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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 SF] 차원 이동자(The Mover) 9-4

이탈자와 추격자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윤채근 SF] 차원 이동자(The Mover) 9-4

  • 탁월한 이야기꾼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SF 소설 ‘차원 이동자(The Mover)’를 연재한다.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차원 이동자’ 이야기로,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는 이 소설 지난 회는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채근 SF] 차원 이동자(The Mover)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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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

[GettyImage]

낄낄대던 요괴가 조롱하듯 외쳤다. 

“하나의 차원에 동일한 존재가 둘이 될 순 없느니라.” 

팔짱을 끼고 고개 숙인 제베가 속삭였다. 

“알아. 그 순간 차원이 분열하기 시작했겠지.” 

“멋지도다! 네 녀석 내가 하는 걸 이미 해냈었구나. 차원 증식은 어려운 노동이니라.” 



“증식되진 않았어. 난 즉시 빠져나와 이동했으니까.” 

“아쉽구나. 차원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어야 했거늘!” 

쓸쓸한 표정으로 헤라트성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던 제베가 말했다. 

“난 이 행성을 망치고 싶진 않았어. 그저 이렇게 유랑하며 즐기고 싶었을 뿐이야.” 

다시 한 번 높이 솟구친 뒤 제베 옆으로 다가온 요괴가 말했다. 

“네놈이 이 행성 출신이라면…, 그렇다면 넌 내 피조물이니라.” 

“무슨 소리야?” 

“언젠가 말하지 않았더냐? 난 이 세상의 창조자라고! 구멍을 파기 전의 이 행성! 공룡만 득실대는 재미없는 곳이었도다. 운석을 몰아와 충돌시킨 뒤에야 비로소 인류가 출현했던 게다. 인류는 내 발명품이라 이 말씀이야.” 

“그럼 멕시코 유카탄반도 운석 충돌이 네 짓이야?” 

“그렇지. 그러니 난 네 창조주이기도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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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뒤져 사탕을 찾아낸 선예림이 칼손에게 물었다. 

“하나 드시겠어요?” 

칼손이 고개를 가로젓자 예림이 사탕을 입에 물고 말했다. 

“담배 생각이 자꾸 나네요. 아무튼 그 모든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 차원이 무너지면서 이곳 출신인 당신도 소멸되는 게 아닌가요?” 

다리를 꼰 칼손이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전 기억을 찾아 오래 방황했죠. 그런데…, 그 종착점이 이 지구라는 걸 알고 궁금했습니다.” 

“뭐가요?” 

“어째서 그 기억이 남았을까?” 

“글쎄…, 왜였을까요?” 

“처음엔 이 행성과의 불가사의한 친화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오듯 그렇게 이 행성의 인력에 휘말렸다고. 그래서 이 별을 사랑하게 됐죠.” 

“그런데 결국 요괴 편이 되셨잖아요?” 

“그랬죠. 그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군요.” 

“듣고 싶어요.” 

“헤라트에서 요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난 뒤 전 각오했습니다.” 

“그건 말씀하셨어요. 차원에 구멍이 뚫려 이 행성과 관련된 모든 게 사라진다 해도, 심지어 이 별에서 기원한 자기 자신마저 소멸돼도 좋다. 그 말씀 아니셨어요?” 

“네. 제가 지구 출신이라면 구멍 너머로 넘어가기 전에 사라질 수도 있겠죠. 그럼 우주 밖은 영원히 가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시는 건가요?” 

“아스트라바드에서의 일을 마저 설명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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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용의주도하게 이 행성의 역사를 디자인하고 있다 이거야. 골치 아픈 추격자 놈들만 없었다면 벌써 구멍이 뚫렸을 터인데. 아무튼 넌 우리랑 같은 부류이니, 자 이제 두더지로 살자꾸나!” 

말을 마친 무함마드 2세가 경호대장 아미드를 그윽이 쏘아보더니 갑자기 미친 듯 웃어댔다. 아미드가 소리쳤다. 

“그거 비웃는 거야?” 

비틀대며 다가온 술탄이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헤라트에선 내가 농을 좀 걸었도다. 그 기억 말이다. 잘 궁리해 보거라. 네가 진짜 지구인이었다면 어떻게 그 짧은 기억만 보존하는 게 가능했겠느냐?” 

“무슨 뜻이지?” 

“넌 지구인이 아니란 그 말씀이야.” 

“그럼 난 뭐지?” 

아미드의 어깨에 몸을 기댄 술탄이 취기로 헉헉대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넌 우리 일원이었을 게다. 두더지! 그 비행선이 요격됐을 때 넌 아마 그 누구냐…, 음 파라나이클? 그 계집의 아들 몸에 막 육화된 상태였을 게다. 그 뭐냐…, 새로 띄운 섬을 파괴하려 잠입 중이었을 게야!” 

“파괴하려고?” 

“그렇지! 숙주에 육화되자마자 비행선이 부서지고…, 넌 튕겨져 나왔을 게다.” 

“숙주 몸에서?” 

“그렇다! 숙주 데이터를 장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느냐? 잠시 방심했을 게다. 결국 숙주 속에서 겪은 짧은 기억만 지닌 채 우주 속을 떠돌았겠지. 그러다 안식의 성단으로 회수됐을 것이야.” 

“내가 너희 조직 일원이었다고?” 

“그러니까 넌 애초부터 우리 편이고 이 행성계에 구멍이 뚫려도 결코 소멸되진 않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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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신도…, 요괴였군요! 이 행성을 끝없이 파괴하는.” 

예림의 목소리가 떨렸다. 칼손이 천천히 일어서며 대답했다. 

“확신할 순 없습니다. 예림 씨 자유지만 이 얘긴 추격자에게 안 하셨으면 좋겠군요.” 

“왜요?” 

“제가 지구인일 확률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막으셔야죠! 그 두더지들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려다 돌아선 칼손이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그건 당신처럼 확실한 지구인들 몫 아닐까요? 전 우주 밖으로 나가보고 싶습니다. 거기 무엇이 있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문이 닫히며 칼손의 희미한 마지막 음성이 잔상처럼 전해졌다. 

“이곳이 제 고향 행성이라면…, 기꺼이 소멸되겠습니다.” 

닫힌 문을 바라보던 예림이 창밖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기분이었지만 슬프지만은 않았다. 진짜 슬픈 존재는 한 조각 기억만으로 영원을 떠도는 이탈자였다. 그녀가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추격자의 방문을 기다릴 차례였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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