(?)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책에도 썼지만 출발은 나 자신이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하찮은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왔어요. ‘나는 별것 아닌 존재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이 세상이 그렇게 나빠지거나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건 자기 비하는 아니에요. 저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니까. 그런데도 너무 모순인 게 모두 ‘내’가 너무 좋고 중요하잖아요. 그걸 부정할 수 없는데 하찮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고 그 지점에서 온 게 제게는 집안일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 같아요.”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네요.

    “우리 엄마 시대만 해도 집안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잖아요. 지금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집안일을 하면 뭔가 상실되고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기 쉽잖아요. 이걸 겉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집안일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제게는 집안일이 하찮다는 걸 부정하는 건 제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어요. 집안일은 사회적인 가치로 봤을 때 하찮은 게 맞는 거예요. 변기 색깔이 바래지는 것을 몰랐다는 것도 내가 뭔가를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인생 자체가 원래 이렇게 하찮게 살다가 하찮게 죽어가는 거 아닐까. 그래서 어느 날, 이 하찮은 일에 굉장히 집중하기로 결심한 거죠.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게 뭐냐면 집안일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너무 훌륭한 아이가 되는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게 됐다는 게 아니고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거예요.”

    배려심이 생긴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땅바닥에 발을 딱 딛고 서는.”

    ‘10억을 벌겠다’처럼 매우 진지한 야심

    예를 들면?

    “저희 집 애들은 사춘기 때 엄마한테 반항을 한다든지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왜 나는 이래?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저는 아이들이 집안일을 하면서 자기 존재감이 확고해졌다고 봐요. 공부를 남보다 잘하는 데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갖고 놀던 장난감은 내가 치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고 싶으면 스스로 일어난다, 내가 먹은 거는 내가 설거지한다, 다음 날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면 빨래는 어떤 스케줄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면 날씨를 체크해야 한다, 이런 식이죠. 집안일을 하면 머리도 좋아져요(웃음). 전략이 필요하니까요. 어떻든 아이들이 ‘나는 대단한 존재인데 왜 내가 이런 하찮은 일을 해?’ 이런 비하를 하거나 남 탓하는 일이 없어요. 저는 자랄 때 입고 싶은 옷이 빨래가 안 돼 있으면 엄마한테 성질만 냈거든요.”

    대부분 그렇지요.

    “저희 애들은 유치원 때부터 예를 들어 양말 빨아놓은 게 없으면 어제 신은 거나 심지어 짝짝이라도 신고 가요. 어떤 식으로든 문제 해결을 하는 거죠. 대응 방식도 큰애와 작은애가 달라요. 그러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거예요. 서로 간에 차이를 설명해 주면 아,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그걸 받아들이는 거죠. 왜 빨래 안 했어? 이렇게 성질내는 애가 안 되고.

    전업주부가 정체성인 저는 집안일이 하찮다는 걸 인정해야 그다음 단계로 생각이 넘어갈 수 있었어요. 나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무의미한 존재가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야 선택이 생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좋아하고 긍정하기 위해서 말이죠. 사실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찌질찌질 외주를 주거나 포장 음식을 시켜 먹거나 냉동식품으로 해결했을 거예요.

    그러다 애들이 생기면서 갑자기 집안일이 무시무시하게 많아지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죠. 마음에 부딪히는 게 있다면 그게 스트레스잖아요. 사랑하는 아이를 좋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런데 집안일은 하찮다 이걸 통합하고 싶었어요. 책에 썼지만 ‘집안일을 단 하루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저로서는 남들이 10억을 벌겠다,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처럼 매우 진지한 야심이에요. 단 하루도 ‘집안일이 힘들다’고 느끼면 패배하는 것 같은 느낌.”

    선언을 지키는데 성공했나요.

    “지금까지 야심을 이루고 있죠. 그게 또 가능한 게 저희 집 애들은 우리 집의 생산자, 즉 일꾼들이에요. 요즘 집안일은 엄청난 외주화가 일어나 더 는 소비가 아닌 생산의 영역에 들어갔잖아요. 거의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희 집 애들은 엄청난 생산자들이에요. 어떻든 지금은 집안일이 단 하루도 힘들다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요.”

    집에 각자 컵도 하나, 냄비도 한두 개라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해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나는 식판에 먹을 테니까 접시 다 꺼내 먹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 대신 각자 씻는 거야’ 그랬더니 자기들도 해보니까 귀찮거든(웃음). 점점 식기를 줄이더라고요. 그게 집안일의 아름다움이에요. 한 번 잘하는 건 소용없어요. 일관성이 중요하죠. 둘째는 음식 섞이는 걸 엄청 싫어했는데 설거지를 몇 번 해보더니 이제는 다 섞어서 접시 하나에 먹어요.”

    진정한 쾌락은 나 자신을 지우는 순간 온다

    어떻게 시골로 들어가 살게 됐어요? 박사를 딴 건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한 거 아닌가요.

    “저도 당연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잘난 척하면서 살고 싶었죠.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포기가 빨라요.”

    포기, 체념할 때는 기분이 별로잖아요.

    “저는 기분이 좋아요(웃음). 능력이 안 된다는 판단이 서면 핑곗거리가 생긴 것 같아서 즐거워요. 처음에는 실망도 하지만 한두 밤 자고 나면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큰애가 발레리나 되고 싶다고 해서 시켜봤는데 너무 재능이 없는 거예요. 처음엔 실망했는데 나중엔 기뻤어요. 재능이 있었으면 엄마인 제가 계속 쫓아다녀야 되잖아요.”

    낙천적인 성격인가요?

    “‘나는 의미 없는 존재다, 하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낙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자기 비하일 수도 있죠.

    “모든 걸 다 비하하니까 그것도 아니죠(웃음).”

    집안일 하나로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책에 ‘계속 생각을 밀고 나간다’는 표현을 썼던데 다가오네요.

    “네, 생각을 밀고 가는 걸 되게 좋아해요. 뭘 생각하고 그걸 넘어서 다음 생각으로 넘어갈 때 쾌락이 느껴져요. 그런데 진정한 쾌락은 나 자신을 지우는 순간에 오는 것 같아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생각을 밀고 나가면 내가 별거 아니라는 자각이 오고 그걸 받아들이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돼요. ‘나’라는 것에 갇힌 생각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나를 지운다는 게 굉장히 힘들지 않나요? 보통의 경우 기독교에서도 ‘에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불교에서도 결국 나(我)라는 게 고통의 출발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하고 일맥상통하게 들리는데 어때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나를 지우는 게 힘든 일은 맞는데 그다음 단계에 오는 쾌락이 커요.”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과의 전면적 맞대면이 둘째 아이의 육아 문제였다고 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 할머니 집에서 자라던 둘째가 세 살 때 미국에 왔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마트 가면 뭐든지 사달라고 나자빠지고 원하는 걸 얘기도 않고 울기만 하고. 두 달 동안 거의 지옥에서 살았어요. 일단 한국에 보낸 뒤 곰곰이 생각을 했죠. 회사 같으면 사표 쓰면 그만인데 아이는 버릴 수 없는 거 아닌가. 결국 정면돌파 해야 한다, 그러면서 ‘나를 지운다’는 걸 목표로 잡았습니다. 특별한 육아법이 필요한 게 아니고 내가 온전히 사라지고 나를 이 애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따지고 보니까 아이가 울어서 지옥이 아니고 애가 미우니까 지옥인 거였어요. 두 달 후 애를 다시 데려오는 날, 공항에서 그냥 눈물이 팍 터지는데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지우는 울음이었던 거예요. 되게 이기적인 눈물이었죠. 나를 보내는 눈물이었으니까요.”

    나를 지우니 어떻게 달라졌나요.

    “솔직히 처음엔 아이가 미웠어요. 이 미움의 감정도 되게 중요한 출발이었던 게 처음엔 어떻게 울지 않게 해줄까? 이렇게 하면 나중에 성격이 나빠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게 잘 키우는 걸까? 이런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 생각들이 바로 ‘나’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거죠, 그냥 애가 웃고 있을 때와 울고 있을 때를 똑같이 보려면 웃는 거는 좋은 애고 우는 거는 걱정스러운 거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걸 깨달은 거죠. 저는 사실 육아를 한 게 아니고 소통하는 경험을 한 겁니다.”

    그는 “육아 문제가 존재 자체를 흔들어버릴 정도로 자신에게 굉장한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아이 둘을 낳지 않았으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예요. 열심히 출세와 성공을 위해 노력했을 수도 있고요. 아이를 낳고 되게 후회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몰랐던 거죠. 저는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 그런 야망이 큰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아이가 발목을 잡은 거죠. 하지만 아이는 버릴 수는 없잖아요. 고민 끝에 ‘죽음을 불사하고 태풍 속으로 들어가서 산산이 찢겨서 사라져도 상관없다’ 이런 마음으로 정면돌파를 하겠다고 결심한 거죠.”

    다시 사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미래에 대한 불안, 공포 없어요?

    “기대를 버리면 즐겁게 살게 되죠.”

    4인 가족 140만~150만 원이면 산다

    자신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용기란 비용을 치러야 해요. 예를 들어 농장을 하려고 시설을 해놓고 농기계를 몇 천 만원어치 샀다면 그게 용기인 거죠. 투입 자금 회수할 때까지 막 돌려야 하잖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는 안 해요. 뭔가를 시도하되 돈을 들이지 않고 찔러본다, 그러면 싫증이 나도 금방 포기할 수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도망치고 포기할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그런 걸 용기라고 할 수는 없죠.”

    사람들이 ‘직업 없이 어떻게 살아요’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답할 건가요.

    “저는 제 삶을 한번 실험해 보고 싶었어요. 생각한 대로 과연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지난 8년간 잘 살았고 의외의 기쁨과 만족을 얻고 있어요. 삶에서 실험을 하려면 빚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건지 결정해야 돼요. 살 집을 빚 없이 가야 되는 거까지 해야 돼요. 그래야 이렇게 살 수 있어요. 이자를 내야 되는 상황이면 안 되죠. 빚 없이 집을 소유하면 그다음부터는 자기 선택이죠. 그때부터는 먹고만 살면 되잖아요. 시간이 많으니까 만들어 먹고요. 한 달에 4인 가족이 140만~150만 원 정도 되면 살더라고요.”

    건강이나 노후에 대한 걱정은?

    “남편이나 제가 감사하게도 40살까지 살아보니까 앞으로 60, 70까지는 그럭저럭 병원 신세 안 지고 살 수 있겠다, 그런 상태에서는 스트레스 안 받는 걸로 건강을 유지하자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애들 교육비는.

    “학원 안 보내면 공교육은 공짜예요. 스쿨버스도 공짜고.”


    박혜윤 작가는 “내가 추구하는 건 자유다. 행복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박혜윤 작가는 “내가 추구하는 건 자유다. 행복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언뜻 부러운 생각도 드는데 책에는 ‘(남들에게) 이런 삶을 권하지 않겠다’고 썼더군요.

    “다 각자 선택이니까요. 저도 언제 또 이런 생활을 그만둘 수도 있고요. 저는 작은 행복, 소소한 행복을 믿지 않아요. 꼭 행복하게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도 해요. 저희 집은 생일 파티라든지 이런 거 전혀 안 하고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지내지도 않아요. 다만 자랑할 수 있는 게 있다면 24시간 365일 4인 가족이 함께 있어도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것. 각자 자기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게 사실 어렵거든요. 모든 게 유기적으로 다 돌아가고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제가 추구하는 건 자유예요. 행복과는 다르죠. 그렇다고 하늘을 날겠다거나 요트를 탈 수 있는 자유가 아니고 그냥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죠. 빵 만드는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얻는 만족, 쾌락, 기쁨 그럴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

    어떻게 보면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버리고 비우면 가벼워지나요.

    “버리고 비우는 것 자체도 귀찮으니까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자유를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버리고 비우게 돼요. 물건을 쌓아놓으면 제한을 받거든요. 채식주의니 뭐니 하는 어떤 주의에 묶이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야 된다는 명제에 충실한 것도 다 묶이는 제한이 되잖아요. 왜 꼭 잘 살아야 돼요. 그냥 사는 거죠.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쾌락주의자라고 하는데 겉으로 보면 금욕이 맞아요. 저희 집은 쓰레기가 거의 안 나와요. 뭘 사지를 않으니까.”

    음식물 쓰레기도?

    “땅에 묻기도 하고 주로 껍질이 나오지 않는 과일을 먹고 감자, 고구마 이런 거는 껍질까지 다 먹어요.”

    쓰레기를 싫어해요?

    “귀찮으니까. 자유를 또 제한하니까. 버려야 되니까. 지구를 구하려고 쓰레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죠.”

    정직한 삶을 살아가려는 순결함

    작가 박혜윤과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그녀는 말이 빨랐고 많았지만 듣는 내내 빠져들게 했다.

    사람들은 그의 가족이 미국에서 반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신기해했지만 대화를 나누고 보니 그가 하는 ‘삶의 실험’보다는 순간순간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아가려는 순결함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니 뭔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가 하는 삶의 실험처럼 삶의 무늬란 다양하며 생각한 대로 살아도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고 그곳에는 또 다른 기쁨이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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